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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6장 1-7절. 일곱 집사를 선출함
1절.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ow at this time while the disciples were increasing in number, a complaint arose on the part of the Hellenistic Jews against the native Hebrews, because their widows were being overlooked in the daily serving of food.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Ἐν δὲ ταῖς ἡμέραις ταύταις, πληθυνόντων τῶν μαθητῶν,
in now the days these, [as] are multiplying the disciples,
‘그 때에’는 주후 35년경을 가리킵니다.
‘많아졌는데’(πληθυνόντων)는 현재분사로서(are multiplying) 계속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여기서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다’는 것은 5장 14절(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이후로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교인의 숫자가 많이지자 내적인 문제와 외적인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내적인 문제로는 헬라파 유대인 성도들과 히브리파 유대인 성도들 간에 분쟁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고(6:1-6), 외적인 문제로는 외부의 박해가 가해졌다는 것입니다(6:8-7:60).
헬라파 유대인들이—-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ἐγένετο γογγυσμὸς τῶν Ἑλληνιστῶν, πρὸς τοὺς Ἑβραίους,
there arose grumbling of the Hellenists, to the Hebrews,
직역하면 ‘헬라어를 사용한 유대인들의 불평이 히브리인들에 대해서 일어났다’는 뜻입니다.
‘일어났다’(ἐγένετο)는 부정과거로서(there arose) 확실히 일어난 과거의 사실을 가리킵니다.
‘헬라파 유대인’이란 팔레스틴 밖에서 거주하고, 헬라어를 일상용어로 사용하고, 헬라인의 풍습에 익숙하고, 보다 자유롭고 넓은 문화와 접촉하고, 히브리파 유대인들보다 초대교회 이후로 후대까지 존속했던 유대인들을 가리킵니다. (행 9:29, 11:20)
그리고 ‘히브리파 유대인’이란 팔레스틴 지역에서 살면서 아람어나 히브리어를 사용하고, 유대인의 문화와 풍습에 익숙한 유대인을 가리킵니다.
물론 이 두 그룹의 사람들은 예수를 믿고 교회에 들어온 성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과부의 구제 문제로 자기네 편 과부들이 구제품을 받지 못한 것 때문에, 서로 분쟁이 발생했습니다.
이 분쟁으로 사도들도 원망과 비난을 면하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성령의 강림과 방언과 표적과 기사가 일어났던 초대교회에서 분쟁이 발생한 것을 볼 때, 초대교회도 완전한 이상적인 교회는 아니었으며, 결점과 불평이 가득했던 불완전한 교회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상 교회는 언제나 완전한 교회는 없고, 교회가 성장한다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고, 사도들과 이적 기사가 나타난다고 완전한 교회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인종적이고 언어적인 차이로 인한 교회 내에서의 분쟁과 파벌은 역사적으로나 현재에도 어디에나 존재하는데, 초대교회의 언어적 인종적 파벌과 분쟁은 모든 교회의 부정적인 모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Baker.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ὅτι παρεθεωροῦντο ἐν τῇ διακονίᾳ τῇ καθημερινῇ αἱ χῆραι αὐτῶν.
because were being overlooked in the serving of the daily the widows of them
직역하면 ‘그들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서 빠졌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빠지므로’(παρεθεωροῦντο)는 미완료과거 수동태로서(were being overlooked) 습관적으로 계속 무시되고 계속 빠지는 것을 가리키고, 원형(παραθεωρέω)은 ‘지나쳐버리다, 무시하다’( overlook, neglect)는 뜻입니다.
여기서 한글 역이 잘못된 것은 ‘구제에’(into the serving)가 아니라 ‘구제에서’(from the serving)라는 점입니다.
즉 헬라파 과부들이 가난해서 구제할 형편에 빠졌다는 것이 아니고, 헬라파 과부들은 구제받는 대상에서 제외되었다는 뜻입니다.
현대인의 성경(구제 대상에서 자기들의 과부들이 제외된다고)은 ‘에서’(from)라고 잘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한글 성경에서 아주 잘못된 번역은 마가복음 4장 22절( 드러내려 하지 않고는 숨긴 것이 없고 나타내려 하지 않고는 감추인 것이 없느니라)입니다.
이 구절이 새번역(숨겨 둔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 둔 것은 나타나기 마련이다)과 현대인의 성경(감추어진 것은 나타나기 마련이고 비밀은 드러나기 마련이다)과 공동번역(감추어둔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고 비밀은 알려지게 마련이다)은 올바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 두 구절(행 6:1과 막 4:22)은 한글 개역과 개역개정이 크게 잘못된 번역으로서, 반드시 고쳐야 할 부분입니다.
‘매일의 구제’란 디모데전서 5장 3-16절에 말씀한 대로, 60세 이상 된 성도들 중에서 돌봐줄 자손이 없는 과부를 교회에서 물질을 대서 책임지고 돌봐드리는 것을 가리킵니다. (행 4:35, 11:28-29 참조)
이 ‘매일 구제’는 이미 앞서 2장 45절과 4장 35절에서, 자발적으로 드려진 헌금과 재산으로써 만들어진 교회의 공적 기금으로 구제사업 한 것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헬라파 과부들에게는 이 구제금을 주지 않았고, 히브리파 과부들에게만 이 구제금과 먹을 것을 주었기 때문에, 교회 내에 분쟁이 발생한 것이었습니다.
2절. 열 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So the twelve summoned the congregation of the disciples and said, "It is not desirable for us to neglect the word of God in order to serve tables.
열 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προσκαλεσάμενοι δὲ οἱ δώδεκα τὸ πλῆθος τῶν μαθητῶν,
Having called near then the twelve the multitude of the disciples
직역하면 ‘그러자 열둘이 제자들의 무리를 불러서’란 뜻입니다.
‘불러’(προσκαλεσάμενοι)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called near) 단호하게 부른 것을 뜻합니다.
이 열두 사도 중에는 가룟 유다 대신에 선출된(행 1:26) 맛디아가 포함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제자’란 예루살렘에 사는 제자들을 가리킵니다.
왜냐하면 이 때는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이 발생한 지 적어도 2년이 지났을 때이기 때문에, 많은 제자들은 예루살렘을 떠나 다른 곳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이르되
εἶπαν
they said
직역하면 ‘그들이 이르되’란 뜻이고, ‘이르되’(εἶπαν)는 부정과거로서 확실히 일러 말하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Οὐκ ἀρεστόν ἐστιν ἡμᾶς, καταλείψαντας τὸν λόγον τοῦ Θεοῦ, διακονεῖν τραπέζαις.
not desirable it is for us, having left behind the word of the God, to serve tables.
‘제쳐놓고’(καταλείψαντα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left behind) 뒤로 확 제쳐놓는 것을 가리킵니다.
‘접대를 일삼는 것’(διακονεῖν τραπέζαις)은 문자 그대로는 ‘식탁들을 섬기는 것’(to serve tables)을 가리키는데, ‘섬기는’(διακονεῖν)은 부정사형 동사입니다(to serve).
‘마땅치 아니하니’에서 동사(ἐστιν)는 현재형입니다(it is).
당시에 사도들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전하는 일과 교회 재정을 담당하는 일까지 겸하고 있었는데, 교회 재정 문제는 집사(오늘날 안수집사)를 선정해서 맡기기로 했습니다.
즉 처음에는 사도들이 음식 분배하는 일까지 담당하고 있어서, 기도생활과 말씀 전하는 일에 많은 지장을 초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음식 분배하는 일로 헬라파와 히브리파 성도들 간에 분쟁이 발생하자, 이 기회에 사도들은 재정 관리하는 것을 일곱 집사에게 맡기고, 사도들은 기도 생활과 말씀 전하는 일에만 전념하기로 한 것입니다.
이처럼 구제와 식탁 봉사가 기도 생활과 말씀 선포만은 못해도, 예수님께서도 어려운 형제들에게 구제한 것이 예수님 자신에게 한 것으로 간주하시는 고귀한 일이라고 인정하셨습니다( 마 25:40).
즉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고 식탁 봉사를 하는 것은 매우 선한 일이고, 존경할 일이지만(행 20:35, 갈 6:10, 딤전 5:10) 가난한 성도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멸시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어려운 일입니다(롬12:8, 약2:3-4).
3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refore, brethren, select from among you seven men of good reputation, full of the Spirit and of wisdom, whom we may put in charge of this task.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ἐπισκέψασθε δέ, ἀδελφοί, ἄνδρας ἐξ ὑμῶν, μαρτυρουμένους, ἑπτὰ πλήρεις Πνεύματος καὶ σοφίας,
select therefore, brothers, men out from yourselves, being well attested, seven full of the Spirit and wisdom
직역하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영과 지혜가 충만한 일곱 사람들을 택하라’는 뜻입니다.
‘택하라’(ἐπισκέψασθε)는 부정과거 명령형 중간태로서(select) ‘너희 자신을 위해서 꼭 반드시 택하라’는 뜻입니다.
‘칭찬 듣는’(μαρτυρουμένους)이란 단어는 ‘입증된’(being well attested)이란 뜻이고, 현재분사입니다.
여기 ‘입증된 사람들’이란 평판이 좋은 사람들을 뜻합니다( 눅 4:22, 딤전 5:10).
집사 선출의 자격 요건은 첫째 칭찬 듣는 사람이어야 하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칭찬 듣고 평판이 좋은 사람이라는 외부적인 조건에 합당해야 했고, 내적으로는 성령 충만한 사람이어야 했고, 업무에 있어서는 지혜롭고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이것은 물질을 다루는 사람이 욕심이 없어야 하는 것과 공평하고 마음 상하지 않게 구제비를 나누어주어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집사 선출 방식은 사도회나 장로회나 선출위원회나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선출한 것이 아니었고, 공동회의에서 교인들이 직접 선출했습니다.
이처럼 선출은 교인들이 직접 했고, 임명과 안수는 사도들이 했습니다.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οὓς καταστήσομεν ἐπὶ τῆς χρείας ταύτης·
whom we will appoint over the task this
직역하면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길 것이다’는 뜻입니다.
‘맡기고’(καταστήσομεν)는 미래형으로서(we will appoint) ‘우리가 맡길 것이다’는 뜻입니다.
‘이 일’이란 것은 교회 재정을 담당해서, 수입금을 정산하고, 지출을 맡아서 과부 구제금이나 사도들이 쓸 재정이나 교회 경상비 등 지출을 담당하는 것을 말합니다.
초대교회는 교회 내의 분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좋은 해답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즉 업무를 분담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모세도 재판 업무를 혼자 감당할 수 없을 때, 장인 이드로의 조언을 받아들여서,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과 같은 조력자들을 세워서 업무를 분담했습니다. (민 18:25)
그러면서 교회의 중요한 직무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사도들이 기도하고 말씀 전하는 직무를 사도들에게 전담시키고, 재정관리와 구제 문제를 일곱 집사에게 위임함으로써, 분쟁 문제를 해결했던 것입니다.
4절.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we will devote ourselves to prayer and to the ministry of the word."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ἡμεῖς δὲ, τῇ προσευχῇ καὶ τῇ διακονίᾳ τοῦ λόγου, προσκαρτερήσομεν.
we now, in the prayer and in the ministry of the word, will steadfastly attend
직역하면 ‘이제 우리는 기도와 말씀 사역에 집중할 것이다’는 뜻입니다.
‘힘쓰리라’(προσκαρτερήσομεν)는 미래형이고(will steadfastly attend), 원형(προσκαρτερέω)은 꾸준히 시중들다(attend constantly)는 뜻입니다.
사실 사도들은 기도하고, 말씀 전하는 영적인 일에 전념하는 것이 이상적이고, 교회 재정을 자신들이 운영해서 자기들이 쓸 재정을 스스로 지출하기가 부담스러웠을 것입니다.
이것은 집사들이 담당해서 사도들의 재정 지출을 대신 돌봐주는 것이 떳떳하고, 다른 교인들이 보기에 모양새도 좋았을 것입니다.
5절.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 statement found approval with the whole congregation; and they chose Stephen, a man full of faith and of the Holy Spirit, and Philip, Prochorus, Nicanor, Timon, Parmenas and Nicolas, a proselyte from Antioch.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καὶ ἤρεσεν ὁ λόγος ἐνώπιον παντὸς τοῦ πλήθους,
and was pleasing the statement before all the multitude
직역하면 ‘이 말이 온 무리 앞에 기쁨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기뻐하여’(ἤρεσεν)은 부정과거 능동태로서(was pleasing) 정말 기쁨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사도들이 제시한 집사 선출에 대한 의견이 교회 공동의회의 일반 교인들에게 기쁘게 받아들여졌다는 것입니다.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택하여
καὶ ἐξελέξαντο Στέφανον, ἄνδρα πλήρη πίστεως καὶ Πνεύματος Ἁγίου,
and they chose Stephen, a man full of faith and of Spirit Holy,
‘택하여’(ἐξελέξαντο)는 부정과거 중간태로서(they chose) 자기들을 위해서 단호히 선택했다는 뜻입니다.
이 스데반 집사는 최초 순교자의 명예를 얻게 되었습니다( 행 7:59-60).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καὶ Φίλιππον καὶ Πρόχορον καὶ Νικάνορα καὶ Τίμωνα καὶ Παρμενᾶν καὶ Νικόλαον προσήλυτον Ἀντιοχέα,
and Philip, and Prochorus, and Nicanor, and Timon, and Parmenas, and Nicolas, proselyte from Antioch.
‘유대교에 입교했던’(προσήλυτον)이란 단어는 ‘개종자’(convert, proselyte)란 뜻인데, 헬라인이었는데 유대교인으로 개종한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 안디옥 출신 니골라는 유대교에서 다시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니골라는 원래 헬라인(이방인)으로 출생했다가, 유대교로 개종했다가 기독교인이 된 사람이고, 나머지 여섯 사람은 헬라어를 사용하는 유대인 가정에서 출생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여기 일곱 사람의 이름은 모두 헬라어 이름입니다.
그러나 히브리파 유대인들도 상당수 외국 이름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행 1:23.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
이것은 이 일곱 집사가 헬라파 과부들이 교회에서 구제금을 받는데 누락이 없도록 교회 재정을 관리하는, 헬라파 교인들의 대표자였습니다.
그러나 이 일곱 집사는 헬라파 과부들만이 아니라, 히브리파 과부들도 보살피는 일도 함께 담당했습니다.
이 일곱 집사들 중에 스데반 집사(행 6:8-7:60)와 빌립 집사(행 8:5-40, 21:8-9)의 활동이 두드러졌습니다.
스데반 집사와 빌립 집사는 칠십인 전도 대원(눅 10:1)에 속해 있었을 것이고, 빌립 집사가 집사 안수를 받을 때 이미 결혼해서 딸들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행 21:8 참조).
니골라는 이방인으로서 교회에 받아들여진 최초의 이방인 집사였고, 나중에 니골라당의 시조가 되었습니다(계 2:6-15).
그리고 안디옥 출신의 집사가 거론된 것은 의미심장한데, 왜냐하면 나중에 안디옥 교회는 이방인 중심 교회의 본부(headquarters)가 되기 때문입니다(행 11:26 이후).
이 집사들은 재정과 구제 업무를 주로 담당했지만, 스데반이나 빌립처럼 복음 전도의 은사를 받은 경우도 있습니다.
사도행전 1장 30절에서는 장로들이 구제금을 수납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때도 구제금을 실제로 관리하면서 나누어주는 일은 집사들이 담당했을 것입니다. Baker.
6절.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these they brought before the apostles; and after praying, they laid their hands on them.
사도들 앞에 세우니,
οὓς ἔστησαν ἐνώπιον τῶν ἀποστόλων,
whom they set before the apostles
‘세우니’(ἔστησαν)는 부정과거로서(they set) 성도들이 일곱 집사를 사도들 앞에 딱 세운 것을 가리킵니다.
사도들이 기도하고
καὶ προσευξάμενοι,
having prayed
직역하면 ‘그리고 그들이 기도하고’란 뜻입니다.
‘기도하고’(προσευξάμενοι)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prayed) 사도들이 정성으로 기도한 것을 가리킵니다.
집사의 임직식은 사도들의 기도와 안수로 이루어졌습니다.
다른 복잡한 의식이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ἐπέθηκαν αὐτοῖς τὰς χεῖρας.
they laid on them the hands
직역하면 ‘그들이 그들에게 손을 얹었다’는 뜻입니다.
‘얹었다’(ἐπέθηκαν)는 부정과거로서(they laid) 확실한 의도를 가지고 단호하게 얹은 것을 가리킵니다.
‘안수’는 구약시대부터 여러 가지 중요한 의미로 쓰였습니다.
첫째 축복을 전달해주기 위해서 안수했습니다( 창 48:13-20).
둘째 희생 제물에 인간의 죄를 전가하는데 안수가 쓰였습니다 (레 1:4).
셋째 직분을 맡은 사람에게 직무를 위임하는데 안수가 쓰였습니다( 민 27:23).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에게 안수하는 것이 최초로 나오고(창 48:10-14), 레위인에게 직무를 수행케 할 때도 안수했고(민 8:10), 모세가 행한 의식에서 자주 나오고(레 3:2, 16:21, 민8:12), 여호수아를 모세의 후계자로 세울 때도 안수했습니다(민 27:18).
신약시대에는 안수가 더 여러 의미로 쓰였습니다.
첫째 치료할 때 (행 28:8, 막 1:41).
둘째 축복을 전달할 때 (막 10:16).
셋째 임무를 수여할 때 (행 6:6, 13:3, 딤전 5:22).
넷째 영적인 은사를 부여할 때 (행 8:17, 19:6, 딤전 4:14, 딤후 1:6).
아나니아가 사울에게 안수하여 보게 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고(행 9:17), 디모데가 장로회에서 임직받을 때도 안수했습니다(딤전 4:14).
여기 일곱 집사들은 사도들로부터 안수를 받고 직임을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2절에 ‘접대’(διακονεῖν, to serve)라는 말에서 ‘집사’(διάκον: deacon)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빌 1:1, 딤전 3:8-13)
‘집사’란 헬라어(διάκον)는 ‘목사’(minister)란 뜻이나 ‘종’(servants)이란 뜻으로도 쓰였습니다.
7절.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 word of God kept on spreading; and the number of the disciples continued to increase greatly in Jerusalem, and a great many of the priests were becoming obedient to the faith.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Καὶ ὁ λόγος τοῦ Θεοῦ ηὔξανεν,
and the word of the God continued to increase,
직역하면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 증가했다’는 뜻입니다.
‘왕성하여’(ηὔξανεν)은 미완료 과거로서(continued to increase) 계속 증가하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καὶ ἐπληθύνετο ὁ ἀριθμὸς τῶν μαθητῶν ἐν Ἱερουσαλὴμ σφόδρα,
and was multiplied the number of the disciples in Jerusalem exceedingly
직역하면 ‘그리고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들의 수가 심히 계속 많아졌다’는 뜻입니다.
‘많아지고’(ἐπληθύνετο)는 미완료과거로서(was multiplied) 계속 점점 더 많아지는 것을 가리킵니다.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πολύς τε ὄχλος τῶν ἱερέων ὑπήκουον τῇ πίστει.
great then multitude of the priests were becoming obedient to the faith.
직역하면 ‘그 후에 허다한 제사장들의 무리도 이 믿음에 계속 복종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복종하니라’(ὑπήκουον)는 미완료과거로서(were becoming obedient) 계속 복종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제사장들의 수만 해도 4,289명이나 되었으므로(에스라 2:36-38), 신약시대에는 제사장들의 수가 수십만 명이나 되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많은 제사장들 중에 제사장 신분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초대교회 교인이 되었다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이처럼 사도행전에는 시대적으로 교회의 부흥이 점점 더 진전되어 가는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행 1:15, 2:41, 4:4, 5:15, 6:7, 9:31, 12:24, 16:5, 19:20, 28:31)
이 제사장들은 혈통적으로 구약의 제사장 직분을 감당하고 있었지만, 사도들이 짐승 제사가 더 이상 필요 없다고 선포한 메시지를 받아들였습니다(히 8:13, 10:1-4, 11-14).
다음 장에 나오는 스데반의 설교에서도 성전에서 제사장들이 짐승으로 제사(예배)하는 것은 결국 폐지된다고 선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행 7:49-50)
이후에 바울도 이 성전 제사가 예수님으로 인해 폐지되는 것을 말했고(엡1:7, 골 1:13-14), 히브리서에 성전 제사가 폐지되는 것을 자세히 말씀했습니다(히 10:7-1-14).
우리 성경에는 ‘도’로 번역되어 있지만, 원문에는 ‘믿음’(τῇ πίστει: the faith)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복음을 믿게 되면,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게 됩니다(롬 1:5, 16:26, 약 2:14-26).
- 설 교-
1절. 그 때에 제자의 수가 더 많아졌는데
부흥하면 모든 것이 좋아질 것 같지만, 부흥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성장학>에는 200명 교회가 이상적인 교회라고 합니다.
적으면 재정적인 문제가 있고, 많으면 결속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 구제에서 빠지므로.
1. 원래 구제는 금요일에만 했습니다.
즉 쿰바(Kuppah-바구니)를 가지고 과부를 구제했습니다.
그러다가 탐후이(Tamhui-쟁반)를 가지고 매일 구제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초대교회가 외부적으로 전도하는 것 보다 내부적으로 구제하는 일에 더욱 치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문제와 원망이 생겼습니다.
감사와 기쁨이 넘쳐야 할 교회가 원망과 분열과 갈등이 생긴 것입니다.
즉 헬라파 과부들이 매일 구제에서 빠지고, 히브리파 과부들만 매일 구제를 받게 된 것입니다.
2. 그러면 헬라파는 무엇이고 히브리파는 무엇입니까?
네, 히브리파는 원래 예루살렘 고향에서 살면서 히브리 말을 사용하는 유대인들입니다.
그러나 헬라파는 외국으로 흩어진 디아스포라로서 헬라말을 사용하는 유대인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 헬라파는 나이가 들어서 고향에 와서 살려고 고향을 찾아온 유대인들입니다.
그런데 원래 고향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히브리파가 텃새를 부리고 고향 찾아온 사람들을 괄시하고 차별대우 한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도 초대교회처럼 터줏대감 노릇을 하는 본 교인과 외부에서 중간에 들어온 나그네 교인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차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보이지 않는 차별이 물질을 나누어주는 구제 문제에서 실제적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교회는 분쟁과 원망과 시비가 생긴 것입니다.
3. 그런데 과부란 어떤 사람들입니까?
디모데전서 5장 1절로 16절을 보면 교회에서 구제해야 할 과부의 조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세상 연락 같은 것에는 미련이 없이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 늘 기도하고 교회에 봉사하고 사는 사람이 참 과부라고 말씀합니다.
둘째로, 친척이 없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자녀들이 있다면 당연히 그들에게 효도를 받아야지 교회의 구제 대상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친척들이나 자녀들이 없는 사람만이 참 과부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한 번만 시집을 갔던 사람이라야 참 과부라고 합니다.
한 번 시집갔다가 남편이 죽었다고 다시 시집갔던 사람은 또 시집갈 소질이 다분하기 때문에 참 과부가 될 수 없었습니다.
단 한 번 한 남자의 아내가 되었던 사람만이 참 과부라고 인정했던 것입니다.
넷째로 봉사 정신이 있어야 참 과부였습니다.
남의 발을 씻길 수 있는 정신이 필요했습니다.
대접받으려는 생각보다는 남은 생을 봉사하면서 살겠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야 참 과부라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60세 넘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젊은 과부는 다시 시집을 갈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과부들을 '참 과부'로 교회 명부에 올려서 매일 구제 하고 교회에서 그 생활을 책임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부들은 온전히 교회에서 봉사하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했던 것입니다.
이런 참 과부들은 이렇게 남은 생을 살아가는 것이니 그들을 구제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구제의 문제에는 언제나 원망이 따른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2절. 열 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교회에 문제가 발생하자 사도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즉 주님이 사도들에게 기도하고 말씀을 전하라는 사명을 주셨는데, 이제 교회가 부흥하고 재정적으로 안정이 되니까, 사도들이 기도와 말씀 전파 보다 재정과 구제에 시간을 다 빼앗기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본래의 사명인 기도와 설교와 전도 사역을 되찾아야겠다고 깨달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집사를 세우고 권사를 세운 것은 목사가 기도하고 설교하고 전도하는 것을 돕기 위한 것입니다.
즉 안수 집사가 재정을 담당하고, 권사가 심방을 담당한 것은 목사를 돕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목사를 도와야 할 분들이 목사를 더욱 힘들게 해서는 안 됩니다.
3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집사의 자격을 무엇입니까?
1. 첫째는 성령이 충만한 사람입니다.
사탄의 불화살 공격과 온갖 시험과 난관을 이길 힘, 환경에 지배받지 않고 기도와 믿음으로 환경을 바꿀 수 있는 힘, 복음의 문이 꽉 막힌 곳에 뚫고 들어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힘은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안 됩니다.
오직 성령 충만으로만 가능합니다.
2. 둘째는 지혜가 충만한 사람입니다.
교회 일을 하다 보면 동기는 분명히 주님을 위해서 일했고, 교회를 위하여 일했는데도 결과는 싸움이 일어나는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지혜 없이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자신이 지혜가 모자란 것은 모르고 엉뚱하게 다른 사람과 교회를 원망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혜가 없이 열심만 있어도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기도하여 성령님이 주시는 지혜가 없으면 사탄의 역사를 알지 못하고 시험거리를 만들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 지혜는 어떻게 얻게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서 얻게 됩니다.
구약에 보면 삼손이라는 사사가 나옵니다.
이 사람은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나귀의 턱뼈 하나로도 블레셋 사람 천 명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얼마나 문제를 많이 일으켰는지 모릅니다.
삼손은 자신이 나실인임을 명심하지도 않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는 성령의 능력을 가졌으나 중간에 상실하고 마침내 비참한 최후를 마치고 말았습니다.
아브라함도 이삭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온전히 믿고 기다리지 못했기 때문에, 몸종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낳음으로써, 지금까지 이스라엘과 아랍 족속 사이에 분쟁이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3. 셋째는 칭찬 듣는 사람, 입증된 사람이어야 합니다.
전도하는 사람은 사람들에게 칭찬 듣고, 인정받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즉 주위의 사람들에게서 칭찬 듣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한 사람은 아무도 전도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삶을 통하여 성령의 열매가 맺힌 사람만이 전도할 수 있습니다
어느 성도는 골치 아프고 궂은 일 많은 통반장을 자청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웃집들의 어려운 사정을 파악해서 얼마나 잘 도와주었든지, 이웃 사람들이 홀딱 반하게 되었습니다.
이 부인이 이와 같이 한 것은 선거에 나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4절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사도들은 원래의 사명인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겠다고 했습니다.
기도가 말씀 선포보다 우선합니다.
기도는 먼저 하나님께 성령의 능력과 지혜를 받는 것이고, 말씀 전하는 것은 하나님께 받은 성령의 능력과 지혜로 다른 사람에게 전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은 본래의 사명인 기도하고 말씀 전하는 일에 전념하고, 재정과 구제는 집사들에게 맡기겠다고 했습니다.
이런 업무 분담이 필요합니다.
모세도 혼자서 재판 업무를 전담하다가 지쳤고, 백성도 지쳤습니다.
그런데 장인 이드로의 지혜로운 조언을 받아들여서 천부장, 백부장, 십부장을 세워서 일을 지혜롭고 능률적으로 처리했습니다.
5절.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1. 사도들의 말에 대해서 온 교인들이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민주적으로 사도들의 제안을 교인들이 받아들여서 집사 선거를 했습니다.
그리고 교인들이 일곱 사람을 선택해서, 사도들이 안수하고 임직을 시켰습니다.
소위 오늘날 안수집사의 시작입니다.
그런데 빌립 집사는 사도행전 8장에서 사마리아 전도와 구스 내시 전도를 하고, 사도행전 21장에서는 빌립의 딸들이 선지자로서 예언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스데반 집사는 베드로와 바울 사도 중간에서 놀라운 전도사역을 했고 기적과 표적을 행했습니다. (행 6:8)
그리고 니골라는 이단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2장 6절에는 니골라당의 행위를 본받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6절.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1. 일곱 집사는 이미 성령 충만하고, 지혜가 충만한 사람들이었지만, 사도들이 공식적으로 안수를 통해서 임직을 시켰습니다.
이처럼 교회에는 절차가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신학교도 나오지 않고 노회에서 안수 받지도 않았는데, 혼자 목사가 된 이단자들도 있습니다.
7절.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1. 이처럼 사도들이 기도와 말씀 전도에 전념하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더 왕성하여, 예루살렘 교회가 더욱 부흥하고, 심지어 제사장의 무리도 복종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유대교에서 최고의 지위에 있는 제사장들도 기독교에 복종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독교가 이제는 유대교를 능가하는 세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업무 분담을 해서, 사도들은 기도하고 말씀 전하고, 내부적으로 집사님들이 재정과 구제를 담당하니까, 교회가 폭발적으로 부흥해서, 유대교를 능가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유대교에 핍박을 받았는데 이제는 유대교를 능가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6장 12절에서 보겠지만, 이런 위험을 느낀 유대교가 기독교 말살 정책으로 나갔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에서 각자의 직분에 따라 충성스럽게 직분을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교회가 크게 부흥하고, 성도들도 큰 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