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생 소백주 (101)미인계(美人計)
“맞습니다. 서방님, 저 이정승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거액의 뇌물을 받아 챙기는 만큼 그 액수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클 것입니다. 돈 많은 자가 이정승에게 뇌물로 바치는 돈은 시골의 일개 선비인 서방님이 바친 전 재산의 돈 삼천 냥은 어쩌면 돈이라고 할 수도 없는 작은 돈이겠지요. 그리고 이정승은 이미 돈은 가질 만큼 가진 자이기에 돈으로 그를 움직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소백주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는 김선비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김선비는 소백주를 한동안 바라보고 있다가 된통 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어흠! 그대의 마음을 내 잘 알겠소. 열 계집 마다하지 않는 것이 사내라고들 하는데, 사내란 예쁜 계집이라면 저 군왕에서부터 촌부까지 사족을 못쓰는 것이니 그래서 저 탐욕에 빠진 속물 소인배 이정승에게 그대를 바쳐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로군요. 손자병법의 제 31계 미인계(美人計)라! 삼국지연의에서 초선의 미인계로 여포의 마음을 잡고 여포로 저 동탁을 베어버리는 왕윤의 이간계(離間計)!… 으음! 그대의 미인계에 안 넘어갈 사내가 이 조선 천지에 몇이나 되겠소. 어어 어흠!…”
김선비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서방님, 이제야 제 말뜻을 알아 들으셨군요. 한갓 물고기를 잡으려 하여도 물고기가 좋아하는 지렁이를 주어야하고, 꿩을 잡으려면 꿩이 좋아하는 콩을 주어야 합니다. 산토끼는 길목을 지키는 올가미로 잡아야 합니다. 좋아하는 것을 주고 그 길목에 올가미를 놓는다면 모조리 다 잡을 수 있겠지요. 본시 세속의 사내란 술과 도박 그리고 계집 그 셋 중 하나는 즐기고 산다고 들었습니다. 도연명과 이백은 술을 좋아했고, 정승판서부터 시정잡배까지 일확천금을 노리는 투전판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황제와 군왕들은 미색에 빠져 나라를 잃어버리지요. 그게 세상사입니다. 저 이정승에게 권력과 돈을 줄 수 없다면 그 다음은 무엇이겠습니까? 제가 듣기에 일찍이 이정승은 여색을 아주 밝힌다고 하더군요. 이정승을 마음대로 움직이려면 그가 좋아하는 아름다운 여자를 주어야겠지요. 그러기에 서방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서는 소녀를 그 이정승에게 바쳐야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소백주가 조용히 말하며 김선비를 바라보았다.
“으음!… 나의 뜻은 그대와의 변치 않는 사랑뿐이라오. 그것은 그대가 더 잘 알지 않습니까!”
김선비가 소백주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요. 좋습니다. 서방님. 서방님은 제가 하라는 대로만 하시면 됩니다. 저를 서방님 곁에 영원히 붙잡아 두시려거든 어서 같이 한양으로 떠나시지요.”
소백주가 다짜고짜 앞장서며 김선비를 다그쳤다. 아무래도 소백주의 고집을 도무지 꺾을 수 없다고 생각한 김선비는 괴나리봇짐을 짊어지고 따라 나설 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김선비와 소백주는 한양을 향해 함께 길을 떠났다. 한양을 향해 가는 길에 소백주는 이정승을 만나서 해야 할 말들을 하나하나 꼼꼼히 일러 주었다. 이왕 소백주를 따라 나서는 길인데 그녀가 시키는 대로 해야겠다고 김선비는 마음을 다잡아 묶는 것이었다.
기생 소백주 (102)천 냥
이 마당에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아니겠느냐고 김선비는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날 오후 늦게 한양 땅 으리으리한 이정승 집에 도착한 김선비는 퇴궐한 이정승을 만날 수 있었다.
이정승은 김선비를 맞으며 ‘귀찮은 녀석이 왜 또 나타났지? 또 그깟 푼돈 몇 푼 들고 와서 벼슬자리 타령을 하려는 것인가!’ 하고 말하는 듯 시큰둥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런데 김선비와 함께 들어와 그 옆에 앉은 여인을 곁눈질로 바라본 이정승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입을 떡 벌리고 자꾸 입맛을 다시며 경탄을 하는 것이었다. 바람 한 점 없는 화창한 맑은 봄날 그 봄볕을 받고 막 피어난 이슬 머금은 붉은 모란꽃 같은 절세미인 소백주를 보고는 ‘저런 아름다운 여인이 세상에 다 있단 말인가!’ 하고 마른 침을 꼴깍꼴깍 다시며 그녀를 곁눈질로 자꾸 흘끔거리는 것이었다.
실은 이정승은 재물에 대한 욕심도 많았지만 여색을 좋아해 밝히는 호색한이었던 것이다. ‘세속의 권력과 명리(名利)에만 절어 사는 속물의 사내들은 돈 다음에 권력 그리고 그 다음은 아름다운 여자가 아니겠는가!’ 소백주의 예상은 미리부터 적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승나리, 3년 동안이나 지체 높은 이정승 댁에서 식객 노릇을 하며 큰 은혜를 입었는지라 그 은혜를 잊지 못하여 아내와 함께 감사 인사차 방문하였습니다.”
김선비는 소백주가 일렀던 대로 말했다.
“어 어흠! 그 그래서 오신건가! 뭐 그런 걸 가지고……”
이정승은 거들먹거리며 자꾸 곁눈질로 소백주를 흘깃거렸다. ‘세상에 보다보다 저런 아름다운 미인이 조선 땅에 있었다니! 호오! 오월 화단에 핀 모란이로고! 천하의 권력을 거머쥔 이 나라의 재상인지라 여기저기 맛좋은 것은 다 얻어먹으면서 맘껏 여흥을 즐기면서 내로라는 여인네들은 죄다 섭렵하였건만 저런 여인은 참으로 처음이로구만!’하고 이정승은 속으로 생각하면서 소백주에게 잔뜩 군침을 다시는 것이었다.
소백주는 이정승의 탐욕스런 눈빛을 마다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달콤한 유혹의 눈빛을 슬금슬금 던지는 것이었다. 교활한 대어(大魚)를 낚으려면 그에 상응하는 만족스런 미끼를 던져야 한다는 것쯤은 소백주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정승과의 인사가 끝나고 김선비와 소백주는 그 집에서 며칠 머물렀다가기로 하고 물러나왔다.
소백주가 이정승 집에서 며칠 묵은 까닭은 이정승이 입궐과 퇴궐을 할 때 우연을 가장하여 집안 길에서 마주치며 달콤하고도 은밀한 눈빛을 이정승에게 아낌없이 던져 그 마음을 사정없이 흔들어 놓기 위함이었다. ‘나를 갖기 위하여서는 먼저 우리 서방님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무언의 시위를 하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이정승은 소백주의 뜨거운 눈빛을 피하는 척 하면서도 ‘오메! 나 죽겠네!’ 하고 마른침을 사정없이 다시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너무 뜸을 길게 들이면 아니 되었다. 적당할 때 그 때를 놓치지 않고 여유 있게 채야했다. 그렇게 그 집에서 며칠 묵고 난 어느 날 오후 이정승이 퇴궐하자 소백주는 김선비와 함께 다시 이정승을 만나러 방으로 갔다. 바야흐로 때가 무르익었다고 소백주가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이정승을 보자말자 다짜고짜 소백주가 일렀던 대로 김선비는 넙죽 절을 하고 말했다.
“정승나리! 제게 천 냥을 빌려 주셔야겠습니다!”
기생 소백주 (103)계략
“뭐? 뭐? 시방 뭐라 하였는가?”
뜻밖의 말에 이정승이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깜짝 놀라 말했다. 그러나 그 김선비 옆에는 소백주의 달콤한 눈빛이 지키고 있었다.
“제게 천 냥만 빌려달라고 하였습니다. 정승나리.”
김선비는 떨리는 마음을 다잡고 말했다.
“허! 허흠! 처 천 냥이라!……무 무슨 연유로 천 냥씩이나 빌려 달라는 것인가?”
이정승이 김선비를 눈을 동그랗게 치뜨고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김선비는 떨리는 마음을 다잡고 말했다.
“정승나리, 실은 장사를 해서 저도 먹고 살고 또 이 댁에 신세 진 은혜도 갚고 그러려고 그렇습니다.”
“으음! 장사라……자네 장사는 해보았는가?”
“아닙니다. 저의 장인이 장사를 해보라고 권하고 또 하다보면 할 수 있는 게 장사가 아니겠습니까!”
“그래, 그렇다면 천 냥을 갚을 시일은 얼마면 되겠나?”
“한 달만 말미를 주시면 장사를 크게 해서 바로 갚아드릴 것입니다.”
김선비가 야무지게 말했다. 욕심 많은 이정승이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을 때 소백주가 이정승을 바라보며 눈을 찡끗 해보였다. ‘하!’ 눈치 없는 이정승이 그때야 상황을 깨달아 알았던 것일까? 이정승은 순간 닫힌 마음이 찰나에 탁 풀려버리는 것이었다.
“그그 그래, 그그 그럼, 도도……돈 천 냥을 내주겠으니 시일 안에 갚도록 하게나.”
이정승은 자신도 모르게 흔쾌히 허락하고 말았다. 김선비는 속으로 ‘휴!’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하인이 내주는 돈 천 냥을 받아와서 소백주에게 주었다. 소백주는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김선비와 함께 그 천 냥을 가지고 수원으로 돌아갔다. 천 냥을 장롱 깊숙이 숨기고 며칠 후 소백주는 또 다시 김선비를 한양 이정승 댁으로 보냈다. 소백주는 이정승이 이제 꼼짝없이 걸려 들었다고 생각하며 이제 자신이 수립한 계략대로 차근차근 일을 진행하면 된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여인의 처음 치마끈을 풀기가 어렵 듯이 탐욕스런 수전노도 마찬가지로 처음 돈을 얻어내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여인의 치마끈을 한번만 풀어내려버리면 그 다음은 스스로 풀어 내리듯이 욕심 많은 수전노도 한번 돈을 빌려주면 도박꾼의 심리처럼 그 본전 생각 때문으로 자동적으로 계속해서 돈을 빌려준다는 것을 소백주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한고비만 넘어서면 탄탄대로였다. 목표는 저 이정승이라는 악마가 스스로 소백주가 던지는 커다란 낚시 바늘을 눈치 없이 한입에 꿀꺽 삼키는 것이었다.
기생 소백주 (104)이천 냥
김선비는 소백주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할 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이왕지사 이판사판 나선 김에 팔 걷어 부치고 사내답게 용감하게 나서야 할 일이었다. 한양에 도착한 그날 밤 이정승을 만난 김선비는 죽을상을 하고 울먹이며 소백주가 시켰던 대로 이정승에게 말했다.
“정승나리, 천 냥을 다시 빌려주셔야겠습니다.”
“뭐라! 며칠 전에 빌려준 천 냥은 어찌 되었단 말인가?”
이정승이 놀란 토끼눈을 뜨고 말했다.
“실은 그 천 냥을 가지고 인천으로 물건을 사려고 가서 주막집에 들어 잠을 자는데 한 밤중이 되어서 수십 명의 도적놈들이 몰려 들어와 목에 칼을 들이밀고 협박을 해서 그 돈 천 냥을 모조리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어허! 저런, 그런 일이 있었던 말인가!”
“예, 정승나리. 이왕에 장사로 나선 몸인데 천 냥을 도적놈들에게 빼앗기고 보니 기어이 장사를 해서 돈을 벌어 갚아야 할 것이라 마음을 다잡아먹고 다시 오게 되었습니다.”
김선비는 눈물을 찔끔거리며 이 앓는 소리를 했다.
“그래, 으음……이번에는 얼마나 시일이 걸리겠는가?”
“예, 한 두어 달 걸리겠습니다.”
“으음!……사정이 딱하니 어쩔 수 없구만, 내 또 천 냥을 내주겠으니 잘해서 얼른 돈 벌어서 갚으시게.”
이정승이 다시 천 냥을 스르르 내주었다. 소백주의 예상은 정확히 적중했다. 김선비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천 냥을 받아 하인에게 짊어지게 하고는 수원에 있는 소백주에게로 돌아갔다. 소백주는 천 냥을 가지고 온 김선비를 보고 말했다.
“서방님, 우리가 되찾아야할 돈이 삼천 냥입니다. 이제 이천 냥을 되찾았으니 한번만 더 용기를 내십시오.”
“으음! 내 그 수전노 같은 탐욕스런 이정승 앞에서 비지땀이 흐르더이다. 그런데 한 번 더 가야하다니, 으음……이번에는 무어라 둘러 붙여야 한가요?”
“그날 일필휘지 시를 휘갈겨 쓰던 서방님의 기백은 다 어디로 가셨나요? 그깟 탐욕에 빠진 소인배 이정승을 대하는데 그리 힘이 들다니요. 서방님답지 않군요. 주안상을 걸게 차려 놓았으니 한잔 드시고 힘내세요. 서방님.”
소백주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허허! 그렇던가? 자! 그럼 우리 함께 회포나 풀어봅시다.”
김선비와 소백주는 만면에 웃음꽃을 피우며 주안상 앞에 앉아 주거니 받거니 꽃 피고 새 우는 향기로운 봄날을 즐기는 것이었다.
기생 소백주 (105)삼천 냥
그로부터 열흘 후 김선비는 다시 소백주가 이르는 대로 이정승을 찾아갔다. 퇴궐 후 집에 돌아온 이정승은 김선비를 바라보고는 흠칫 놀란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어흠! 장사 하러 갔다 두어 달 뒤에 돌아온다더니 이 어찌된 일로 이리 일찍 왔는가?”
“아이고! 정승나리, 제 목숨이 살아온 것만도 천만다행입니다. 꼭 죽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눈 아래로까지 갓을 질끈 눌러 쓴 김선비는 눈물을 질금거리며 넋 나간 사람처럼 가슴을 치며 말했다.
그래, 이번에는 또 무슨 사연이란 말인가?”
이정승이 말하며 김선비를 빤히 쳐다보는 것이었다. 김선비는 끙 신음을 토하며 말했다.
“평안도 대동강에 가서 중국에서 들어온 비단을 사다 팔면 큰 돈을 벌 수 있다기에 그리로 가서 막 흥정을 하고 있는데 상여 하나가 장안을 가로질러 다가오더군요. 그저 상여려니 생각하고 흥정을 하고 있는데 그 상여가 다가와 저를 가로 막는데 보니 상여 안에 숨어있던 칼을 든 건장한 장정 여럿이 제 목을 겨누고 달려드는 것이었어요. 아아! 이젠 꼼짝없이 죽었구나하는 생각이 드는 찰나 제 머리를 무엇인가 번쩍 스치더군요. 저는 그만 그 자리에서 혼절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한참 후 사람들이 마구 흔드는 소리에 깨어나 보니 돈을 몽땅 그놈들이 훔쳐가 버렸더군요. 그래 이렇게 홀딱 당하고 말았습니다. 정승나리. 으흐흐흐……헉!”
눈가에 눈물을 달고 구구절절 애절하게 읊어대던 김선비가 흐느끼며 지금껏 방안에서 까지 둘러쓰고 있던 갓을 벗어 슬그머니 이마 위쪽을 이정승에게 드러내 내보였다. 소백주가 먹물과 붉은 물감을 발라 다친 피딱지 상처 자국을 일부러 험하게 만든 것이었다.
“어이! 흉측 하이! 에구! 그래서 갓을 둘러쓰고 있었던 것이었구먼!”
이정승이 흘끔 쳐다보고는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예, 정승나리, 하마터면 죽을 뻔 했습니다.”
김선비는 갓을 얼른 다시 둘러쓰며 말했다.
“큰일 날 뻔 했구먼! 그만 한 게 천만다행이로구먼!”
“예, 목숨만이라도 부지해 온 게 참으로 다행이옵니다.”
김선비는 이정승을 흘깃거리며 그렇게 말하고는 물러나와 사랑채에 몸을 묵었다. 그리고는 이틀 후 다시 이정승을 찾아갔다.
“정승나리, 딱 천 냥만 더 빌려 주셔야겠습니다.”
“뭐! 또 천 냥을 빌려 달라고? 두 번이나 장사를 한다고 빌려가더니 다 도둑놈에게 당하고 거덜이 났으면서 그게 또 무슨 소리인가?”
“그렇더라도 장사를 해야 노모며 처자식을 먹여 살리고 또 정승나리 은혜도 갚고 빚진 것을 해결할 터인데 이대로 눌러 앉아 있을 수만은 없지 않겠습니까! 소인의 딱한 처지를 생각하여 한번만 더 마음을 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정승나리.”
김선비는 머리가 방바닥에 닿도록 넙죽 조아리며 말했다. 한참 만에 이정승이 말했다.
기생 소백주 (106)남은 계략
“으음, 그래… 좋네, 자네의 처지가 참으로 딱하니 마지막으로 내 마음을 써주겠네. 이번이 마지막이니 다시는 돈 이야기일랑 내 앞에서는 절대로 하지 말게.”
“예! 정승나리, 이 은혜는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김선비는 넙죽 엎드려 절을 하고 일어섰다.
돈 천 냥을 받아 든 김선비는 뛸 듯이 기뻐하며 수원으로 곧장 달려갔다. 벼슬을 사려고 가산을 모두 팔아 돈 삼천 냥을 바쳐 이제나저제나 하고 바라며 삼년을 기다렸던 세월이 훌쩍 되돌아오는 찰나였다. 마치 독사의 목안으로 다 넘어 들어갔던 토끼가 그 아가리 속에서 다시 되돌아 살아와 펄쩍펄쩍 푸른 풀밭을 뛰어가는 것만 같았다. 김선비는 의기양양 휘파람을 불며 길을 재촉했다.
대문 앞에 도착한 김선비는 소백주를 불렀다. 이제나저제나 고대하고 있던 소백주가 반갑게 달려와 맞이했다. 김선비는 달려오는 소백주 앞에 체면도 생각하지 않고 넙죽 엎드려 절을 하고 말했다.
“그대 고맙소! 내 절 받으시오! 이정승에게 벼슬 사려고 바친 돈 삼천 냥! 내 전 재산을 그대의 지혜로 오늘 드디어 모조리 되찾았습니다. 내 이제 더 이상 여한이 없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 조상님의 땅을 되찾고 그 땅 위에서 자급자족하며 가난한 이웃의 백성들과 더불어 오순도순 살아갑시다.”
“서방님! 그게 아니지요. 어서 일어나세요. 이제 그 못된 이정승의 버릇을 고쳐줄 일이 남았지 않습니까! 벼슬자리를 빌미삼아 돈이나 갈취하는 사람이 높은 자리에 앉아 나라를 다스린다면 그 나라는 어떻게 되겠어요. 오늘은 푹 쉬시고 다시 시작 해야지요.”
“아! 아! 아니… 또 그 무슨 계략이 더 남아있단 말인가요?”
김선비는 옷에 묻은 흙을 털고 일어나며 의아한 눈빛으로 소백주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서방님! 삼천 냥을 되찾았으니 이제 소녀를 바쳐 그 삼천 냥을 갚지 않아도 되도록 쐐기를 박고, 오매불망(寤寐不忘) 바라던 서방님 벼슬자리를 잡아야겠습니다.”
소백주가 말했다.
“아! 아! 아니요! 이제 그만 둡시다! 혼란한 난세에 나만 홀로 잘 먹고 잘 살자는 그 따위 벼슬자리가 다 무어란 말이요. 난 더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내 그대를 만나고 나서야 돈도 권력도 다 부질없음을 진실로 깨달아 알았습니다. 오직 그대와 함께라면 그뿐입니다!”
김선비가 손을 가로로 휘저으며 말했다.
“서방님! 서방님께서는 소녀가 하자는 대로 따르시기로 하지 않으셨나요. 제 하는 대로 따르시며 지켜만 보십시오.”
소백주가 단호하게 말했다.
“어허! 그 참!… 그 참!…”
김선비는 그렇게 말할 밖에 달리 방도가 없었다.
기생 소백주 (107)유혹(誘惑)
며칠 후 소백주는 한양으로 올라가 한적한 곳에 아담한 집을 한 칸 마련하였다. 멀리 천하를 호령하는 임금이 들어 산다는 구중궁궐(九重宮闕) 대궐이 내다보이고 바로 길을 건너면 이 나라의 내로라는 정승 판서들이 줄줄이 들어 사는 곳이었다. 이정승의 대궐 같은 집도 바로 길 건너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정승이라는 천하의 대어(大魚)를 낚기 위하여서는 소백주 자신이 직접 미끼가 되어 치열한 전투에 출전해야 함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모두가 사랑하는 서방님 김선비를 위하여 아낌없이 자신을 던지려는 소백주의 지극한 사랑의 발로였던 것이다.
그 집에 들어 살림을 차려 살며 보름 쯤 지난 바람 없는 맑은 어느 늦은 봄날 해 저물녘 소백주는 나비 날개같이 눈부시게 화려한 옷을 차려입고 이정승이 퇴궐할 즈음 홀로 그 집으로 찾아갔다. 소백주는 집 대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퇴궐하는 이정승의 행차를 보고는 얼른 대문 안으로 들어가 서 있었다.
집 안으로 들어가려던 이정승은 막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은 소백주가 마당에 서 있는 것을 보고는 ‘저 빼어난 미모의 여인이 이 저녁에 홀로 무슨 일로 왔을까?’ 하고 잔뜩 의아해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소백주는 앞으로 나서서 공손히 인사를 하고는 눈가에 교태어린 유혹(誘惑)의 미소를 잔뜩 흘리면서 이정승에게 말했다.
“정승 나리! 이제 퇴궐 하셨습니까? 제가 수일 전 저의 남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승나리의 하해와 같은 은혜를 입고 장사 밑천을 얻어 지금 멀리 장삿길을 나갔는데, 사실은 벌써부터 그 은혜에 대한 보답을 드리고자 하였으나 그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오늘밤은 그 기회를 얻어 제 집으로 정승나리를 모시고 조촐한 저녁이라도 대접해 올리고 싶어 이렇게 왔습니다.”
“엥!”
이정승은 전에 소백주를 보고 속으로 마른 침을 잔뜩 다셨던 터였는데 남편이 장사를 나가고 아녀자가 혼자 있는 집에 그것도 밤에 초대를 한다는 느닷없는 말을 듣는 순간 정신이 대번 알딸딸해져서 자신도 모르게 입을 ‘헤!’ 벌리고 ‘얼씨구나! 이게 웬 떡이란 말이냐!’ 하고 깜짝 놀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헛기침을 하며 점잔은 척 슬그머니 꽁무니를 뺐다.
“어 어흠! 뭐 그 그렇다고 그럴 것까지야…”
“아이! 그래도 정승 나리, 날이 이리 맑고 청명한데 한잔 술을 나누면서 시 한수 읊조리면서 달구경이라도 같이 하면 정말 좋지 않겠어요. 남편은 장삿길 나간 지 오래고 집에는 저 혼자뿐인데…”
기생 소백주 (108)춘망사(春望詞)
소백주가 순간 눈을 찡긋해 보이면서 은근한 미소를 흘기며 끈적끈적 꿀처럼 감겨드는 목소리로 말했다.
“으 으음! 하 하긴… 그러고 보니 오늘 밤이 기중 맑고 좋으니 그도 참 좋을 것 같소만… 어째 이 목도 컬컬하고 술 생각이 좀 나기도 하고… ”
이정승이 소백주를 바라보며 목소리를 흐렸다. 이정승은 제 발로 굴러 들어온 떡이 혹여 달아나기라도 할까봐 조바심이 나는 터라서 슬그머니 속내를 열어 보이는 것이었다.
“아이구! 정승나리 주저하지 마시고 어서 가셔요. 학덕이 높고 고명하신 정승 나리께서 더 잘 아시겠지만 당나라의 아리따운 기녀(妓女) 시인 설도(薛濤)의 춘망사(春望詞)라는 시에 ‘어쩌나 가지 가득 피어난 저 꽃(那堪花滿枝), 날리어 그리움으로 변하는 것을(煩作兩相思), 거울 속 옥 같은 두 줄기 눈물(玉箸垂朝鏡), 바람아 봄바람아 너는 아느냐(春風知不知)!’ 라는 대목이 있지 않사옵니까! 온 천하에 봄꽃이 피어 지금은 다 져버리려 하고 있는데 오늘밤 저랑 한잔 하시면서 달빛에 꽃 지는 풍경을 함께 보시와요. 정승나리!”
이정승이 속내를 보이자 소백주는 ‘이때다’하고 그 틈을 사납게 비집고 들어가며 내놓고 가느다란 목소리로 애원하듯 부추기는 것이었다.
“어 어흠! 저 정 그러시다면… 내 이 관복을 벗어놓고 나오겠소.”
이정승은 마른침을 꿀꺽 다시고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는 급한 속을 확 열어 보이며 얼른 대답을 하고는 날랜 범같이 방으로 쌩 들어가더니 부리나케 관복을 벗어놓고 하얀 두루마기를 걸쳐 입고 나왔다. 그리고는 ‘에헴!’ 하고 헛기침을 하며 소백주를 따라 나서는 것이었다.
소백주는 길 건너 집을 향해 앞서 걸었다. 앞서 걷는 소백주는 이정승이 보아라고 일부러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걸었다. 그것을 훔쳐보듯 바라보며 군침을 쩍쩍 다시며 어기적어기적 뚱뚱한 곰처럼 따라 걸어가는 이정승은 아무래도 오늘밤 소백주에게 대접 받을 것이 술밥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에 벌써부터 몸이 후끈 달아오르는 것이었다.
김선비와 처음 함께 온 날 첫눈에 소백주의 미색을 보고는 그 아름다운 자태에 반해 자신도 모르게 수컷 됨의 급한 야욕이 불처럼 일어나던 것이었는데 뜻밖에 닥쳐온 이런 기회를 이 나라 안에서 내로라는 그쪽의 최고 전문가인 이정승이 결코 마다할리가 없었다.
‘몸이 근질근질 하던 차에 바람도 없는데 웬 향기로운 꽃송이가 저절로 굴러들어 오는 것이더냐! 사람은 역시 권력과 돈이 최고니라! 으험! 히히히히!’ 이정승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소백주와 김선비를 마음 내키는 대로 잔뜩 비틀어 보는 것이었다.
이정승의 눈에 보이는 소백주는 그야말로 돈이나 권력 가진 사내라면 사족을 못 쓰고 발가벗고 통째로 덤벼드는 일개 하찮은 그저 얼굴만 어여쁜 천박하고 비루한 마구 함부로 다루어도 좋을 정신없는 천한 계집에 불과했고, 과거에 급제도 못하고 벼슬도 없는 김선비는 세상에 출세하지 못한 능력 없는 불행한 촌뜨기에 쓸개 빠진 비렁뱅이, 얼치기 사내로서 도무지 이름도 자존심도 없는 똥 쑤신 막대기 같은 절대로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추저분한 속물에 불과했던 것이다.
기생 소백주 (109)환락(歡樂)의 밤
‘그럼 그렇지! 그런 놈 주제에 무슨 저 같은 천하미색이 어울리겠나! 나같이 이 나라를 한 손아귀에 틀어쥐고 좌지우지하는 돈 많고 머리 최고로 좋은 권력가 정승 나리 정도는 되어야지. 어! 어흠, 흠! 필시 저 계집도 내 돈과 권세가 탐이 나서 두고두고 가까이 지내려고 나에게 이렇게 은밀히 서방 놈 몰래 술밥에 허흠! 그 그것을 대접하려는 게지… 으히히히히! 못난 서방 놈이 장사를 나가 매일 밤 홀로 지내다보니 사내 생각도 날게고, 실실 눈웃음을 짓는 꼴이 분명 오늘밤 내게 몸을 내주려는 것이야! 아암! 그렇고 말고… 아니야! 오늘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한입에 꿀꺽 삼켜버려야겠지! 어 어흠! 아까운 내 돈 삼천 냥을 너 그 눈빛에 홀려 정신이 나가 떡하니 빌려주고 마음이 편치 못했는데 바로 오늘이 있었구나! 내 그럴 줄 알고 으히히히히! 돈을 내준 것이었지! 우으히히히히히! 세상에 널려있는 죽은 송장 같은 흙속에 나뒹구는 땅강아지 같은 필부 놈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천하의 권력의 맛이라는 게 바로 이런 맛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어어어… 어험! 우으히히히히히!’
이정승은 ‘우으히히히히히!’ 자꾸 터져 오르는 웃음을 꾹 눌러 참으며 점잔을 빼고 거들먹거리며 소백주를 따라 방안으로 들어갔다. 은은한 호롱불이 켜진 소백주의 한적한 집 방안에는 벌써 진수성찬이 커다란 상 가득 차려져 있었다. 저녁밥을 곁들여 이정승과 함께 마실 좋은 술이 놓여 있었던 것이다.
절세가인 소백주에 맛있는 음식에 술을 본 이정승의 후끈 달아오른 마음은 금방 홀딱 젖어드는 것이었다. 아니 소백주 같은 천하미색이 과거에 급제도 못하고 벼슬도 없는 일개 시골뜨기 김선비의 아내라는 것을 보고는 ‘저 인사가 벼슬복은 없어도 계집복은 있나보다’ 하고 은근히 시기가 났던 것인데 이렇게 아름다운 소백주와 단둘이 함께 할 기회를 갖게 되다니 정말 꿈만 같았던 것이다.
“정승나리, 아랫목으로 앉으세요. 차린 것은 없지만 많이 드세요.”
이정승에게 자리를 권하며 소백주가 말했다. 이정승은 갓과 두루마기를 벗고 자리에 앉았다.
“이만하면 아주 잘 차린 것입니다. 아주 좋군요.”
이정승이 수저를 들며 말했다.
“정승나리, 자! 제 술 한 잔 받으세요. 여기에는 우리 단 둘뿐이옵니다. 마음 놓고 많이 드세요.”
소백주가 술잔을 올렸다. 이정승은 점잖게 술잔을 받더니 그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캬! 내 처음 볼 때부터 그대 미색이 뛰어나다 했는데 오늘밤 뜻하지 않는 환대를 받아 기쁘기 한량없소. 그대도 한잔 드시구려!”
이정승이 마음을 탁 풀고 말하며 소백주에게 한잔 술을 권하는 것이었다.
“정승나리, 감사합니다. 술을 마시고 노래를 해 올리겠습니다.”
소백주는 조심스럽게 술을 받아 마시고는 일어서서 춤을 추고 장구를 치며 노래를 하는 것이었다. 이정승에게 바야흐로 환락(歡樂)의 밤이 시작되고 있었다.
기생 소백주 (110)욕정(欲情)
노래하며 춤을 추는 소백주의 모습이 마치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온 양 아름다웠다. 이정승은 마른 침을 꿀꺽 다시며 술잔을 연거푸 비우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결 흥이 오른 이정승이 시를 읊조리는 것이었다.
“세상을 다스리려 조종에 들어
천하를 굽어보면 모든 것이 내 것
저자거리에 지나는 바람도
내 앞에서는 멈춰 서는데
그대의 미모 앞에서는
내 심장이 멎을 것만 같네!”
이정승은 일어나 춤을 추며 희희낙락 흐늘거렸다. 그렇게 춤을 추던 이정승은 불꽃처럼 치솟아 오르는 욕정(欲情)을 눌러 참지 못하고 어느 결 눈앞에서 나비같이 하늘거리는 소백주를 덥석 끌어안았다. 이미 이정승은 소백주가 자기에게 홀딱 반해 넘어온 것으로 알고는 욕심 많은 구렁이처럼 커다란 아가리를 쩍 벌리고 털도 뽑지 않은 채로 통째로 꿀꺽 입안으로 급하게 삼키려 덤벼들었던 것이다. 취기가 올라 자꾸만 끓어오르는 뜨거운 욕정의 포로가 된 이정승은 거칠게 소백주를 틀어쥐고는 살육 짐승처럼 재빠르게 입술을 가져갔다.
“으읍! 쩝! 음!… 정승나리, 이 이러시면 아니 됩니다. 저 저는 서방님이 있는 몸이옵니다.”
이정승의 일격에 입술을 빼앗긴 소백주가 몸을 비틀어 빼며 말했다.
“그대 같은 천하에 둘도 없는 미인을 보니 내 도무지 참을 수가 없소”
이정승은 손을 풀고 빠져나가려는 소백주를 더욱 옥죄어 비틀어 잡으며 말했다.
“정승나리, 바 밤이 긴데 이 이리 급하실 것 없지 않나요.”
소백주는 얼굴을 앵두 빛으로 붉히며 이정승에게 찡긋 눈짓을 하며 교태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어! 어흠! 그 그렇던가! 아름다운 그대를 보니 내… 도 도… 도무지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네. 그려!”
이정승이 소백주의 손을 틀어쥐고 애원하듯 말했다.
“어 어머! 그 그러신가요. 정승나리… 정 그 그러시다면… 먼저 이부자리를 깔고… 오오 오늘 밤, 딱! 하 하… 한 번만…”
소백주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수그리고 조그맣게 속삭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