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치호가 본 매국노 이완용은 어떤 사람인가? ⌜민영환과 윤치호, 러시아에 가다⌟ 32쪽
이완용은 친미에서 시작하여 친러 그리고 친일로 넘어가는 역사행적을 밟았다.
그는 육영공원의 헐버트에게 영어를 배워 탁월한 실력을 갖추었으며 미국주재공사의 일원으로 서구문물을 일찍 접한 당대에 보기 드문 근대인이었다. 그러나 그 실력과 능력을 조선의 근대화를 위해 사용하지 못하고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해 나라의 외교권과 군권, 주권 등을 일본에 양도하는데 사용하여 ‘매국노’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는 육영공원에서 영어를 배웠으며 1887년 미국주재공사 참찬관으로 나가 미국에서 2년 5개월간 주미외교관으로 활동하며 친미파 관료로 성장하였다. 그는 을미사변으로 민비가 시해를 당하자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고종을 윤치호, 민상호, 이윤용 등과 함께 미국공사관으로 피신시키고자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그 후 고종을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시키는데 참여한 그는 친러파 정권에서 외부대신 겸 노상공부대신이 되었다.
이 때 이완용은 독립협회에 참여를 해서 협회 부회장과 2대 회장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독립협회가 추구하는 입헌군주제와 고종과 친러파가 추구하는 전제군주제가 충돌하면서 그는 고종에게 의심과 미움을 받아 1898년 3월에 전라도관찰사로 좌천당하였다.
윤치호는 학부협판으로 이완용과 같은 내각에서 기용되었으며 이완용과 함께 고종을 미국공사관으로 탈출시키고자 하는 춘생문 사건을 함께 치렀으며 이후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에서 함께 활동하였다. 윤치호는 지근거리에서 이완용을 지켜본 사람이다.
그는 그의 일기 1896년 1월 21일 자에 이완용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이는 매국노가 되기 이전의 이완용에 대한 기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나는 이완용이 정말 싫다. 그의 특권의식과 저질스러운 교활함이. 족제비 같은 뒷거래를 좋아하는 그가, 평범하거나 하류층에 속하는 사람에게 대하는 노새 같은 완고함이 싫다. 그러면서도 그는 권력층 앞에서는 강아지처럼 알랑거리며 순종한다. 이런 온갖 행위가 나도 모르게 그에게 적대감을 일으키게 한다. 그가 세우고 싶어 하는 ‘사대부’ 혹은 선비학교는 그를 위해서라도 따로 세워 다니게 해야겠다.
그는 또 이런 사람이다. 박영효가 축출된 후에 내각에 알리기를, 상감 전하께서 칙임관의 반열에 따라 관리들의 권한을 부여하신다는 것, 이것은 미국 대통령이 공화국의 하급 관리들에게 약속했던 내용이라고 이완용이 전하에게 여러 번 일러드린 내용이었다. 그는 소인배 인격자임에 틀림이 없다.
2월 12일 수요일 일기에도 이완용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이완용 때문에 나는 기절초풍할 일이 생겼다. 그는 학부대신 재임 시에 알렌 박사가 학부에 위탁한 동 4,000불을 다른 사람도 아닌 그 자신이 착복했다. 그리고는 내게 알렌 박사에게 보낼 공식 영수증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돈은 자기가 다 써버리고 지금 와서 영수증이 무슨 소용이 있나. 나는 그에게 정중히 사절할 수밖에 없었다!
이완용에게 그런 일이 생겼다는 건 뜻밖이다. 그의 봉급은 5개월 치라고 해도 1,500불이 안될 텐데, 한 달에 300불씩 썼던 말인가! 단순한 함정이라고 할 수 없는 4,000불은 그의 봉급과 상관없는 큰돈임을 보여준다.
절대로, 그에게 영수증을 써줄 수는 없다.
이완용은 윤치호가 자신에 대하여 이런 글을 남길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에 이완용이 윤치호가 자신에 대하여 기록한 일기를 생전에 읽었다면 무슨 변명을 하였을까? 무슨 표정을 지었을 것인가?
윤효정의 ⌜대한제국아 망해라⌟, 정교의 ⌜대한계년사⌟, 황현의⌜매천야록⌟ 등 근대역사의 큰 줄거리를 보여준다면 ⌜민영환과 윤치호, 러시아에 가다⌟근대사 이면의 디테일을 보여준다. 윤치호의 일기는 마치 생중계처럼 근대 역사를 소환한다. 1880년대에서 1940년대까지 60여 년 간의 그의 일기를 통해서 살아있는 근대 역사를 사는 것처럼 느끼게 될 것 같다.
2023년 11월 23일. 목요일 자시
우담초라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