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妙)란 소생(蘇生)의 의(義)이고, 소생(蘇生)이라 함은 되살아난다는 의(義)이니라.
작성자:세계광선유포
작성시간:2023.05.15 조회수: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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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제경(諸經)에서 퇴박맞던 여인(女人)이,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이 묘(妙)의 일자(一字)를 설(說)하시자, 당장에 부처가 되었느니라. 너무나 불심(不審)했기 때문에 보정세계(寶淨世界)의 다보불(多寶佛)의 제일(第一)의 제자(弟子)인 지적보살(智積菩薩), 석가여래(釋迦如來)의 제자(弟子)인 지혜제일(智慧第一)의 사리불존자(舍利佛尊者)가 사십여년(四十餘年)의 대소승경(大小乘經)의 경문(經文)으로써 용녀(龍女)가 부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힐난(詰難)했으나, 끝내 당하지 못하여 부처가 되었느니라. 초성도(初成道)의 「능(能)히 부처의 종자(種子)를 단절(斷切)함」 쌍림(雙林) 최후(最後)의 「일체(一切)의 강하(江河)는 반드시 회곡(回曲)이 있음」이라는 글월도 타파(打破)되었고, 은색녀경(銀色女經) 및 대론(大論)의 귀경(龜鏡)도 헛되게 되었더라. 지적(智積)·사리불(舍利佛)은 혀를 내두르고 입을 다물었으며, 인천대회(人天大會)는 환희(歡喜)한 나머지 합장(合掌)했느니라. 이는 오로지 묘(妙)의 일자(一字)의 덕(德)이로다. 이 남염부제(南閻浮提) 안에 이천(二千) 오백(五百)의 강하(江河)가 있는데, 일일(一一)이 모두 구부러졌으며 남염부제(南閻浮提)의 여인(女人)의 마음이 구부러진것과 같다. 그러나 사바야(娑婆耶)라고 하는 강하(江河)가 있어서, 새끼줄을 끌어 늘여뜨린 것처럼 똑바로 서해(西海)로 들어가는데, 법화경(法華經)을 믿는 여인(女人)도 역시 이와 같이 곧바로 서방정토(西方淨土)로 들어가게 되니 이는 묘(妙)의 일자(一字)의 덕(德)이니라. 묘(妙)란 소생(蘇生)의 의(義)이고, 소생(蘇生)이라 함은 되살아난다는 의(義)이니라. 비유컨대 황곡(黃鵠)의 새끼가 죽었을 때 어미 학(鶴)이 자안(子安)하고 울면, 죽은 새끼가 다시 되살아나고, 짐조(鴆鳥)가 물에 들어가면 어방(魚蚌)이 모조리 죽고, 서우(犀牛)의 뿔이 이것에 닿으면 죽은 자(者)가 모두 되살아나는 것과 같이, 이전(爾前)의 경(經)들에서 불종(佛種)을 볶아 버려 죽은 이승(二乘)·천제(闡提)·여인(女人) 등(等)이 묘(妙)의 일자(一字)를 간직하면 볶인 불종(佛種)도 다시 싹트는 것과 같다. 천태(天台) 가로되 「천제(闡提)는 마음이 있어서 역시 작불(作佛)하리라, 이승(二乘)은 지(智)를 멸(滅)하여 마음이 생길 수 없으나, 법화(法華)는 능(能)히 고치니, 또한 칭(稱)하여 묘(妙)라고 한다」고, 묘락(妙樂) 가로되 「단지 대(大)라고 하되 묘(妙)라고 이름하지 않음은, 일(一)에는 유심(有心)은 고치기 쉽고 무심(無心)은 고치기 어려운데 고치기 어려운 것을 능(能)히 고치기 때문에 묘(妙)라고 칭(稱)함」 등(等) 운운(云云). 이들의 글월의 뜻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대집경(大集經)·대품경(大品經)·대열반경(大涅槃經) 등(等)은 제목(題目)에 대(大)의 자(字)만 있고, 묘(妙)의 자(字)가 없다. 다만 산 것을 고치고 죽은 것을 고치지 못하나, 법화경(法華經)은 죽은 것도 고치기 때문에 묘(妙)라고 한다는 석(釋)이니라. 그러므로 제경(諸經)에서는 부처가 될 자(者)도 부처가 되지 않느니라. 그 까닭은 법화(法華)는 부처가 되기 어려운 자(者)조차도 역시 부처가 되었다. 되기 쉬운 자(者)는 말해 무엇하랴 라는 도리(道理)가 성립(成立)하니, 법화경(法華經)을 설(說)하신 뒤는 제경(諸經)을 지향(指向)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있을 수 없느니라.
법화경제목초(法華經題目抄) 가마쿠라에서 45세에 술작 946~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