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북 군산시는 1899년 개항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쳐 산업화 초기까지 버텨온 약 170건의 근대 건축물을 품고 있다. 이들 건축물에는 한국의 근현대사가 고스란히 스며 있는데, 그중 군산 내항은 근대 시기의 다양한 문화유산이 간직된 곳이다. 문화재청은 이 일대 15만 2400여㎡를 2018년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했다.
일제강점기 군산 개발이 시작되기 전까지 장미동, 금암동, 월명동 일대는 금강 하구의 저습지였다. 1899년 개항이 결정되고 여러 나라 조계지, 즉 외국인이 자유롭게 거주하고 치외법권을 누릴 수 있는 구역이 늘면서 군산은 근대 도시로 첫발을 뗐다.
*군산 내항 역사문화공간
군산 내항 역사문화공간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대한제국의 개항 역사를 알 수 있는 구 군산세관 본관, 둘째 일제강점기 수탈의 역사를 증명하는 군산 내항 철도와 군산 내항 뜬다리 부두, 셋째 광복 이후 대한민국 산업화를 볼 수 있는 군산 구 제일사료주식회사 공장, 군산 경기화학약품상사 저장탱크 등이다. 군산 내항 역사문화공간은 근대 항만의 역사, 근대 산업화 시기 어업과 산업 생활사 등 대한민국의 항만 역사를 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다.
*군산 개항 이전의 모습
개항 이전, 군산 내항 역사문화공간은 전라북도 일대 조운(漕運·배를 이용하여 세금으로 거두어들인 곡물을 수도로 운반하던 제도) 담당 관청(漕倉)인 군산창과 성당창(조선 후기 전라도 함열에 설치돼 전세와 대동세 등을 수봉하던 조창)을 관리·감독하던 군산진群山鎭(수군 기지)이 있었던 곳이다. 군산진은 군산 내항 역사(지금의 세관과 근대 역사박물관 주변) 일대에 30만㎡ 이상의 땅을 가진 거대한 쌀 창고였다. 그 당시 군산에서 제때 세곡이 서울로 올라오지 않으면 한양 관리들에게 녹봉을 주지 못할 정도로 국가적으로 중요한 항구였다.
고종 황제는 대한제국이 자주독립국임을 세계에 널리 알리고 관세 수입을 늘리고자 1899년 군산항(지금의 군산 내항 역사문화공간)을 개항했다. 하지만 고종 황제의 뜻과는 반대로 호남평야의 쌀이 모이는 군산 지역을 눈여겨보던 일본에 의해 쌀 수탈항으로 바뀌어 버렸다. 일본은 부족한 쌀 문제를 해결하고 자신들의 나라를 발전시키고자 경술국치 이전부터 군산항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개발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군산항을 쌀 수탈항으로 개발하기 위해 4번의 축항 공사(항구를 넓히고 배와 짐을 항구에 댈 수 있도록 시설물을 만드는 공사)를 벌였는데, 이때 만들어진 것이 호안 시설, 뜬다리 부두, 내항 철도 등이다.
호안은 항구의 밑바탕이 되는 시설로 바닷가의 흙과 모래가 바닷물에 쓸려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바닷가에 만든 담벼락 같은 시설물이다. 뜬다리 부두는 부잔교라고도 불린다. 군산 앞바다는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커서 썰물에는 큰 갯벌이 생겨 큰 배를 대기가 어려웠다. 일본은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쌀을 안전하게 가져가기 위해 밀물에는 다리가 떠오르고 썰물에는 다리가 내려오는 뜬다리 부두를 만들었다. 군산 내항 철도는 군산선의 마지막 역인 군산항역 철길이다. 전라북도와 충청남도에서 생산한 쌀과 각종 자원을 기차로 싣고 와 군산항에 도착하면 일본으로 가는 배에 옮겨 싣기 위해 군산항 항구에 만든 철도다.
이처럼 군산내항 역사문화 공간은 일제강점기 쌀 수탈의 역사를 알려주는 시설물과 흔적들이 잘 남아 있어 2018년 국가등록문화재 제719호가 됐다.
*군산 내항 뜬다리 부두
‘뜬다리’란 부두에 네모진 모양의 배를 연결해 띄운 뒤 수면의 높이에 따라 위아래로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만들어 놓은 다리 모양의 구조물을 가리킨다. 군산 내항 뜬다리 부두(浮棧橋)는 1926년에 만들기 시작해 1938년에 완공됐다. 조수간만의 차가 큰 서해안의 특징을 살려 물에 뜰 수 있는 콘크리트 구조물로 정박시설을 건설한 다음 부두에서 정박시설까지 다리를 만들어 밀물과 썰물 때 상하로 움직이도록 한 선착장 시설물이다. 이 뜬다리 부두는 군산항의 육상 영역에서 선박으로 연결되도록 하였으며, 육상 연결부가 조수간만의 차에 따라 회전이 가능하도록 하고, 여러 대의 대형 선박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철도를 통해 군산항으로 운송돼 온 쌀을 선박으로 옮길 때 사용된 군산 내항 뜬다리 부두는 일제강점기 쌀 수탈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시설물이다.
일제는 전라도 곡창 지대에서 수탈한 쌀을 일본으로 송출하기 위해 제3차 축항 공사 기간(1926~1933)에 뜬다리 3기를 설치했다. 3000톤급 기선 3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었다. 이후 3기가 추가돼 총 6기가 사용됐다. 현재는 3기만 남아 있다. 등록문화재 제719-1호.
*군산 내항 철도
군산 내항 철도는 1921년부터 1931년까지 수탈한 쌀을 옮기기 위해 군산항에 연결한 철도다.
철도는 1921년 군산항 축항 공사 과정에서 군산항의 동쪽까지 연장됐고 이후 서쪽까지 확장됐다. 1931년 이후에는 군산세관 북쪽으로 군산항역이 개설되면서 군산 내항 전체에 철도가 부설됐다. 군산 내항 철도는 철도, 창고, 뜬다리가 연속되는 군산 내항의 공간 구조를 형성하고, 1920년대 후반 군산의 공간 구조 변화에 영향을 준 시설로 역사적 가치가 높다. 등록문화재 제719-3호.
*옛 군산세관 본관(1908)
군산항을 통해 드나들던 물품에 대해 세금을 거두던 곳이다. 군산항을 개항한 조선은 1899년 인천세관 관할로 군산세관을 설치했다. 1906년에는 인천세관 군산지소를 설립하고 1908년에 이 청사를 준공했다. 독일인이 설계한 이 건물은 벨기에에서 붉은 벽돌을 수입하여 지었다. 바깥벽은 붉은 벽돌이지만 내부는 목조로 건축했으며, 슬레이트와 동판으로 지붕을 올리고 그 위에 세 개의 뾰쪽한 탑을 세웠다. 1908년부터 1993년까지 85년간 사용했던 건물로 독일인이 설계하고 벨기에 수입 벽돌로 건축한 단층 건물로 한국은행 본점 및 서울역사와 양식이 비슷하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1945년 해방까지 주로 호남과 충청 지역의 쌀, 곡식 등을 일제가 수탈하던 창구로 이용됐는데, 지금은 호남 세관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나카사키 18은행 군산지점(1907)
일본 나가사키에 본점을 둔 지방은행으로 조선에는 1890년 인천에 처음 문을 연 이후로 전국 여러 지방에 지점을 개설해 나가다가 순종 원년인 1907년 군산에 일곱 번째로 지점을 열고 식민지 금융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미곡을 일본으로 반출하고 토지를 강탈하기 위한 목적에서 설치된, 한 마디로 일제 수탈의 근거지였다.
일제강점기 군산 내항에 인접한 장미동에는 금융기관과 공공기관이 많이 모여 있었다. 1907년 처음 개설된 뒤 1911년 준공된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도 여기 있었다. 주 업무는 무역에 따른 대부업이었다. 초기에는 일본인들이 싼 이자로 대출받아 다시 조선인들에게 그들의 토지를 담보로 고리대금업을 했는데, 원금 상환일을 못 지킨 조선인의 토지를 빼앗았다. 일본은 이 은행의 자본으로 조선인의 토지를 사들였고 그 토지에서 생산된 쌀을 일본 본토에 팔아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건물은 1936년 조선식산은행에 매각된 이후 1938년 조선미곡창고 주식회사로 주인이 바뀌었다. 건물은 영업장인 본관과 사무동·금고로 사용하던 부속 건물 2동으로 구성돼 있다. 건물의 도로에 면한 앞쪽에 서양식의 단층 본관이 있고, 뒤쪽에 부속시설로 사용되는 2층 건물 2동이 배치됐다. 본관이 목조 건물이었기 때문에 금고는 별개의 벽돌 건물로 지어 본관 후문을 통해 바로 연결되는 구조였다. 본관의 외관은 은행 용도에 맞도록 개구부가 작아 폐쇄적이며 높다란 몸체와 물매가 높은 지붕이 도입됐다.
이 건물은 서양 건축 양식이 입었던 근대 초기 은행 건물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건축사 자료이자 수탈기구로 일제하 군산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교육 장소다. 광복 후에는 대한통운 지점 건물로 사용되다가 2008년 문화재로 지정된 이후 복원돼 군산근대미술관으로 활용 중이다. 국가등록문화재 제372호.
*조선은행 군산지점(1919)
조선은행 군산지점은 일제강점기 식민지 수탈을 위한 금융시설이다. 일본의 건축가인 나카무라 요시헤이(中村與資平)가 설계한 것으로 1923년에 건립됐다. 조선은행은 1909년 대한제국의 국책 은행으로 설립된 한국은행에 기원을 두고 있으나 일제가 한국을 강제 점령하자 조선총독부에 의해 조선은행으로 명칭이 변경됐다. 해방 후 조선은행이 한국은행으로 바뀌며 전주로 이전하자 한일은행 군산지점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군산세관과 더불어 일제 수탈의 근거지로 상징되는 이곳은 채만식의 소설 <탁류濁流>에 등장하기도 한다.
*시마타니 농장
시마타니 농장은 일본 야마구치 출신 시마타니가 1904년에 설립했다. 술의 원료인 쌀을 찾아 군산에 들어온 시마타니는 개정면에 사무소를 두고 7만 원의 자본금으로 옥구·김제 등에 486정보의 토지를 매입했고, 이후 1231정보(369만3000평)까지 농지를 확대했다. 1933년에는 재해로 흉년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풍작 때 거두던 소작료를 그대로 거두는 등 가혹한 처사로 농민들의 원성을 샀으며 국보급 문화재도 수탈했다. 발산초등학교는 시마타니 주택이 있었던 곳으로 고미술품과 현금 등을 보관하기 위해 지은 금고형 건물이 남았다. 농장 금고는 수집한 문화재와 소작료로 받은 현금·문서 등을 보관하기 위해 사방 외벽은 콘크리트로 만들고 교도소같이 쇠창살을 설치했다.
*미즈 카페Miz Cafe
1930년대 건립돼 무역회사로 사용된 건축물이다. 2012년 군산 근대역사박물관 정면에서 이곳으로 이전·개축했다. 이 일대는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의 쌀 수탈의 거점이었던 곳으로, 역사적 과정을 거치면서 일본인들의 무역회사와 상업시설이 독점하는 거리가 되었다. 이 건축물은 현재 1930년대 무역회사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데, 이전·개축하면서 카페테리아, 근대문학 소통 공간으로 개보수됐다.
*진포대첩
진포는 군산의 옛 이름이며, 진포대첩鎭浦大捷은 1380년 8월 해적집단인 왜구가 500척에 이르는 대선단으로 진포에 침입해 야만적인 약탈을 자행했을 때 이를 물리친 전쟁을 말한다. 당시의 일을 기록하고 있는 <고려사절요>에 따르면, 왜구의 만행으로 죽은 우리 백성들의 시체가 산과 들을 뒤덮었고, 또한 약탈한 곡식을 나르면서 흘린 쌀이 한 자도 넘게 땅을 덮었다고 한다. 이에 고려 정부는 왜구를 진압하기 위해 해도원수海道元帥 나세羅世와 심덕부沈德符, 최무선 장군 등을 파견했다. 고려군은 최무선이 발명한 화포로 왜선을 공격해 500척 모두를 불살랐다. 진포대첩은 세계해전사에서도 함선에서 화포를 사용한 최초의 전투라는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 해상전투로서, 해전에 있어 새로운 전기가 됐다.
*초원사진관
초원사진관은 1998년 1월 개봉한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촬영 장소다. 영화는 불치병을 앓는 30대 중반의 사진사 정원(한석규)이 주차 단속원 다림(심은하)을 만나면서 마지막으로 사랑에 대한 기억을 엮어가는 과정을 그렸다. 8월의 크리스마스 제작진은 세트 촬영을 배제하기로 했는데, 전국의 사진관을 둘러봤지만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잠시 쉬러 들어간 카페 창밖으로 여름날의 나무 그림자가 드리워진 차고를 발견하고 주인에게 어렵사리 허락받아 사진관으로 개조했다는 것이다.
‘초원사진관’이라는 이름은 주연 배우인 한석규가 지었다. 그가 어릴 적에 살던 동네 사진관의 이름이라고 한다. 여기서 1997년 9월 20일부터 3개월 동안 촬영이 이뤄졌다. 정원의 집과 초등학교 등 영화 촬영의 대부분은 이 초원사진관 인근에서 진행됐다. 촬영이 끝난 뒤 초원사진관은 주인과의 약속대로 철거됐다. 이후 군산시가 관광객들이 관람할 수 있도록 복원했다. 영화 속 사진기, 선풍기, 앨범, 소파 등 소품들이 고스란히 전시돼 있고, 영화 스토리를 섹션별로 구성한 액자가 설치돼 영화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관광객의 사진 촬영이 가능하고 찍은 사진을 이메일로도 받을 수 있다.
관련 에피소드 2개가 있다.
이곳은 처음 얼마 동안 새로 사진관이 생긴 줄 알고 찾아오는 이들이 많았다. 극 중에서 가족사진을 찍는 이들 가운데 일부는 엑스트라가 아닌 실제 방문객이었다고 한다.
또 하나는 크리스마스 장면 촬영. 눈이 필요한데, 촬영 시기가 11월 말이었기 때문에 제작진은 사진관 주변에 솜을 깔고 소금을 뿌려 눈이 내린 것처럼 꾸몄다. 촬영 후 동네 아주머니들이 이를 수거해 김장 때 쓰기로 해 제작진은 청소하는 수고를 덜 수 있었다고 한다.
전라북도 군산시 구영2길 12-1 (신창동 1-5)
오픈: 화요일~일요일 하절기(3월~10월) 09:00~18:00, 동절기(11월~2월) 09:00~17:00
휴관 매주 월요일, 특별지정일,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