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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 1
동현 역: 한석규
수현 역: 전도연
은희 역: 추상미
태호 역: 박용수
기철 역: 김태우
희진 역: 강민아
씬 1. 영화관 전경/밤.
평일 밤 한산한 극장 앞.
비가 내리고 있다.
극장 문을 조용히 열고 나오는 수현. 비를 보고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영화가 끝났는지 쏟아져 나오는 관객들. 사람들을 피해 옆으로 비켜서는 수현. 우산을 꺼내 쓰고 가는 사람들. 여자에게 웃옷을 벗어 씌워주는 남자. 막 담배에 불을 붙이는 동현이 나타난다. 두 사람 출입문에 나란히 서지만 한 번도 눈이 마주치지 않는다. 그대로 담배를 던지며 수현을 지나 거리로 나가는 동현. 빗줄기를 보던 수현도 결심한 듯 핸드백을 머리에 올리고 뛰기 시작한다. 두 사람이 빠져나간 공간으로 빗줄기가 뿌옇게 더욱 짙어진다.
암전 위에 MAIN TITLE.
씬 2. 타이틀 몽타주/밤.
(스튜디오)
컴퓨터 모니터 화면에 접속되었다는 안내문이 뜬다. 음악이 시작된다. ON AIR에 불이 들어와 있고 릴테입을 거는 동현의 손. 프린트 되어 나오는 신청 메시지들. 돌아가는 CD플레이어. 음향 계측판의 불빛들. (거리)
비 오는 도심의 심야. 한산한 거리와 물을 가르며 달리는 차들. 광고들이 지나가는 전광판들.
(스튜디오)
원고를 읽어보며 표시를 하는 진행자. 프린터에서 막 뽑은 신청 메시지들을 읽으면서 부스안으로 들어가는 은희. 엔지니어에게 뷰스티를 설명하고 있는 동현. PC에 올라오는 신청 메시지들.
(도시풍경)
동현의 프로가 비 오는 도심의 이곳저곳에서 라디오를 통해 들려온다. 편의점, 주유소, 신문보급소, 정차해 있는 택시 안.
(스튜디오)
부스 안에서 신청 메시지들과 큐시트를 뒤적이며 보던 진행자.
진행자: (토크벨로) 비도 오는데 뭐 찡! 한 음악 없을까요?
은희: (동현에게) 오늘은 신청곡 좀 많이 받을까요?
동현: 비하고 관계있는 것들로 골라봐.
이때 큐시트를 보던 진행자.
진행자: (놀란 듯) 오늘 20분짜리 곡 나가요?
동현이 대답 대신 그렇다는 신호를 보낸다.
동현: (엔지니어에게) 2부에 20분짜리 곡 나가니까 전 CM을 조금 빨리 보낼게요.
엔지니어: 20분……. (고개를 갸웃하며) 너무 긴데…….
(도시풍경)
달리는 차안에서 보는 듯 지나가는 도시 풍경들.
(스튜디오)
진행자 동현의 사인을 보고 있고 음악이 끝난다. 동현의 시작 사인이 떨어진다.
씬 3. 방송국 회의실/낮.
창 밖 도심의 풍경이 보인다. 블라인드 사이로 빛이 세어 들어오는 창가에 동현과 태호가 나란히 서서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하고 있다.
태호: Good News, Bad News 뭐부터 들을래?
동현: Good News도 있어요?
태호: Good News는 어제 음악선곡 완벽했다는 거고……. Bad News는 그 음악 때문에 데스크에서 이걸 잘라 말아 고심 중이라는 거지. 근데 왜 괜찮은 음악은 그렇게 기냐?
동현: 5분짜리 노래만 선곡할거면 PD가 왜 필요합니까?
태호: (걱정된다는 듯 농담처럼) 5분짜리만 선곡하라고 있는 거야! 타이밍이 안 좋았어. 요즘 심야프로가 주목받는 때잖아.
동현: 노래 한 곡이 그렇게 심각한 겁니까?
태호: (달래듯) 원래 윗사람들 이란 게 개편 때만 심각하잖니. (심각해지며) 어쩌면 이번 개편 때 없어질 수도 있어.
동현: (불평하듯) 심야프로 질 높이라면서도 청취율은 포기 못하죠. 그러니까 곡은 안들이고 시간만 재고 있는 겁니다.
화나는 동현 담배를 꺼내 문다. 흥분되는 감정을 누르고 있다. 한손에 들고 있던 라이터를 켜주며.
태호: 타협하기 싫다고 프로 없앨 거야?
불을 붙이고는 흥분을 가라앉히려는 동현, 깊이 한 모금 빤다.
동현: 장수 프로 만들려고……. 색깔을 죽일 수는 없어요.
태호: (웃으며) 그래. 나도 너만 할 땐 그랬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이번은 어떻게 넘겨보겠지만 개편 때는 반드시 문제가 될 거다. 은희가 감각이 있으니까 뭐 재밌는 코너나 좀 만들어봐.
담배를 재떨이에 눌러 끄는 태호.
씬 4. 방송국 사무실/낮.
동현 들어서면 사람들의 시선이 동현에게 집중된다. 은희가 동현을 발견하면서 말한다.
은희: (불평하듯) 그것도 안 된대요? 촌스러워 정말…….
은희 말에 별 응답 없이 들고 들어온 종이컵 커피를 내려놓고 자기자리 앞에 선다. 은희가 원고를 내민다.
은희: (동현의 눈치 살피며) 어떻게 됐어요?
동현: (원고를 받아들며) 매일 부딪치는 일이야. 신경 쓰지 마.
은희: 다음 개편 때 없어진다는 말이 있어요.
동현: (대본을 넘겨보며 태연하게) 개편 전엔 늘 그래. 왜 걱정돼?
은희: 제가 맡은 지 한 달 밖에 안됐어요. 작가한텐 좋지 못한 경력이에요.
동현: (은희를 보고는 대본을 들고 일어서면서) 자료실에 있을 거야. 진행자 오면 그쪽으로 연락해.
은희: (동현이 들으라는 듯) PD가 잘리는 경우란 없으니까…….
동현 은희를 본다. 은희 할 말을 해 놓고도……. 조금 주저하는 표정 그러다 분위기를 바꾸듯……. 동현 나가려고 하는데 은희가 동현을 막는다.
은희: 잠깐만요!
은희 자기자리 위에 놓여있던 포장된 봉투를 들고 와 내민다.
은희: 어떤 여자 분이 수위실에 맡겨놨대요. 드리면 아실 거라고 했다는 데요?
동현의 이름만 적혀있는 봉투. 뜯으면 나오는 음반. 순간 심각한 표정이 되어 음반을 뒤집어 보는 동현. 잉크가 엎질러진 자국이 있는 음반 재킷. 동현의 표정이 흔들린다.
동현: 이게 다야? 다른 거 뭐 없었어?
은희: 뭐가 더 필요해요?
고개를 저으며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는 은희. 이때 책상 유리가 스탠드 조임 쇠에서부터 쩍 갈라진다. 갈라진 가지틈새가 미세하게 퍼지는 유리.
씬 5. 도서관 앞/밤.
고여 있는 빗물을 가르고 차 한대가 선다. 차에서 급히 내려 열쇠로 차문을 잠그는 수현, 불쑥 다가선 기철이 뒤에서 수현의 어깨를 잡으며 놀래킨다.
수현: (흠칫 놀랬다가 이내 반가워하며) 엄마야! 기철씨……. 왜 그래? 놀랬잖아.
기철: 놀래라고 한거다……. 아무튼 말 되게 안 들어? 이렇게 구석진 데다 주차하면 된다니까.
수현: 알았어. 다음부터 저쪽에 댈게. 면접은 어땠어? 잘 봤어?
기철: 대충. 나야 뭐 워낙 인물이 출중하니까.
수현: (주머니며 가방을 뒤지며) 대학원은? 진짜 포기한 거야?
기철: 나 같은 날라리가 공부는 무슨……. (수현을 보더니) 뭐 찾아?
수현: (차안을 들여다보며) 가만 있어봐……. 내가 키를 어쨌지?
기철 뒤춤으로 가리며 차문에 꽂혀있는 키를 몰래 뽑아 감추는데 수현 씩 웃으며 손을 내민다.
기철: (차키를 주머니에서 꺼내는 척) 어? 이게 왜 나한테 있지? (열쇠고리도 꺼내주며) 어? 자꾸만 나오네?
수현: (열쇠고리를 보고 기뻐서) 안 그래도 하나 살려고 했어. 저번에 고쳐준 데가 또 망가져서…….
기철: 벌써 우린 딱 통하잖아.
웃는 수현. 이때 기철 멀리 누군가를 발견한 듯 손을 흔든다.
기철: 어? 저 자식 저거 또 같이 있네?
수현 보면 막 도서관 계단을 내려오는 희진이 한 남학생과 툭툭 치며 즐겁게 웃는다.
씬 6. 달리는 수현의 차/밤.
수현이 운전하고 있고 뒷자리에 기철과 나란히 앉아 있다.
기철: (희진 에게 포장꾸러미를 넘기며, 무뚝뚝하게) 자!
수현 백미러로 힐끔 돌아본다.
희진: (재채기를 하고는) 지겨워……. 이 놈의 알레르기 때문에 품위 유지가 안 되요. (꾸러미를 풀며) 이번엔 내가 말했던 거 확실해?
기철: (아직 퉁명하게) 그래!
희진 포장을 풀면 나오는 수첩과 세트로 된 손지갑.
희진: (좋아하다가) 어? 왜 열쇠고리는 없어?
기철: 열쇠고리? (슬쩍 수현을 보는데) 그게 같이 한 세튼가?
수현과 기철 백미러 안에서 눈이 마주친다. 수현 무색해지며 모르는 척 앞을 본다.
희진: 그럼 그건 안 받아 온 거야? 그거 때문에 사달라고 한 건데 빼먹고 왔단 말야?
기철: 진작 말하지. (백미러를 통해 수현을 보며) 그거 없으면 안 되나?
수현 기어를 바꾸고 속도 낸다.
씬 7. 수현의 아파트/밤.
수현 현관문을 잠근다.
희진: (소파에 엎어지는) 아후……. 죽겠다. 몸이 폭탄 맞은 거 같네.
기철: 원래 지식이란 무거운 거야. 넌 그걸 머릿속에 안 넣고 번쩍번쩍 들기만 하니까 그렇지.
수현: 피로 회복제 좀 사다 줄까?
희진: (일어서 방으로 들어가며) 됐어. 샤워하고 푹 자면 돼.
수현 얼른 열쇠고리를 꺼내 기철에게 넘긴다. 기철 됐다며 가지라는 표시. 수현 고개 저으며 준다.
기철: (소곤거리는) 미안해. 다음에 더 근사한 걸로 사줄게.
끄덕이며 미소 짓는 수현. 기철, 얼른 뒤춤에 열쇠고리를 감추고 싱글벙글 희진 방으로 들어간다. 희진과 기철이 서로 장난치며 즐거워하는 소리 문틈으로 들린다. 방문을 쳐다보던 수현, 쓸쓸한 표정이 된다. 수현, 자동차 키를 잡는다.
수현: (문 쪽을 향해) 나 나갔다 온다. 한 시간쯤 걸릴 거야!
희진: (문안에서) 또 드라이브야? (장난치는 기철을 제지하며) 가만 있어봐…….
수현: (신을 신으며) 아니 물도 떨어졌고, 문 연 데 있으면 약도 좀 사 올께.
희진 신발 옆에 놓인 기철의 신발을 보는 수현. 기철의 신발에 발을 넣어본다. 끈이 길게 풀어진 기철의 신발. 수현 발을 넣은 그대로 허리를 숙여 끈을 묶으려고 하는데.
기철: (문을 열고 나오면서) 같이 갈까?
기철이 나오자 놀랜 수현. 급히 자기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열면서.
수현: 아냐! 시험 땜에 자주 못 봤을 텐데, 놀다 가!
현관을 나서는 수현. 닫히는 현관문사이로 기철의 모습이 스친다.
씬 8. 아파트 주차장. 차 안/밤.
워셔액이 앞 유리창에 뿌려진다. 와이퍼를 천천히, 빨리, 천천히, 더 빨리 작동 시며 보다가 그만두는 수현. 한동안 생각에 잠겨 깜빡거리던 수현의 눈이 충혈 된다. 분위기를 바꾸는 수현, 라디오를 튼다. 채널을 이쪽저쪽으로 돌리던 수현. 다시 처음 채널로 돌아온다. 동현 프로그램의 음악이 시작되고 출발하는 수현의 자동차.
씬 9. 스튜디오/도로/달리는 차 안 병행/밤.
(스튜디오)
ON AIR 불이 들어와 있어 윗실의 음악이 흐르고 있다. 은희가 부스 안에서 진행자와 얘기중이다. 음반을 재킷에서 꺼내 턴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동현. 부스에서 나오면서 불만스럽게 동현을 보고 동현 뒤에 와서 앉는 은희.
은희: (조심스럽게) 오늘 꼭 틀어야 되요? LP라 튈 위험도 있고…….
멘트도 짜 맞춘 것 같아 맘에 안 드는데…….
동현: (엔지니어에게) TR 1 입니다.
(어느 차 안)
동현의 프로그램이 흐르고 있는 차안. 운전을 하고 있는 여자의 뒷모습. 백미러에 비친 여자의 눈, 핸들을 잡은 손.
진행자(radio):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습관은 기억이라고 하죠? 추억이 때론 자유로운 삶을 방해하기도 하는 데요…….
(스튜디오)
음반 재킷을 유심히 보고 있는 동현.
(수현의 차 안)
도시의 풍경이 흐르는 수현의 차체. 수현의 늘씬한 얼굴 위로 차창에 비친 도시의 불빛들이 흐른다. 라디오에선 진행자의 멘트 이어진다.
진행자(radio): 이 음악에 추억이 있으십니까? 의 입니다.
(스튜디오)
사인을 보내는 동현. 음반 위로 바늘이 내려앉고 음악 시작된다. 바늘이 레코드 위를 미끄러지듯 돌아가고 턴테이블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동현. 입에 볼펜을 물며 그런 동현을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는 은희.
(수현의 차 안)
수현의 얼굴위로 혼란스럽게 스쳐가는 도시의 불빛들. 차체를 훑는 가로등의 리듬도 점점 더 빨라진다.
(어느 차 안)
음악이 고조되고 핸들을 잡은 여자의 손이 갑자기 꺾이면서 휘청 중앙선을 넘어가는 차.
(수현의 차 안)
갑자기 맞은편에서 닥쳐오는 강한 불빛이 수현의 얼굴을 잡아먹을 듯 덮친다. 사고 음과 함께 눈을 감고 핸들을 틀며 크락션 길게 울리고 멈추는 수현의 차. 엎드린 수현. 순간 모든 것이 정지된 듯하다. 천천히 숨을 몰아쉬며 몸을 세우는 수현. 라디오에선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다. 백미러 속, 멀리 라이크가 켜진 채 뒤집혀 있는 차가 보인다. 음악이 고조되고, 순간 고개를 돌려 사고차량을 돌아보는 수현.
씬 10. 안과/낮.
기계를 통해서 보이는 수현의 눈동자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불빛이 좌우로 지나가며 눈동자를 비추고 있다. 눈이 깜빡거린다.
의사: (무성의하게) 건안증입니다. 눈물이 부족해요.
기계에서 눈을 떼는 수현. 의사 열심히 처방전을 쓰고 있다.
의사: 그래서 뻑뻑하고 아픈 거예요.
수현: 치료는 얼마나 받으면 돼요?
의사: 건안 증은 특별한 치료약이 없어요.
수현: 그럼 이건 뭐에요?
의사: (수현을 보지도 않고) 인공눈물이에요. 수시로 넣어주세요.
갑자기 눈물이 또 생기기도 하니까 기다려 봅시다.
씬 11. 가이드 사무실/낮.
벽면에 설치된 모니터 화면에 CARTS 쇼핑채널이 흐른다. 칸막이마다 헤드폰 전화와 컴퓨터에 매달려 분주한 가이드들. 그 사이로 전화를 받고 있는 수현의 모습이 보인다.
수현: 어떡하죠? 지난번에 보내신 선물이 맘에 안 드셨던 모양이에요. (말린 꽃다발을 보며) 네, 꽃도 같이 반송됐어요. (당황하며) 여보세요? (헤드폰을 가리며, 옆 직원에게) 어떡하니? 아무 말도 안 해.
여직원1: 그럼 직접 갖다 주라 그래. 내가 얘기할게……. 넘겨.
수현: (여직원에게 손을 저으며) 저, 한번만 더 보내 볼까요? (사이)
여직원1: 야, 끊어. 다른 전화나 받아!
수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자판을 치며 모니터를 넘기며 보는) 글쎄요……. 저라면 그냥 흔하지 않은 그런 선물 받고 싶어요. (모니터에 폴라로이드 카메라가 보이자 기쁜 듯) 폴라로이드카메라는 어떠세요? 특별한 선물이 될 거에요……. 누구나 한번쯤 즉석사진을 찍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네……. 맘에 드세요?……. 그럼요. 이번엔 꼭 성공할 거예요……. 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으며 한 숨 쉰다.)
여직원1: 니 일도 아닌데 뭘 그렇게 신경을 쓰니?
수현: 마음이 약한 사람이야. 내가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이 잘될지 누가 아니?
여직원1: (불쌍하다는 듯 혀를 차며) 천사병이야, 천사 병.
씬 12. 방송국 사무실/낮.
동현이 머리가 아픈지 손으로 머리를 누르고 한 손엔 종이컵에 커피를 들고 자리 앞으로 온다. 동현, 종이컵을 내려놓는데 컵이 놓여있다. 동현 순간 은희를 돌아보면.
은희: 없으신 것 같아서 샀어요.
동현: 난 필요 없어. 홍 작가가 써.
동현에게 같은 컵을 들어 보이는 은희.
은희: (건배하듯 컵을 추켜올리며) 한 팀이라면 뭔가 비슷한 게 있어야 되는 거 아녜요?
은희를 보고 책상위에 컵을 보는 동현. 브라운 색의 등산용 금속 컵이다. 담배를 꺼내 물던 동현. 책상이 깨끗하게 치워져 있고 깨진 유리도 갈아 끼워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갑자기 책꽂이와 옆에 놓여있던 박스들을 뒤적거리며 뭔가를 찾는다.
동현: 내 책상 치웠나?
불안한 동현의 모습을 지켜보던 은희.
은희: 네. 아침에 유리 갈러 왔길래……. 뭐 찾으세요?
동현: 여기 있던 음반들 어떻게 했어?
은희: 자료실에 반납했는데요.
동현: (버럭 화를 내며) 왜 시키지도 않는 일을 하고 그래!
씬 13. 자료실/낮.
빽빽이 꽂혀있는 음반들을 주르르륵 넘겨가는 동현. 동현의 어수선한 눈동자가 문득 다시 돌아와 멈춘다. 음반을 꺼내는 손. 잉크 자국의 그 음반.
씬 14. 스튜디오/낮.
은희: (음반을 보고는) 그게 거기 끼어있는 줄 몰랐어요.
동현 손엔 음반이 들려있다. 은희 뒤에 있는 컴퓨터 옆에 있던 진행자 프린트 된 신청 메시지를 들고 두 사람에게 오고 있다.
진행자: (손에 신청 메시지를 들고) 어제 그 음악 벌써 신청이 들어왔네?
순간 날카롭게 눈빛을 드는 동현.
진행자: (동현이 들고 있는 음반을 보고) 아니. 오늘 또 틀 거예요? (책 읽듯이) 너무 무성의한 선곡임. 모니터에 이렇게 오를게 뻔한데 요즘 데스크에 반항해요?
순간적으로 다가간 동현이 진행자의 손에서 메시지를 뽑아본다.
동현: (진행자에게) 하이 텔로 들어온 건가?
은희: 네.
동현을 보는 은희의 시선.
씬 15. 지하철/밤.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는 동현. 무심코 손만 가슴의 주머니를 더듬거려 메시지를 꺼낸다. 펴보는 동현. <여인2(이수현)>을 확인한다. 전철이 도착하면서 들고 있던 종이가 흔들린다. 동현 앞으로 기차가 지나가다가 선다.
씬 16. 수현 아파트/밤.
전화벨이 울리고 있고 수현이 다급하게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다. 장을 봐온 수현. 봉지들을 아무렇게나 탁자 위에 내려놓고 전화기 쪽으로 뛰어간다.
무선 전화기가 없다. 정신없이 두리번거리며 무선 전화기를 찾는 수현. 벨을 계속 울리고 다급해진 수현, 무선 전화기는 못 찾고 스피커폰 버튼을 누른다.
수현: 여보세요? 희진이니?
희진: (E) 여보세요? 야! 전화가 왜이래?
수현: 스피카 폰이야. 수화길 아무리 찾아도 없어! (수화기 찾으며 크게 소리를 친다.) 왜 안 와? 기철씨랑 같이 있어?
희진: (E) 당연하지.
수현: (이곳저곳을 뒤지며 수화기를 찾는) 초직 축하한다고 전해 줘.
희진: (E) 어? 어떻게 알았어? 잠깐만. (기철에게) 축하한대.
기철: (E) 수현이니?
수현: 축하해! 될 줄 알았어.
기철: (E) 키햐! 역시 너밖에 없다. 야! 글쎄, 발표보고 나오는데 요게 만나자마자 (흉내 내며) 떨어졌지? 그러잖아.
소파에 있는 쿠션 밑에서 수화기를 찾는다. 웃으며 수화기로 전화를 받는다.
수현: 여보세요? (사이) 응 찾았어! 언제 올 거야? 포도주도 사다놨는데? 응……. (사이) 어디 있는데 그래? (실망하는, 갑자기 힘이 좍 풀리는) 뭐? 강릉?…….
수화기를 손에 든 채 맥이 풀어지는 수현. 쓰러진 봉지 속에서 쏟아져 나온 야채들 뒤로 맥이 빠진 수현의 모습이 보인다.
씬 17. 수현집/밤.
어두운 거실. 수현은 포도주를 마시며 전화기 앞에 앉아있다. 스피커폰으로 코믹하고 재미난 음악이 짧게 이어지고 기철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기철: (E 밝고 경쾌하게) 안녕하세요, 한 기철입니다. 메시지를 남겨주시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다시 재 발신 버튼을 누르는 수현. 음악과 기철의 음성이 다시 나오고 수현의 슬픈 표정 위로 컴퓨터 전화 신호음이 들린다.
씬 18. 동현집/수현방 병행/밤.
(동현집)
노트북 앞에서 긴장하며 급하게 자판을 두드리는 동현.
<해피엔드(권동현): 이수현님이 맞습니까?>
<여인2 (이 수현): 네.>
<해피엔드(권동현): ID를 같이 쓰는 사람이 있습니까?>
<여인2 (이 수현): 가끔 친구가 빌려 쓰긴 해요.>
노트북 너머로 긴장된 동현의 얼굴.
<해피엔드(권동현): 음악신청은 누가 하신 거죠?>
<여인2 (이 수현): 제가 신청했어요. 친구와 듣고 싶어서요>
<해피엔드(권동현): 그 친구 이름이 뭐죠?>
<여인2 (이 수현): 왜요?>
<해피엔드(권동현): 아는 사람인가 해서요>
<여인2 (이 수현): 친군 음악과 관계없어요.>
가벼운 한숨이 짧게 터져 나오며 실망하는 동현. 담배를 찾아서 물고는 불을 붙이는 동현.
(수현집)
열린 방문 안에 수현의 조그만 등이 보인다. 옆에 놓인 와인 잔을 집어 드는 수현. 갑자기 떠오르는 문장.
<해피엔드(권동현); 미안합니다. 아는 사람인줄 알았어요. 그럼 이만…….>
*** 해피엔드(권동현) 님이 나가셨습니다. *** 가 수현의 모니터에 뜬다.
다급해진 수현 재빨리 자판을 친다.
<동현집>
대기실 화면이 뜨자 수현의 쪽지가 온다.
<여인2 (이 수현): 잠깐만요! 아직 친구 얘길 못 들었잖아요.>
뒤이어 뜨는 수현으로부터의 초대 메시지.
--- 여인2 (이 수현) 님이 초청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000번 방, 비밀번호:****)
다시 대화 방으로 들어가는 동현.
(수현집)
떠오르는 동현의 문장.
<해피엔드(권동현): 제가 찾는 사람이 아닌 것 같군요>
이내 빠른 속도로 자판을 내리찍는 수현의 손.
<여인2 (이 수현): 같은 사람일 수도 있어요.>
<해피엔드(권동현): 절 아는 사람인가요?>
<여인2 (이 수현): 친구가 당신 얘길 했어요……. 실은 친구 대신 음악을 신청한 거예요.>
파란 모니터 불빛을 받는 수현, 깜빡거리는 커서. 잠시 응답이 없다. 고심하는 표정.
(동현집)
급히 자판을 치는 동현.
<해피엔드(권동현): 이름이 뭐죠?>
<여인2 (이 수현): 그분은요?>
(수현집)
모니터를 보고 있던 수현의 표정이 슬퍼지고, 허둥대고, 복잡해진다.
<민 영혜> 모니터에 떠오르는 이름.
수현: (혼자말로) 영혜?
(동현집)
<여인2 (이 수현): 맞아요>
떠오르는 문장.
바쁘게 자판을 치는 동현 <지금 어딨죠? 연락할 수 있어요?>
<여인2 (이 수현): 안돼요. 우리가 통신하고 있는 걸 몰라요.>
(수현집)
<해피엔드(권동현): 영혜도 아마 날 만나보고 싶어 할 거예요.>
난감해지며 눈을 깜빡거리는 수현, 자판을 친다. 수현 입술을 달싹거린다.
(동현집)
<여인2 (이 수현): 부담스러워 할 수도 있어요.>
동현은 심각하게 자판을 친다.
동현: (Na) 영혜를 만나고 싶어요. 물어봐 줄 수 있어요?
잠시 후 모니터에 떠오른 응답 문장.
<여인2 (이 수현): 그러죠>
씬 19. 수현방/밤.
침대에 누워있는 수현. 걱정스런 수현.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젓다가 멈춘다.
수현: (이불을 확 뒤집어쓰며) 몰라!
씬 20. 실내 수영장/낮.
물속으로 뛰어 들어오는 수현과 희진. 두 사람의 얼굴이 나란히 물위로 올라왔다 내려갔다 한다. 나란히 헤엄을 치고 있는 수현과 희진.
씬 21. 락커룸/낮.
사물함의 문을 여는 희진. 문에 달린 거울을 보며 화장을 고치는 희진. 거울 너머로 수현의 모습이 보인다. 수현은 의자에 앉아 수영복과 수경을 챙겨 가방에 넣는다. 희진이 화장을 고치는데 수현은 그냥 앉아만 있다. 화장을 고치다 말고 수현에게.
희진: (심각하게) 너 무슨 일 있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희진을 올려다보는 수현.
씬 22. 백화점/낮.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수현과 희진.
수현: 그래도 내가 너무 심했어. 꽤나 그리워하던 여자 같던데.
희진: 그 사람 일부러 너한테 접근하는 거 아냐?
수현: 설마. 방송국 프로듀서야.
희진: 사이비 기자도 있는데 프로듀서라고 가짜 없겠니?
수현: (한숨을 쉬며) 어떡하지?
희진: 정 그렇게 마음에 걸리면 미안하다고 해버려. 어차피 통신인데, 누군지 알게 뭐야?
넥타이가 있는 매장이 보인다. 희진이 맘에 드는지 진열된 넥타이를 가리키면서.
희진: 야(수현을 툭치며) 그 옆에 있는 게 더 좋은데?
옆에 나란히 진열된 파란 넥타이를 가리키는 수현. 재채기하는 희진.
희진: (손수건으로 입 주위를 막으며) 기철인 파란색 안 어울려.
수현: 왜? 기철씨 파란색 좋아하잖아!
희진: (갑자기 수현을 심각하게 보면서) 니가 어떻게 그런걸 알어?
수현: (순간 당황하면서) 뭘……. 어떻게 알긴……. 그냥……. 언제 들은 것 같은데…….
점원이 두 사람을 보더니 다가와 파란 넥타이를 꺼내 보여주며.
점원: 이거 신상품이에요.
희진: (다시 넥타이를 보면서) 너무 요란해.
점원: 왜요? 이 정도면 심플한거에요. 더 화려한 것도 많이 하는데요. 뭘…….
희진: (단호하게) 아무튼 이건 안 돼. 신입사원이 너무 튀어!
수현: (얼버무리며 아쉬운) 하긴 뭐……. 튈 수도 있겠다…….
희진 이때 재채기가 나오려는지 코를 꽉 잡았다 놓으며 수현을 빼꼼히 돌아본다.
희진: (넥타이를 받아들고는 고개 갸웃거리다.) 정말 괜찮아?
희진 갑자기 넥타이를 수현에게 건네더니 손수건으로 입을 막고 재채기를 한다.
씬 23. 스튜디오/낮.
텅 빈 스튜디오에 혼자 앉아 음악을 듣고 있는 동현. 턴테이블 위에 그 음반이 돌아가고 있다. 지나가던 은희 창문을 통해 보이는 동현을 발견하고 유심히 본다. 창문을 두드리는 은희. 동현이 슬쩍 은희를 돌아본다.
씬 24. 바가 있는 술집/밤.
세 사람이 바에 나란히 앉아 있다. 태호가 동현과 은희 사이에 앉아있다. 태호는 벌써 취한 분위기다.
은희: (동현을 보며) 그럼 저 때문에 작가를 바꾸신 거예요? (태호에게) 왜 그런 말씀 안하셨어요?
태호: (농담하듯) 너무 고마워 할까봐.
은희: 프리랜서 수칙! 남 밟고 올라가지 않는다. 몰라요?
태호: 이런 작가들이 또 죽어도 안 밟혀……. 자기 짤릴 땐 더 무서워. (동현을 향해서 농담처럼) 동현아 걱정된다. 너도 헤어질 때 꽤나 고생하겠다.
은희: (동현의 눈치를 보며) 그러지 마세요. 안 그래도 저 눈 밖에 났단 말이에요.
태호: (과장해서) 아니. 은희도 무서운 사람이 있어? 나랑 일할 땐 뛰는 말이더니 이제 완전히 순한 양이네…….
은희: 그땐 아무것도 모를 때였잖아요.
태호: (웃으며) 그럼 이젠 베테랑이 된 거야?
은희: (동현의 눈치를 살피면서 애교스럽게) 그런 건 PD가 평가하는 거 아녜요?
태호: (은희와 동현을 번갈아 보며 농담처럼) 야. 둘이 사귀어? 은희 너 헤어 진지 얼마나 됐다고 자기 PD만 챙기냐? 무지 외롭네. 이거. (다시 술병을 잡으며) 내 작간 왜 남자지?
동현: 선배님 그만하시죠. 오늘 많이 드셨는데
태호: 야! (동현의 잔을 채우며) 오랜만인데 술 좀 마셔라.
은희: 권PD는 술 안 좋아 하시나 봐요? 취하지도 않으시고.
태호: 동현이랑 마시면 이상하게 나만 금방 취한단 말야. (동현에게) 옛날에도 그랬었나?
은희: 괜히 막 취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어요. (동현을 빠끔히 보며)
전 술 안 마셔도 가끔 스튜디오에서 취해요.
단번에 잔을 비우는 동현.
씬 25. 거리/밤.
택시 떠나면 둘이서 잠시 머뭇거리는 은희와 동현. 그러다 눈이 마주치자 은희만 생긋 웃는다. 무표정한 동현 때문에 머쓱하게 웃음을 지우는 은희.
동현: 운전할 수 있겠어? 많이 마신 것 같은데?
은희: 괜찮아요. 가세요. 모셔다 드릴게요.
주차장을 향해 걷는 두 사람.
동현: 아니야. 난 혼자 가는 게 편해.
은희: (동현의 눈치를 살피다가) 권PD는 친해지기 어려운 분인 거 알아요?
동현: 그래?
은희: 일 시작한지 한 달이 지났는데……. 회식 한번 안했잖아요.
동현: 그랬었나? (건성으로) 하지 뭐.
은희: 언제요?
동현: 아무 때나 시간 날 때.
은희: 개편도 얼마 안 남았는데……. 그 전에 할 수는 있는 거예요?
동현: 늘 개편을 기준으로 얘길 하는군. 개편에 왜 그렇게 민감해?
은희: 어차피 PD와 작가는 시한부 만남이잖아요.……. 하지만 늘 개편에 민감한 건 아녜요.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자신의 말뜻을 알겠냐는 듯 은희 동현을 빤히 쳐다보는.
동현: (주차장에 있는 차를 보며) 저 찬가? (분위기를 바꾸며) 오늘 수고했어. (손을 들면서) 내일 봐!
은희를 외면하고 혼자 걸어가는 동현. 은희 차문을 열다가 동현을 쳐다본다.
씬 26. 편의점안/밤.
라디오 소리가 작게 들린다. 편의점 안으로 들어서는 동현. 카운터 위에 있던 라디오의 볼륨을 약간 키우는 여점원. 진행자와 청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라디오를 유심히 듣고 있는 아가씨. 편의점 옆에 있는 주유소에서 막 떠나는 수현의 차가 보인다. 카운터에 물건을 올려놓는 동현. 바코드를 찍는 점원.
씬 27. 동현집 앞/밤.
현관으로 들어서려는 동현. 손엔 비닐봉투가 들려있다. 이때 라이트가 번쩍인다. 돌아보면 차에 은희가 타고 있다.
씬 28. 동현집/밤.
거실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레코드들을 손가락으로 쭉 따라가는 은희. 사온 물건들을 이곳저곳에 넣는 동현. 잉크가 엎질러진 레코드 재킷을 보는 은희, 슬쩍 동현을 살핀다. 냉동실에 담배를 넣는 동현. 동현은 은희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 동현에게 다가가는 은희.
동현: (다가오는 은희를 향해) 뭐 마시겠어?
은희: 맥주 있어요?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는 동현.
동현: (맥주를 내밀면서) 아직 원고에 말이 좀 넘치는 것 같아. 한 장 정도 줄여 봐!
은희: 지금 그이야기가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동현: 무슨 뜻이야?
은희: 지난번 작가와도 늘 일 얘기만 했어요?
동현: 일하다보면 그게 더 편해.
은희: 이상하군요……. 서로를 잘 알아야 그게 편한 거 아녜요?
동현: 어떻게 해야 잘 아는 거지?
은희: 얘기 안 해도 무슨 일 생기면 알아차릴 정도는 돼야죠. (설명하듯) 그래야 일하다가 서로 매려도 해주고…….
동현: (말을 막으며) 무슨 일 생기면 얘기해. 배려할 마음은 있으니까.
은희, 스쳐 지나가는 동현의 손을 슬쩍 잡는다.
은희: (자연스럽게 동현을 잡아 돌리면서) 내가 왜 왔는지 알죠? 그래서 불편한 거예요?
동현, 은희를 돌아본다. 동현과 눈이 마주치자 갑자기 안기며 키스하는 은희. 짧고 선명한 입맞춤. 은희, 부드럽게 입술을 떼고 동현을 보면서.
은희: 난 일 때문에 감정을 숨기는 여잔 아녜요.
조용히 나가는 은희.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다가 닫히는 문을 보는 동현. 탁자 위에 노트북 컴퓨터 뒤로 우두커니 서있는 동현의 모습이 보인다.
씬 29. 수현방/밤.
모니터를 바라보곤 한숨을 내쉬는 수현. 모니터엔 동현이 초대했다는 쪽지가 올라와 있다.
수현: 어떻게 하지? (망설이다가)
<저 사실은> 수현이 치고 있는데 먼저 떠오르는 문장.
<해피엔드(권동현): 물어봤어요?>
수현, 쓰던 문장을 급히 지우고 자판을 친다. <아뇨 아직>
깜박이는 커서. 잠시 응답이 없다.
갈등하는 수현, 자판을 친다. <못만 난진 알마나 됐어요?>
<해피엔드(권동현): 6년.>
<여인2 (이 수현): 사랑하던 사이였어요?>
<해피엔드(권동현): 영혜는 날 어떻게 얘기 하던가요?>
곤란한 수현 난감해 한다. 잠시 생각하던 수현 결심한 듯 문장을 친다.
<여인2 (이 수현): 저……. 만나지 않는 게 좋을 수도 있어요.>
갑자기 떠오르는 동현의 문장.
<해피엔드(권동현): 영혜가 날 피하는 건가요?>
수현, 바쁘게 대응한다.
<여인2 (이 수현): 아뇨. 그런 게 아니라……. >
<여인2 (이 수현): 너무 긴 시간이 흘렀고……. 괜히 만나서 좋은 추억을 망칠 수도 있는데…….>
떠오르는 동현의 문장.
<해피엔드(권동현): 연락처를 가르쳐 줘요, 제가 직접 물어보겠어요.>
울상이 되는 수현.
씬 30. 동현집/밤.
<여인2 (이 수현): 화내지 마세요. 나쁜 뜻은 없었어요.>
컴퓨터에 떠오르는 문장. 급히 자판을 치는 동현 <무슨 뜻이죠?>
<여인2 (이 수현): 그 분을 만나게 해드릴 수 없어요.>
<해피엔드(권동현): 연락처를 가르쳐줘요.>
<여인2 (이 수현): 몰라요.>
화가 나는 동현. 신경질적으로 자판을 두드린다.
<해피엔드(권동현): 이건 당신이 끼어들 문제가 아니에요.>
<여인2 (이 수현): 미안해요. 난 그 여자를 몰라요. 모든 게 거짓말이었어요.>
노트북을 덮어버리는 동현. 연결된 전화선을 뽑아버린다.
씬 31. 동현의 몽타주/밤.
(밤거리)
지나가는 사람들과 부딪치는 동현. 무작정 걷는 동현의 모습. 취한 동현 비틀거린다.
(대학 캠퍼스)
아무도 다니지 않는 진입로를 따라 비틀거리며 올라가는 동현.
(음대 연습실)
어두운 연습실 복도에 비틀거리며 들어선 동현.
복도를 따라 쭉 늘어선 사람들은 아무도 없는 빈 연습실을 열어보는 동현.
어디선가 작게 들려오던 피아노 소리는 점점커지고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연습하고 있는 악기 소리들이 뒤섞인다. 동현은 비틀거리면서 연습실을 방황한다. 마치 누군가를 찾는 것처럼 허둥대는 동현의 행동이 점점 더 급하고 빨라진다. 음악소리는 점점 커지고 연습실이 들러져 잇는 텅 빈 홀에 서서 연습실들을 둘러본다. 음악소리는 점점 더 커지다가 갑자기 악기들의 소리 그친다. 건물 앞 계단에 허탈하게 앉아 있는 동현.
(학교 앞거리)
불안하게 서성이는 동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본다.
(공중전화)
다이얼을 누르는 동현. 신호음이 간다. 응답기가 받는다.
은희: (응답기) 홍은 희입니다. 메모를 남겨주세요.
동현: (돋고있다가) 나야…….
은희: 여보세요.
(오피스텔 복도)
문이 열리면 들어서는 동현. 취한 동현, 비틀거린다. 의아해서 놀라는 은희.
(오피스텔)
어둠 속. 거친 숨소리 뿐. 동현의 살갗만이 희끗희끗 드러나며 은희를 감싸 안는다.
(플래시)
화면 가득 파란 잉크가 쏟아져 음반자켓 위로 스며든다. 동현의 얼굴이 격렬하게 절정의 리듬으로 흔들리다 멈춘다. 주름이 잡힌 미간에 땀방울이 빛을 받으며 흘러내린다. 그대로 은희의 가슴에 얼굴을 묻는 동현.
씬 32. 가이드 사무실/낮.
누군가 수현의 어깨를 친다. 쳐다보는 수현.
여직원1: (입구 쪽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또 왔어!
우람한 운송부 직원이 손에 반송소포를 들고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다.
수현: (모니터를 보며, 수화기에 대고) 가격이요, 십오만 이천 원인데요.
운송부: (방송소포를 소리 나게 수현의 책상에 내려놓으며) 직접 갖다 주라 그래요.
수현: (수화기를 손으로 가리며) 다시 가져오면 어떡해요? (소포를 운송부에게 안기며) 카드로 결재하실 거죠?
운송부: 아이 씨! 이거 답답하네. 정말!
수현: (전화에 급하게) 저, 제가 조금 있다 그쪽으로 전화를 드릴게요. 죄송합니다. (끊고, 운송부에게 소포를 떠맡기며 달래는) 그러지
말고 잘 좀 해주세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여자한테 일단 주고 와야 돼요!
운송부: (소포를 책상에 탁 놓으며) 안 받겠다는데 무슨 수로 줘요! 한두 번도 안고 난 못하겠으니까 당신이 알아서 해. 갖다 주든지 말든 지!(돌아간다.)
수현: (따라가며) 이봐요. 이봐요!
얼른 소포 들고 따라가는 수현. 돌아보더니 달음질치며 도망가는 운송부.
근처의 여직원들 키득거리며 본다. 돌아와 반송 품을 의자 옆 상자에 내려놓으며 한숨을 쉬는 수현. 상자 안엔 벌써 몇 개의 소포들이 놓여있다. 전화가 걸려오고 전화 받는 수현.
수현: 이 수현입니다. (반갑게) 기철씨?
씬 33. 수현 사무실 입구 엘리베이터 앞/엘리베이터 안/건물로비/낮.
서성이는 기철의 모습이 보인다. 문을 열고 바쁘게 튀어 나오다가 기철을 보고 놀라는 수현. 기철, 수현을 보고 웃는다.
수현: (반가워 어쩔 줄 몰라 하며) 아니! 언제 왔어? 밑에서 기다리는 줄 알았는데…….
기철: 놀랬지?
수현: (당황해서) 연수는 끝난 거야?
기철: (고개를 끄덕이며) 어제 왔어.
수현: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면서) 근데 여긴 웬일이야?
기철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서 수현에게 내민다. 수현은 상자와 기철을 번갈아 보면서 멍하다.
기철: 뭐해? (수현 손에 쥐어주면서) 자! 받아. 팔 떨어지겠다.
수현: 아니. 이게 뭐야? (상자를 푼다.)
기철: 지난번에 미안했어.
상자 안에서 작은 열쇠고리라 나온다.
수현: (열쇠고리를 본다.) 어머.
기철: 맘에 들어?
수현: (고개를 끄덕이며) 고마워.
감격스러워 어쩔 줄 모르는 수현.
기철: 오늘 저녁에 시간 있어?
수현: (순간 당황하며) 왜?
기철: 희진이랑 저녁 먹기로 했는데 같이 와.
수현: (실망하는 빛으로 시선을 피하며) 아냐, 난 빠질래. 오랜만에 만났는데 둘이 먹어.
기철: 아냐 오늘은 같이 있어야 돼. 중요한 일이 있거든.
수현: 중요한 일?
기철: (싱글거리며) 응 그런 일이 있어.
수현 기철과 눈이 마주치자 갑자기 시선을 피해 엘리베이터 숫자판을 본다.
(왜 이렇게 안 오는 건가?) 기철 수현을 보다가 같이 숫자판을 본다. 갑자기 서먹해진 분위기. 수현은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하다가 기철의 넥타이를 발견 한다. 수현이 골라준 넥타이다. 수현은 어색한 분위기를 참지 못하고 말을 돌린다.
수현: (넥타이를 가리키며) 넥타이 좋은데?
기철: (넥타이를 만지며) 그래? 희진이 선물이야. (불평하듯) 솔직히 맘에 든 건 이게 처음이다. 야!
수현: 마음에 들어?
기철: (끄덕이며) 난 원래 푸른 계열을 좋아하거든.
기철의 넥타이가 삐뚤어져 있다. 무심코 넥타이를 고쳐주려고 손을 가져가다가 자신도 놀래서 재빨리 손을 내린다.
수현: 근데 틀어졌다.
기철: 그래?
기철 엘리베이터 문에 비춰보며 고쳐보는데 잘 안 된다.
기철: (웃으며) 야 이것 때문에 아침 내내 고생했는데 왜 이렇게 안 돼냐?
땡!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아무도 없는 엘리베이터에 두 사람만 탄다. 결국 포기했는지 죽 풀어버린다.
기철: 이거 참…….
수현: (풀어버리는 기철을 보고) 아니 어떡하려고 풀어?
기철: 화장실 가서 다시 매지 뭐. (넥타이를 들어 보이며) 맬 줄 아니?
수현: (고개를 끄덕이며) 응. 하지만 잘 못해.
기철: 야! 잘됐다. 한 번 매주라.(넥타이를 목에 걸며) 나보단 나을 거 아냐.
수현: (놀란 듯 주위를 둘러보며) 여기서?
기철: 어때? 빨리.
수현, 망설이며 숫자판을 보고는 넥타이를 잡고 매기 시작한다. 수현의 손놀림이 불안하다. 잘 안 되는 수현. 침착 하려고 애쓰는데 그때 땡! 하면서 엘리베이터가 선다. 당황하는 수현. 문이 열리고 커다란 책상(사무실 가구-파티션 같은 것들 이어도 좋다.)을 옮기는 사람들이 탄다. 사람들이 두 사람을 이상한 듯 쳐다보며 탄다. 수현과 기철은 한 구석으로 몰린다. 기철은 당황해 하지만 금방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수현을 본다. 기철과 마주보고 밀착해 있던 수현은 그만두지도 못하고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계속 매고 있다. 수현은 얼굴이 붉어져 있고 기철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한다. 기철도 수현의 태도 때문에 어색해지면서 수현의 시선을 피한다. 수현, 넥타이를 쭉 밀어 올려 단정하게 매준다. 자세를 돌려 앞을 향해 서려고 하는데 잘 안 된다. 기철도 점점 당황해하면서 수현의 표정을 살핀다. 사람들은 수현과 기철을 의식하며 힐끔 거린다.
기철: (어색함을 피하려고 수현에게 속삭이듯) 희진이 샴푸냄새랑 똑같네!
수현 어색하게 웃으며 상황을 넘겨보려고 한다. 땡!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내린다. 먼저 내리는 수현. 기철은 수현의 보고 있다가 따라 내리다. 괜히 자신의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당황한 표정의 수현,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수현: (기철을 돌아보며) 커피 마실래? 참, 점심 먹었어?
기철: (같이 얼버 부리며) 아냐. 지나가다 들린 거야. 빨리 가야돼. (어색하게 웃는다.) 이따가 헤븐에서 보자.
수현: (기철의 시선을 피하며) 아니. 난 빠질래…….
기철: (말을 막으며) 꼭 와야 돼. (뒤로 물러서면서) 올라가. (돌아서면서 다짐받듯) 퇴근하고 바로 와 기다릴게. (넥타이를 들어 보이며) 고마워!
수현은 멀어지는 기철을 보고만 있다. 기철은 손을 흔들면서 문을 빠져나간다. 기철의 행동도 평소보다 과장되어 있다.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난감한 수현, 표정이 심각하다. 주머니에서 열쇠고리를 꺼내보는데 툭! 수현 어깨를 치면서 매달리는 여직원1.
여직원1: (흥분해서) 누구야? 애인? 야-(문밖을 보면서 장난스럽게) 천사 애인이면 최소한 왕자겠다?
씬 34. 스튜디오/낮.
진행자 멘트 끝난다. 음악이 시작되자 동현에게 토크벨로 이야기하는 진행자.
진행자: 거기, 청취자 둘! 오늘 왜 그래요? 분위기가 삭막하니까. 원고를 자꾸 씹잖아요.
동현의 표정이 굳어있고 은희 그런 동현을 어색하게 보고 있다. 스튜디오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태호.
씬 35. 지하 주차장/저녁.
은희 옆에 동현이 어색하게 선다.
은희: 난 오해하고 싶지 않아요. 어떤 감정인지 확실히 얘기해줘요.
동현: 감정이 있어서 간 건 아냐.
은희: 그럼 왜 날 찾아온 거죠?
동현: 그냥 은희가 생각났어.
동현을 보면서 아무 말 없이 듣고 있는 은희. 잠시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흐른다. 은희, 잠시 생각하더니 이해할 수 있다는 식으로.
은희: 부담가질 필요 없어요. (어쩔 수 없다는 듯) 나도 가끔은 누군가 찾아가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
동현이 은희를 본다. 은희는 동현의 시선을 피하면서 차문을 연다.
은희: 타세요.
동현: 아냐. 괜찮아.
은희: 혼자 운전하기 싫어서 그래요.
차에 타는 동현.
씬 36. 레게바/밤.
기철과 희진을 마주하고 혼자 앉아있는 수현. 기철과 희진은 서로를 보며 무언가 재미있게 얘길하고 있고 수현도 기철을 보고 있지만 의식적으로 기철의 시선을 피하고 있다. 희진과 눈이 마주치는 수현 어색하게 미소를 지어 보인다. 기철의 얘기에 세 사람 모두 큰소리로 웃는데 삐삐가 울리고 희진 삐삐를 받는다. 디자인이 독특한 빨간 삐삐다.
기철: 어떤 놈이야? 나 만나고 있는데, 이 시각에 누가 삐삐쳐?
희진: (일어나며, 폼 재며) 너 아니어도 인기 많아, 나.
전화 부스 쪽으로 가는 희진을 돌아보는 기철. 수현, 잠시 할 말이 없어 어색해진다. 기철도 어색해진다. 술을 한 모금 마시는 기철. 수현, 애써 태연한 척 기철에게 말을 건넨다.
수현: 근데 아까 얘기한 중요한 일이 뭐야?
기철, 수현의 말 때문에 생각났다는 듯 희진을 힐끔 돌아보고는.
기철: 실은 말야 (수현에게 다가오며) 오늘 희진 이한테 청혼할 생각인데, 계집애가 워낙 까다롭잖아.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
수현, 순간 표정이 굳어지면서 어색하게 미소 짓는다.
씬 37. 레코드 점/밤.
거칠게 CD를 죽죽 넘기는 수현. 찾는 게 없는듯 계산대로 와서.
수현: (수현이 신청했던) 좀 찾아주세요!
점원,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다른 점원에게로 간다. 우울한 표정의 수현. 문득 진열대 뒤편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보인다.
씬 38. 수현집 거실/밤.
긴 거울 속에 비치는 수현. 미니 원피스를 입은 채 컴퓨터 앞에서 자판을 부서져라 빠르게 두드려 대는 수현. 모니터 위에 쳐있는 수현의 글들이 짜깁기한 듯 짧게 부분부분 강조되어 불안하게 보여진다.
<난 지금 벌을 받고 있어요.>
<당신에게 거짓말을 한 댓가겠죠.>
<미안해요. 이건 진심이에요.>
자판을 치고 있는 수현의 손.
<그 음반을 찾지 못했어요.>
충혈된 수현의 눈. 간절한 수현의 표정.
<그 음악이 듣고 싶어요. 부탁이에요.>
자판을 멈추고 안약을 넣는 수현.
*** 전송하시겠습니까?(Y/N) ***
자판을 치는 수현.
*** 발신되었습니다. ***
모니터 위에 안내 메시지 뜬다. 수현은 가까운 탁자위에 걸쳐 앉는다. 하니힐을 벗어드는 수현. 입고 있는 옷에는 상표가 그대로 달랑거리고, 발밑엔 여기저기 널린 미니스커트들이 보인다. 라디오에선 음악이 낮게 흐르고 있는데 초인종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시큰둥하게 나가는 수현.
수현: (문을 열며) 희진이니?
문이 열리면 거칠게 튀어 들어오는 희진. 뒤이어 기철이 따라 들어오며.
기철: 책은 보기만 해도 지긋지긋하다고 했잖아?
희진: 그렇다고 내가 언제 도서관 관둔다고 한적 있어?
놀래서 치마기장을 내리며 널려있는 스커트들을 집어 들고 허둥지둥 방으로 들어가는 수현. 얼른 치마를 벗고 바지를 찾아 입는다. 덜 닫힌 문틈으로 희진과 기철의 싸우는 소리 들려온다.
기철: (E) 가자. 5년만 있다가 올라오면 돼.
희진: (E) 이건 그런 문제가 아니야. (밀고 당기는) 놔! 싫어, 만지지 마.
화병 깨지는 소리, 수현 놀래서 문틈을 들여다본다.
희진: 난 그런 촌구석엔 안가.
기철: 울산이 왜 촌이니? 거기에도 도서관 있어!
희진: 거기서 날 받아준대? 그러고 다시 올라오면 누가 떡하니 자리 비워줘? 도서관이 그렇게 만만한덴 줄 알어?
갈아입는 바지 지퍼가 걸려서 올라가지 않는다. 돌아서서 지퍼에 힘을 주는 수현.
기철: (E) 나한테 대학원 포기하고 취직하라고 한 게 누구야?
희진: (E) 취직하라 그랬지, 누가 울산 가랬어?
가까이에 널려있던 폴라니트를 집어 입으려는 수현. 폴라목 부분이 잘 들어가지 않아 고생하는 수현.
기철: 연구소가 공장에 있는 걸 어떡해! (명령조) 네가 관둬. 난 관둘 수 없어.
희진: 넌 항상 그런 식이야! 뭐든지 니 맘대로였어. (삐삐를 던지며) 우린 처음부터 안 맞았어!
겨우 머리를 빼내고 제대로 입었는데 갑자기 밖이 조용하다. 허둥대며 스카트들을 옷장에 쑤셔 넣는다.
기철: 솔직히 말해. 울산에 가기 싫다는 거야? 나하고 결혼하기 싫다는 거야?
희진: 맘대로 생각해.
꽝 닫히는 희진의 방문소리. 수현 놀래서 돌아본다. 튀어나가는 수현. 희진은 없고, 기철 빨간 삐삐를 주워들고 나간다. 닫히는 현관 문. 댕그마니 서서 희진 방과 현관문을 번갈아 보는 수현.
씬 39. 동현집/밤.
노트북 모니터 위에 떠있는 수현의 메일. 자판을 치는 동현. 떠오르는 안내문 <메일을 보관하시겠습니까?> 삭제버튼을 누르는 동현.
씬 40. 중고 레코드 가게/낮.
수현이 좁고 긴 계단을 따라 올라와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어색하게 주변을 들러보는 수현. 궁금하고 관심 있는 표정. 수현, 음반을 넘기며 보고 있는데 민영이 다가간다.
민영: 찾으시는 거 있으세요?
수현: 네. 저 혹시, ***** 음반 있어요?
민영: (잠시 생각하더니) 그건 구하기 힘든 거라 지금은 없네요. 꼭 필요 하시면 연락처를 주세요. 구하면 연락드리죠.
수현: (실망한 표정) 아녜요. 괜찮습니다. 또 오죠.
수현, 다시 계단을 내려가는데 동현이 아래에서 올라온다. 두 사람은 계단의 중간부분에서 스친다. 좁은 계단이라 서로 몸을 틀어 비켜준다. 끝까지 내려간 수현, 올라가고 있는 동현을 한 번 돌아본다. 동현이 가게 안으로 들어선다.
민영: 야! 권동현!
동현: (민영을 보고 어색하게 웃으며) 장산 잘 되냐?
민영: 웬일이냐?
동현: 지나가는 길에 들렸어, 얼굴이나 볼까하고…….
민영: 이젠 동창회에도 나오고 해라.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동현: (씁쓸하게 웃으며) 사실 너 말곤 별로 보고 싶지가 않다.
민영: (동현의 어깨를 툭 치며) 짜식! 정말 오랜만이다. 뭐 마실래? 커피 줄까?
동현: 그래.
커피를 타느라 분주한 민영. 오래된 레코드들을 뒤적이는 동현.
민영: (사이사이 동현을 보면서 농담처럼) 너 설마 아직 상우선배 일 때문에 그러는 거 아니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대꾸하지 않는 동현에게 커피를 건네는 민영. 커피를
받아 마시는 동현.
민영: (설득하듯) 야! 이젠 잊어버려. 아무도 너 때문이라고 생각 안 해. 군에선 그런 사고 얼마든지 있을 수 있잖아.
동현: 민영아! (민영의 말을 막으면서) 혹시……. 영혜 소식 들은 적 없어?
민영: 영혜선배? (동현의 눈치를 살피며) 아니.
동현: 영혜한테서 음반이 왔어.
민영: (순간 놀라는 표정을 감추며)……. 그냥 잊어버려……. 자길 잊으란 얘긴지도 모르잖아.
동현: 아니야, 불길한 느낌이 들어.
민영: 영혜선배는 선택을 한 거야. 그래서 떠난거고……. (타이르듯) 그렇게 생각해.
씬 41. 방송국 사무실/낮.
여직원이 동현에게 소포꾸러미들을 전달한다. 소포들을 이것저것 살펴보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전화를 받는 동현.
은희: 제 마음이 전달되길 바래요. 이 수 현(혹은 수현의 ID)
수화기를 든 동현의 시선이 사무실을 한 바퀴 둘러보고 은희에게로 향한다.
은희: (동현을 보며) 방송용 팩스는 아니죠? 누구에요?
전화를 끊고 들고 있던 소포에서 수현의 이름을 확인하는 동현.
씬 42. 동현집/밤.
포장지를 뜯어내자 바닥으로 주르륵 흩어지는 몇 장의 사진. 상잔엔 폴라로이드 카메라가 들어있다. 작은 사진 속에 찍혀있는 수현의 편지들.
수현: (Na) 언젠가 당신 같은 남자를 본적이 있어요.
씬 43. 수현집/낮.
수현이 무언가를 정성스럽게 쓰고 있다.
수현: (Na)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한 남자가 나를 불렀어요. 막 제대를 했는지 짧은 머리였어요. 자기가 아는 여자와 너무 닮아서 착각을 했다고 하더군요.
사과 편지를 쓰고 있는 수현.
수현: (Na) 그리고는 한참 걸었는데 그 남자가 나를 따라왔어요. 한번만 더 얼굴을 보고 싶다며 잠시 동안 내 얼굴을 들여다봤어요.
자신이 쓴 엽서들을 벽에 붙이는 수현.
수현: (Na) 허탈하게 돌아서는 그 사람이 자꾸 떠올라서 그날 밤은 늦게까지 잠을 못 잤어요. 당신이 그 남자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찍으려는 수현.
수현: (Na) 변명 같지만 그날 전 당신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어요. 그뿐이에요. 미안해요.
터지는 카메라 후레쉬.
씬 44. 수현방/동현집 병행.
(동현방)
<미. 안. 해. 요>가 찍혀있는 사진과 수현의 편지가 찍힌 사진들이 벽에 붙어있다.
동현: (Na) 사과하려고 애쓰지 말아요.
동현은 노트북 앞에서 통신을 한다.
동현: (Na) 누군지도 모르는데 사과하는 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수현: (Na)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만나게 될지 모르잖아요.
(수현집)
자신의 모습을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이 붙어있는 컴퓨터 앞에서 동현과 통신하고 있는 수현.
동현: (Na) 왜 그 음악을 듣고 싶어 하죠?
수현: (Na) 글쎄요. 설명하긴 힘든데…….
씬 45. 사고 현장 몽타주/밤.
차에서 내리는 수현. 멀리 뒤집어져 있는 자동차가 보이고 근처의 사람들이 둘러있다. 응급차가 수현 앞을 지나 사라진다.
수현: (Na) 순간 불행이 나를 비껴가는 걸 느꼈어요. 그 후론 자꾸 그 음악이 듣고 싶어져요.
씬 46. 수현/동현 병행.
(수현방)
자판을 치면서 모니터에 열중하고 있는 수현.
수현: (Na) 혹시……. 그분 만나셨어요?
동현: (Na) 아뇨.
수현: (Na) 그 음악에 대한 특별한 사연이라도 있어요?
동현: (Na) 그 얘긴 그만합시다.
(동현집)
몸을 일으키는 동현. 다 마신 캔을 구겨 쓰레기봉투에 던져 넣고 다시 몸을 일으켜 냉장고 쪽으로 간다.
수현: (Na) 우린 서로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죠? 전 전화로 물건을 팔아요.
동현: (Na) 어떤걸. 팔죠?
수현: (Na) 백화점을 상상하시면 돼요. 모든 물건이 다 있어요.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오는 동현.
동현: (Na) 당신은 상품을 팔고 난 음악을 팔고……. 비슷한 데가 있군요.
수현: (Na) 혹시 술 마셨어요?
들고 있는 맥주 캔을 보는 동현.
동현: (Na) 어떻게 알았어요?
(수현집)
잠옷 바람에 머리띠를 풀고 빗질을 하면서 컴퓨터를 치고 있는 수현.
수현: (Na) 직업병이죠. 목소리만 듣고도 어떤 상탠지 알거든요. 도사가 되면 글자에서도 냄새가 나요.
동현: (Na) …….
(동현집)
노트북 앞에 앉아있는 동현. 책상 옆에 쌓여있는 책들이 보인다.
수현: (Na) 처음에 ID를 보고 특이하단 생각을 했었어요. 왜 그런 ID를 쓴 거죠? 특별한 이유라도 있어요.
맨 위에 올라와 있는 책표지에 쓰여 있는 부제목이 보인다.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동현: (Na) 아뇨. 우연히 어느 책 표지에서 봤는데……. 그냥……. 현실엔 존재하지 않는 단어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수현집)
자판치는 것을 멈추고 모니터를 보면서 잠시 생각하는 수현. 모니터 위에 동현ID(해피엔드)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단어>라는 글귀를 번갈아 보는 수현.
동현: (Na) 그쪽 ID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까?
동현의 질문에 생각에서 빠져나온 듯 표정을 가다듬으며.
수현: (Na) 유일한 별명이에요.
동현: (Na) 특이한 별명이군요.
(동현집)
노트북 화면을 주시하고 있는 동현. 수현의 글이 떠오른다.
수현: (Na) 학교 다닐 때 잠깐 연극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생긴 별명이었어요. 제가 맡은 배역이 여인2 이었거든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지나가는 여인1, 여인2……. 갑자기 그때 생각이 나서 그냥 썼어요.
동현: (Na) 연극을 좋아하나 보죠?
수현: (Na) 아뇨 그런 건 아녜요. 연극보단 영화를 좋아해요.
(수현집)
베란다 문을 열고 나오는 수현. 창밖을 보는 수현. 검은 창 위에 수현의 얼굴이 비친다. 한적한 도로를 달려가는 차들이 보인다.
수현: (Na 조심스럽게) 저……. 찾고 있는 그분말예요. 아마 만나게 될 거에요. 어느 쪽이든 애타게 찾고 있다는 건 인연이라는 증거거든요. 만나야 될 사람들은 반드시 만난다고 들었어요.
(동현집)
창문을 열고 난간에 야경을 내려다보는 동현. ****의 *****(수현이 신청했던 음악)가 흐르고 있다.
수현: (Na) 전 그걸 믿어요.
동현: (Na) 끝내 어긋나는 만남도 있어요.……. 하지만 나도 그 말을 믿고 싶군요.
씬 47. 음악 몽타주
음악을 배경으로 동현과 수현의 상황이 몽타주 된다.
(스튜디오)
턴테이블이 돌아가고 있고 동현이 그 음악을 방송하고 있다.
(수현집)
돌아가는 카세트 테이프. 음악을 녹음하고 있는 수현.
(방송국 복도)
동현이 CD박스를 안고 사무실로 들어가다가 문을 열고 나오던 은희와 마주친다. 굳은 표정의 은희, 동현의 시선을 피하며 엘리베이터를 향해간다. 은희를 보고 있는 동현.
(수현집 앞 주차장)
차안에서 기철이 차를 몰고 거칠게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는 수현.
(수현집)
반쯤 열려있는 희진 방문을 보는 수현. 문을 닫으면서 수현과 눈이 마주치는 굳은 표정의 희진, 수현의 시선을 피하며 문을 닫는다.
(동현집)
벽에 기댄 채 바닥에 앉아 음악을 듣고 있는 동현.
(수현집)
잠들지 못하는 수현. 뒤척인다.
(동현집)
동현이 아파트 문을 열자 복도 벽에 은희가 기대어 서있다. 지친 표정으로 동현을 보는 은희. 은희를 보고 갈등하던 동현, 문을 활짝 연다. 들어서는 은희, 문이 닫힌다. 음악이 끝난다.
씬 48. 국내선 공항/낮.
비행기 보딩순서를 알리는 자막들이 차례로 변한다. 공항 로비에 수현과 기철이 서성이고 있다. 둘은 돌아서서 누군가를 찾는 것처럼 둘러보고 있다.
기철: (애써 미소 지으며) 뭐 하러 나왔냐? 외국 가는 것도 아닌데.
수현: 막혀서 늦나봐. 나도 1시간 넘게 걸렸어.
기철: 기다리는 거 아냔 마.
가볍게 웃지만 씁쓸해지는 기철의 표정을 보는 수현. 이때 탑승을 촉구하는 안내방송이 흐른다.
기철: (삐삐를 내밀며) 자…….
수현: (슬퍼지는) 오면 전해줄게.
기철: (수현을 바라보며 고맙다는 표정으로) 아니. 대신 버려줘.
짐을 챙겨 도는 기철.
수현: (다급하게) 올라오면 연락해!
기철: (수현을 보지도 못하고) 이젠 안 올 거야.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수현 앞을 지나 입구로 향해가는 기철. 뭔가 말하려고 하던 수현 말을 못하고 애처롭게 기철의 뒷모습만 보고 있다가 시선이 떨어진다.
씬 49. 유흥가 거리의 수현 차 안/밤.
취한 희진이 남자의 부축을 받으며 수현의 차에 탄다. 수현과 남자가 어색하게 인사를 한다. 남자에게 잘 가라고 손을 흔드는 희진. 수현의 스커트를 입고 있다. 수현 운전석에 타는데, 희진은 취해서 기분 좋게 웃는다. 남자도 손을 흔든다.
희진: (수현을 향해) 쟤 어때? 귀엽지?
수현은 대꾸도 없이 차를 출발시킨다. 운전을 하는 수현을 보고 있던 희진.
희진: 너 꼭 택시기사 같다.
수현: (무뚝뚝하게 속력을 내며) 벨트나 매. 넘어지겠다.
희진: (벨트를 매면서) 잘 갔지?
수현: (슬쩍 희진을 보면서) 응.
앞을 보고 있던 희진 슬픈 표정으로 변하더니 갑자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운다. 희진을 보는 수현 천천히 도로변에 세운다. 수현은 주머니에서 삐삐를 꺼내려 하는데, 이때 멜로디 삐삐 음이 울린다. 수현 당황하는데 희진 가방을 뒤져 새 삐삐를 꺼내 번호를 확인하고는 다시 집어넣는다.
수현: (Na) 전 눈물이 안나요.
다시 출발하는 수현의 차.
씬 50. 주차장/밤.
취한 희진이 잠들어있고 수현이 시동을 끈다. 안약을 꺼내 넣는 수현. 흐르는 눈물을 씩씩하게 닦는다.
수현: (Na) 눈물이 안 나니까 웬만한 일에는 끄떡도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