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그곳은 최고 권부의 자리였다.
그러므로 그곳은 언제나 은밀한 곳이었다.
한때는 피비린내의 진원지가 되기도 했고, 역모가 이루어진 자리기도 했었다.
그런 자리의 입구에 나는 관람객들 틈에 끼여 섰다.
열흘 동안 야간 개장을 한다기에 발걸음을 한 것이다.
초여름 밤 청와대 뜰에서 멋진 선율의 연주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행운일 것이다.
그러나 내 감성은 이미 오래 전에 메말라 있는지라 처음부터 음악 따위는 뒷전이었다.
내 관심은 진작부터 온통 권부의 속살에 쏠려 있었다.
나라를 호령하던 위엄을 느끼고 싶었고, 음모를 논하던 자리의 구린내를 맡고 싶었다.
그러니까 그 권력이란 것이 말이다.
우리 스스로가 선출한 자에게 부여한 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 선출된 자들은 위임 받은 권력을 왕권과 구분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을 국민들은 언제나 이곳 문 앞 어디쯤에서 제지당했다.
이제 세상이 바뀐 탓에 이제 그 권부가 시민 앞에 발가벗겨졌다.
그러니 그저 한가롭게 음악을 즐길 마음이 들수 있겠는가.
마침내 육중한 문이 열리고 우리는 간단한 확인 절차를 거친 후에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서자 바로 앞에 너른 잔디밭이 펼쳐졌고, 그 뒤로 본관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마도 조선의 왕들도 저렇게는 살지 못했으리라.
본관으로 들어서자 그 당당한 위세에 금방 압도되고 말았다.
그동안 가보았던 유럽의 왕궁보다 화려했다.
이층으로 오르는 정면 계단은 사진 찍는 명소가 되었다.
이층으로 오르자 집무실이며 회의실에는 주인을 잃은 의자만 덩그마니 놓여있었
다.
벽면에는 액자들이 걸려있고 천장에는 화려한 샹들리에가 매달렸다.
그런 방들마다 두런두런 어둠 속에 감추어진 이야기들이 들려오는 듯하다.
권력자의 집무실은 넓고도 넓었다.
겨우 결재란에 서명을 하는 것이 고작일 방일 텐데도 넓고도 넓다.
바깥방에는 역대 권력자들의 얼굴이 그림으로 걸렸다.
그리고 다른 방에는 그 부인들의 얼굴이 또한 그림으로 걸렸다.
방마다 아무런 권력도 쥐지 못한 사람들의 발길로 가득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란 그저 사진을 찍는 일밖에 없었다.
마치 자기들이 준 권력을 확인이라도 하듯이 그들은 스마트폰을 치켜들었다.
본관을 나오자 조금씩 어둠이 조금씩 내려앉고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소정원을 지나 권력자의 관저로 향했다.
그곳 정원에서 첼로와 바이올린의 현악 2중주가 고즈넉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곳을 지나 녹지원으로 내려가는 길에서는 빛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은하가 만들어지고 그 사이사이로 강렬한 레이저 빛이 하늘을 가르고 있었다.
녹지원에서는 국악의 어둠을 가르고 고요히 흐르고 있었다.
아쟁과 별로 익숙하지 않은 악기의 이중주였는데 그윽한 어둠과 조화를 이루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청와대 국민 품으로-
정권이 바뀌고 청와대에 국민의 발길이 부산하다.
정권이 바뀌면 그때는 다시 청와대 문이 닫힐까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