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주의 춘천 이야기17
한국 최초로 원두커피를 보낸 이디오피아 왕의 외교 배낭
<이디오피아와 한국의 인연>
커피의 나라 이디오피아(Ethiopia)는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으로 들린다. 아마도 공지천 다리 옆에 있던 이디오피아탑 때문이 아닐까. 공지천은 춘천버스터미널이 가까이 있는 터라 많은 이동인구가 찾았다. 놀 장소가 마땅치 않던 시절이라, 공지천은 춘천사람들도 자주 가서 낚시며 레저활동을 즐겼다. 바로 그곳에 보기 드물게 우뚝 서 있는 세련된 탑이 있었으니, 이디오피아탑이었다. 그때만 해도 이디오피아는 생소했다. 어쩌면 지금도 낯선 나라의 이름일지 모른다. 그 당시 공지천을 찾은 사람들은 누구나 이디오피아탑을 배경으로 사진 한 장은 찍었다. 마치 ‘나 춘천에 있는 유명 관광지 공지천을 다녀왔다’는 표식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디오피아는 6.25한국전쟁 때 황제의 근위병 6,057명을 보낸 나라이다. 이디오피아의 황제 근위병은 낯선 코리아에 와서 용감하게 싸웠다. 그들이 전투한 지역은 현재 미수복지구인 양구군 문등리만 탈환하지 못하였고, 모두 승리했다. 참전국 중에서 가장 전공을 많이 세운 군인들이었다.
<전쟁고아와 보화고아원>
이디오피아의 황제 근위병은 1965년 고향으로 돌아갈 때까지 춘천에서 우리나라 방위를 담당했다. 그러면서 당시 전쟁고아를 모아서 보살피는 일도 했다. 보화고아원이란 이름으로 수많은 고아를 보살폈다. 1954년 당시 보화고아원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아이들의 표정이 어둡지 않다. 아이들이 입은 옷가지도 깨끗하다. 정말 유치원 이름 마냥 전쟁고아들을 보물처럼 사랑했던 것 같다. 그 유치원생이 커서 우리나라 건설에 앞장섰으며, 훌륭한 가정을 이루며 살았을 것이다.
<이디오피아탑과 이디오피아벳>
춘천사람들은 이디오피아 황제 근위병의 노고를 잊지 않았다. 전쟁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간 뒤에도 이디오피아 군인들 이야기를 두고두고 했다. 이에 1968년 춘천사람들은 공지천 다리 옆에 이디오피아탑[이디오피아참전기념탑]을 근사하게 세웠다. 그리고 이디오피아탑 제막식을 할 때 이디오피아 황제가 직접 참여했다. 당시 황제가 머물 곳이 없어서 야외에 텐트를 치고 이디오피아에서 가져온 의자를 놓고 앉았다. 그 장소가 현재 이디오피아집[기념관]이다. 이디오피아 황제가 앉았던 자리는 이디오피아인들의 성지(聖地)가 되었다. 이디오피아인들이 우리나라를 찾으면 꼭 이곳에 들린다고 한다. 그 당시 의자며 갖가지 물건들이 아직도 보관되어 있다.
이디오피아 황제는 황제의 물건들을 보관한 데 대해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서 1968년 11월 25일 ‘이디오피아 벳(집)’이라는 기념관의 명칭을 내렸고, 외교행낭으로 이디오피아 커피를 보내왔다. 어쩌면 우리나라 최초로 아프리카에서 보내온 원두커피였을 것이다. 이후 이디오피아가 1974년 공산화되면서 한동안 교류가 끊어졌다.
그러나 우리는 이디오피아를 잊지 않았다. 1974년 1월 26일부터 27일까지 공지천 얼음 위에서 제1회 이디오피아황제배 시도대항 빙상경기가 대한빙상연맹의 주관으로 열리기도 했다. 공지천길은 ‘이디오피아길’로 명명되었고, 공지천 옆에는 이디오피아한국전참전기념관이 건립되어 항시 개방되고 있다. 평화를 바라는 모두의 염원처럼 우리나라와 이디오피아의 관계도 계속되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