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태시인의음악사랑이야기 (94)
《차가운 아파트 불빛을 하모니카의 온화한 음색으로 바꾸어 보자, 윤수일의 '아파트'》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바람 부는 갈대 숲을 지나
언제나 나를 언제나 나를
기다리던 너의 아파트
그리운 마음에 전화를 걸면
아름다운 너의 목소리
언제나 내게 언제나 내게
속삭이던 너의 목소리
흘러가는 강물처럼
흘러가는 구름처럼
머물지 못해 떠나가 버린
너를 못 잊어
오늘도 바보처럼 미련 때문에
다시 또 찾아왔지만
아무도 없는 아무도 없는
쓸쓸한 너의 아파트
(간주)
흘러가는 강물처럼
흘러가는 구름처럼
머물지 못해 떠나가 버린
너를 못 잊어
오늘도 바보처럼 미련 때문에
다시 또 찾아왔지만
아무도 없는 아무도 없는
쓸쓸한 너의 아파트
아무도 없는 아무도 없는
쓸쓸한 너의 아파트
아무도 아무도 없는
아무도 없는
쓸쓸한 너의 아파트"
1982년 발표되어 전 국민의 떼창곡이자 대표적인 응원가로 자리 잡은 윤수일의 '아파트', 이 노래는 경쾌한 락 디스코 리듬과 중독성 있는 멜로디 덕분에 흔히 흥겨운 노래로 기억된다. 그러나 곡의 껍데기를 한 껍질 벗겨내고 그 안에 숨겨진 서사와 감정을 들여다보면, 이 노래는 1980년대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 속에서 태어난 가장 비극적이고 쓸쓸한 '현대인의 페이소스(Pathos)'를 담고 있다.
이 곡에 얽힌 잘 알려진 비화가 있다. 윤수일의 친구이자 팀의 군기반장
이었던 멤버가 군 복무 중 휴가를 나와 연인의 아파트 문을 두드렸으나,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그녀는 가족과 함께 해외로 이민을 떠난 뒤였다. 텅 빈 복도, 벨을 눌러도 응답 없는 철문 앞에서 느꼈던 그 막막함과 절망감. "아무도 없는 아무도 없는 쓸쓸한 너의 아파트"라는 가사는 그렇게 차가운 콘크리트 벽 앞에서 꺾여버린 한 남자의 실연과 상실감에서 탄생했다.
재미있는 점은 원래 윤수일이 구상했던 초기 버전은 매우 슬프고 느린 슬로우 록 발라드였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당시 제작자는 "너무 슬프면 대중이 찾지 않는다"며 경쾌한 디스코 리듬으로 바꿀 것을 제안했다. 비극적인 슬픔을 신나는 리듬 속에 은폐시킨 이 아이러니한 반전이야말로, '아파트'라는 곡을 대한민국 가요사에 남을 명곡으로 만든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슬픔을 겉으로 쏟아내지 못하고 흥으로 감춰야만 했던 곡의 운명은, 어쩌면 고단한 일상 속에서도 웃는 얼굴로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의 초상과 닮아 있다.
이 노래가 발표된 1980년대는 대한민국에서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가 본격적으로 번져나가던 시기였다. 아파트는 서구화, 중산층으로의 신분 상승, 그리고 현대적 삶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고층 시멘트 건물은 이웃 간의 담장을 허무는 대신, 더 높은 마음의 벽을 쌓아 올렸다. 문을 닫아걸면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고립의 공간. 윤수일의 노래 속에 등장하는 아파트는 따뜻한 안식처가 아니라, 사랑하는 이의 부재를 한층 더 극명하게 드러내는 차가운 수직의 감옥이었다.
40여 년이 지난 오늘날, 현대인에게 아파트가 갖는 의미는 한층 더 팍팍해졌다. 이제 아파트는 사람이 숨 쉬고 추억을 쌓는 '집(Home)'이기보다는, 재산 가치와 계급을 증명하는 '자산(Real Estate)'의 대명사가 되었다. "어느 아파트 몇평에 사느냐"가 그 사람의 가치를 매기는 씁쓸한 시대. 우리 현대인들은 영혼을 영끌하여 시멘트 상자 한 칸을 얻기 위해 평생을 바치고, 그 안에서 층간소음과 이기주의로 서로에게 칼날을 세우며 살아간다.
백만 가구가 밀집해 사는 아파트 단지 한복판에서, 아이러니하게도 현대인은 그 어느 때보다 깊은 군중 속의 고독을 느낀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아직도 윤수일의 '아파트' 를 부르고 연주할까?
이 노래가 지닌 진정한 가치는 단순한 과거로의 추억 여행에 있지 않다. 차가운 도심 속에서 느끼는 외로움을 숨기지 않고, 그 슬픔을 오히려 신나는 리듬과 맑은 악기 소리로 승화시키며 서로를 위로하자는 메시지에 있다고 본다. 삭막한 콘크리트 벽에 가로막혀 온기를 잃어가는 현대인들에게, 이 노래는 묻고 있다. "당신이 진짜 그리워하는 것은 잘 가꾸어진 시멘트 평수인가, 아니면 그 문을 열었을 때 나를 반겨주는 누군가의 따뜻한 온기인가"냐고.
하모니카는 들숨과 날숨이 어우러져 소리를 내는 가장 인간적이고 따뜻한 악기다. 연주자의 숨결이 그대로 은빛 음판을 타고 울려 퍼질 때, 그 소리는 단순한 음표를 넘어 하나의 서사가 된다.
윤수일의 원곡이 화려한 사운드와 단단한 보컬로 도시의 쓸쓸함을 울려 퍼뜨렸다면, 하모니카로 연주하는 '아파트'는 조금 다른 결을 가질 것이다. 애절한 바이브레이션과 따스한 음색이 어우러지면, 차가웠던 아파트 단지 테라스마다 아늑한 불빛이 하나둘 켜지는 듯한 온기가 실리지 않을까. 신나는 리듬 속에 숨겨진 그리움의 감정을 하모니카로 짚어내고 싶다. 벌써부터 입술 끝이 설렌다. 그리하여
차가운 철문 뒤에 갇혀 있는 현대인들의 외로운 마음에, 하모니카의 아련하고 따스한 숨결이 닿기를 소망해 본다. 시린 도시의 밤하늘 위로 흐르는 이 멜로디가 삭막한 아파트 단지의 창문마다 작은 불빛처럼 온기를 전할 수 있다면, 40년 전 시작된 그 외로운 노래는 비로소 오늘날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로 완성될 듯하다.
음악을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히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노래 속에 담긴 타인의 삶과 이야기를 내 숨결로 다시 불러내고, 그 안에 내 삶의 흔적을 덧칠하는 과정일 것이다. 그래서 이곡의 하모니카 연주는 우리들에게 또 하나의 특별한 여정이 될 것 같다.
음악이 있어 행복하고, 그 음악을 하모니카라는 작은 동반자와 함께 나눌 수 있어 더없이 감사한 늦여름날 오후다. 이 멋진 곡의 연주가 '한여름밤의 꿈'이 안되길 바라면서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문화칼럼니스트 최진태
첫댓글 아파트가 아주 당연한 시대에 살고있어요
풍경속에 아파트가 빠지면 이상할 정도가 된 현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