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교는 일제의 탄압을 피해 1914년 5월에 백두산 북쪽 아래에 있는 화룡현 청파호로 본사를 옮겼다.
청파호는 현재 청호촌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당시 조선 이주민 마을인 청파호에는 대종교 본사가 있었고 대종교가 운영하는 학교가 있었다. 그리고 마을 끝에는 500여 년 수령의 노거수가 있다.
500여 년 수령의 노거수. 현재는 청호촌의 신목이 되었다.
청호학교가 있었던 자리.
청호촌 촌사무소 앞 정면으로 난 길을 따라서 안으로 들어가면 좌측 맨 마지막 집을 끝으로 옥수수 밭이 나온다. 그 끝집과 초입에 있는 옥수수 밭 자리가 학교 자리다.
대종교 삼종사 나철, 김교헌, 서일의 묘는 청호촌 건너편 동산, 화룡현 소재지로 가는 구도로를 가로질러서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언백배기 위에 보이는 하얀 기둥들이 묘원이다.
묘원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출입금지를 알리는 간판. 세월 속에 길이 묻혔고 묘원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되괴의 위험이 있다.
묘원에서 내려다 본 청호촌 마을.
좌측으로 부터 서일, 나철, 김교헌의 묘.
풀이 우거져서 발걸음이 어려웠다.
반일지사무덤 이라는 표지판.
봉분 뒤와 옆에서 찍은 사진.
험악한 시대를 살았던 독립투사였던 님들의 삶만큼무덤 또한 장작림 군벌시대, 일본의 위만주국 시대, 국공내전시대, 중화인민공화국시대를 따라 부침하고 있다.
죽은 자와 약자가 설 자리는 어디인가?
시대 정신이 그들을 기리는가?
무덤은 말을 하는데 누가 듣는가?
누가 보는가?
시대가 어지럽다.
2024년 10월13일
우담초라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