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nsipan 등정기
인봉 김 인 환
1. 등반일정
Fancipan산; 높이 3,143m, 인도차이나 반도의 최고봉. Himalaya 대간의 동쪽 끝에 위치한 Himalaya 주요 봉우리 중 하나. 하노이에서 북서쪽으로 380km에 위치한 Sapa 라는 피서관광지의 주봉우리. 1880년대 불란서 군 부대가 Tonkin 산악지대에 진주하면서 외부에 알려지기 시작. 이것이 Fansipan 산의 일반적 소개이다.
하노이 한인들의 ‘하노이산악회’가 이 Fansipan 산 등정을 매년 1회 실시하고 있다. 하노이에 얼마간 체류하고 있는 나로서는 도전의 좋은 기회이다. 일정은 꽤 빡빡하다. 11월 9일 밤 8시 30분 하노이를 출발하는 야간열차의 침대칸에서 8시간여 취침을 하면 다음 날 새벽에 Lao Cai 역에 도착하여 그날 하루 종일 걷고, 2,8oom 고지에 위치한 베이스켐프에서 야영을 한 후, 11일 새벽에 정상 3,143m를 찍고 하산하여 밤 7시 30분에 Lao Cai 역에서 다시 야간열차를 타면 12일 새벽에 하노이에 돌아오는 스케줄이다.
2. 등반전야
우리는 출발 날인 11월 9일 오후 등정대원 22명이 한 장소에 모여 소위 등정 결단식과 준비물을 체크하는 시간을 가졌다. 모두 빵빵한 배낭이 한 짐이다. 나도 그 동안 준비한 장비와 겨울 옷가지를 넣고 보니 45리터의 배낭도 공간이 모자라 텐트매트는 배낭에 메달 수밖에 없었다. 짊어지고 오래 걷기에는 부담스러운 무게의 배낭이 되었다. 결단식과 함께 저녁 식사를 마친 우리는 조별로 뿔뿔이 택시를 잡아 하노이 역으로 향하였다. 캄캄한 불빛의 하노이 역사 앞에는 벌써 많은 외국 관광객이 서성대고 있다. 출발시간이 남은 우리는 역사 앞 가게 의자에 앉아 맥주잔을 들고 시끌벅적 하였다. 모두 약간은 먼 여행을 앞에 둔 들뜬 기분의 얼굴이다. 기차에 옮기는 우리 일행의 짐은 배낭 이외에도 먹 거리를 담은 박스를 포함하여 짐이 수레에 하나 가뜩 이다. 젊은 대원들의 짐을 나르는 힘과 발 빠른 움직임이 믿음직스럽다. 하노이에서 처음 타보는 기차여행이다. 기차 안은 한 칸 4인의 침대가 2층으로 배치되어 비좁지만 하룻밤 잠을 자는 데는 그런 데로이다. 준비한 음식과 소주 몇 잔으로 시끌벅적하고 훈기가 도는 기차 침대에서 잠을 청하였다.
3. 등반 첫날
10일 새벽 5시경 기차는 Lao Cai 역에 도착하였다. 머리가 개운하지는 않지만 적당히 잤다는 기분이 들어 다행이었다. 역사 앞 건물들은 불빛이 밝아 여느 소도시의 역 주변과 비슷하다. 우리 팀은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버스를 타고 1시간 여 Sapa로 향하였다. 날이 밝아 오면서 차창에 보이는 산허리의 다락 밭이 이색적이다. 꼬불거리는 버스 길 저쪽은 45도 이상으로 보이는 경사에 위치한 가파른 다락 밭의 정연한 구도와 견고한 외형이 사야를 넘쳐나고 있다. 다락 밭에는 물이 적당히 차있는 논도 보인다. 사람이 얼마 살지 않아 보이는 초막과 벽돌 구조물은 띄엄띄엄 있는데 이 방대한 다락 밭이라니! 오랜 세월 인간의 근력과 인내로 일구어 낸 식량의 생산지. 먹 거리 확보를 위한 인간 생존의 고달픈 모습을 보는 듯하다.
Sapa는 깨끗하고 평화로운 관광도시로 보인다. 이곳에서 아침식사로 먹은 닭죽에 생기를 찾았다. 다시 버스로 30분 정도 달리니 1,800m 고도의 Tram Ton에 도착하였다. 여기가 등반 출발지점이라고 한다. 고산증 예방약을 먹고 약간은 겁먹은 마음으로 선두를 따라 걷기를 시작하였다. 시작부터 험하고 가파른 길을 오르락내리락 하는데 험산의 본때를 보는 기분이다. 이렇게 계속 따라갈 수 있을지? 젊은 대원들은 힘들어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배낭의 일부를 포터에게 넘겨 다행이다. 포터들은 이곳의 몽족 여인이라는데 왜소해 보이는 몸매에 우리보다 더 무거운 짐을 지고 잘도 걷는다. 몽족은 고구려 유민의 후예라는 설이 있다고 하는데 이런 고산지역에서 고단한 삶을 영위하는 모습이 측은하다.
점심 먹을 때쯤 하여 2,200m 고도에 위치한 켐프에 도착하였다. 켐프에서 제공하는 음식으로 그럭저럭 배를 채웠다. 지친 상태의 몸을 쉬어 주는 맛이 그만이다. 너무 많이 쉬면 더 못 걷는다는 재촉에 몸을 일으켰다. 얼마나 더 올라야 할지 막막하구나! 경사가 50도를 넘어 보이는 가파른 오르막의 철 사다리는 구조가 허술하여 위험이 느껴진다. 걷는 길은 질척거리는 진흙으로 덮여 발걸음을 더디게 만든다. 고통의 한계를 넘어 탈진의 힘겨운 상태에서 마침내 2,900m 고지의 야영 캠프장에 도착하였다. 저녁 5시 경이다. 켐프에 도착하였다는 안도의 마음이 들기도 전에 켐프장의 전경이 지친 마음을 실망시켰다. 비닐하우스 모양의 텐트 서너 개가 아무렇게나 엉성하게 자리 잡고 있다. 저 텐트 하나에 우리 22명이 자야한다니! 그래도 야영장은 서양사람, 베트남 젊은이 들, 여러 팀이 모여들어 시끌벅적한 분위기이다.
저녁식사는 버너에 끓인 라면에 햇반을 넣어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일찍 텐트 속으로 기어들었다. 휴식과 에너지 축적이 절실하다. 기온이 낮지 않아 준비한 겨울옷과 침낭 속에서 추위를 느끼지 않고 잠을 청할 수 있었다. 문제는 잠이 들지 않는 것이었다. 피곤하여 누워있으나 정신이 말똥거린다. 처음에는 주위가 소란스럽고 시끄러워 그러려니 하였으나 한 밤이 되어 조용한데도 여전하다. 산소 농도가 부족한 고산지대에서 생기는 고산증병의 영향인가 보다. 밤새 한잠을 못 잤으나 누워 있는 것만으로도 피곤은 풀리겠지 하는 아쉬운 기대를 해 보았다.
4. 정상 정복
새벽 2시에 일어났다. 정상의 해돋이를 보려면 서둘러 출발하여야 한다는 독촉이다. 개운하지 못한 상태에서 헤드랜턴과 옷가지를 챙겨 캄캄한 산길에 발걸음을 띠었다. 헤드랜턴의 불빛에 의존하여 가파른 산길을 오르자니 위험이 느껴질 때는 정신이 아찔하다. 캠프에서 정상까지 고도로 350m 정도라는데 왜 이리도 가파르고 먼 길인지? 등반대장은 해돋이 시간 놓칠세라 몰아 부친다. 해돋이 보는 것에 집착하는 한국인의 정서는 거의 종교적이다. 어둠속에서 정신없이 3시간여를 걷다 보니 정상에 가까웠다는 선두의 전갈이다. 드디어 5시 30분 쯤 정상에 도착하였다. 주변은 어둑어둑하나 새벽여명이 뚜렷하다. 모두 피곤한 모습이지만 밝고 기쁜 안도의 얼굴이다. 정상 표지석이 붙은 비좁은 바위 공간에서 사진 찍는 포즈를 잡는 모습이 가지각색이다. 운 좋게 날씨는 좋으나 동쪽 끝 붉은 빛이 보이는 쪽은 하얀 구름으로 뒤덮여 있다. 둥근 해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고 날은 밝아 오고 있다. 정상 정복의 성취감에 얼마간 왁자지껄 후 내려가는 길을 서둘러야 했다. 하산 길이라 밟는 마음은 여유로웠으나 가파른 내리막의 위험은 역시 아찔하다. 무릎에 너무 많은 부하가 걸리지나 않을까 조심 조심이다. 한참을 내려오니 어제 밤 시끌벅적 하던 팀들이 이제 올라오기 시작한다. 그들은 일출을 보는 것에 관심이 없으니 느긋이 올라와도 좋다. 우리를 보고 즐겁게 무어라고 말을 건다.
아침 8시 30분쯤 베이스켐프에 다시 돌아왔다. 정상을 밟았다는 마음에 기분이 가뿐하였다. 배낭을 정리하고 아침 식사를 서둘렀다. 입맛이 없고 음식은 부실하였으나 하루 종일 걸으려면 배는 채워야 한다. 켐프의 잠자리와 음식이 너무 빈약하다. 또 오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내려오는 능선에서의 장엄한 전경은 심신의 피곤을 삭여주는 맛을 느끼게 한다. 이제야 주위 경관에 매료되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날씨가 좋아 행운이다. 빠른 속도의 하산 길에 몸은 시달리고 있으나 종착점이 가까워진다는 생각에 마음은 한결 가볍다.
5. 하산 뒤풀이
오후 3시 좀 지나 드디어 어제의 출발 지점인 Tram Ton에 되돌아 왔다. 대기하고 있는 버스를 타니 큰일을 마쳤다는 실감이 났다. 이제 먹고 즐기는 일이 남았을 뿐이다. 이곳에 몇 번 왔던 대원들이 송어회가 일품이라고 침이 마른다. 버스로 얼마 가지 않아 폭포가 보이는 비탈에 자리 잡은 송어회집을 찾았다. 송어회가 이렇게 나의 입맛을 사로잡을 줄은 몰랐다. 민물고기라는 선입견에 회로 먹어도 되나 하는 정도의 지식밖에 없었던 나에게는 의외의 입맛 경험이다. 알고 보니 연어과에 속하는 송어는 냉수성물고기로 1급수에만 산다고 한다. 술과 음식에 푹 빠진 즐거운 시간이었다.
밤 7시 30분 Lao Cai에서 Hanoi 행 밤기차에 올랐다. 기차에서 술을 얼마나 먹었는지 모르겠다. 깨우는 소리에 일어나 보니 기차는 벌써 하노이 역 새벽 4시30분이란다. 비몽사몽간에 집에 돌아온 나는 계속 잠속에서 해매고 그 다음 날에야 기력을 되찾았다.
6. 글을 마치며
고통의 3박4일이 서서히 성취감과 희열로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이 70이 넘어 사그라지는 심신을 추스르면서 한계에 도전하였다는 뿌듯한 기분은 삶의 활력임에 틀림없다. 역시 등산은 좋구나! 산행 내내 서로 상대를 배려하고 도와주는 팀워크, 젊은 대원들의 부지런한 봉사, 그 탈진 상태에서도 카메라를 놓지 않고 계속 셔터를 눌러 사진을 찍어주는 열의,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하노이 산악회 만세.
첫댓글 여러가지로 힘든 고생 후에 나타나는 환희를 느끼셨지요?
정제된 표현에 현장의 분위기를 흠뻑 느끼고 갑니다
늘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차관님의 열정이 우리 회원 모두에게 화이팅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800 고지에서 한계를 넘었다며 걱정하시고도 다음날 정상에 도전하신 인봉님의 의지력에 더할 수 없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내내 건강하시고 하노이 산악회 산행에서 항상 뵙기를 바랍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좋은 추억 오래 간직되기를 바랍니다.
화이팅입니다.
정말 다시 한 번 그때의 고생함과 행복감이 밀려드는군요^^. 김차관님^^. 정말 수고 많이하셨습니다. 젊은 저희들에게 정신력이 무엇인지를 몸소 알려주신 그 열정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늘 건강하시고 오래 오래 산행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수고하셨고 판시팡 등정 성공을 감축 드립니다. 늘 건강 유의 하소서..
이제야 읽었읍니다. 쓰신 글 읽으며 작년에 갔을때 장면들이 아른 거립니다. 수고 많으셨읍니다. 그리고 하노이에서 좋은 추억거리 하나 더 만들으셨네요.
인봉 차관님!!!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저는 지금 참여해도 종주 할 수 있을지 의문인데,,,
칠순의 연세에 정말 대단하십니다
지난 2014년 1월 18일 Tam Dao 을 함께 했을때 맨 선두에 선 모습이
이를 증명 하는 것 같습니다
축하합니다,
등반하신 후 2년뒤에 댓글을 올린는 것 이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