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矢辭④ (시사, 자책하는 글)
(鳴呼維我朝鮮人爲日賊之所威脅雖莫之誰何而思漠之心則百死不變也譬之干將焉雖埋沒土壤而衝斗之氣未嘗散也江水焉雖束以矍塘厄以灩瀕鬪捍激撞憤怒噴薄而萬折必東之勢不可障也遂以數句語作矢辭曰)
採西山微蹈東海水夷連高節百世瞻彼凶彼日酋墟我宗社忝離之嘆何時可弛含寃忍痛迫不得己一心自處東里處士朝拾柳絮暮寫菊史我夗無地久矣切齒杜門讀書究其終始千萬意外異服突至搜覓我笥奪去數紙草野直筆堂堂義理以此作案含笑受矣余何多言只有一夗我心無貳上帝臨止緘口結舌惟爾諒此 屋社後八年丁巳六月日朝鮮遺民長興魏啓龍書
〈해설〉(오 슬프다. 나는 조선인이다. 일본의 적도들이 비록 위협하고, 어느 누가 막는다 해도 생각하는 마음은 백번을 죽어도 변치 않을 것이다. 비유하건대 간장(干將)⑤의 명검이 비록 땅에 매몰됐다하더라도 북두칠성과 부딪칠 수 있는 아주 크고 거센 기운이 아직 흩어지지 않았다.
江水(양자강)가 묶여 솟구친 기운이 제방에 갇히는 재앙을 당했을지라도 강가로 물결의 출렁거림이 다투어 밀어붙이게 되면 물결이 부딪쳐 분노하고, 물을 뿜어내 땅을 얇게 하면 모든 것이 절단되어 반드시 동쪽으로 흐르는 형세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다음의 몇 구절의 글을 지어 시사(矢辭)라 한다)
「서산에 감춰진 간장(干將)의 명검을 찾아내고, 막힌 강물이 동해로 흘러넘쳐 물이 평평하게 연결되게 하면 고고한 절개가 백세 동안 우러러 볼 것이다. 저 흉측한 일본이 더욱 폐허를 이루어 우리 종묘와 사직을 욕되게 하니, 늘어놓으며 탄식함은 이미 때가 늦었도다. 원통함을 삼키고 몹시 절박함을 참으면서 한 마음으로 동리처사(李達)⑥와 같이 재물을 아침으로 피어나는 버드나무의 꽃처럼 바람에 흩날리듯 연연하지 않는 국사(菊史)⑦와 같이 자처하나니, 나의 원통함이 이루 헤아릴 수 없는지 오래 되었도다.
(각주)
④ 시사(矢辭) : 淵齋 宋秉璿․勉庵 崔益鉉․心石 宋秉珣 등 3 선생을 기리며 집필한 것을 압수당한 후 일본의 감시와 앞으로 닥칠 조사 등에 대비, 우선은 "초야의 직필과 당당한 의리로써 글을 빼앗기는 자리에서는 웃음을 머금고 받아들이지만 앞으로 때가 되면 다시 필을 들겠다" 는 결의와 최후에는 목숨까지 던지겠다는 각오 즉 자신의 가슴에 활을 쏘는 각오를 다짐하고 있다. 예문류취(藝文類聚) 권 40의「直弛矢辭」즉 화살처럼 올곧은 말이란 뜻으로 맹세를 표할 때나 자책할 때 쓴다. 이 글은「장흥헌병대 죽천장 파견소 控辭」에 포함된 글로 문단을 바꿨다.
⑤ 간장(干將) : 춘추시대 오나라의 명검을 만드는 장인으로 그의 부인 막야(莫耶)와 함께 자웅(雌雄)의 명검을 만들어 오왕 합려(闔閭)에게 받쳤다. 곧 간장과 같은 비장의 칼이 있다는 뜻이다.
⑥ 동리처사(東里處士) : 여기서 동리처사 李達(1539~1612)은 임란 때의 그가 아니고 허균(許筠)과 허난설헌(許蘭雪軒)의 스승으로 재능이 있어도 서얼 출신이라 가슴 아파했던 인물을 지칭한다
⑦ 국사(菊史) : 국사를 호로 쓴 인물은 조선 후기 문인 김학수(金學洙)가 있으나 여기서는 33인의 한 사람인 독립운동가 오하영(吳夏英)을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국사처럼 '버드나무의 꽃처럼 재물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분하여 이를 갈면서 문을 닫고 독서에 궁구하려는데 그 시작과 끝이 천만 뜻밖에 이복(異服) 차림(日本憲兵)이 들이닥쳐 수색하여 내가 글을 모아둔 상자 속에서 수편을 빼앗아 갔다. 그래도 이 자리에서 초야의 직필과 당당한 의리로써 웃음을 머금고 받아드린다. 내 어찌 많은 말을 할 것인가? 다만 한 가지 원통한 것은 내 마음에 상제(上帝)가 둘이 아니란 것이다.(不事二君을 뜻함) 입과 혀를 다물어 머묾에 임하여 오직 그 살펴서 앎이 이와 같도다. 나라를 잃은 뒤 8년 丁巳(1917)년 6월 일 조선유민 장흥 위계룡씀」
■ 見安東義檄 (안동 의병 격문을 보고)
斥邪一檄日星明 위정척사의 격문으로 해와 별이 빛나니
南嶠崢嶸間氣呈 남쪽의 뾰쪽하고 가파른 곳에서도 기운이 들어나네
尊周大義執能禦 주나라의 대의를 존중하는 것을 어느 누가 막을 것인가
撻楚仁聲人莫京 회초리로 경계하신 어진 소리는 누구도 견줄 이 없어라
難容諸賊剃頭罪 저 도적들의 단발령을 용납할 수 없어서
不盡群雄唾手情 많은 영웅들이 기운 내어 일어나는 정은 끝이 없도다
爲是生民拯水火 이로써 생민을 수화의 고통에서 건져내니
壺漿簞食共相迎 거친 밥과 보잘것없는 반찬으로나마 함께 맞이하련다
■ 敬次勉庵崔先生 益鉉 仙遊潭韻
(삼가 면암 최익현선생의 선유담운을 차운함)
離鄕己是屬春殘 고향을 떠난 이 몸은 늦은 봄을 맞아서
聞道仙潭古石壇 선유담의 옛 석단에서 도를 들었네
天際浮雲任聚散 하늘가에 뜬 구름은 하염없이 모였다가 흩어지고
谷中流水覺靑寒 계곡에 흐르는 물은 맑고도 차갑네
可怕異言眩耳目 이단의 말이 두렵고 눈과 귀가 어지러워
最宣靈境保心丹 가장 좋은 영경(靈境)에서 단심을 보존하네
也識先生登此日 알겠노라 선생께서 그날 이곳에 오른 뜻을
山人喜覩漢衣冠 산인들도 기뻐하여 의관을 살피네
■ 泮宮講會韻 (문묘강회운)
最宜吾道不東西 우리 유도가 가장 마땅히 동서의 갈림이 없어야 하는데
杏樹壇高天欲低 서원의 단은 높아지고 하늘이 낮아졌네
千秋慷慨幾燕趙 오랜 세월 비분강개로 우국 충정한 연과 조의 선비처럼
百里絃歌復魯齊 백리에 현가를 퍼지게 하여 魯齊처럼 돌아가련다
意外官廚傳美酒 뜻밖에 관청의 소주방에서 美酒를 전해오니
瞻前聖廟俯淸溪 쳐다보니 문묘요, 엎드리니 맑은 물이로세
孜孜爲善人皆舜 부지런히 선을 행하는 사람은 모두 순의 무리처럼
聽起中宵一昌鷄 한 밤중에 창성한 닭울음소리 듣고 일어난다네
■ 暮入長安感懷 (저녁 무렵 장안에 들어온 감회)
平生喜作四方遊 평생 사방을 유람하기를 즐겨하여
到此難堪漆室憂 장안에 도착하니 나라 잃은(漆室) 근심이 난감하구나
江山軒豁三千里 삼천리강산이 활짝 트여
日月昭明五百秋 일월의 밝음이 오백년 세월이네
夫何倭種終相迫 어찌하여 왜놈의 종자에게 끝내 핍박을 당해
永使王綱不復修 영원토록 임금의 그물을 다시는 손질하지 못하네
宮城落日遲遲路 궁성에 해떨어져 더디기도 한 발걸음에
慷慨男兒血涕琉 비분강개한 사나이는 눈물을 흘리네
■ 平壤遊償路次過長安懷故 三首
(평양을 유람하러 가다 서울에서 옛날을 회상함)
鞏固三千里 공고⑧한 삼천리강산에
休明五百年 태평성대를 누리며 오백년을 지나왔는데
一朝胡至此 하루아침에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欲訴彼蒼天 저 푸른 하늘에 하소연 하러하네
宮闕舊形換 궁궐은 옛 모습과 바뀌었고
江山新面多 강산은 새로운 모습이 많도다
遺臣無限恨 전종의 신하들의 무한한 한을 남긴 곳에
立馬夕陽阿 석양에 지나는 객은 말을 세우고 어찌할 바를 모른다
最看勤政殿 근정전을 가장 유심이 보았더니
春草滿庭多 봄의 풀만 뜰 앞에 가득하였네
一㥘滄桑淚 일차 난리를 겪고 창상⑨의 눈물만 흘리며
三嘆離黍歌 세 차례 탄식하며 이서⑩가를 부르도다
(각주)
⑧ 공고(鞏固) : 견고함
⑨ 창상(愴桑) : 창해가 변하여 상전이 된다는 뜻
⑩ 이서(離黍) : 나라가 망하고 궁전이 없어져 그 터가 기장 밭이 된 것을 탄식
(144-101일차 연재에서 계속)
첫댓글 (144-100일차 연재)
(장흥위씨 천년세고선집, 圓山 위정철 저)
100일차에도 '오헌공(계룡)의 유고'가 밴드에 게재됩니다.
[본문내용- 오헌공 유고]
(앞에서 이어서, 5-2일차 연재 중)/ 무곡
오헌공의 유고가 5회에 걸쳐 이어지기에 밴드 게재 일정을 조금씩 앞당겼습니다.
드디어 밴드게재 100일차가 되었습니다.
꾸준하게 일독하시거나 관심을 표명하여 주시는 모든 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밴드에 선집을 게재한지 100일을 무사히 넘겼기에 그 존재감과 지속성은 인류의 역사와 영원히 함께할 것으로 확신합니다./ 무곡
본문에 옛날 임금이 정사를 보던 경복궁의 근정전이 나오네요./ 벽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