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글재주가 뛰어나 조부 牧使公이 크게 장래를 기대하였다. 성균관에서 공부할 때에 권세가의 자제가 권세를 믿고 횡포함을 보고 성토하여 쫓아내었다. 그 후 10년 동안 급제하지 못하자 과거에 뜻을 버리고 書史로 自娛하였다.
肯庵 李敦禹이 묘갈명을 지었다.
갈암집 제10권
서(書)
정원직(鄭元直) 석주(碩胄) 에게 답함 기사년(1689, 숙종15)
현일은 궁벽한 산골에 살면서 한 번도 뵌 적이 없지만 선계(先契)의 중함과 분의(分義)의 깊음으로 고풍(高風)을 우러른 지 오래입니다. 이제 먼저 편지를 보내시어 곡진히 안부를 물어 주시니 감격스럽고 부끄럽기 한량없습니다. 다만 부탁하신 뜻은 비루하고 서툰 제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현일은 본래 거칠고 글재주가 없으며 또 덕행을 잘 기술할 만한 자격도 없으니, 어떻게 아름다운 덕을 그대로 표현하고 감추어진 뜻을 드러내 밝힐 수 있겠습니까. 다만 존숙부(尊叔父)께서 생전에 저에게 편지를 보내시어 서로 절차탁마(切磋琢磨)하자는 뜻으로 말씀하셨는데, 제 집안의 상사(喪事)와 우환으로 그 말씀에 부응하지는 못했지만 저를 버리지 않으신 데 대해 감사하는 뜻은 항상 마음에 걸려 있었습니다. 사람의 일은 알 수 없어 일이 여기에 이르렀으니, 지금 혹 이 일로 인하여 조금이라도 저의 작은 정성을 담을 수 있다면 지하에 계신 분에게 이 마음을 전할 수 있겠기에 감히 다시 굳게 사양하지 않습니다만 또 끝내 좌우께서 바라시는 수준에 부응하지 못할까 걱정됩니다. 편지를 쓰려 하니 마음이 슬퍼져서 하고 싶은 말을 다하지 못합니다. 아직 추위가 다 가지 않았으니 절기에 따라 더욱 몸조심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