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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광의 시다.
시란 것이 또 그렇지 않은가!
일순간 빛처럼 왔다가 어둠처럼 묻혀버리고 마는 절망.
그걸 붙잡아 희망으로 바꾸는 것이 시다.
이걸 또 성배순 시인은 제법 완숙하게 해 보이고 있다.
이만한 시의 진경을 우리 주변에서 만나기 어렵다.
― 나태주
조치원 세종문화예술회관에서 만난 성배순 시인
지난 2019년 제1회 삶의문학상 수상자로
성배순 시인이 선정됐습니다.
이 문학상은 동인 그룹 <삶의 문학>을 모태로 만들어졌는데요,
<삶의 문학>은 1980년대
대전·충남 지역을 중심으로 간행된 진보적 무크지였죠.
이 동인 그룹은 1990년대
대전·충남 민족문학인협의회로 재편됐고,
현재는 대전 작가회의의 모체가 됐습니다.
성배순은
역사와 여성의 삶, 모성애 등을 소재로
많은 시를 써왔는데요,
지난 6월에는 그의 시를 원작으로 한 그림책,
<세종호수공원>을 모티프로 제작된
창작 융복합공연 ‘탐’이 무대에 올려지기도 했죠.
조치원 세종문화예술회관에서
시인을 만나
그의 시 세계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웅진문학상 수상작인 ‘미나리꽝 속 여인들’로 시인 성배순의 존재를 알리게 됐는데요, 어떤 마음이었나요?
“제 시를 읽는 사람들에게 오랜 떨림을 줄 수 있는 시를 쓰고 싶었어요. 보이지 않는 길을 만들며 허공을 향해 항진하는 새가 자신을 때리며 박자를 맞출 때 풀잎들, 잎사귀들, 나뭇가지들이 한참 동안 그 떨림으로 반짝이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저는 늘 긴 터널 속에서 노래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 노래는 번번이 에코가 되어 돌아와 저를 매일 작게 만들었지요. 그래서였을까요? 세상과 일체의 소통을 끊고 대하소설 읽기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수상소감으로도 썼지만, 웅진문학상 수상은 제 목소리가 터널 밖으로 빠져나갔다는 것에 기쁘고 감사한 일이었지요. 제 목소리를 누군가가 들어 준 것이었고, 그 소리를 노래로 감상해준 것이라고 느꼈으니까요,”
꽃 한번 피워 본적 없는 여인들
미나리꽝에 발 묻고 서 있다.
하수도를 빠져 나온 오물들이
시커멓게 발목을 휘감는다.
뽀오얀 속살이 되고 싶었을,
실한 열매의 젖줄이 되고 싶었을
오물들이, 여인들의 퉁퉁 부은 두 다리를
껴안는다. 평생, 흘린 밥풀떼기나 생선가시를 먹고
퍼렇게 뼈가 삭아 속이 텅 비었다.
그녀들 가녀린 허리가, 휘청 쓰러진다.
누런 잎사귀가 바람에 펄럭인다.
꽝 밖 밭고랑에 장다리꽃 하늘거려도
바람에 허리를 폈다 오므렸다 하는
단조로운 이 노동 멈추지 못한다.
다만, 한 다발의 미나리를 더 뽑아
꽝 밖으로 던질 뿐이다.
- 2003년 웅진문학상 수상작 ‘미나리꽝 속 여인들’
성배순 시인의 첫 번째 시집 '어미의 붉은 꽃잎을 찢고' 시로여는세상 펴냄, 2008.4.12
웅진문학상을 받으면서 자신감이 붙으셨겠어요?
“잡지사와 신문사를 10여 년간 노크하던 때였으니까요. 2003년 10월이었지요. 공주지역 백제문화제 선양위원회에서 주최하는 문학상이었는데요, 그때 심사하신 분이 이은봉 선생님이셨지요. 직전 수상자였던 정용기 선생님도 심사에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본인은 한 것이 없다고 늘 자신을 낮추시더라고요. 아무튼, 그때 처음으로 이은봉 선생님을 알게 됐습니다. 선생님한테는 늘 감사하게 생각하지요.”
어머니 삼베치마를 입은 연이
꼬리로 허공을 차며 솟구쳤다.
네 귀퉁이 지느러미를 파닥이며 연은
서쪽으로 서쪽으로 길 떠나고 있었다.
모든 걸 놓아버리고
가슴까지 휑하니 비운 모습이
추워 보였다. 지상과 하늘을 연결하고 있는
가는 끈만은 서로 놓아버리지 못하고 한참을
그렇게
우리는 목 아프도록 바라다보고만 있었다.
난 칼을 꺼내 팽팽한 순간을 그었다.
사선으로 끊었다. 비로소 연은 가볍게
너울너울 춤을 추었다.
그래 보였다. 그런 줄 알았다.
아침 까치소리에 창문을 열어보니
감나무 가지 꼭대기에 연이 걸려 있었다.
이슬에 온통 젖어 날 보고 있었다.
- 2004년 1월 1일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진혼곡’
성배순 시인은 역사에서 소재를 구해 시 언어로 표현하는 걸 좋아한다.
웅진문학상 받고 바로 신춘문예로 등단하면서 잡지사에서도 신인상을 받으셨더라고요?
“웅진문학상을 받고 조금 자신감이 생겼다고 할까요? 그래서 그해 11월 작품 50편을 우리나라 신문사에 쫘악 뿌렸습니다. 여기저기서 당선 소식이 올 텐데 수상소감을 언제 다 쓰나 걱정을 하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50편을 <시로여는세상> 잡지사로 보냈습니다.
12월 어느 날 꿈속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보이더군요. 그때 ‘아! 당선되겠구나’ 짐작을 했는데요, 12월 중순쯤 <경인일보>에서 신춘문예 당선 전화가 왔습니다. 순간 솔직히 실망했지요. 그래서 전화를 반갑지 않게 받았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곧 경인일보가 아니면 다시 1년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당선 소감을 신문사로 보내고 며칠 후에 <시로여는세상> 대표한테도 당선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2003년은 수상소감을 3번이나 썼습니다.”
돌아보며 버팅이며 전리품으로 끌려간 童女다.
그녀가 피울음으로 묻혀간 이 땅의 흙 한줌이다. 죽어서 고비사막의 먼지로 흩어져 고향 찾아 텐산 산맥을 넘어오는 환향녀. 내 사람 어디 있나, 대문을 흔들고 방문 고리를 덜컹거리는 눈알 따가운 이 그리움. 절대로 문 열면 안 돼, 미친 여자야, 모든 문들이 잠기고 내 남자 내 아이들이 단속된다. 온 동네를 헝클어뜨려 놓고 그녀가 숲 속 어귀에 쓰러지면, 지나는 이 모두에게 히죽 웃으면, 비로소 우리나라 마을 산에 붉은 철쭉이 핀다.
- 2004년 <詩로여는세상> 봄호 신인상 수상작 ‘황사’ 전문
시 '황사'는 병자호란 때 청에 끌려갔다 돌아온 여인들을 소재로 삼았네요?
“제가 환향녀(還鄕女)라고 표현했는데요, 약소국에서 태어나 비극적인 삶을 산 여성들이죠. 황사현상이 중국에서 비롯하는데요, 황사가 환영받지 못하듯 청에 전리품처럼 끌려가 살아 돌아온 여성들이 환영은커녕 회피, 배척의 대상이 된 모습을 그린 겁니다. 제가 역사 소재를 다룬 시를 꽤 썼는데요, 고려장도 실은 일제가 우리 민족을 폄훼하기 위해 조작한 거예요. 가짜 역사죠. 잘못된 역사를 당연하게 받아들여선 곤란하지요. 두 번째 시집에 실린 ‘코끼리 사냥법’이란 시가 우리가 실재했다고 믿고 있지만 실은 가짜 역사인 고려장, 일제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를 이야기한 작품입니다.”
성배순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아무르 호랑이를 찾아서' 시로여는세상 펴냄, 2015.11.1
시인들은 첫 시집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고 들었는데요, 첫 시집에서 가장 애착하는 시는 어떤 건지요?
“첫 시집의 작품들은 아무래도 오래 품고 있었으니 정이 많이 가지요. 그중에서 ‘인어들은 왜’라는 작품은 그 시대뿐만 아니라 지금의 사회문제이기도 하니 소개해보겠습니다.”
목소리 팔아 예쁜 두 다리 얻었지.
칼날의 하이힐 신고 춤 출 때마다
비명 터졌지만 꾸욱 참았지.
까맣게 눈썹 칠하고 빨간 립스틱
필리핀 베트남 러시아 조선족 인어들
변두리 왕국의 늙은 왕자들에게 팔려갔지.
시골 구석구석 꽂혀 있었지.
주렁주렁 아이를 만들던 남자들
깊이 잠든 밤이면 인어들은
몸 속 깊은 곳에서 파도소리 꺼내지.
바닷길을 쓸고 다니던 물고기 꼬리 펼치지.
첨벙첨벙 꼬리칠 때마다
확, 끼쳐 오는 비린내.
그만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서지.
- 2008년 첫 시집 <어미의 붉은 꽃잎을 찢고> 중 ‘인어들은 왜’
성배순 시인은 여성의 삶, 모성애 등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를 보여주는 시를 많이 썼다.
첫 시집을 낼 때 기분이랄까요, 그때를 회고해 보신다면요?
“자신이 저승에 있다는 것도 잊은 채 몸 바꾸지 못하고 밤마다 자식들 꿈속으로 올라오시는 우리의 어머니들, 모성이라는 단어가 늘 저를 주눅 들게 했지요. 알을 품은 옴두꺼비는 스스로 독사에게 잡아먹히고는, 죽는 순간 온몸의 독을 뿜어내 독사를 죽게 해 뱃속의 알들을 키웁니다. 자신의 살점을 자식에게 내어주는 우렁이, 새끼가 부화하면 자신의 몸을 새끼들의 먹이로 내어놓는 염낭거미, 자기 병아리에게 줄 먹이를 찾아 지구를 한 바퀴 돌고 오는 알바트로스, 모성은 사람과 짐승이 다르지 않습니다.
모성의 무거움에 쭈뼛거리고 있는 동안 아이들은 스스로 자라 있었고, 여성이란 단어의 가벼움에 쭈뼛쭈뼛하는 동안 세월은 하얗게 늙어 있었지요. 어느 날 금강 둔치를 돌다가 우주적 차원에서 보면 일상의 되풀이란 기적 같은 일이란 생각에 전류가 제 몸을 울렸습니다. 밖을 향했던 현(弦)이 내 안에 정곡(正鵠)을 낸 기분이었어요. 숲을 베는 죄를 기꺼이 더 범할 테니 나를 있게 한, 나와 눈 맞춘 세상의 모든 나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은 심정이었지요.”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도 쓰셨죠?
“그림책으로 <세종호수공원>과 <250살 시장에서 100살 과일을 찾아라>가 있어요. <세종호수공원>은 동명의 시를 그림책으로 옮긴 것이지요. <250살 시장에서 100살 과일을 찾아라>는 조치원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기획해서 쓴 거고요. 그림책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좋아해 주십니다.”
<세종호수공원>이란 그림책 속 ‘탐’이 우리 인간의 탐욕을 상징하는 것 같더라고요?
“<세종호수공원> 속 ‘탐’은 중국 신화에 나오는 용의 머리에 개의 몸, 원숭이 꼬리, 소의 발굽 모양을 한 탐의 모습이에요. 전설에 의하면 용에게는 용이 되어 하늘에 오르지 못한 아홉 자식이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저기 떠도는 글에는 탐이 용의 아홉 번째 자식이라고 나오지만 탐은 용의 다섯 번째 자식인 ‘도철’과 닮았지요. 탐은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동물인지라, 하늘의 해도, 달도, 별도 따먹었지만, 허기는 사라지지 않았어요. 산도 바다도 바람도 먹었지만 배고픔은 오히려 더 심해지기만 했지요. 그래서 탐은 자기 꼬리부터 먹기 시작해서 자기 자신까지도 먹었다는 욕심 많은 동물입니다.
이런 탐을 그림으로 그려서 늘 가까이에 두고 경계한 사람이 공자라고 해요. 공자를 연구한 어떤 분은 공자에게는 그런 이야기가 전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의 후손들은 말하기를, 계탐도(戒贪圖)라고 해서 공자는 탐 그림을 곁에 두고 가족과 제자들에게 “탐하지 마라”라고 수시로 가르쳤다고 합니다. 지금도 공자의 후손들은 공부(孔府)의 저택과 관아를 가르는 경계에 계탐도를 벽화로 그려놓았지요. 그리고 이 앞을 드나들 때마다 외친다고 해요. “그대여, 지나친 욕심을 부리지 마시오. 공야과탐료(公爺過貪了)”라고요.”
세 번째 시집 '세상의 마루에서'를 원작으로 출판해 공연으로도 창작된 그림책 '세종호수공원.' 성배순 지음, 이재연 그림, 시아북 펴냄, 2018.6.25
그리스 신화에도 유사한 이야기가 있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에리직톤(Erysichton)이 탐과 닮았어요. 테살리아(Thessalía)의 왕이었죠. 테살리아에는 농업의 여신 데메테르(Demeter)의 숲이 있는데, 그 숲에는 커다란 참나무가 하나 있었어요. 나무 아래에는 사람들이 여신에게 바치는 물건이 항상 놓여 있었지요. 어느 날 에리직톤은 자신의 종에게 참나무를 자르라고 명령합니다. 종들이 데메테르 여신의 노여움을 살까 망설이자 도끼를 빼앗아 참나무를 쓰러뜨리고 말지요. 나무는 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나무에 살던 님프는 그에게 큰 벌이 내릴 거란 저주의 예언을 합니다.
데메테르 여신은 굶주림과 기근의 여신 리모스(Limos)를 부릅니다. 리모스는 에리직톤의 저택으로 찾아가, 잠자고 있는 에리직톤의 입속으로 배고픔을 불어넣지요. 잠에서 깨어난 에리직톤은 참을 수 없는 시장기를 느끼고. 급히 하인들을 불러서 집에 있는 음식들을 가져오게 해 마구 먹어치웁니다. 먹으면 먹을수록 더욱 시장기를 느낀 에리직톤은 자신의 재산을 모두 팔아서 음식을 마련하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배고픔은 더욱더 심해지지요. 이 같은 아귀병(餓鬼病)은 그의 재산을 거덜 나게 했습니다. 결국엔 자신의 딸 메스트라(Mestra)를 남의 집 종으로 팔아넘기고 그 돈으로 먹을 걸 장만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먹으면 먹을수록 에리직톤의 배고픔은 심해지기만 했지요. 결국, 배고픔을 참지 못한 에리직톤은 탐이 그러했듯이 자신의 팔다리부터 먹기 시작합니다. 결국엔 제 몸을 모두 먹어치우고, 이빨만이 남게 되지요.”
성배순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세상의 마루에서' 실천문학사 펴냄, 2019.11.20
‘세상의 마루’란 시는 어떻게 쓰시게 된 건가요?
“저는 식탐이 있는 편인데 먹을 때마다 ‘탐’이 생각났어요. 방송 여기저기 먹방도 난무했습니다. 어느 날 강호동 먹방, 이영자 먹방, 하정우 먹방, 슈기먹방, 도로시 먹방, 밴쯔의 먹방 등을 서핑하다가 ‘탐’을 불러왔고, 호수공원을 산책하다가 하늘의 구름, 주변의 건물, 꽃, 새 등을 품은 세종호수공원에서 ‘탐’을 만난 거지요. ‘세종호수공원’으로 발표했던 시는 시집을 묶으면서 제목을 ‘세상의 마루에서’로 바꾸었고요.”
그곳엔 인간의 마루라는 이름을 가진 커다란 호수가 하나 있는데, 한양에서 쇠 말을 타고 남쪽으로 두어 시간을 달려 남해의 북쪽, 동해와 황해의 중앙이더라. 이곳에 *탐이라는 동물이 한 마리 살고 있는데, 녹색의 갈기와 꼬리를 가진 그를 보기 위해 전국에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더라. 툭 튀어나온 커다란 눈과 마주칠 때마다 아이가 한 명씩 생기는데, 그와 눈 맞은 여인들이 많아서 이곳은 나라에서 아이들이 가장 많은 도시가 됐다 하더라.
이 호수는 너무 맑아서 바닥이 다 보이는데, 배부른 자신을 숨길 수가 없던 탐은 어느 날 해를 토해내더니, 곧이어 달을 토하고, 구름을 뱉고, 샛바람, 하늬바람, 마파람, 높바람을 뱉어내더니 지금은 고요를 조용히 숨 쉬고 있더라. 바람이 돌아온 도시에 비로소 새가 노래하자 아이들은 가오리연, 방패연을 높이 올리고 있더라. 먹어도 먹어도 허기지던 그가 하나씩 토해낼 때마다 이상하게 배고픔이 사라지고 붉게 충혈된 눈이 맑아지자 허허벌판에 나무를 뱉어 산을 만들고, 돌멩이 바위를 뱉어 집을 만드니 사람들이 그에게 고개를 깊이 숙이더라. 이에 묘하게 기분이 좋아진 그가, 그동안 앗아 먹은 사람들의 꿈을 날숨을 통해 밖으로 내보내더라. 이 소문이 바람을 타고 온 나라를 거쳐 태평해 건너까지 퍼져나가자 구라파의 불란서, 영길리, 나선, 서반아, 화란, 의대리, 백이의에서도 사람들이 북적북적 모이고 있더라. 이곳 인간의 마루는, 그로부터 세상의 마루가 됐다 하더라.
*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먹어치우는 탐(貪)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만천하에 밝힌 이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구(丘)이고 자는 중니(仲尼)이라. 그는 대대손손 이 사실을 자랑하기 위해 출입문 가득 탐의 모습을 그려놓아 그의 후손들에게 탐을 절대 탐하지 못하도록 엄포를 놓았는데, 이는 근친을 경계함이 아니고 무엇이랴.
- 2019년 <세상의 마루에서> 중 ‘세상의 마루에서’
최근 출간된 성배순 시인의 네 번째 시집 '한 알의 모래를 보탠다' 심지 펴냄, 2021.8.20
얼마 전에 네 번째 시집이 나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혹시 시집을 발간하고 시 때문에 곤란한 일은 없었나요?
“아 그 이야기요? 그 이야기는 네 번째 시집이 아니고 세 번째 시집 때문에 일어났지요. 어느 날 시집을 읽은 신랑이 제 시집 때문에 친구들 만나기가 곤란하다고 하더군요. 왜 그러냐고 묻자 시집 속 ‘나무꾼의 선녀를 내려놓으리’란 작품에 대해서 친구들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들이 있었나 보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시인은 곡비 역할도 하는 것이라고 했더니 그 뒤로는 아무 말 안 하더군요. 얼마 전에 나온 네 번째 시집은 세종시의 설화를 배경으로 시극을 한번 써 보았어요. 시집을 읽은 많은 분이 시극을 재미있게 읽었다고 전화를 주셨습니다.”
한 나무꾼을 만나 30년을 살았네.
어제의 일들이 한낱 꿈이기를
날개옷 아닌 행주치마를 두르고
뜨거운 감자알 앞에 앉아
물어 보고, 또 물어 보았네.
생각해 보면 산짐승도, 풀도, 꽃도
한통속이 되어 나를 속였구나.
아이들 하나, 둘, 셋이 생기고
늦은 밤 연습해 보는 날갯짓으로는
밤하늘을 날 수가 없었네.
머리에 쓴 수건 벗어 던지고
행주치마도 풀어 버리고
두 아이 양쪽 겨드랑이에 끼고
막내는 가랑이 사이에 끼고
오르자 힘껏 날아오르자.
옥황상제가 있는 나의 집을 향해.
새벽에나 겨우 눈을 뜬 수탉
지붕의 꼭대기에 올라
목 찢어지게 울어도
절대로 지상은 돌아보지 말아야지.
나무꾼을 위해서는 두 번 다시
지상에 내려오지 말아야지.
나는 옥황상제의 선녀였나니!
- 2019년 <세상의 마루에서> 중 ‘나무꾼의 선녀를 내려놓으리’
최근에 네 번째 시집 ‘한 알의 모래를 보탠다’를 내놓으셨는데요, 마지막으로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 시집에서도 핵심 화두는 여성성이에요. 첫 시집 <어미의 붉은 꽃잎을 찢고>에서는 모성이 세상의 모든 어린아이에게로 확장돼 있다면 이번 시집에서는 삶의 연속성, 생명의 순환성으로 노래하려 했습니다. 여기서 여성성은 대상을 안쓰러워하는 측은지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자연의 사물들 안에 인물들을 자연스럽게 환원시키려 했지요. 신화적 발상이나 상상력을 더 심화한 측면도 있습니다.”
성배순 시인은
충남 연기군(현 세종시) 연서면 와촌리에서 태어나 2004년 <경인일보> 신춘문예에 ‘시로 여는 세상’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등단 전 ‘미나리꽝 속 여인들’로 백제문화제선양위원회가 주관하는 웅진문학상을, 등단과 동시에 ‘황사’로 <시로여는세상> 신인상을 받았다. 첫 번째 시집 <어미의 붉은 꽃잎을 찢고>로 푸른시인상을, 세 번재 시집 <세상의 마루에서>로 삶의 문학상을 각각 받았다. 이밖에 시집 <아무르호랑이를 찾아서>, <한 알의 모래를 보탠다>와 그림책 <세종호수공원> 등이 있다. 지역에서는 <세종문학>, 반연간지 <세종시마루>를 통해 꾸준히 신작을 발표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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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멋지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