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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호 산문집 _ 바람개비는 즐겁다
서울의 산들이 그립다
산 위에 올라서서 바라다보면
가로막힌 바다를 마주 건너서
임 계시는 마을이 내 눈 앞으로
꿈 하늘 하늘같이 떠오릅니다.
(…)
흔들어 깨우치는 물노래에는
내 임이 놀라 일어 찾으신대도
내 몸은 산 위에서 그 산 위에서
고이 깊이 잠들어 다 모릅니다.
— 김소월, 「산 위에」
1960년대 초, 버스 노선이 없던 10킬로미터가 훨씬 넘는, 거의 30리 길을 나는 매일 걸어서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녔다. 1킬로미터쯤 가다가 맞는 첫 번째 고비는 가파른 고개로, 우리는 그 고개를 “헐떡고개”라 불렀다. 높이는 100미터 정도인데 경사도가 60도쯤 되는 정말로 가파른 언덕이었다. 헐떡거리며 그 고개를 넘으면 다행히 긴 평지가 계속되었다. 중도에 동무를 만나 같이 걸어가면 즐겁기만 했다. 그러나 학교에 거의 다 가면 마지막 장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경사도는 30도지만 완만하게 아주 긴 비스듬한 언덕길로 이 마지막 고비를 넘어야 비로소 교문이 보이고 넓은 운동장이 보인다. 몸이 불어난 지금 아직도 다리나 발에 관절염 없이 씩씩하게 걷는 것은 그때 단련된 다리 덕분이 아닌가 한다.
우리나라 한반도는 국토의 70% 가까이가 산지라 한다. 예전에는 땅 덩이도 크지 않은데 웬 구릉, 언덕, 산들이 이리도 많을까 불평하기 일쑤였다. 평지가 많으면 농토도 많아지고 집짓기도 편하지 않겠는가. 외국에 나가니 우리나라 국토의 협소함이 한층 더 느껴졌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중서부 평원을 달리다 보면 평야 지대가 몇 시간 동안 계 속 펼쳐져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1990년대 후반 호주에서 지낼 때도 구릉도 없는 그 광활한 지대가 부러웠다. 특히 1년간 지냈던 호주 중동부 빅토리아주는 도시만 벗어나면 대부분 대평원이었다. 우리나라는 도시라도 구릉과 언덕, 야산들이 많아 평평함과 광활함이 없어 언제나 뭔가 답답하고 아쉬운 느낌을 주었다.
198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공부하던 곳은 중북부 위스콘신주 밀워키시였다.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영작문 강의 조교까지 했기 때문에 엄청난 양의 읽기 과제, 도서관 자료 찾기, 잦은 발표 및 토론 수업 준비, 학생들의 작문 고쳐주기와 개별 면담 그리고 과제 제출을 위해 주말에도 주로 대학 도서관에 처박혀 2년 이상을 보냈다. 그러다가 여유는 조금 생겼지만, 언제부턴가 막연한 그리움(?), 허탈감(?), 가슴 답답증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외국에 나가면 흔히 겪는 김치나 고추장 등 한국 음식에 대한 그리움만은 아니었다. 이름 붙일 수 없는 기묘한 상실감, 박탈감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캠퍼스 주위는 물론, 도시 전체가 그저 평평하고 너무 단조로운 데 대한 권태감 같은 것이었다. 내가 다니던 대학 캠퍼스는 동쪽으로 광활한 미시간 호수가 바로 붙어 있어 탁 트인 느낌은 들었지만 그래도 뭔가 허탈하였다.
다시 곰곰이 생각하니 그것은 일종의 평지 권태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느 주말 밀워키에 산 지 오래된 교포 학생에게 이 근처에 최소 서울의 남산이나 관악산만한 높이의 산이 없냐고 물었더니, 근처에는 없고 차로 두 시간 이상 달려 북쪽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학생의 호의로 어느 주말 위스콘신 북쪽, 거의 미네소타주가 멀지 않은 곳까지 달려갔을 때야 관악산 정도 되는, 평지에 솟아 있는 이름도 모르는 산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거의 숭고한 느낌마저 들었다. 아아! 그리웠던 산이여! 순간 답답하고 꽉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리는 듯했다. 아니 뚫렸다. 그 자리에서 가슴 답답증이 순식간에 완치되었다! 그 후로도 그곳에서 몇 년 더 보내는 동안 나는 가끔 오로지 이 산만을 보기 위해 두 시간씩 운전하여 올라갔다.
태어나서 수십 년 동안 내 마음과 몸의 DNA 자체가 우리나라의 고개, 구릉, 언덕, 산에 익숙하게끔 구성되지 않았나 하는 엉뚱한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알게 모르게 산에 중독되었던 나는 미국 도시에서 구릉이나 산을 오래 못 보고 살다 보니 산에 대한 금단현상이 일어났던 것 같다. 등산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그 후로는 진정으로 서울의 산과 구릉들을 기쁨과 감사의 마음으로 가슴에 품고 있다. 송욱의 시가 떠오른다.
말도 움직임도 없지만
항시 나를 이끌어 온다
개울물은
그저 달린다
뜻하지 않게 살고
헤아릴 수 없게 쉰다
햇살과 구름과 바람결로 더불어
은밀하게 바꾸는 모습―
너는 하늘처럼 열린다
들판이 휩쓸다가
드러눕는다
―송욱, 「山이 있는 곳에서」 전문
서울 한가운데를 흐르는 한강은 런던의 템스강이나 파리의 센강, 보스턴의 찰스강처럼 아기자기하고 낭만적인 아담한 강이 아니어서 운치는 많이 떨어진다. 한강 주위에 대형 아파트단지가 들어선 것도 아쉬울 뿐이다. 하지만 어느 날부턴가 나는 대도시 가운데 이렇게 크고 힘찬 강이 흐르고 주위에 아름답고 웅장한 산들로 둘러싸인 축복의 서울에 대해 찬미자가 되었다. 서울 주위에 산들이 많아 조용히, 그러나 힘차게 흐르는 한강이 더욱 믿음직스럽다. 서울은 안으로 북악산, 남산, 인왕산, 낙산이 멋지게 연결되어 있고 밖으로 북한산, 아차산, 덕양산, 관악산으로 크게 연결되어 있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 도시이다.
그 후로는 대학 시절 유행한 〈서울의 찬가>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이 노래는 1966년 서울시의 요청으로 길옥윤이 작사, 작곡하고 그의 아내, 가수 패티 김이 부른 노래다. 어떤 분은 “서울의 애가”를 쓰며 서울을 풍자 비판했지만 나는 고국을 떠나 미국에서 4년, 영국에서 1년, 호주에서 1년 동안 지낼 때 고국 생각이 나면 서울의 산들과 한강을 생각하며 가끔 이 노래를 떠올리곤 했다.
내가 퇴임 때까지 거의 35년간 봉직했던 중앙대학교 흑석캠퍼스는 서달산 중턱에 자리 잡은 비좁은 공간이긴 하지만 나는 크게 사랑하며 자랑스러워했다. 연구실에서 내다보면 유유히 흐르는 믿음직한 한강이 내 눈앞에 있고 예쁜 남산도 보이며 더 멀리 눈을 들면 북한산까지 훤히 보였다. 서울 소재 어느 대학에서도 남산과 한강이 함께 보이는 곳은 없으리라. 큰 업적은 내지 못했으나 이 정도 학자라도 된 것은 모두 남산, 북한산 그리고 한강 덕분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6년간 다닌 중·고등학교도 인천 자유공원을 품고 있는 응봉산 자락에 있었고 1970년대 후반 조교도 하고 박사과정을 거친 서울대학교도 관악산 자락에 있지 않았던가? 또한 1970년대 말, 2년 반 재직했던 홍익대학교도 한강이 보이는 와우산 자락에 서 있다. 이제는 뒤쪽으로 남산, 북한산 등이 멀리 보이고 앞쪽으로 관악산 정상까지 보이는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한때 한국의 산과 구릉을 답답해했던 사람이 뒤늦게 산 중독자로 서울 산들의 가치를 다시금 깨달아 산들을 바라보며 즐겁게 지낼 수 있다니, 나는 얼마나 행운아인가.
지금 나는 산의 미학적·종교적·철학적 의미를 사유하는 것도 아니고 등산가들이 내세우는 산의 아름다움을 예찬하고 신비화하는 것도 아니다. 서울 산들의 배치와 배열 그리고 구성적 균형 감각이 주는 도시의 다양성과 안정감을 사랑하는 것이다. 서울 외곽에 동서남북으로 펼쳐진 큰 산들과 지역별로 배치된 작은 산들의 조화가 세계 어느 대도시를 가도 찾아볼 수 없는 독보적 장점이며 특징이다. 서울에 산재해 있는 비교적 예쁘고 작은 산들도 기쁨과 사색의 원천이다. 내가 이름을 알고 있는 산만 해도 여럿이다. 남산, 북악산, 백악산, 인왕산, 낙산, 용마산, 와우산, 대모산, 청계산, 수락산, 배봉산 등등이다. 이 산들보다 더 소규모 산들도 많아서 내가 지금 사는 상도동만 해도 상도근린공원이 있는 국사봉이 있고 중앙대 뒤편으로 흑석동, 상도동, 사당동, 동작동 가운데에 서달산도 있다. 이런 산들은 높이가 100~150미터에 불과하나 산은 산이다.
내 기억에 동경, 북경, 런던, 파리, 로마, 모스크바, 뉴욕, LA 등의 대도시에는 이만한 산들도 없다. 서울의 산들은 큰 산, 중간 산, 작은 산들이 서로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안정감과 즐거움을 준다. 서울은 수천 년간 한민족의 요람인 한반도의 거의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다. 서울은 북방 대륙 세력인 중국과 러시아, 남방 해방 세력인 일본과 미국 사이의 불안한 지정학적 위치에서 기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서울의 산들이 이 모든 것의 중심에서 평행추 역할을 할 것을 기대한다.
김후란 시인의 시 「참 아름답다 한국의 산―자연 속으로 11」을 다시 읽어본다.
온 산이 초록으로 물들어 싱그럽다
날마다 새 아침으로 깨어나는
저 산자락에 오케스트라 연주가 시작된다
바람은 숲을 가로질러 달리고
소리치며 날아오르는 새들이
미래의 하늘을 연다
계곡으로 쏟아지는 폭포
그 어깨에 황홀하여라 황금색 깃을 펼치는
자연의 헌신
(…)
봄 여름
가을 겨울
건강하게 살아 있는 한국의 산
참 아름답다.
시인은 이 시에서 “한국의 산”을 아름답다고 노래하지만, 나에게는 거대도시 서울의 산들이 아름다움을 넘어 숭고하기까지 하다.
한때 미치게 그리웠던 서울의 산들이 이제는 고맙기만 하다. 지금 사는 아파트 18층 베란다에서 바로 코앞에 내다보이는 아담한 국사봉은 사계절의 전령사이다. 봄의 따스한 기운부터 봄의 표상인 벚꽃, 개나리꽃, 아카시아꽃들이 시시각각 눈앞에서 연달아 피어나고 까마귀, 까치, 참새는 물론 가끔 뻐꾸기, 딱따구리도 노래한다. 잠자리도 간혹 올라오고 비 오는 날에는 개구리들이 개골개골 합창한다. 여름의 우거진 녹음과 싱싱한 녹색은 약한 시력을 높여주고 염천(炎天)의 하늘에 상큼한 산들바람은 마음을 서늘하게 해준다. 가을의 국사봉은 온갖 노랗고 붉은 색깔의 수채화와 풍경화를 그려내고 떨어져 쌓인 낙엽들의 고즈넉한 정취는 차분히 사색하게 만든다. 지구온난화에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고마운 겨울은 벌거벗은 앙상한 가지들 사이로 부는 삭풍(朔風)으로 정신이 번쩍 들게 하고 생명과 죽음의 문제를 진지하게 사유하게 만든다. [시재(詩才)가 내게 있다면 1651년 고산 윤선도가 모든 관직을 내려놓고 남해 보길도 부용동으로 들어가 사계절을 노래한 「어부사시사」 (漁父四時詞) 같은 시를 나의 국사봉을 위해 남기련만.]
산에는 숲과 나무, 꽃과 새, 나비와 벌, 그리고 보이지 않는 많은 생명체가 숨 쉬며 살고 있다. 어찌 그뿐이랴. 작은 산 국사봉도 자동차 매연으로 생긴 이산화탄소, 미세먼지, 초미세먼지는 물론 중국에서 날아오는 황사까지도 일부 또는 전부 빨아들여 정화한다. 녹색식물인 나무들과 풀들이 신비스러운 광합성 작용으로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이고 산소를 뿜어낸다. 요즘 지구를 급속히 망가뜨리는 기후 변화와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줄여주니 산이 얼마나 고마운가! 우리나라도 동참한 2050년까지 전 지구적으로 펼쳐지는 탄소 중립운동의 주역도 결국 산과 숲이 아닌가.
운이 좋아 나는 지금까지 백두산은 세 번, 한라산은 두 번 올랐다. 백두에서 한라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은 한반도의 등뼈다. 바닷가인 인천 제물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도 이제 나는 물보다 산이 좋다. 산과 언덕이 주는 출렁이는 높낮이의 역동성은 분명하게 구분된 사계절과 더불어 한반도에 사는 우리에게 큰 축복임이 틀림없다. 공자는 『논어』 「옹야편」에서 “지혜로운 자는 움직이고 어진 자는 고요하다(知者動 仁者靜)”라고 말했다. 산을 좋아하니 공자에 따르면 아마도 나는 어진 자일까?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知者樂水 仁者樂山)”라는 말이 있다.
남은 나의 여생을 지혜롭지는 못해도 서울의 크고 작은 산들을 사랑하며 겸손하고 어진 사람으로 이웃에게 작은 사랑을 베풀면서 조용히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박목월의 시 「산이 날 에워싸고」에서처럼 살리라.
산이 날 에워싸고
씨나 뿌리며 살아라 한다
밭이나 갈며 살아라 한다
(…)
그믐달처럼 살아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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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한때 한국의 산과 구릉을 답답해했던 사람이 뒤늦게 산 중독자로 서울 산들의 가치를 다시금 깨달아 산들을 바라보며 즐겁게 지낼 수 있다니, 나는 얼마나 행운아인가.
운이 좋아 나는 지금까지 백두산은 세 번, 한라산은 두 번 올랐다. 백두에서 한라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은 한반도의 등뼈다. 바닷가인 인천 제물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도 이제 나는 물보다 산이 좋다. 산과 언덕이 주는 출렁이는 높낮이의 역동성은 분명하게 구분된 사계절과 더불어 한반도에 사는 우리에게 큰 축복임이 틀림없다. 공자는 『논어』 「옹야편」에서 “지혜로운 자는 움직이고 어진 자는 고요하다(知者動 仁者靜)”라고 말했다. 산을 좋아하니 공자에 따르면 아마도 나는 어진 자일까?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知者樂水 仁者樂山)”라는 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