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부전(冥府殿)
명부전은 조선시대에 지어진 건물로 정면3칸, 측면3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명부전의 건립시기는 1681년으로 편액에 보이는 동국서체의 특징과 함께 건축양식과 봉안된 여러 상들이 조선후기의 특징을 보이고 있습니다.
명부전(冥府殿) 편액
명부전 편액에는 편수(片手) 화산 재근(華山在根) 편수 석옹 철유(石翁哲侑)라 쓴 묵서가 적혀 있습니다. 화산 재근 스님은 석옹 철유 스님과 함께 1876년(고종 13) 문경 대승사의 지장보살탱, 신중탱 조성에 참여하였으며, 석웅 철유 스님은 그 밖에 1887년 서울 경국사 감로왕 도 및 화장사 신중도, 의정부시 망월사 괘불, 1888년 문경 김룡사 칠성탱, 독성탱, 1901년 순천 선암사 약사여래회탱 및 해남대둔사 영산 회상탱, 나한탱, 독성탱, 1908년 서울 삼성암 산신탱 조성에도 참여하였던 금어 스님입니다.
명부전 내부에는 사후세계를 주관하는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좌우에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협시하고 있습니다.
중앙에 지장보살이 결가부좌하고 있으며, 좌우 협시로 도명존자, 무독귀왕이 시립하고 있습니다.
지장보살
지장보살의 얼굴은 원만하고, 머리에는 투명 두건을 쓰고 있습니다. 법의는 양쪽 어깨에 모두 걸친 통견인데, 그 표현이 매우 두터운 편입니다. 앞가슴에 가로로 된 옷 주름이 표현되었으며 아래로 흘러내려 결가부좌한 다리를 감싸고 있습니다.
수인은 오른손은 손가락을 모두 펴고 무릎에, 왼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대어 오른발 위에 올려놓고 있습니다.
지장보살은 높이 139cm, 무릎너비 107cm입니다.
지장보살
도명존자(道明尊者)
도명존자는 민머리에 합장을 하고 있습니다.
도명존자는 높이 125cm, 어깨너비 43.8cm입니다.
무독귀왕(無毒鬼王)
머리에 보관을 쓴 무독귀왕은 가슴에 모은 두 손이 옷에 살짝 감추어져 있습니다.
무독귀왕은 높이 127cm, 어깨너비 37.5cm입니다.
제1대왕인 진광대왕부터 제10대왕인 전륜대왕까지 시왕(十王)이 있습니다.
인간이 죽으면 이승에서 지은 선업과 악업에 대해 심판을 받는데 시왕이 이를 관장합니다.
제9대왕(도시대왕)
제7대왕(태산대왕)
제5대왕(염라대왕)
시왕 중 가장 대중에게 잘 알려진 염라대왕입니다.
제3대왕(송재대왕)
제1대왕(진광대왕)
제2대왕(초광대왕)
제4대왕(오관대왕)
제6대왕(변성대왕)
제8대왕(평등대왕)
제10대왕(전륜대왕)
판관, 녹사, 시자, 문 입구에 장군상 각 2위씩이 있습니다.
백송
소나무광에 속하는 상록침엽교목
명부전 지붕 뒤쪽으로 보이는 금탑바위
당겨본 금탑바위
법영루
정면 3칸, 측면 2칸,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며 불영지(佛影池) 가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법영루는 2002년도 주지 심전 일운스님이 신축 건립했으며, 불교 사물인 범종, 목어, 운판, 법고를 봉안하고 있습니다.
법영루(法影樓) 편액
법영루 편액은 수덕사 주지를 지내신 송원 설정(松原 雪靖 1941~ ) 스님의 글씨입니다.
범종
법고
목어, 운판
설법전
사찰의 법회나 행사를 주관하는 장소로서 정면 5칸, 측면 3칸,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현재 보수중입니다.
설법전(說法殿) 편액
편액은 덕숭총림 수덕사 4대 방장을 지내신 송원 설정 (松原 雪靖 1942~) 스님의 글씨입니다.
설정 스님은 1942년 예산에서 태어나 주역의 대가인 부친에게서 한학을 배웠고, 13세 때 만공 스님에게서 계를 받았던 부친과 수덕사에 찾아와 출가하기로 결심하고 7년간 속가로 발길을 돌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1980년에 수덕사 주지, 2009년에 덕숭총림 수덕사 방장, 2017년에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내셨습니다.
설선당(說禪堂)
황화실과 마주보고 있는 설선당은 1726년 초창되었으며 이후에 변현된 건물을 1997년 전통양식으로 개축하였습니다.
황화실
황화실은 조선 후기에 중정을 갖춘 전통 'ㅁ'자 양식의 건물로 승당으로 사용하였으나 현재는 스님들의 수행 공간으로 사용 중입니다.
황화실(黃華室) 편액
대웅보전(보물 제1201호)
대웅보전은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을 1602년(선조 35) 중건하였으나1720년(숙종 46) 다시 화재로 소실되었으며 1721년(영조1)에 중건되어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기단 밑 좌우에돌거북(석구)을 놓아 건물을 받들게 한 것은 특이한 구상으로이는 불영사의 자리가 화기를 많이 품고 있는 곳으로 불기운을 눌러화재를 예방하기 위하여 돌 거북을 조성한 것이라고 합니다.
삼층석탑(유형문화재 제135호)
불영사 삼층석탑은 2층 기단을 구비한 평면 방형의 일반형 삼층석탑으로 높이는 3.21m입니다. 기단부는 2층으로 구성되었으며, 상·하층 기단 면석에는 양 우주(隅柱)와 탱주柱) 1주가 모각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상·하층 기단 갑석 하부에는 부연이 없습니다. 탑신부는 3층으로 구성되었으며, 탑신석과 옥개석은 각각 별도의 돌로 만들었습니다. 탑신석의 각 면에는 양 우주가 모각되어 있습니다. 옥개석의 처마는 수평이고 받침은 모두 4단이다. 상륜부는 노반 없이 여러 부재가 놓여있습니다.
이 석탑은 원래 황화실 옆 동쪽에 일부 무너져 있었는데, 1977년 지금의 위치로 이전하여 현재의 모습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석탑은 규모는 작으나 전체적으로 균형을 잘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아 신라석탑의 전형양식을 잘 계승한 탑이며, 기단 갑석 하부에 부연이 없는 등으로 보아 제작 시기는 고려시대 초로 추정됩니다.
탱주가 있는 탑은 신라양식의 탑으로 간주하는데 안내서는 고려 초기 작품이라고 합니다. 신라의 탑 양식이 고려로 옮겨가는초기 양식인 것 같습니다. 탑신부인 옥개석은 경사가 있고끝은 위로 향하고 있으며 층급받침은 5단으로 되어 있습니다. 상륜부는 노반 위에 둥근 돌로 보주를 올려놓았습니다.
대웅보전(보물 제1201호)
대웅보전은 불영사의 중심법당으로 석가모니부처를 모신 전각입니다. 이 대웅보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겹처마 팔작기와집입니다. 기단은 다듬은 돌을 허튼층 쌓기하였으나 가구식 기단과 유사하며, 건물의 앞면에는 어칸에 사분합문四分閤門)을, 좌·우 협칸에 이분합문을 달았고 우측면 앞쪽 칸에는 한짝 세살문을 두었으며, 배면 어칸에는 이분합문을 설치하였습니다. 공포의 구성은 내4출목(四出目), 외출목(外三出目)입니다.
대웅보전은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을 1602년(선조 35) 중건하였으나 1720년(숙종 46) 다시 화재로 소실되었으며, 1725년(영조 1)에 중건되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기단 밑 좌·우에 돌거북(석구(石龜))을 놓아 건물을 받들게 한 것은 특이한 구상으로, 이는 불영사의 자리가 화기를 많이 품고 있는 곳(화산(山)이어서 수신(神)인 거북으로 불기운을 눌러 화재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 건물은 다포계의 구조가 건실하고 각 부재의 조각도 깔끔하며, 특히 단청은 금단청 계열로 격조 높은 수법을 보이고 있습니다.
대웅보전(大雄寶殿) 편액
영산회상도(보물 제1272호)
불영사 영산회상도는 석가모니 부처가 인도의 영취산에서설법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러한 회상도는 사찰에서 중앙법당의 후불화로 놓입니다.
이 그림은 가운데에 석가여래를 모시고 하단 좌ㆍ우에 문수ㆍ보현보살과 제석천ㆍ범천을 표현하고 그 위로 좌ㆍ우 4위씩 8대 보살을 표현하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보살상 상단에 10대 제자와 권속을 표현하고 최상단에 분신불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특히 석가모니불의 법의가 붉은 가사(홍가사) 를 취했고광배도 붉은태를 이중 광배를 나타내고 있는 것 등은 영ㆍ정조 때 많이 제작된 조선 후기 불화의 양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불화는 중심인물은 크게 표현하고 그 비중에 따라하단에서 상단으로 좌우 대칭적인 구도를 취한 것이 특징입니다. 제작 시기는 1735년(영조11)으로 18세기 이후에 유행하는영산회상도 가운데 이른 시기의 것으로 채색의 사용법이 유려하고묘사법이 정밀하여 그림의 품격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습니다.
불단 위에는 석가모니불을 본존으로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봉안되어 있는데 봉안된 세 불상은 2002년에 조성한 것입니다. 높이 1m 정도의 이 불상들은 경내에 있던 600년 수령의 은행나무가 태풍으로 부러진 것을 활용했다고 합니다. 그 나무 둥치를 4년간 물에 담그고 말리기를 반복한 후에 제작한 것이라고 합니다.
석가여래
석가여래
문수보살
보현보살
불영사 대웅보전의 건립 시기는 대웅보전 내부에 걸린탱화의 묵서명에 '옹정3년 을사(雍正三年 乙巳)'라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1735년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신중탱화
울진 불영사 대웅보전에 봉안되어 있는 이 신중탱화는 삼베(麻) 바탕에 채색한 것으로 전체 크기는 세로 230.5cm, 가로 236.2cm이며 1860년(철종 11)에 5인의 화원(畵員)에 의해 제작되었습니다.
기단 아래에 있는 거북상
거북상은 고려시대 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의도적으로 제작한 현존하는 유일한 사례로 귀중한 사료입니다.
돌거북(石龜)을 설치한 것은 불영산의 자리가 화기를 많이 품고 있는 곳(火山)이어서 수신(水神)인 거북으로 불기운을 눌러 화재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산신각
대웅전 후면에 위치한 산신각은 정면과 측면이 각1칸인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산신각은 산악숭배나 마을신앙과 관련되어 있으므로, 현재 불교에서는 산신을 가람수호신과 산속 생활의 평온을 지켜주는 외호신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산신은 보통 호랑이와 함께 있는 백발에 수염이 있는 신선의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종무소(설선당)
수각(水閣)
2층 한옥 건물인 청풍당(淸風堂)
요사채로 수행공간과 공양을 준비하는 공양간이 함께 있습니다. 위에서보면 'ㄱ'자형의 2층 건물입니다.
청풍당 앞 은행나무
보호수인 수령 600년 은행나무
당겨본 부처바위
불영지(佛影池)와 법영루(法影樓)
법영루는 일반 사찰로 보면 범종각입니다.
법영루 앞에 보이는 이 연못이 바로 의상 대사가 산 위에 있는부처님 모습을 닮은 바위의 그림자가 연못에 비쳤다고 하여이 연못을 불영지(佛影池)라 했다고 합니다. 연못에 비친 바위를 부처바위라 부르는데 어떤 형상의 바위인가 궁금하여 검색해 보았더니 이런 바위입니다.
불영사사적기비와 불영사중창비
불영사사적기비에는 불영사가 창건된 삼국시대부터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까지 불영사의 역사를 정리하여 기록해 놓았습니다.
약사여래불
일주문
불영계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