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한숨 돌리려나 / 조영안
읍내 오일장이다. 시간이 드디어 가나 싶다가도 장날이 돌아오면 모두 한마디씩 한다. "돌아서면 장날이다. 세월 참 빠르게 가네." 장날은 읍 전체에 잔치가 열린 듯 분위기가 활기차다. 순천 아랫장은 하루 전, 웃장은 다음 날이다 보니 상인들도 오가며 장사를 해 다들 친해진다. 인근 옥곡장과 하동장은 이틀 후에 선다. 장마다 모두 특색이 있고 전통을 자랑한다. 노점 위주였던 옛날과 달리 지금은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걱정이 없다.
객지에서 본가로 들어온 지도 벌써 30년째다. 어릴 때부터 엄마를 따라다녔던 시골 장과 많이 닮은 읍내 오일장이 있어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하지만 바닷가 특유의 억센 억양을 드러내는 사람들의 대화 중 "염병하네", "벅수 같은 게"처럼, 내가 자란 경상도 지역에서는 상상도 못 할 욕설 같은 거친 말투를 들을 때는 상인들에게 혐오감이 들 정도였다. 그래도 인근 마을에서 나온 시골 할머니들이 양지바른 곳에 앉아 갖가지 먹거리를 파는 풍경이 정겨워 종종 찾곤 했다.
이젠 장보기 문화도 많이 바뀌었다. 요즈음은 마트와 대형 할인점을 자주 이용한다. 내가 원하고 먹을 만큼만 살 수 있다는 점이 좋다. 없는 거 빼고 다 있다는 마트와 다이소는 싼 가격이 장점이다. 내가 이용하는 마트는 로컬푸드 매장이라 산지에서 직접 갖다 놓는 덕에 아주 싱싱하다. 또 밴드(SNS)를 활성화해 가격도 시장과 별 차이가 없고, 평소엔 비싸서 못 먹던 특별식이나 생소한 식재료도 쉽게 살 수 있다. 이렇게 즐겁고 신바람 나는 장보기는 나 혼자만의 생각일는지.
그래도 정겨운 오일장의 풍경은 잊지 못한다. 엎어지면 코 닿을 만큼 가까운데도 몇 장씩 건너뛸 때가 많다. 솔직히 옛날 장터의 삭막해진 모습이 안타까워서이기도 하다. 골목 구석구석에 앉아 물건을 팔던 할머니들, 천막 아래 옹기종기 모여 앉아 먹던 국수 맛이 떠오른다. 하늘을 향해 펄펄 끓던 기름솥에서 갓 나와 고소하던 튀김과, 양은솥에 비닐을 덮어 두었다가 쓱 꺼내 썰어 덤으로 입에 넣어 주시던 순대 할머니도 생각난다.
그래도 단골은 있다. 요즘 사람들은 장터 할머니들이 들고 나오는 나물을 공해가 심한 도로가에서 캤을까 봐 못 믿겠다고들 한다. 하지만 오랜 단골은 믿고 산다. 백운산 골짜기 끝마을에 사는 어르신의 노점상은 언제나 믿을 만하다. 내 소개로 단골이 많이 생겼다며 항상 덤을 얹어 주신다. 나 역시 가게와 가까운 덕에 시원한 물과 간식을 자주 챙겨 드리곤 한다.
이제 곧 추석 명절이다. 어머니의 대를 이어 명절과 기제사 장보기를 맡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어렵다. 몇십 년 지기 단골 생선 가게가 있다. 한 집 건너 이웃이기도 하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며느리가 이어받아 장사하는데, 인심이 야박해 서운할 때가 있다. 일부러 찾아갔는데도 에누리 하나 없다. 역시 시어머니가 장사하시던 그때가 좋았다. 작은 조기 새끼 한 마리라도 얹어 주셨던 후한 인심이 있었다.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생선을 사면서도 씁쓸한 마음이 드는 건 내가 너무 속이 좁아서인지 아리송하다. 이제 적은 양은 마트나 할인매장을, 많은 장보기는 오일장을 이용해야겠다. 그리고 일찍 가서 싱싱한 물건을 사고 싶은 나와, 해거름 파장에 가서 싸고 덤을 많이 얻으려는 친한 언니와의 행복한 줄다리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그래도 올 추석부터는 차례를 지내지 않고 미리 벌초하며 성묘로 대신하기로 했으니, 한숨 돌릴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