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7. 07.
의정부교구 주보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경축 이동,
사제 서품 25주년 은경축 미사
찬미 예수님.
오늘은 우리교구의 주보이신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경축 이동일입니다.
순교자이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사제이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순교자를 떠올립니다. 사제는 순교자입니다. 사제는 순교자이어야 합니다. 사제는 나날이 주님을 위해 자신을 죽이고,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세상의 뜻을 거슬러 죽어가기 때문입니다. 순교자는 사제입니다. 서품을 받았든 그렇지 않든 순교자는 참으로 사제입니다. 주님을 위해,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목숨을 바침으로써 주님께 가장 거룩한 제사를 바치기 때문입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를 기념하는 오늘 7월 7일은 주님께서 부족하기 이를 데 없는 저를 당신의 사제로 만드신 날입니다. 제가 1999년 7월 7일에 사제품을 받았으니, 오늘은 사제가 된지 만 25년이 되는 날이고, 일반적으로 말하는 사제품 은경축일입니다. 많은 벗님들로부터 과분한 축하를 차고 넘치도록 받았고, 지금 이 시간 이렇게 감격스러운 미사를 여러분과 함께 봉헌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꿈만 같습니다.
저는 오늘 이 미사를 여느 때와 다름없는 본당 공동체를 위한 교중 미사로 봉헌하고 싶었지만, 사랑하는 본당 가족 여러분의 성화 아닌 성화에 밀려서 교중 미사와 더불어 서품25주년 은경축 감사미사로 봉헌하고 있습니다. 한없는 축하를 받으니 더할 나위 없이 기쁘지만, 과연 이러한 축하에 어울리는 사제로서의 삶을 살았는지 부끄러운 마음으로 돌아보면서, 사제로서 제 삶의 지향을 담은 기도를 다시금 바쳐봅니다.
<사제답고 싶은 부족한 사제의 기도>
믿는 이들의 사랑과 존경을 담은
‘신부님’이라는 호칭을 즐기기보다
이 한 몸 던져
하느님과 세상을 잇는 사제로서
세상의 온갖 소음에 굴하지 않고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예언자로서
벗들을 살리기 위해
기꺼이 죽는 봉사자로서 살게 하소서.
하느님과 함께 하기 위한
기도를 가르치기보다
기도함으로써 하느님과 하나임을
증거하게 하소서.
하느님의 사랑을
아름다운 언어로 설명하기보다
사랑함으로써
하느님이 사랑이심을 알리게 하소서.
성체를 축성하고 모시면서도
나눔보다 소유에 집착함으로써
성체를 모독하지 않게 하시고
벗들의 소박하고 맛깔스런 밥이 되는
성찬의 삶을 살게 하소서.
교회와 세상 안에서
하느님께서 맡기신 거룩한 직무를
인간적인 권위의 발판으로 삼지 않으며
낮은 곳에서 한결 같은 헌신으로
성무를 수행함으로써
하느님의 거룩함을 드러내게 하소서.
자신의 위선과 불의를 감추려
세상의 위선과 불의에 침묵하지 않으며
선과 정의의 굳건한 실천으로
당당히 세상의 어둠에 맞서
하느님의 빛을 비추게 하소서.
오직 사제로서
사제답게 삶으로써
당신의 사제임을
겸손하게 드러내게 하소서.
이렇게 기도하고 실천하며 나름 기쁘게 열정적으로 사제로 살아온 25년이지만, 어쩌면 부끄러움과 허물 가득한 삶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러기에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마 남았는지 알 수 없는 사제의 삶은 좀 더 아름답게 보듬고 싶습니다. 당신의 사제로 뽑아주시고 늘 함께 걷고 계시는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저를 낳으시고 기르셨으며, 사제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기도로 함께하셨던 지금은 하느님의 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고 계시는 아버지와 여전히 아들 신부를 위하여 쉼 없이 기도하시는 늙으신 어머니께 드리는 감사와, 주님의 길을 함께 걷고 있는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모든 벗님들께 드리는 감사가, 부족하나마 제 삶을 통해서 온전히 우러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런 사제가 되어야 하리라 생각하며 기도합니다.
<이런 사제가 되게 하소서>
당신 나라의 밑거름 삼으려
나약하고 보잘것없는 저를
애타게 부르시는 하느님
사랑 생명 정의 평화 넘치는
당신 나라를 향한
당신의 길을
당신과 함께 걸으며
바라봄만으로도 압도당하는
하늘로 치솟은 아름드리나무가 되기보다,
지나던 가난한 길손들
피로에 지친 다리 쉬어갈 수 있는
그루터기 같은 사제가 되게 하소서.
스스로의 아름다움에 도취된
가시 돋친 핏빛 장미가 되기보다,
힘겨운 산길
지친 마음 달래는
연한 빛깔 이름 모를
들꽃 같은 사제가 되게 하소서.
꺾이지 않으려
온 몸 바람에 맡겨
제 생명 살리려는 갈대가 되기보다,
짓밟히면 짓밟힐수록
생명 품은 씨앗 널리 날리는
민들레 같은 사제가 되게 하소서
다시금 순교로서 사제의 삶을 완성하신 김대건 신부님을 떠올리면서, 사제로서 제 삶의 완성인 순교를 떨리는 마음으로 생각합니다. 25년 전 오늘 서품식 때의 기억이 늘 새롭습니다. 서품식 때에 서품 대상자들이 부복하고 나면 장엄하게 성인호칭기도가 울려 퍼집니다. 이때에 사제로서 살면서 이루고자 하는 것을 청하면, 하느님께서 반드시 들어주신다고 신부님들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서품식장으로 들어가는 순간까지 무엇을 청할지 정하지 못한 저는 서품식순에 따라 부복하였습니다. 무엇을 청할까. 무엇을 청할까. 그러던 차에 저도 모르게 “순교하게 하여 주십시오.”라는 기도가 마음에서 우러났습니다. 이 순간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을까요? 아니요, 저의 찰나의 반응은 이랬습니다. “아니야, 이거는 아니지. 다른 것을 청해야 해.” 너무나 두려웠던 저는, 하지만 어느새 다시 “순교하게 하여 주십시오.”라는 기도를 저도 모르게 하고 있었습니다. “아니야, 이거는 아니야.” 그러고 다시 한 번 더.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주실 것이다.”(마태 10,19) 오늘 복음에서 들었던 예수님의 말씀이 이런 뜻이었을까요. 그렇게 “순교하게 하여 주십시오.”라고 끝맺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품식 때에 청원을 하느님께서 꼭 들어주신다고 하셨으니, 이제 저에게 남은 것은 하나입니다. 사제의 삶의 완성인 순교 말이지요.
아, 두렵고 떨립니다. 그러나 순교가 어찌 삶의 최종적인 순간만을 의미하겠습니까? 사제로서 산다는 것, 그 이전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산다는 것은 나날이 순교의 길을 걷는 것일 테니까요. 의심이 아닌 믿음의 길, 허무가 아닌 희망의 길, 증오가 아닌 사랑의 길, 가짐이 아닌 베풂의 길, 억누름이 아닌 섬김의 길, 배척이 아닌 관용의 길, 단죄가 아닌 용서의 길, 경쟁이 아닌 더불어 함께의 길이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순교의 길이 아니겠습니까.
25년 전에 사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날이 사제가 되어갑니다. 사제로서 제 자신에게 새삼 다시 묻습니다. “사제는 누구인가?”
<사제>
사제는
하늘빛을 땅에 드리우도록
땅기운을 하늘에 들어 높이도록
그리하여 하늘과 땅을 곱게 잇도록
부르심 받음 사람입니다
사제는
여린 마음과 작은 몸으로
하느님께서 정성껏 빚으신
온 누리 보듬도록
부르심 받은 사람입니다
사제는
제 한 몸 추스르기 버거워도
하느님 사랑 가득 담은
함께 사는 세상 가꾸도록
부르심 받은 사람입니다
사제는
안락하고 평화로운
저 홀로 머물 울타리 허물어
하느님의 아픔과 슬픔 가득한
여리고 찢긴 거친 세상 담도록
부르심 받은 사람입니다
사제는
홀로 거룩함의 꿈에서 깨어나
더러운 것 깨끗하게 하고자
온 삶 아낌없이 던지도록
부르심 받은 사람입니다
사제는
하느님 손길 닿은 세상 모시되
세상에 짓눌리고 세상이 버린
하느님의 작은 이 품도록
부르심 받은 사람입니다
사제는
제 살기 위해 벗을 희생시키지 않으며
벗을 살리기 위해 기꺼이 죽으라고
부르심 받은 사람입니다
사람이기에
약하고 추하고 부족한 사람이기에
주님의 거룩한 부르심에
부끄럼 없이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나설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몸과 마음에
핏빛 사랑의 상처 가득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첫 순간부터 끝 모를 마지막까지
앞서 가시고 함께 하시기에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용기 내어 또 한 걸음 내딛는 이
바로 주님의 사제입니다
저는 사제입니다. 서품을 통해 직무사제직을 받은 사제입니다. 이 자리에 함께하신 믿음의 벗님들 모두 사제이십니다. 세례를 통해 보편사제직을 받은 사제들이십니다. 우리 사제들이 사제다울 때에 이 땅에 하느님의 나라를 활짝 꽃필 것입니다.
사제 서품 25주년이 되는 오늘을 하느님과 믿음의 벗님들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맞습니다. 저에게 사제로서 살아온 25년은 사제가 되어왔던 25년입니다. 앞으로 사제로 살아갈 나날은 또한 사제가 되어가는 나날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그날, 제 사제의 삶은 완성될 것이고, 그리하여 바로 그날에 참으로 사제가 될 것입니다. 그날을 향하여 오늘, 기쁨과 희망을 품은 가슴 벅찬 한걸음을 내딛으며, 보편사제직을 수행하고 계시는 이 자리에 계시는 사랑하는 벗님들과 함께 직무사제직을 받은 부족한 사제로서 나날이 참으로 사제가 되어가고자 새롭게 다짐합니다.
<나날이 주님의 사제로서>
나날이
주님의 사제로서
주님을 닮아
주님께서 바라시는
주님의 사제가 되어가렵니다
나날이
주님의 사제로서
억눌린 벗들이 기댈 수 있는
아버지처럼 든든한
주님의 사제가 되어가렵니다
나날이
주님의 사제로서
슬퍼하는 벗들이 안길 수 있는
어머니처럼 부드러운
주님의 사제가 되어가렵니다
나날이
주님의 사제로서
지친 벗들이 쉬어갈 수 있는
그루터기처럼 넉넉한
주님의 사제가 되어가렵니다
나날이
주님의 사제로서
외로운 벗들이 머물 수 있는
고향집처럼 포근한
주님의 사제가 되어가렵니다
나날이
주님의 사제로서
살맛 잃은 벗들이 맛들일 수 있는
찰진 밥처럼 맛깔스러운
주님의 사제가 되어가렵니다
나날이
주님의 사제로서
젖은 벗들이 말릴 수 있는
햇살처럼 따사로운
주님의 사제가 되어가렵니다
나날이
주님의 사제로서
땀 흘리는 벗들이 식힐 수 있는
바람처럼 살가운
주님의 사제가 되어가렵니다
나날이
주님의 사제로서
메마른 벗들이 적실 수 있는
개울물처럼 시원한
주님의 사제가 되어가렵니다
나날이
주님의 사제로서
헤매는 벗들이 찾아갈 수 있는
오솔길처럼 정겨운
주님의 사제가 되어가렵니다
나날이
주님의 사제로서
갈라진 벗들이 함께할 수 있는
울타리처럼 넉넉한
주님의 사제가 되어가렵니다
나날이
주님의 사제로서
주님을 닮아
주님께서 바라시는
주님의 사제가 되어가렵니다
♧♧♧
상지종 신부님의 서품 25주년
은경축을 축하 드립니다
하느님 사랑과 평화 정의를
사랑하시는 신부님들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사랑이시며 평화이신 주님,
이 나라 이 땅에
잃어버린 평화를 되찾게 하소서
남북이 평화로이 살게 하소서
악의 세력이 한반도와
온 인류에 평화를
해치지 못하게 하소서
온 세상에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모든 이의 마음속에
온갖 우상을 몰아내시고
하느님 나라를 굳건히 세우소서
저희에게 평화를 주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