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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의 인식 코드로 읽는 여성성
김지숙(문학평론가 시인)
페미니즘은 포스트모더니즘의 한 갈래로 여성의 권익을 주장하고 여성성을 옹호한다는 입장이다. 이는 19세기 사상가들이 여성을 억압과 굴종 천시와 열등의 대상으로 보던 전통 사회의 왜곡된 시각에 회의를 제기하면서 활기를 띠었으며 본격적 자의식 운동은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이루어졌다. 1960년대에 이르러 ‘페미니즘’이라는 용어가 등장하였으며 당시의 정치 문화 사회의 영향으로 더욱 발전되었다 이가 출현하기 이전 많은 여성은 대체로 독립 주체자로서 지위를 상실한 채 살아왔다 왜냐하면 기존의 전통적 가부장제가 간주한 여성성(feminine)은 여성 개인의 개별성과 다양성을 인정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여성은 상냥함 공감능력 예민 수동적 연약함 모성 친절 포용 유혹 외에도 한 억압적인 관계 속에서도 조화로운 원초성의 관계로 감싸 안는 여성성을 지니는 점을 모성의 전형으로 삼아왔다. 반면 남성성은 여성성과 대립되면서 근대적 이성적 이원적 상징적 절대적 공적인 특성을 지닌다고 보았다 또 남성성과 대립되는 이원적 가치 체제로 여성성을 규정짓고 남성성의 하위질서에 두었다. 하지만 남성의 관점에서 평가되고 길들여진 기존의 인식에 일관되어 왔던 여성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면서 여성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관심을 갖는 한편, 나아가 남성지배적 사회 문화 즉, 전통적 가치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기에 이른다.
한편, 로즈마리퍼트남 통의「페미니스트 사상」(한신문화사 2000)에서는 페미니즘 이론을 몇몇으로 범주화한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이란 18~20세기에 걸쳐 남성과 여성의 동등한 교육, 시민권, 경제권을 주장하였던 기회 제도적 불평등에 중점을 두고 남녀 간의 사회적 권력의 차이로 젠더의 권력이 생긴다는 점을 들어 남성과 동일함을 역설한다. 마르크스주의적 페미니즘에서는 여성 억압이 개인의 의도적 결과가 아니라 정치 사회 경제 구조의 산물로 본다 여성의 일이 여성의 사고 속성을 형성한다고 믿으며,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가정, 가사노동임금 등에 대해서는 여성을 억압하고 이해를 종식시키는 수단으로 생각하였다. 급진적 페미니즘에서는 성별체제가 여성을 억압하는 주요 요인으로 본다. 이는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차이를 과장하여 남성지배적 이데올로기에 토대를 두어 여성의 생물학적 종속적 예속적 역할을 강요한 부분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점에 중심을 둔다. 나아가 모성과 재생산 그리고 젠더와 성의 문제를 탐색하였다.
정신분석적 페미니즘에서는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을 응용하여 여성 압박의 근원이 여성의 정신 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고 전제한 실존주의 페미니즘은 시몬 드 보봐르가 여성의 자아 인식을 주창한 점을 들고, 사회주의 페미니즘에서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라는 이중체계를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리고 포스트모던페미니즘에서는 서구의 남성중심주의를 해체하여 여성을 보다 근원적인 것으로 규명하려는 점을 든다. 시몬 드 보부아르에 따르면 여성성은 여성의 선천적 본성이 아니라 여자가 태어난 다음 가부장제적 사회의 문화적 기제들에 의해 재구성된 특성이다(신옥희 2009) 이는 생물학적 요인으로는 여성으로 태어나지만 여성이든 남성이든 여성적 특성은 가질 수 있으며 현대적 개념에서 여성성이란 지역 맥락 사회적으로 구성될 뿐만 아니라 여성 개인의 선택으로 구성된다. 우리의 현대시에서는 90년대 이후 여성들의 자기 정체성에 대한 자각은 문학작품에서도 나타난다. 그 결과는 남성의 시각에서 근거하여 평가되고 여성의 덕목이라 여긴 잉태 인내 헌신 봉사 희생이라는 그간의 가치관에서 벗어나 본연의 인간성에 의거된 의미를 재부여하기에 이르렀으며 이는 생명성을 넘어 모성성의 문제로까지 사고의 차원을 확장한다. 흔히 모성성은 여성만이 지니는 본질적인 특성으로 인식되지만 이는 사회문화적 영향 속에 깊이 강요되고 만들어진 특성임을 부인할 수 없다
여성성의 중요한 한 갈래로 모성성이란 사전적 의미로 어머니로서의 본질을 말한다. 그런데 이 본질이란 생명을 잉태하고 생산 양육하는 과정에서 근본적으로 희생이라는 성질이 내재된다. 이드리엔 리치에 따르면 모성성은 생명을 잉태하는 여성적 경험의 창조성과 기쁨이 잠재력이 될 수 있다.(평민사 1995) 하지만 그간 우리 시대의 모성성은 생물학적 속성이외에도 헌신 양육 희생 책임 인내라는 강요된 역할을 거부하거나 이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회적 상황 속에 놓여 왔다 한국 현대시 속에서도 이는 예외가 될 수 없었으며 고정희 김승희 최승자 김혜순 문정희 박라연 나희덕 정끝별 등을 거치면서 모성성에 대한 사유의 확장은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시에서 모성성은 시적 상상력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발현된다. 그 결과 기존의 가부장제 속에서 부여된 여성이라는 가치관에 새로운 의미를 갖게 하였으며 여성에 대한 전통적 사회적 인식에서 벗어나 생명 탄생의 존재가치를 넘어 다양화된 모성성의 차원으로 확장된다. 흔히 모성성은 여성만이 지니는 본질적인 특성으로 인식되지만 때론 사회문화적 영향 속에 깊이 강요된 점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
한국의 신화와 설화 속의 모성성은 고난을 견디어 여신이 되거나 혹은 부득이하게 임신하지만 고난을 이겨내고 영웅을 출산하게 된다 그리고 기르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무조건적인 큰 희생을 치르고 끝내 자녀를 훌륭한 자리에 앉히는 모성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예를 들어 유화의 몸에 햇빛을 비추어 주몽이 탄생하고, 당금애기(제석본풀이)에서는 어머니와 아들이, <내 복에 산다>(구전민담) <무왕설화>(삼국유사 紀異) <바리데기설화> <삼공본 풀이>(제주 신화) 등에서도 생명의 근원인 모성은 변화 내지는 상실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시련과 고난을 거쳐 주체의식이 강화되고 주어진 환경의 변화 속에서 여신의 지위를 얻는 모성이 힘을 얻는 현상을 드러낸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모성 신화는 역시 남성중심사회에서 자기희생과 헌신 속에서 자녀 양육을 여성에게 전가하는 맥락에서 해석된다. 신화는 인류 역사상 가장 초기형태의 문화로 지금껏 도덕성 정체성의 토대가 되고 있으며 이 점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상징 언어 등으로 구사되어 전설 민담 문학 서사시 등으로 존재한다.
본고는 11월호 수록된 여성과 관련된 시들을 중심으로 이들 시의 화자가 인식한 여성성에 대한 시각을 살펴보고자 한다. 맹문재(2017) 김혜순(2017) 등의 앞선 여러 논의에서는 여성시를 대상으로 여성성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루었다면, 본고는 작가가 여성이든 남성이든 성별을 떠난 동등한 입장에서 화자의 인식 속에서 발현되는 여성성만을 논의의 대상으로 삼았다. 나아가 대체로 여성성은 희생 헌신 수동성 등의 기존의 시각으로 특징 지워진 다양한 특성으로 읽혀지지만 이들이 화자의 내면화된 채 어떤 가치관으로 표현되고 있는지에 대해 몇몇 작품 중심으로 언급하고자 한다.
멀고 외지고 척박한 땅은
가뭄에 화산재 섬을 덮었다
오백 아들 사흘을 굶었으니
한 끼라도 배불리 먹여야 쓰것는데
오늘도 나만 나무뿌리 짜 먹고
미역 고사리 쑥으로 죽을 쑤다가
주걱이 부러져 솥에 빠졌다
배고파 퍼 먹은 죽
어머니인걸 안 오백아들 영실에 모이니
한라산 나무와 풀의 곡소리
멀리서 물거품 일으키는 밀려오는 물갈퀴되어
메밀꽃이 핀 제주바다
천둥 번개 치더니 작달비가 쏟아진다
-함동선 「설문대 할망9」 전문
대지모신(大地母神)은 인류 역사상 가장 먼저 성립된 신으로 대지가 지닌 특성을 갖는다. 또한 모든 생명체의 어머니이자 여성성의 전형으로 생각한다.(진쿠퍼 1994) 풍요의 열쇠를 가진 대지모신이 숭배되던 구석기시대에는 여성과 남성은 평등관계를 유지하지만 가부장제로 바뀌면서 여성의 권위는 사라지고, 오랜 세월 여성은 남성권력 확립에 기여하는 형태로 남는다. ‘설문대 할망’ 신화는 제주도에 전해 내려온 1만8천여 명의 신과 관련된 전설 중 하나이다. 제주인의 삶 속에 스며 든 신들은 대부분이 여신이다 그 중에서도 ‘설문대 할망 신화’는 옥황상제의 셋째 딸로 하늘과 땅을 분리한 죄값으로 아버지의 미움을 받아 지상으로 내려오면서 치마폭에 담아온 흙으로 한라산을 만들었고 구멍 난 치마폭에서 흘러내린 흙은 368개의 오름을 만들었고 한라산 봉우리를 떼어내어 그것을 할망이 던지자 산방산이 되었다고 전한다
함동선의「설문대 할망9」에서는 ‘설문대 할망 신화’를 근간으로 하여 시적 상상력을 펼쳐낸다. 이는 전형적 성처녀 신화 유형에 속한다. 처녀가 아기를 낳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왕이나 영웅의 탄생에는 이 방법이 나타난다. 성모마리아 고구려 유화 에릭토니오스의 어머니 아테나 역시도 이러한 경로로 어머니가 되어 여신이라는 최고의 권력을 갖는다. 시에서 ‘설문대 할망’은 주걱이 부러지고 솥에 빠진다. 어머니가 빠진 죽 끓인 솥인 줄도 모르는 아들들은 배고파서 죽을 맛있게 먹는다. 후에 ‘먹은 죽 어머니인걸 안 오백아들’은 어머니의 넋을 기리며 훌륭한 장군이 된다는 기존의 ‘설문대 할망’의 신화에서와 같이 시에서도 ‘설문대 할망’은 여전히 살신성인의 모성성을 토대로 죽음도 불사하는 어머니의 희생으로 영웅을 탄생시키는 전형적인 설화양식을 보인다. 이는 이미 답습된 전통적 가치관에 의한 여성성 가운데서도 모성의 희생으로 자식을 영웅으로 만든다는 이야기와 유사한 맥락이다 본의든 아니든 자신의 몸을 던져 오백 아들에게 밥이 되고 그들이 장군이 된 모성은 전형적인 설화 속 모성과 동일한 희생과 헌신의 코드로 사용된 여성성이 드러난다.
사랑한다고 습관적으로, 좋아서 말한다
발아래로 능선을 딛고 ‘야호’ 지르는 소리
사랑으로 몇 겹을 싸서 멀리 보낸다
다 커버린 아이가 ‘엄마 사랑해’ 말한다
그 깊고 떨리는 색깔의 음성
예민한 엄마의 가슴에 얹혀서 굳어버린 화석돌나무
-이솔 「돌나무 앞에 서서 외치다」 일부
유교문화의 산물인 가부장제 사회구조 속에서 여성이 주체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쉽지 않은 상황이었으며 남성우월주의라는 근대적 사유 속에서도 여성은 피억압적 삶은 여전히 지속되어 왔다 하지만 이러한 문화가 초래한 착취와 정복으로 훼손된 여성의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가치관의 형성으로 기존의 속성을 바뀌어야 한다는 인식이 생겨나기에 이른다. 이는 기존의 남성중심주의에 의해 단정된 모성의 신화에서 벗어나 비가부장제적이고 성별에 기반을 두지 않는 창조적 비폭력으로서 포용과 생명의 원리를 지닌 본래의 삶 속에서 여성성을 찾아 가는 데에 중심을 둔 것이다. 이는 기존의 가치관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가치를 추구한다는 의미가 된다고 하겠다
이솔의「솔나무 앞에」에서 화자는 여성은 남성 중심적 가부장제 사회구조 속에서 힘겹게 살아온 어머니를 만난다. 그녀는 가슴 위에 화석돌나무를 얹고 키우며 나날을 살아왔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고단한 삶을 살아간다. 보이지 않는 고통의 길을 따라 가면 그 끝에는 무거운 의무와 책임을 더한 모성이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다 무수한 헌신과 출산 보살핌 안락함을 대변하는 여성적 특성을 지닌 그녀는 분명 남성우월주의 입장에서는 짐 지운 모성성을 놓지 못 하고 살아왔으리라 또한 주체적 자각을 물론 자신의 욕망조차 억압당하지만 자식의 출세를 위해 참고 견디며 희생하는 삶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조차 지워지고 상실된 채 자식을 위해 스스로 소리 없이 소멸되었으리라 이러한 어머니의 희생으로 성장한 아이는 뒤늦게 화석돌나무를 보면서 이를 깨닫고 어머니의 생을 안타까워하는 모습이 드러난다 이에는 여전히 기존의 가치관 속에서 살다간 변화되지 못한 모성성을 찾아볼 수 있다
꿈길로도 안 오시는 어머님이
이팝나무꽃되어 소복입고 오셨네요
오늘아침
어머님이 정성들여 지으신 이팝나무꽃밥을
눈으로 양껏 배불리 먹고요
올 한해도 어머님 생각하며 튼실하게 살겠어요
-김시종「이팝나무꽃」 전문
C. G.융에 따르면 모성(母性)이란 집단무의식 존재의 황홀한 차원 생명수의 근원을 상징한다. 따라서 무의식적으로 근원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지닌다. 그래서 어머니의 이미지가 곧 자신의 운명의 여자 형상으로 재현된다는 점에 유의한 바 있다(이승훈 1995) 그런데 이 모성 원형은 양가성을 띠며 이는 보편적인 인류의 모성적인 심리 또는 모성본능 출산 인내 포용 양육 보호의 본능과 같은 긍정성과 뜨거운 파괴적 야성 마취 독점욕 등의 부정성을 지닌다. 대개의 여성은 가부장적 의식을 내면화시키면서 인내하고 희생하면서 살거나 반대로 정체성을 찾기 위해 끝없는 노력하게 된다. 스스로의 욕망을 가슴 깊이 묻고 살지만 그러한 갈망 때문에 삶은 불안과 초조 속에서 끊임없이 흔들린다 가부장적 억압과 존재론적 상실감에서 정체성을 확립해야 하는데, 라캉의 말처럼 나르시즘적 자아이상과 재결합하려는 욕망으로 쉽게 다가오지 못한다. 따라서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욕망이 클수록 더 큰 혼란 속으로 빠져드는데, 이는 남성적 욕망과 결을 달리 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김시종의「이팝나무꽃」에서는 ‘이팝나무꽃’이 되어 오신 어머니의 눈으로 배불리 밥 먹는 자식의 모습을 보게 된다. 결국 모성으로 자녀를 키우고 가꾸며 응시하는 과정을 통해 자녀가 잘 성장하게 된다. 단순하지만 복합적인 의미를 지닌 ‘이팝나무꽃’을 소재로 삼은 이 시에서 ‘이팝나무’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한 가지는 자녀를 기르는 밥의 이미지로 양육의 수단이 되는 무한한 긍정성을 지니지만 다른 한 가지는 앞서 언급된 할망 설화에서처럼 ‘이팝나무꽃’이 곧 ‘어머니’인 점에 착안한다면 살신성인의 어머니가 되는 셈이다 자녀를 위해 헌신하고 온몸을 던진 어머니를 이팝나무꽃으로 자신을 송두리째 내어주는 존재로 자기 것이라고는 없는 전형적인 가부장제적 어머니의 상으로 비춰낸다
강화는 추수가 끝났는데
햇밥짓는 냄새없는 연백펑야
사람이 하나 둘 오고 갈 뿐 허수아비도 보이지 않는다
마을 동쪽 끝 내 살던 집이 보인다
이때 부엌문으로 흰옷 입은 분이 움직인다
‘어머니다’는 말에
눈물이 포대경을 적신다
꿈속에 뵙던 어머니
“고향 가면 다신 떠나지 않겠습니다”
-함동선「어머니다」 일부
여성의 원형은 수호 양육 수동 보호의 의미를 지니며, 여신 선녀와 같은 인격적인 상(像,imago)을 지니기도 한다. 이러한 여성의 원형은 조선 전기의 사회풍토에서 잘 드러나는데, 이 시기의 여성은 ‘아들의 어머니’로서의 자리로 규범화되어 있고, 는 소혜왕후의『내훈』(1475)에서도 확인가능하다. 이 시기는 유교적 가치관이 만연하던 시대로 여성은 자기 정체성을 잊은 채 스스로의 삶을 잘 살아내는 길이 바로 가부장제적 지배에 순응하는 길임을 진리처럼 여겨왔다 여성들이 아들을 생산하고 대를 이어야 비로소 조상의 반열에 오르고 자신의 지위를 확보하게 되는 점이 의무이자 강제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 점은 현대에 이르러서 다소 변화되었지만 동등관계로 나아가기에는 수많은 걸림돌과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리라고 본다.
함동선의「어머니다」 에서 화자는 ‘부엌문으로 흰옷 입은 분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곧바로 누군가가 ‘어머니다’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꿈에서도 뵙지 못하던 어머니를 눈앞에서 만난 듯 반갑고 또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낸다. 어머니의 존재가 ‘부엌문’ 과 연이어 생각난다는 점은 화자의 어머니는 부엌문을 오가며 자식과 가족을 위해 의식주를 책임지는 주부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동시에 전형적인 가부장제적 사회상황 속에서 전형적 여성의 고단한 삶을 살아냈다는 점에 각인하게 한다. 이 유형의 어머니는 융이 말하는 아니마로 인식된다 순수하며 어머니로서의 특성을 지니며 그 의무를 다하는 탁월한 덕목을 지닌 숭고함마저 지니지만 여성 자신으로서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봉사와 희생적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점만은 부인할 수 없다
묵은 옷장에서
옛날의 <선데이 서울>이라는 주간지가 웃고 있다
요염한 포즈를 취한 여인의 나신이 울컥 다가온다
아, 이런 잡지가 어찌 옷장에 처박혀 있었는지
상자 밑에 깔린 채 반세기를 견뎌왔으니
들떴던 내 청춘과 함께 사랑받았던 여인을 깊이 숨긴 채
시치미를 떼듯 결백한 듯 살아왔구나
통속적인 주간지일망정 표지모델의 여인에게
정신을 잃었던 청춘 시절
아니, 부끄러운 시절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로 간직하고 싶었던 것일까
문득 주간지<선데이 서울>표지 모델을 보니
그때 뛰었던 흥분이 미진으로 일어난다
여인은 예 그대로 매력적이다
세월과 무관하게 젊어 있는 여인은
언제까지 늙은 나를 유혹할 것인지,
아니면 유혹 당할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김종목「 표지모델의 유혹」 전문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이렌은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뱃사람을 유혹하여 난파시키는 여신이다. 이는 매혹적이지만 위험한 존재이며 이브의 이미지로 본능을 상징한다. 이러한 여성성이 발현되는 경우, 여성은 어머니로서 역할을 수행하기에 앞서 끊임없이 독립된 개체로서 분리되려는 욕구를 지닌다. 왜냐하면 여성의 본능에도 자신을 발전시키거나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하려는 갈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는 남성 중심주의 사회에서는 남자보다 열등한 위치에 놓이거나 본능에 충실한 요부로서의 양상을 띠거나 변덕스럽고 일관성 없는 속이기를 잘하는 존재로서의 정체성을 획득하므로 어머니 역할 수행에는 혼란을 자초하기도 한다.
김종목의 시「표지모델의 유혹」에서 화자는 ‘젊은 날에 들떴던 내 청춘과 함께 사랑받았던 여인’의 요염한 나신에 세월이 지난 후에도 ‘그때 뛰었던 흥분이 미진으로 일어난’다는 점에서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매력을 느끼는 한 표지모델의 여인의 모습을 보면서 ‘유혹할 것인지 유혹 당할 것인지’에 대해 스스로에 의문을 던진다. 시몬느 드 보부아르에 따르면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여자 아이가 성인이 되기 전부터, 또 때로는 유년기부터 이미 성적으로 우리들 눈에 별개의 것으로 비쳐진다. 그것은 이해할 수 없는 본능이 여자 아이를 태어날 때부터 수동성 교태 모성애에 어울리게 결정해 버렸기 때문이 아니다. 이는 아이의 생활에 처음부터 개입하여 단정지었기 때문에, 강제적으로 그 인생의 직분을 떠맡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라 하여 사회의 관습과 통념에 의해 길들여진 역할을 수행하면서 여자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시에 등장하는 잡지 모델 역시 그러한 통념과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 여자라는 점을 인지하게 된다
문밖에서 잠은 서성대고
수많은 별들이
눈앞에서 반짝거린다
한 알 다 달라고 떼쓰시던 어머니
떨리는 손으로
잠 한덩어리 반으로 자르시던 아버지
어머니의 숙면이 영원으로 이어질까봐
남겨진 시간을 나누듯
어머니의 애절한 눈빛을 외면할 때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
생각의 골짜기 깊어지면
잠 못 드는 밤이 이어지고
반쪽씩 갈라주는 손길에서
마음의 두께를 느끼며
오늘 밤도
사랑을 나누듯 잠을 나눈다
-류혜향 「마음의 두께」 전문
W.게린(Guεrin)은 어머니를 대지의 어머니의 적극적인 양상으로 훌륭한 어머니, 이는 생의 원리 탄생 포근함 양육 보호 다산 성장 번영을 상징한다. 예로는 로마신화에 나오는 농업 풍요 결혼의 여성 데모텔 케레스을 든다. 반면, 대지의 어머니가 가지는 부정적 양상을 띤 무서운 어머니로 무당 여자 마법사 마녀 매춘부 요부 관능성 성적인 방종 공포 위험 암흑 해체 거세 죽음 을씨년스런 상황에서의 무의식을 상징한다. 그리고 영혼의 동반자로서의 어머니는 성모 마리아 공주 요조숙녀 영적인 성취의 화신으로 여긴다.
류혜향의「마음의 두께」에서는 부모님에 대한 잔잔한 감정을 드러난다. 화자는 부모님의 모습을 조심스레 지켜보면서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두께를 느낀다. 화자의 아버지는 아내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떨리는 손으로 잠 한 덩어리 반으로 자르시던 아버지 어머니의 숙면이 영원으로 이어질까봐 남겨진 시간을 나누듯’에서 화자는 ‘문밖에서 잠이 서성거리는’ 어머니의 불면을 해소하기 위해 한 알의 약을 반으로 나누는 아버지의 모습을 본다. 행여 몸이 약한 어머니가 약을 이기지 못하고 영영 못 볼까 염려되어 조심스럽고 섬세한 아버지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놓치지 않고 읽어낸다 아버지의 어머니에 대한 마음은 물론 모성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바로 동등관계로 생각하는 ‘영적 동반자로’서 여성을 한 자리에 놓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자려고 누워 뒤척이는데
당신 첫사랑누구야
뜬금없이 뭔소리
아니 그냥 궁금해서
누구나 첫사랑 있다잖아
없어! 난 당신이 첫사랑이야
당신 만나던 그 여자
미스코리아 있었잖아
좋아했다며
내 사전에 사랑하는 여자는 오직 당신뿐이야
뻔한 거짓말에 취해
두 바보는 손 꼭 잡고 꿈속 나들이를 한다
귀뚤귀뚤 귀뚜라미 함께 가진다
-류혜향의 시「두 바보」
시몬느 드 보부아르가 「제2의 성」에서 말했듯이, “이 주어진 현실 세계를 자유가 지배하도록 하는 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임무다. 이 숭고한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남녀가 그 자연의 구별을 초월해서 분명히 우애를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하여 여성이든 남성이든 동등한 관계와 자유라는 보편적인 가치와 목표를 위해 함께 노력하고 진정한 우애를 확립해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이러한 여성성에 대한 관점은 현대의 여성성을 재교정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류혜향의「두 바보」 에서는 침실에서 나누는 부부의 대화로 표현한다. 여기에서도 동등관계는 아무렇지 않게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누구나 첫사랑 있다잖아 없어! 난 당신이 첫사랑이야 // 내 사전에 사랑하는 여자는 오직 당신뿐이야 / 뻔한 거짓말에 취해 / 바보는 손 꼭 잡고 꿈속 나들이를 한다’에서는 남편의 첫사랑에 대한 집요한 질문에 끝없이 나오는 답은 ‘당신만을 사랑한다.는 말만 쏟아진다. 가부장제적 사회상황이라면 부부 사이의 대화 주제로는 쉽지 내뱉을 수 없는 말이다. 하지만 화자의 말을 통해 이미 시대적 상황이 달라졌다는 점은 인지하게 되고 부부 사이의 화제가 자녀가 아니라 부부 간의 정서에 초점을 두고 이를 동등한 입장에서 화제를 나이끌어간다는 점에서 기존의 전통적 가부장제 사회에서 보여지는 여성이 지녀야 하는 순종과 헌신 수동성이 미덕이라는 가치관에서 변화되어 나타나고 있다. 시의 화자 부부에게는 이러한 우애의 확립이 가능한 관계로 밑바탕에 상대에 대한 깊은 신뢰와 믿음 등 긍정적이고 건강한 사랑이 내재되어 있다.
긁힌 얼굴은 피로 가득하다
햇살이 부신 창을 던져 허리를 찔러도
빗줄기가 축축한 손으로 머리채를 휘감아도
허공을 온몸으로 들어올리며
입술을 깨문 채 넘고 있다
어디선가 Donde Voy가 흘러 나온다
지나던 바람이 등을 내밀자
바람을 타고 길로 나서는 그녀
붉은 몸을 펼쳐 단 한 번 날개짓으로
추락을 가장한 비상을 한다
몸이 퍼즐 조각처럼 바닥에 흩어진다
그녀를 태운 발소리들이 멀어진다
담장엔 소문이 무성하게 가시를 세우고
떠나지 못한 장마들의 모의가 몽글몽글 피어난다
그녀는 지금쯤 누군가의 신발에 묻어
사사베 국경을 건너고 있겠다.
-김나비 「히치하이킹」 전문
기존 가부장제 아래서 여성은 대체로 열등하고 수동적이고 온순하고 가사를 미덕으로 여겨왔다. 여성적 가치를 복원하고 생명력 넘치는 여성성을 회복해 가는 과정에 있는 지금도 여전히 여성성에 대한 개념은 남성 입장에서 정의 내려져진다. 흔히 여성은 수동적 관계 지향적 배려와 헌신 등의 정서를 특질로 관련짓는다 하지만 여성은 생물학적 여성을 초월하면서 다양하게 해석된다. 생물학적 여성으로 발현되지만, 이 여성성이 여성만의 속성이 될 수는 없다. 기존에 남성적 가치에서 보아 여성성이 열등한 것으로 폄하되었지만, 남성성의 가치가 반드시 옳다고 믿을 수 없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여성성은 긍정적 가치로 재평가 받게 된 시점에 이른다.
김나비의「히치하이킹」 에서 ‘Donde Voy’ 는 멕시코 여가수 로시오 반구엘(Rocio Banguel)이 스페인어로 부른 슬픈 곡조노래이다 구슬픈 이 노래는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을 넘는 불법 입국자들이 야밤을 틈타 국경을 넘어가는 것을 미국경찰이 서치라이트로 찾아 다시 칠레로 되돌려 보내는 내용의 다큐멘터리에서 불린 노래이다. 3000km가 넘는 국경을 넘는 일은 목숨을 잃을 정도로 위험하지만 가다가 설령 죽는다고 하더라도 다른 방법이 없기에 ‘기회의 땅’이라 여겨 미국을 택하는 것이고 그것만이 최선이라 그들은 생각한다. 이러한 내용을 소재로 쓴 이 시에서 그녀는 주어진 상황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찾아 떠나기 위해 ‘사사베 국경’을 건넌다. ‘사사베’ 는 멕시코 소노라주(州)의 국경도시로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선이 양국 사이를 장벽이 가르고 있는 곳이다 국경을 넘는 일은 그녀에게 ‘바람을 타고 길로 나서는’ 일이며 그녀 ‘붉은 몸을 펼쳐 단 한 번 날개짓으로 추락을 가장한 비상’이었다 날면 비상이지만 날지 못하면 추락이자 죽음이 기다리는 곳에 이를 뿐이다 그래서 그녀는 ‘누군가의 신발에 묻어서라도 필히 ’사사베 국경’을 건너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놓여있다. 이러한 그녀에게는 성별을 초월한 자유를 갈망하는 절박한 삶을 극복하려는 강인한 정신력이 나타난다.
지금까지 11월호에 실린 시들을 중심으로 화자에게 인식된 여성성의 대략적 그 의미들을 살펴본 결과, 이들은 ‘모성’ ‘성’ ‘동등성 획득’에 중심을 두는 세 유형이 드러난다. 우선 희생과 헌신의 코드로 드러나는 여성성으로 함동선의「설문대 할망9」 에서는 살신성인의 자세로 자녀를 영웅으로 키우는 전형적인 모성성 발현 설화 모티브로 모성성이 표현되어 있고, 이솔의「돌나무 앞에 서서 외치다」 김시종「이팝나무꽃」 함동선의「어머니다」에서는 가부장제적 사회상황 속에서 억눌리고 헌신하는 희생적 삶을 살아가는 전형적인 어머니의 선한 모습이 모성성으로 나타난다. 두 번째 김종목의「 표지모델의 유혹」에서 여전히 변하지 않는 여인의 모습에 대해 요염함과 관능의 코드로 읽혀진다 세 번째로 류혜향의 「마음의 두께」 「두 바보」에서는 상하관계의 남녀가 아니라 동등한 상황으로 변화되어 간 점을 알 수 있고 가부장제적 가치관에서 한층 탈피된 모습의 여성성을 드러낸다. 그리고 김나비의 「히치하이킹」에서는 ‘사사베’ 국경을 넘는 생사의 길목에서 발버둥치는 여성의 모습이 남녀 가릴 것 없이 다급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끈질기게 버텨내는 모습을 통해 강인한 여성성을 확인하게 된다.
우리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만난 사람을 나름의 기준으로 판단하며 살아간다. 서로 다르고 다른 특성을 지닌 존재라는 점을 인지해야 하지만 보이는 특성을 전부라 생각하기도 한다. 여성조차도 이미 기존의 단정된 시각에서 단정한 기준으로 같은 여성을 바라보기도 한다. 편견을 버리고 남성과 평등한 관계, 즉 그저 인간일 뿐이라는 관점에서 여성을 바라보고 살아왔는지 혹은 얼마나 그 내면의 정체성을 고려하여 상황을 판단하고 배려하며 살아왔는지에 대해 화자의 내면을 바라보면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모든 여성은 평등하게 창조되지 않았으며 구조화되지도 않는다. 나이 종교 건강 교육의 달성도 등에 따라 억압을 다르게 경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여성의 경험가치는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하며 개인의 차이에 따라 상황이 다르다는 점을 깊이 인지한다면 은연중 드러나는 여성의 겉모습에 대해 오해를 살 일이 줄어들 듯 싶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