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빙허각 이씨의 생애
빙허각 이씨는 세종대왕의 17 째 아들인 영해군 당(塘)의 후손인 이창수(李昌壽)의 따님으로 서유구의 형인 서유본(徐有本)에게 출가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은 <언문지>를 저술한 유희의 모친으로 알려지고 <태교신기>의 저자인 사주당 이씨와 자매간으로 알려지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주당 이씨는 빙허각 이씨의 외숙모라고도 한다. 그러나 계보를 통해서 살펴보면 사주당 이씨는 빙허각 이씨의 외사촌 동서이며, 빙허각 이씨는 유희에게는 아버지의 고종사촌누이, 즉 고종당고모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서유구와는 생가로는 친형수인 동시에 사촌 형수이면서, 양가로는 육촌형수의 관계로 밝혀지고 있다. 그리고 사주당은 빙허각과 같은 전주이씨이지만, 빙허각과는 달리 태종의 다섯째 아들인 경영군 배의 11대손인 이식창의 딸이다. 이들간에는 25년이나 차이가 나는 사이지만 생전에 상당히 깊은 관계를 유지한 것 같다.왜냐하면 빙허각의 저서로 지금은 전하지 않고 있는 <빙허각고>의 내용을 소개하는 글에서 사주당이 지은 <태교신기>의 발문인 태교신기발문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아마도 규합총서의 <청낭결>의 태교의 내용에 태교신기를 많이 참작했을 것으로 보인다.
2. 규합총서의 문헌적 내용
현재 규합총서의 원본은 전하지 못하고 있어 아쉬움이 있으나, 그 내용의 전모가 확인되지 못하고 있는 편이다. 그 목차도 완전히 파악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현존하는 이본을 비교해야 한다. 이본의 수효는 일곱 본이다. 가람본이 하나, 국립도서관본이 하나, 영평사본이 하나,정양완본이 둘이고, 동경대본이 둘이라서 모두 일곱 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