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 불가 / 곽주현
“와, 할아버지 오셨다.” 아파트 문이 열리자 달려와 안기며 반갑게 맞이한다. 엊그제 봤지만, 이러니 자주 들르게 된다. 내 집에 있으면 자꾸 그들이 아른거려 발길이 저절로 이곳으로 향한다고 말해야 맞을 것 같다. 이달(시월)은 쉬는 날이 많아 보는 때가 듬성듬성해서 더 각별해진다. 손자 놈이 갑자기 주먹으로 내 배를 툭 치고는 “할아버지는 못난이.”라고 외치더니 깔깔거리며 도망간다. 태권도 학원에 다니고 있어 그런지 충격이 좀 있다. 아픈 것은 놔두고 ‘못난이’라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초등학교 1학년인 손자와 2학년인 손녀가 가끔 장난을 치며 그렇게 놀리곤 한다. 애들이 장난으로 하는 말이라 웃고 말지만, 반복해서 그러면 조금 싫은 생각도 든다. 어른을 그렇게 놀리면 안 된다고 눈을 부릅뜨고 얼굴 근육을 최대한 긴장시켜 아이들을 붙잡고 훈계를 한다. 그래도 그때뿐이고 심심하다 싶으면 또 그런 말을 내뱉고는 얼른 그들 방으로 숨는다. 이 녀석들이 귀여워서 오냐오냐했더니 못할 말이 없다.
그렇게 나를 놀리는 것은 그들대로 이유가 있다. 손녀가 자기 아빠만 보면 반가워서 어쩔 줄 모른다. 퇴근하고 들어오면 껴안고 덩실거리다가 손을 잡았다 놓았다 하고 뽀뽀까지 해야 좀 수그러든다. 그래도 성에 안 차는지 얼굴을 쓰다듬으며 ‘내 꽃미남, 꽃미남’을 연발한다. 저리도 좋을까. 그저 바라만 본다. 말이 없는 사위 얼굴에 불그레한 꽃 빛이 번진다. 덩달아 손자도 함께 붙어서 셋이 껴안고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나도 저런 때가 있었나?’ 기억이 안개 속이다.
알콩달콩한 시간을 풀고 아이 아빠가 샤워실로 들어간다. 이때다 싶어 “아이고 너희 아빠, 못생겼어. 민광(사위) 씨가 미남이면 세상 남자는 미남 아닌 사람 한 사람도 없겠다.”라고 했다.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두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다. 서러운 눈빛으로 한참 동안 나를 쳐다본다. 더 놀려 주려고 “할아버지가 몇 배나 더 잘 생겼는데, 그것도 못 알아보는 너는 눈이 나쁜가 보다.”라고 한 마디 더했다. 드디어 터져 버렸다. 분을 참지 못하고 애고대고 울어 대며 어쩔 줄을 모른다. 이렇게 장난이 지나쳐서 가끔 손주들을 이렇게 울리곤 한다. 매번 아내에게 핀잔을 듣지만, 하도 귀여워서 그런다고 말하며 얼렁뚱땅 넘긴다.
10여 분이 지나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두 놈이 신나게 장난감을 조림하며 서로 무어라고 속닥거린다. 아이들의 세계는 이렇게 단순해서 좋다. 울려서 짠한 마음이 들어 ‘아까는 놀려서 미안해.’하며 꼭 안아 준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못생겼다는 것을 정말 모르는 거야?”하고 묻는다. 자기 아빠는 얼굴이 반들반들하고 눈도 동그래서 예쁜데 할아버지는 쭈글쭈글하고 눈꺼풀도 축 늘어져서 늘 눈을 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단다. 그래서 ‘못난이가 맞다.’라고 결정타를 날린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는 심심하면 그렇게 부르며 장난을 건다. 할머니가 듣고는 할아버지도 젊었을 때는 괜찮은 얼굴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어른에게 그렇게 말하는 건 버릇없는 짓이라고 타이른다. 기왕 거드는 김에 왕년에는 아주 미남이었다고 해주면 더 좋으련만 설명이 좀 인색하다.
작년 이맘때쯤이었다. 미술학원으로 애들을 데리러 갔다. 선생님이 배웅하며 손자에게서 좀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며 웃는다. 무슨 말이냐고 물었지만, 별거 아니라고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며 얼버무린다. 집으로 오면서 ‘선생님에게 무슨 말했냐?’고 물어보니 창 너머로 내가 보여서 ‘우리 못난이 할아버지 오셨어요.’라고 알렸다 한다. 그러고는 손자가 잡았던 손을 빼고 도망간다. 그러니까 자기끼리는 이미 나를 ‘못난이’로 점찍어 버렸다는 거다.
사람이 늙으면 피부에 영양분과 수분을 충분히 품지 못하여 주름이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해도 못 알아들을 것 같아 할아버지처럼 나이가 많으면 누구나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대충 말하고 넘겼다.
‘이놈들아, 비교할 것을 비교해야지, 네 아빠와 할아버지 얼굴을 견주면 되겠니. 그래, 민광 씨가 이 세상에서 제일 미남이다.’
그런데 자꾸 높은 가을 하늘에 둥실 떠가는 뭉게구름에 눈길이 머문다.
첫댓글 선생님도 완전 미남이셨을 것 같아요.
하늘 쳐다 보지 마시고
예전 사진 딱 보여 주세요.
선생님 글은 언제 읽어도 재미나요. 찰져요. 그래서 좋아요. 손자들과의 행복한 일상이 보입니다.
줌 수업할 때 뵌 선생님은 아직 나이든 할아버지 모습이 아니었어요. 손자, 손녀가 좀더 나이들면 할아버지가 농담으로 말씀하셨다는 것을 알아주겠지요?
아이고, 못난이 할아버지가 되셨군요. 근데 어떡하죠? 전 이 별칭이 너무 좋은데요.
언제나처럼 정겨운 글 읽게 해 주시네요. 부럽습니다. 손주들과의 아웅다웅도 부럽고요.
선생님의 귀여운 복수에 혼자 빵빵 터졌답니다. 전 재밌는 사람이 꽃미남보다 훨씬 매력적이던데요. 선생님 여전히 멋지세요. 애들이 뭘 알겠어요. 큭큭.
선생님, 제가 팬인 거 아시죠?
저는 얼굴을 많이 본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