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 없을 때 생각나는 음식이 있으니, 바로 정의로운 밥도둑 ‘간장게장’이다. 양념게장도 특유의 매력이 있지만, 역시 본좌는 간장게장이라 할 수 있다.
간장게장 먹을 때 밥공기는 기본 2개가 필수다. 하나는 간장에 절여진 달짝지근하고 짭짤한 생 게살 먼저 쌀밥에 곁들여 먹자. 두 번째는 고소한 ‘게 향’ 가득하고 내장 꽉 찬 게딱지에 밥을 슥슥 비벼 먹는다. 거기에 후식으로 누룽지까지 주는 곳이면 금상첨화다.
날도 덥고, 입맛도 없는 와중 간장게장 맛있는 집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분명 입맛이 없었던 것 같은데 ‘간장게장’ 네 글자에 갑자기 침샘이 ‘열일’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단숨에 일곡동까지 간다. 바로 ‘오늘부터애간장’이다.
‘오늘부터애간장’은 일곡마을 안쪽 깊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꼭 주소를 찍고 와야 한다. 이렇게 외진 곳이지만 금세 손님들이 찬다.
식탁이 빽빽하게 있는 곳이 아니고, 좌우 양쪽만 테이블을 배치해두어 여유로운 느낌이다. 평화로운 일곡 마을의 느낌을 닮았다.
메뉴도 크게 세 가지가 있는데, 애간장 타게 하는 간장게장을 먹어봐야 하지 않겠나. 간장게장 큰小로 주문한다.
‘오늘부터애간장’은 위생을 위해 물을 생수 페트병으로 준다. 페트로 추가하면 500원을 받고, 정수기 물을 이용하면 당연히 무료로 가능하다.
이곳은 돌솥밥을 1인 솥으로 조리하고 있기 때문에 음식이 나오는 데 시간이 걸리는 편이다. 점심으로는 항상 5분 내에 나오는 끼니용 식사만 먹다가 이런 곳에 오니 낯설긴 하다. 기다리는 시간에는 일곡마을이 주는 여유로움을 즐기도록 하자.
기다림의 시간, 다른 테이블은 좀 나왔나 하고 둘러보는데, 부침개 코너를 발견한다. 팬과 반죽이 구비되어 있어, 이곳에서 전을 부쳐 가져다 먹을 수 있다.
인고의 시간 끝에, 드디어 음식을 담은 수레가 우리 테이블을 향해 다가온다. 한 사람씩 정갈하게 세팅을 해주시고, 다른 메뉴들도 하나씩 놓아주신다.
이곳은 기본찬 먼저 차려지는게 아니라 반찬부터 메인음식까지 한꺼번에 세팅을 해준다. 갑자기 들이닥친 음식 군단 탓에 상이 좁을 지경이다.
일단 너무 오래 기다렸던 메인메뉴인 간장게장부터 영접해본다. 등딱지는 세 개인데 집게다리가 두 짝뿐이다. 한 쪽엔 조그맣게 등을 구부린 새우장도 2개 있다.
이 곳 게장은 여타 간장게장 집과 다른 맛이 있다. 게장의 비린 맛은 확 잡았고, 간이 무척이나 담백하다. 그리고 겉면이 약간 조림과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확연히 다른 식감과 맛을 보인다.
거기에 비린내를 잡기 위해 한약재라도 쓴 것인지 미미한 향이 난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을 맛일 수 있겠으나, 짜지 않은 담백함이 가장 큰 매력이다.
게장 구성에 새우장이 2개 들어가 있다. 3명이 같이 갔을 땐, 한 명은 눈물을 머금고 새우장은 포기해야 하겠다.
얇게 썰어진 계란 찾아 먹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다. 요새 '마약 계란'(간장에 절인 일종의 계란장)이 인기인데, 그와 비슷한 맛이다. 대신에 같이 재운 재료 덕에 향과 맛이 깊다.
물론 한 상을 푸짐하게 하는 조연들도 소개를 빠뜨려선 안 된다. 꽃게된장국과 동치미는 시원하고 뜨끈하게 막힌 목 뚫어주는 상반된 매력으로 손을 번갈아 가게 한다.
다른 곳은 돈 내고 시켜 먹어야 할 제육볶음도 이렇게 반찬으로 나와주신다. 고기가 얇고 자잘한 감이 있지만 메인은 바로 게장이기 때문에 입맛 돋우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그리고 마지막 마무리 게딱지 밥이다. 게딱지에 밥 퍼서 넣고, 슥슥 비벼 먹는 감칠맛은 역시 보장된 맛이다. 간장을 좀 더 부어 먹어도 짜지 않은 정도다.
‘오늘부터애간장’은 식당 이곳 저곳에서 손님과 대화하는 듯한 문구를 발견할 수 있다. 소곤소곤 건네지는 말들이 음식을 기다리는 시간을 즐겁게 만드는 마법이다.
이번 주말엔 숲 내음이 나는 한적한 일곡 마을에 들러보는 건 어떠한가. 소중한 휴일, '오늘부터애간장'의 호사로운 간장게장 한 상이 여유로운 한때를 만들어 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