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타인寺
-윤동재
언필칭 글로벌 시대
아파트 이름만
영어로 된 것 풍년이면 쓰것소
우리나라 절 이름도 이제 영어로 된 것
하나쯤은 있어야겠소이다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가는
고속버스를 탔더니 옆자리에 스님 한 분
버스선禪 삼매三昧에 드신 것 같아
휴게소에 도착할 때까지
법거량法擧揚 한 마디 나누지 못했소이다
그 스님 휴게소에 도착하니
해우소에 급히 다녀오시고
자리에 앉자마자 곧바로
스마트폰을 꺼내시고는
목소리도 크게 전화를 하시더이다
“야, 내가 마시던 발렌타인 30년산
누가 다 마셔 버린 거 아니지
내가 지금 내려가는 중이니
손대지 말고
그대로 두라고 알았지?”
그 절엔 발렌타인이 있고
그 절 스님 발렌타인을
소중히 여기시는 것을 보니
그 절 이름 물어보나 마나
발렌타인寺일 거라고 금세 알겠더이다
부월채斧鉞菜 천리채穿籬菜도
넉넉하게 준비해 두라고 하더이다
발렌타인寺엔 발렌타인은 있지만 선풍기나 에어컨은 없나
날씨가 더우니 좋은 부채 몇 개
준비해 두라는 뜻으로 알았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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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거량法擧揚 : 선객들 사이에 주고받는 선에 대한 문답
부월채斧鉞菜 : 육고기. 큰 도끼와 작은 도끼로 잘 저며서 만든 나물을 뜻함. 절집 은어
천리채穿籬菜 : 울타리를 뚫은 나물. 곧 닭고기를 뜻함. 절집 은어
#발렌타인 #법거량 #버스선 #부월채 #천리채
발렌타인 30년 출처 : 세계의 양주와 칵테일 백과사전
첫댓글 지나치게 험한 말 하지 말아야 동심을 잃지 않고 맑고 아름다운 시를 쓰리라. 세상의 오염을 있는 그대로 전하려고 입을 마구 더럽히는 것은 어느 보살도 한 적이 없는 억지 보시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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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새기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