매월당 시집 제1권 3-393 술회述懷 39 만성漫成 뜻 없이 짓다 二首
1
궁산세모좌제시窮山歲暮坐題詩 세밑[歲暮]에 깊은 산에 앉아서 시 쓰는데
빙합송매염연기氷合松煤染硯肌 얼음물에 솔 그을음 합하여서 벼룻돌을 채웠네.
기골하암다장기飢鶻下巖多壯氣 주린 매는 바위에 내려도 씩씩한데
동치준수유기자凍鴟蹲樹有奇姿 언 솔개미 나무에 쭈그린 것 볼 만하네.
도잠오세나무취陶潛傲世那無醉 도잠陶潛이 世人을 경시한 것. 어찌 취함이 없겠으며
두보사군불폐시杜甫思君不廢詩 두보杜甫는 임금 생각해도 시는 폐하지 않았었네.
자유흉탄운몽취自有胸吞雲夢趣 저절로 가슴에 운동雲夢 삼킬 취미가 있었나니
장부로거즉호시丈夫老去即豪時 대장부 늙어감이 곧 호기로운 때이더라.
한해가 저무는 날 깊은 산 산방에 앉아 시를 짓자니
벼루에 갈아놓은 송매 먹물은 얼어붙었는데
바위에 앉은 송골매는 굶주렸지만 용맹한 기운이 넘치는데
나뭇가지에 얼어붙듯 쭈그려 앉은 올빼미는 기묘하다네.
도잠이 벼슬도 마다했지만 어찌 술까지 끊었으랴
두보도 황제를 흠모하는 시 짓기를 그치지 않았다오.
내 가슴은 운몽 호수의 물을 모두 삼킬 만큼 넓어서
대장부 늙어간다지만 지금이 곧 호쾌한 때라네.
►궁산窮山 심산深山. 깊은 산
►빙합氷合 얼음이 얼어붙음.
►송매松煤 송연松烟). 소나무를 태운 그을음.
먹[黑]을 만드는 재료로 그을음 가마에서
소나무 장작불로 채취한 松煤를 아교阿膠로 반죽하여 굳히면 墨이 됨
►연기硯肌 벼루 윗면
►‘송골매 골鶻’ 송골매(松鶻)
►‘올빼미 치鴟’ 올빼미. 수리부엉이.
►‘쭈그릴 준蹲’ 쭈그리다. 모으다. (발 족足)+(높을 존, 술그릇 준尊)
►오세傲世 세인世人을 무시함. 부귀공명을 마다함.
►도잠陶潛(365-427) 六朝시대 동진東晉의 詩人. 호號는 연명淵明.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고 벼슬을 그만두고 시골집에서 농사짓고 여생을 보냈음
►두보杜甫 당唐의 大詩人. 자는 자미子美, 호는 소릉小陵.
이백李白과 병칭하여 이두李柱라 한다.
►흉탄운몽胸呑雲夢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자허부子虛賦에 등장하는 詩句.
풍부한 학식學識과 뛰어난 기개氣槪를 빗대어
“가슴속에 운몽택雲夢澤 일곱, 여덟쯤은 삼킨다.”고 함.
雲夢은 초楚나라의 큰 연못 7개(七澤)중 하나로 湖北省 武漢 서북쪽에 있으며 사방이 9백리라 함.
굴원屈原의 초사楚辭에도 등장하는 연못임
평생팔구탄흉중平生八九呑胸中 평생에 저 바다 엳아홉쯤 가슴 속에 삼켰더니
금일부감진배동今日俯瞰眞杯同 오늘 굽어보니까 참으로 술잔만 하구나
/<서거정徐居正 망해음望海吟>
수참운여몽雖慚雲與夢 비록 운몽 못보다 작아 부끄러우나
역불양맹제亦不讓孟諸 역시 맹저 못에는 양보 못 하리만큼 크네.
/<김종직金宗直 용산사방이교리龍山寺訪李校理~사가독서우시사賜暇讀書于是寺>
2
조세공명랑자기早歲功名浪自期 젊을 때에 공명 하리라 부질없이 기약했더니
차신단합예사구此身端合曳沙龜 이제는 이 몸이 모래에 꼬리 끄는 거북이와 합치되네.
세정박사조당혈世情薄似蜩螗趐 세상 인정 얇기가 매미 날개와 같은데
한몽첨어경옥이閑夢甜於瓊玉飴 한가한 꿈 달기는 경옥瓊玉 엿과 같구나.
뇨뇨담연응석경裊裊淡煙凝石逕 하늘하늘 맑은 연기는 돌길에 서려 있고
연연한월상송지娟娟寒月上松枝 곱고 고운 찬 달은 솔가지에 떠 있구나.
시명로대장하용詩名老大將何用 시인詩人이란 이름 늙어지면 장차 어디에 쓰리.
제편남창소벽시題遍南窓小壁時 남쪽 창 작은 벽에 두루 쓰는 때이더라.
젊을 땐 방자하게도 세상에 이름을 떨치리라 다짐했는데
지금 내 신세는 모래밭에서 꼬리 끌고 다니는 거북이 같네.
세상인정 박하기는 날아다니는 매미 날개처럼 얇고
한가롭게 살며 꾸는 꿈은 달콤하기가 경옥고와 엿이라네.
뿌연 안개가 모락모락 피어 자갈길에 엉겨있고
차가운 밤 산뜻하게 고운 달이 소나무가지 위에 떴다오.
시를 쓰는 사람이나 늙은 처지라 장차 어디에 써먹을지
남쪽 창문틀 위의 자그만 벽에다 때때로 글이나 적어 붙이리.
►‘물결 랑(낭)浪’ 허망하게도. 방자하게
►경옥瓊玉 경옥고瓊玉膏라는 정혈精血을 돕는 補藥을 말함이니 꿀을 많이 넣어서 매우 달다.
►‘엿 이, 먹일 사飴’ 엿. 밥을 엿기름으로 삭혀 고아서 만듦
►뇨뇨裊裊 (연기·냄새 따위가) 하늘하늘. 모락모락. ‘간드러질 뇨(요)裊’
►담연淡煙 엷거나 뿌연 연기煙氣
►연연娟娟 빛이 산뜻하게 아름답고 고움. ‘예쁠 연娟’
►소벽小壁 문틀 위쪽의 자그만 벽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