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예수님!
“평화와 너희와 함께!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부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요즈음입니다.
부활을 맞이하며 우리는 서로 “부활 축하합니다.” 라고 인사하였습니다.
그러넫, 이 한국적 언어적 표현은 다른 외국어와 다릅니다.
외국어의 경우는 번역하면 “좋은 부활 축제!”, “행복한 부활” 등등으로 해석됩니다.
“부활 축하합니다.”라는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왜 내가 축하를 받지,
부활하신 분은 예수님이고, 축하받아야 할 분은 예수님인데...”
먼저, 이 인사에는 나도 주님의 은총으로 예수님과 함께 부활했음을 의미합니다.
나도 죽음에서 생명으로, 어둠움에서 빛으로 부활했음을 의미하겠습니다.
또, 다른 누구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으니
나도 꼭 부활의 삶을 빛의 삶을, 다시 태어남의 삶을 살아가야됨을 의미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평화와 너희와 함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묵상해 봅니다.
예수님과 함께함, 현존은 바로 “평화”를 갖는 것이다. 라는 뜻으로 다가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사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앞에서 그것을 피하여
도망쳤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스승을 떠나 지내던 삶은 어떠했을까요?
세상의 무력으로부터 숨어 있는 불안한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동안 스승님의 가르침과 보호 아래에서 어떤 것도 두렵지 않았는데,
스승님을 떠나온 뒤의 삶은 혼란과 걱정과 두려움과 좌절뿐이었습니다.
그러한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몸소 나타나셔서
손과 발을 보여 주시며 그들의 배반을 용서하시며 부활의 기쁜 소식도 알려주시니,
스승님의 함께하심으로 인해 제자들은 ‘평화’를 되찾게 됩니다.
예전에 본당에서 엠마오를 갔던 적이 있었는데, 냇가에서 몰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물고기를 잡는 방법은 바위를 흔들어, 바위 밑의 고기를 나오게 해서
그물로 모아 잡는 것이었습니다.
돌 밑에 숨어 있던, 잘 지내던 고기들이 피신처인 돌을 떠나 잡혔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든든한 바위로서 피난처, 버팀목으로 오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안에서, 주님의 그느르심 안에 살아가는 것이 참된 행복이기에
예수님께서 기꺼이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우리의 보호자로서 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은 그것이 참된 행복의 삶임을 잊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이치와 유혹, 탐욕, 내 이기심에 마음이 흔들리고,
마음을 빼앗겨 든든한 바위이신 주님의 품을 떠나가 불행의 길을 자초하곤합니다.
부활하여 우리들의 삶의 든든한 분, 아버지, 바위로서 함께하는 아버지의 품을 떠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현존안에서 평화를 살아야 하겠습니다.
또한 부활 시기에 우리 앞에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상징하는 부활초가 있습니다.
이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삶의 희망, 빛이심을 의미합니다.
어둠속에서 헤메이는 우리들에게 빛이신 예수님을 향해 사는 것이
행복임을 알려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빛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불행하게도 자주 빛이신 주님을 피해 살곤 합니다.
그런데, 자연의 이치안에서 잘 생각해 보면,
빛을 향해 살아가야 할 이유가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가 태양을 향해 서면 그림자는 우리 등 뒤에 생깁니다.
반대로 태양을 등지고 있으면 그림자는 우리 앞에 나타납니다.
즉, 우리가 빛이신 예수님을 향해 있으면 우리 마음의 그림자,
우리 삶의 어둠은 우리 등 뒤로 물러납니다.
그러나 반대로 빛이신 예수님을 등지고 살아가면
우리 마음의 그늘과 어둠이 우리 앞에 나타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둠을 바라보며 절망과 어두움, 죄와 죽음에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가 빛이신 예수님을 향해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빛으로서 오신 주님만을 향해 서 있고, 바라보는
해바라기, 주님 바라기가 되어 따듯한 구원의 여정으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부활의 시기에 마지막으로 한 가지 생각해 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나타나신 사건들을 보면 여인들, 몇몇 제자들
그리고 다락방에 숨어 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십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더 효과적으로 한 번에 많은 군중들이 모인 곳에서
짠! 하고 나타나시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으로 나타나셨을지 생각합니다.
바로 그것은 예수님의 평소 모습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 든 아흔아홉 마리의 양은 그대로 둔 체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귀하게 여기시며 찾아 나서시는 분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계산법이고, 예수님께서 사람을 대하는 자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시고
마지막 한 사람의 부활의 체험과 사랑의 체험을 위해
인격적 만남을 위해 끝까지 찾아 나서셨던 것입니다.
결코 우리 주님은 많은 무리 속에서 익명의 한 사람으로 만나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어둠에서 빛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부활의 삶으로 초대하시는
주님의 그느르심, 머무름 아래에서
참된 평화와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평화와 너희와 함께!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첫댓글 빛이신 예수님을 향해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태양을 향해 서면 그림자는 우리 등 뒤에 생깁니다.
반대로 태양을 등지고 있으면 그림자는 우리 앞에 나타납니다.
즉, 우리가 빛이신 예수님을 향해 있으면 우리 마음의 그림자, 우리 삶의 어둠은 우리 등 뒤로 물러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