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클럽의 장대한 역사에 대해서 말을 해야하나? 때는 바
야흐로 1999년 이땅의 사회악인 소주을 먹어치우기로 결심
하던 그날 밤 천둥이 내리 쳤더란다. 재성이랑 성일이랑 밤
잠을 설쳐가며 밤새기가 일수 영도에서 소주를 마셔대던 그
나날들. 유명한 닭집과 순대집을 정복하고 충무집까지 포섭
하고 남항동 일대의 겜방비는 거의 우리돈이었었지. 그리고
성일장이라는 아주 훌륭한 보금자리가 있어 우리 술전사들
의 훌륭한 보금자리가 되었지. 그 토요클럽의 전신이라 할
수있는 폐인클럽. 남포동으로 진출한 재성이와 나, 그리고
성일, 남포동 전술집을 휘어잡고 펌프계를 뒤흔들며 남포동
새벽거리를 폐인천하로 만들었었지. 여라가지 명칭이 있었
휴패밀리, Go클럽, 폐인클럽, 글구 기타 소친목회 반품브
라더스, 아~~~ 화려한 99년도요~~ 글구 1년이 지나고 하나
둘씩 군대로 끌려가는 우리 동지들. 남은건 결국 네모 혼자
휴학생 0번, 폐인 1호, go의 양대산맥이라 불리던 네모혼자
남았더랬습니다. 그래도 하늘은 나를 버리지 않았는지 사회
악! 소주를 많이 먹어치운 착한일을 한 탓인지, 폐인의 전
신을 내려주시나니. 졸업한다구 술독에 빠진 토끼. 어벙한
영구, 화끈한 영신, 글구 배꼽내놓고 자는 효환스...그외
다수 이것이다. 이것이 폐인 정신의 발로다. 토요클럽의 전
통과 정신은 1999년부터 내려왔던거다. 참고로 선배 폐인들
의 휴가시에 발동되는 폐인 계엄령에 영향받는 니사인이 되
면 정통 클럽으로 승격될수 있을것이리라~~~~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