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거주시설을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 프리웰이 ‘탈시설’, ‘시설 해체’를 선언하고 나섰다. 프리웰의 전신은 지난 2008년 횡령 및 인권침해 사건으로 장애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석암재단. 사건 후 석암재단 이사진 전원은 해임됐고, 1년 전 지금의 공익 이사진이 들어섰다. 횡령과 비리로 얼룩졌던 시설을 탈바꿈, 이제 ‘탈시설’이라는 거대 화두를 놓고 분투하는 프리웰. 프리웰이 예고한 장애인 자립의 새로운 바람에 대하여.
지난 10월 초 서울 양천구 목동 프리웰 사무처에서 만난 박숙경 이사장은 “지금 형태의 대규모 거주시설은 없어져야 한다”고 못 박았다. “현 형태의 대규모 시설을 모두 해체할 것이다. 시설 해체 후 지역사회에 거점을 둔 주거 공간을 마련・지원할 예정이다.” 시설을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에서 시설을 해체하겠다니? 조금 의아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다. 박 이사장은 “계획과 비전은 급진적으로 가져가되 단계는 디테일하게. 이것이 우리의 과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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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웰 산하 거주 시설 향유의집 전경 |
한국 장애 역사의 큰 상징 ‘프리웰’ 시설 개혁 추진
프리웰의 오늘을 이해하기 위해선 시간을 조금 거슬러 가 볼 필요가 있다. 처음 사건이 발생한 것은 지난 2007년. 당시 석암재단(프리웰의 전신)은 서울시 감사에서 회계부정이 발각됐다. 재단 산하 장애인 거주시설 3곳을 조사한 결과, 국가보조금·인건비·장애수당 횡령 사실이 줄줄이 드러났다. 재단 이사장 이아무개 씨는 보조금을 받는 무료시설의 직원들을 빼돌려 유료시설에서 일을 시키거나 가족들을 허위로 직원명단에 올리는 식으로 돈을 챙겼다. 시설에 입소한 장애인 가족들에게는 입소보증금 명목으로 수억 원을 받아 갈취했고, 일부 지적장애인들의 장애수당까지 빼돌렸다. 이를 합한 액수는 수억 원에 달한다.
더욱이 거주 장애인들에 대한 인권침해 의혹까지 제기됐다. 2008년 2월 <함께걸음>이 취재・보도한 바에 따르면, 시설에서는 종종 비인간적 상황이 벌어졌다. 시설에서 생활한 한 장애인은 인터뷰를 통해 “대부분 지적장애인들에게 가해졌다.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밥을 굶기거나 시끄럽다고 추운 겨울에 목욕탕에 끌고 가 냉수를 퍼붓거나 하는 일이 있었다. 언어폭력은 다반사였다. 사실을 사무실에 알려도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이 같은 상황이 드러나자 시설 장애인과 직원, 인권단체 들은 ‘석암재단 비리척결과 인권쟁취를 위한 공동대책위’를 구성하고 비리 사실을 검찰에 고발했다. 2008년 5월 석암재단 설립자 겸 이사장 이 아무개 씨를 비롯한 이사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인권침해에 대해서는 별다른 조사 및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다).
그리고 2009년 석암재단은 프리웰로 법인 명칭을 변경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한동안 문제는 지속됐다. 이아무개 씨가 이사장 자리에서 물러난 다음에는 그의 사위인 제아무개 씨가 이사장 자리에 올랐고 비리는 멈추지 않았다. 제아무개 씨 또한 비리 사건으로 불구속재판에 회부됐고, 이후 정이사체제와 임시이사체제를 거치며 표류해왔다. 그러던 중 2013년 서울시가 프리웰 상황을 해결할 목적으로 시민단체의 추천을 받아 ‘투명성 있는’ 이사진을 구성하게 됐다. 그렇게 구성된 현장·인권·교육·법조계 전문가 7인으로 2013년 7월 정이사 체제를 출범, 현재 법인 및 시설 정상화를 위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정이사 7인 중 한 명으로, 지난해 10월 이사장으로 선임된 박숙경 이사장은 10년이 넘도록 국내 탈시설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정이사 체제 출범 후 프리웰은 법인 정상화와 산하 시설 운영 패러다임의 큰 변화를 도모하고 있다. 특히 비전과 철학을 인권과 탈시설-자립 지원에 두고 개혁을 추진 중이다”라고 밝혔다. 현재 박 이사장을 필두로 한 프리웰 이사진은 법인 및 시설 정상화와 함께, 프리웰 산하 거주시설 인권 증진 및 탈시설-자립 실천 로드맵을 마련, 가동을 시작한 상태다.
한편, 다수의 전문가들은 석암재단 비리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 자체가 탈시설 운동에 미친 영향이 적지 않다고 보고 있다. 2008년 시설 장애인 8명(마로니에 8인)이 자립생활 지원을 요구하며 서울 동숭동 마로니에공원에서 전개한 노숙농성운동은 거주 장애인 중심의 탈시설 운동이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박 이사장은 “마로니에 8인의 탈시설-자립 운동은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가진다. 기존에는 시설 비리와 인권침해 등 시설에 대한 문제제기에 그쳤다면, 이 운동은 시설이 근원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제기하고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 살고 싶다는 장애인의 욕구를 드러낸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프리웰은 한국 장애인복지 역사의 큰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프리웰은 한국의 대형화된 사회복지법인과 시설의 폐해와 한계를 보여줌과 동시에 사회복지법인 및 시설이 지역과 사람 중심으로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를 보여줘야 할 책무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법인 정상화와 탈시설 로드맵 마련에 부심한 지난 1년
사실상 프리웰의 지난 1년은 법인 및 시설 정상화의 고된 노정이었다. 지난 2012년부터 프리웰 산하 시설 중 하나인 향유의집을 운영하고 있는 문병수 원장은 “석암재단의 그림자는 매우 짙었다. 전 운영진이 보여준 좋지 않은 모습 때문에 거주자는 물론 그 가족들과의 관계를 풀어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신뢰를 회복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올 하반기 들어서야 겨우 어느 정도의 안정을 찾은 것 같다”고 전했다.
신뢰 회복과 함께, 법인 정상화를 위해 빠뜨릴 수 없는 수순은 설립자 이아무개 씨와 당시 이사진들이 ‘꿀꺽’한 돈을 환수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얼마 전 반가운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프리웰이 이아무개 씨 등 4인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손해배상청구소송 2심에서 승소해 4억8천만 원의 배상판결을 받아낸 것. 이 판결은 1심에서 완전히 패소했던 결과를 뒤집은 것으로 그 의미가 크다. 박 이사장은 “사회복지역사에서도 중요한 소송이라 할 만하다. 이 결과는 비리로 법인에 손해를 끼친 이사진들에게 그 책임을 물어 추징을 가능케 했다는 데 대한 중요한 판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프리웰은 시설 개혁을 위한 법인 사무처 정비에도 만전을 기울이고 있다. 박 이사장은 운영자금과 법인 전담인력이 한 명도 없는 상황에서 노들장애인야학 등을 통해 운영자금을 차입했다. 이를 기반으로 법인 운영자금 대출, 소송 대응,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프로젝트 지원 등을 동시에 추진했다. 현재는 약 5억 원 정도의 운영자금을 마련, 법인 인력 충원까지 완료한 상태다. 현재 프리웰 법인 사무처에는 사무처장을 포함한 총 4명의 직원이 구성돼 있다. 사무 공간 재배치 등의 작업도 마무리 했다. 특히 새로 구성된 사무처 직원 중 한 명은 지적장애가 있는 사회복지사로, 프리웰 산하 시설의 발달장애인 자조활동과 발달장애인 관점에서의 발달장애인 중심 서비스를 담당해 갈 예정이다.
시설을 해체하기 위해 그 시설을 운영하는 법인을 정비하는 이 같은 과정은 얼핏 모순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프리웰 측은 “법인을 정상화 하고 있지만, 이는 현재 법인 산하에 운영되는 대규모 시설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것이 아니다. 시설을 해체해 한국형 탈시설화 모델을 구축하고, 시설 이용인들의 자립생활과 지역사회에서의 통합적 삶을 지원하는 서비스로 재편하는 것이 목표다”고 분명히 밝힌다.
지난 1년 동안 법인 정상화와 더불어 탈시설 관련 로드맵 마련에 부심했다는 프리웰. 프리웰의 시설 해체 작업은 이제 갓 시작 단계에 돌입한 것이나 다름없다. 지난 해 말 법인 정관 주 목적에 ‘인권, 복지, 자립생활 증진’을 신설한 프리웰은 법인 산하 거주시설의 탈시설화 추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까지 ‘한국형 탈시설-자립’을 주제로 한 정기회의를 24회 진행했고 법인 및 산하 시설 간부들을 대상으로 ‘탈시설화 및 인권 개선 방안 마련을 위한 워크숍’을 개최했다. 또한 시설 거주 당사자 및 가족, 외부 전문가, 활동가 들로 ‘프리웰 탈시설화 로드맵 태스크포스팀(TFT)’을 구성하고 가동 준비 중이다. 오는 12월이나 내년 1월 중에는 ‘프리웰 개혁 로드맵에 대한 공청회’를 열고 탈시설 및 시설 해체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공개한다는 계획이다.
탈시설-자립 지원 실시… 풀어야 할 과제 많아
현재 프리웰은 김포시에 총 3곳의 장애인 거주시설을 두고 있다. 중증장애인 거주시설 향유의집(78명), 지적장애인 거주시설 누림홈(81명), 중증장애인 및 학령기 장애인 거주시설 해맑은마음터(79명). 그리고 이밖에 직업재활시설 샘(30명 근로)을 운영한다.
프리웰은 3곳 시설 거주자 중 탈시설 의지가 강한, 비교적 자립도가 높은 거주자부터 우선적으로 퇴소를 추진하고 있다. 박 이사장은 “시설 거주자나 종사자를 꾸준히 내보내고 있다. 신규는 더 이상 받지 않는다. 건물 기능 보강도 사실상 중단한 상태다”고 전했다. 프리웰이 운영하던 노인 요양 시설 수산나의집의 경우 지난 10월 31일 폐쇄됐다. “현 대규모의 시설은 매각하고, 지역사회에 거점을 둔 지원주택 모델을 도입할 것이다”라는 것. 이는 ‘탈시설-자립 지원 모델 개발’이라는 이름의 시범사업, 즉 프리웰의 로드맵이 이미 가동됐음을 의미한다.
지난해 10월 이후 프리웰 산하 시설에서 나간 거주자는 5~6명, 조만간 나갈 예정인 거주자는 10명이다. 3곳 시설 가운데 거주자의 탈시설 의지가 가장 강한 곳은 향유의집. 이곳에서는 올해만 총 3명의 거주자가 자립했다. 그리고 올해가 가기 전 3명이 추가로 더 자립할 예정이다. 거주자가 직접 자신이 생활할 주거지를 알아보는 경우도 있고, 시설 측에서 서울복지재단 등에서 운영하는 체험홈, 자립홈으로 인도하는 경우도 있다. 자립은 지체장애인과 뇌병변장애인 위주로 이뤄지고 있으며, 발달장애인의 경우 아직 자립 사례가 없다.
주지하듯, 탈시설-자립에 관한 시설 거주 장애인의 욕구는 매우 크다. 지난 2011년 보건복지부에서 실시한 ‘장애인시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장애인의 96.9%가 ‘일반 주택에 살고 싶다’고 응답했다. 그리고 2008년 서울시의 ‘탈시설화 정책 및 주거환경 지원 연구’에서는 ‘주거 및 서비스가 지원될 경우 약 70%의 시설 거주 장애인이 퇴소를 원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향유의집의 경우, 거주자 78명 중 탈시설 의지를 강하게 피력하는 이는 20명 정도다. 향유의집이 중증장애인 거주시설임을 감안하면 결코 적지 않은 수다. 일정 정도의 의지를 가진 이는 8~9명. 자기표현 능력이 부족하거나 장기적으로 자립을 준비해야 하는 이는 약 30명. 그 외 나머지는 아직까지 시설 잔류 욕구가 강하다. 문병수 원장은 “자립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이들에 대해서는 앞으로 2~3년 내 적극적으로 탈시설을 권장, 유도할 생각이다. 여러 가지 방안을 통해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물론 “최종 선택은 당연히 본인이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설 거주자들이 자립을 망설이는 이유는 뭘까. “자립에 대한 마음은 있지만, 시설에서 생활하는 것이 싫지만 여러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과연 내가 밖에서 적응할 수 있을까, 바깥 생활이 맞지 않으면 다시 시설로 돌아올 수 있을까, 뭐 이런 걱정들이다”라고 문 원장은 설명한다. 이와 관련, 프리웰은 8곳의 체험홈을 통해 ‘자립 연습’을 돕고 있다. 자립캠프, 자립네트워크, 직업체험, 동료상담 등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시설 거주자 가족의 인식 개선도 풀어야 할 과제다. 문 원장은 “장애인의 탈시설-자립 지원 움직임을 불편한 변화로 보는 시각이 없지 않다. 시설에 거주하는 당사자의 자립 의지가 강하다 해도 가족의 반대로 벽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다. 지적장애나 뇌병변장애와 같은 중증장애를 가진 거주자를 자립시킨다는 데 대한 우려가 큰 것이다. 이를 설득하는 작업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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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맑은마음터(프로그래실)와 누림홈(식당) 내부 모습 |
지역 내 독립적 거주지 마련 후 중앙 센터 통해 자립생활 지원
탈시설-자립 지원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사안은 거주 당사자의 개별적 상황에 따른 각각의 자립 지원 모델을 마련하는 것이다. 박숙경 이사장은 “서울시탈시설공동행동은 향유의집 거주인 욕구조사를 통해 9개 유형의 자립 지원 모형을 도출했다. 거주자의 다양한 욕구와 상황이 반영돼야만 자립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탈시설 자립생활이 제대로 되려면 9가지가 아니라 개인 각각에 따른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 성공적인 탈시설은 개인의 심리, 생활, 가족 및 사회 관계, 소득 수준 등의 상황을 파악해 섬세한 지원 체계를 마련했을 때 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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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유의집에서 운영하는 체험홈 |
일례로, 프리웰 산하 누림홈에 거주하던 한 청각・발달장애인은 2년 전 서울시 장애인전환서비스지원센터에서 운영하는 체험홈을 통해 자립을 시도했지만 정신병원을 거쳐 다시 시설로 돌아와야 했다. 폭행, 도벽 등의 문제행동으로 인해 자립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여전히 자립 의지를 강하게 갖고 있는 그를 위해 프리웰은 당사자가 참여하는 통합사례지원회의를 개최했다. 그 결과 그가 체험홈에 함께 거주하는 이들과 의사소통이 쉽지 않은 데에서 문제가 발생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청각장애와 발달장애로 인해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다 보니 차츰 자신의 의사를 무시당한다는 느낌을 받게 되고 자연히 억울함이 쌓인 것이다. 박 이사장은 “오랜 동안 시설에서 생활해 온 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자립을 하려면 섬세한 지원 체계가 따라주어야 한다. 프리웰은 바로 그런 걸 하겠다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그 첫 걸음은 뭘까. “우선 사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독립적 주거 확보”를 꼽았다. 이를 위해 프리웰은 ‘협력형 탈시설 계획’을 세웠다. 물리적 시설 해체 뿐 아니라 수십 수백 명 거주자의 진정한 자립을 위해 계획적 해체를 감행하겠다는 것이다. 문 원장은 “시설에는 크게 두 유형의 거주자가 있다. 의사 표현이 명확한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 의사 표현이 명확한 이들은 자력으로 퇴소할 수 있도록 원하는 방식으로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그리고 그렇지 않은 경우, 즉 지적장애에 뇌병변장애를 동반해 장애 정도가 중하거나 20~30년간의 수동적 시설생활로 장애가 고착화된 경우는 지역사회 내 독립적 주거공간을 만들어 그곳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말하자면, 지역 내에 새로운 지원주택 모델을 확립한다는 것. 여기에서 관건은 거주자의 욕구를 점검하는 중앙 센터를 세워 하나의 통합 지원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는 국내 최초의 시도다. 이후 관건은 이 센터의 형태나 운영 방식. “센터는 물론 거주자의 ‘지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지도’가 되면 안 된다. 장애 당사자의 생활 하나 하나를 센터에서 개입하기 시작하면, 자기결정권은 침해당할 수밖에 없다. 그 운영은 민주적 체계 하에 이뤄져야 할 것이며, 운영 주체는 자립생활(IL)센터나 진보적 성격을 띈 공익운영진이 맡는 게 좋을 것이라고 본다”고 문병수 원장은 말했다.
여기에서 또 한 가지, 프리웰은 노령 거주자를 위한 별도의 케어홈 형태도 필요하다고 내다봤다. 문 원장은 “탈시설 계획을 발표했을 때 65세 이상의 거주자들은 큰 걱정을 내비췄다. 65세 이상 장애노인을 대상으로 한 주택서비스 제도가 미흡할 뿐더러 활동보조 제도도 마련돼 있지 않다. 자립 시 식사 한 끼도 제대로 해결하기 힘들 것이다. 이런 이유로 시설을 고집하는데, 지역 내 요양 중심의 소규모 케어홈을 두고 노령 거주자들을 지원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연령이나 장애 정도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탈시설-자립을 고민한 결과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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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웰의 '탈시설-자립 지원' 계획(2014~2017년) |
“핵심은 장애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이다. 시설 내 집단생활에서 자기결정권 제한은 필연적이다. 시설에 있든, 시설 바깥에서 자립생활을 하든 본인의 삶을 본인 스스로 결정하는 게 중요하다. 거주자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우리의 역할이다. 우리 운영진 역시 그 같은 인식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문 원장의 말이다.
복지 선진국 사례 통해 구체적 미래상 확인
프리웰의 ‘협력형 탈시설 계획’은 사뭇 선진적이다. 그리고 일견 너무 이상적인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에 대해 박 이사장은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 되게 해야 한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시설 거주자는 물론 운영자들도 아직까지 그 변화의 상을 구체적으로 그리지는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박 이사장은 선진국의 여러 사례에서 밑그림을 찾을 수 있다고 귀띔한다.
서구 복지 선진국들은 수십년 전부터 시설을 해체하고 탈시설화 정책을 추진해왔다. 시설 생활은 획일적이고 위계적인 관계 형성으로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이나 삶의 존엄성이 상실되고 수치심과 무기력을 학습시킨다는 이유에서다. 그 결과 장애인 복지 선진국으로 꼽히는 영국, 미국, 독일, 일본 등 몇몇 나라에는 오늘날 우리나라에 있는 대형 시설을 찾아보기 힘들다.
먼저, 영국을 보자. 영국은 1940~1950년대 이미 탈시설화를 진행, 대규모 시설 대신 지역 내 소규모 주거공간이 마련되기 시작했다. 영국에서 가장 큰 지적장애인 대변단체인 런던의 맨캡(Mencap)은 지적장애인에게 거주공간을 제공하는데, 그 규모는 1만여 채에 달하며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다. 거주공간 내부는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간과 개별 공간이 엄격히 분리돼 있고, 가사도우미와 스태프가 함께 상주한다. 거주자에게 필요한 갖가지 지원은 별도의 센터에서 담당한다.
센터의 지원은 매우 섬세하게 이뤄지는데, 일례로 ‘케어 플랜 카드’ 운용을 들 수 있다. 여기에는 기본적인 신상 정보, 건강 상태는 물론 거주자 개인의 의사 내용이 기록돼 있다. 거주자가 직접 그린 그림을 활용해 정보를 수집하는데, 종교를 바꾸고 싶다든지 직업을 갖고 싶다든지 하는 욕구를 알 수 있다. 이는 센터와 거주자의 소통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거주자가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는 데 유용하게 활용된다.
독일 마브룩에 위치한 핍(FIB)은 장애인 자립 지원을 위한 통합기관으로서, 장애 당사자가 지역 내에서 생활하는 데 필요한 모든 서비스를 제공한다. 활동가가 함께 거주하며 여러 가지를 지원하는데, 특히 문화와 여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활동가와 함께 음악이나 영화를 즐기고, 맥주를 마시며, 여행을 다니는 식의 프로그램이 활성화 돼 있다. 장애인 사회통합을 위해 이 같은 여가 활동을 핵심 사안으로 놓고 활용하는 것이다. 여가나 취미는 정기적인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보다 전문성을 획득, 직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미국 일리노이주의 피플퍼스트(People First)는 발달장애인 중심으로 구성된 자조단체로, ‘자기옹호활동’을 전개해 나간다. 자기 옹호의 방법을 제공하고, 다양한 이슈와 주제의 훈련 기회를 통해 장애 당사자 스스로 자신의 결정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박 이사장은 이 같은 선진 사례를 들어 “프리웰이 장기적으로 가야할 방향”이라고 역설했다. “우리는 장애인의 자립성을 보다 강화할 수 있는, 그룹홈을 넘어선 어떤 모델을 지향한다. 한 발달장애인이 지역에서 살아가기 위해선 모든 사람의 협력이 필요하다. 한 5년 후쯤 되면 국내에서도 발달장애인 개인 중심의 서비스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그 시작을 프리웰이 먼저 해 나가겠다.”
탈시설 후 체험홈에 거주하는 이무호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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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무호(62세·지체장애 1급)씨 |
“이제야 자유를 보장 받은 기분”
서울시 강북구 수유동의 한 아파트. 지난 3월 말 프리웰 산하 중증장애인 거주시설 향유의집을 나와 서울복지재단에서 운영하는 이곳 체험홈에 머물고 있는 이무호(62세・지체장애 1급) 씨. 30여 평의 아파트 내부는 조용하고 깨끗했다. 주방 한켠 싱크대에는 행주가 반듯하게 널려 있었다.
“손가락을 반밖에 못 편다. 다리도 반쪽만 사용할 수 있다. 신경이 살아있다고는 해도 다리를 혼자 펴는 것조차 힘들다. 주로 전동휠체어 위에서 생활한다. 휠체어 없이는 생활 자체가 불가능하다.” 1992년 봄 오토바이 사고로 장애를 얻게 됐다는 이 씨는 97년 11월 향유의집에 입소했다. 그곳에서 10년 이상을 지냈다. 그리고 석암재단 비리 사건으로 떠들썩했던 지난 2008년 처음 자립을 결심했다. “당시 사건 터지고 시설에서 절친하게 지내던 이들 몇이 퇴소를 했다. 말동무들이 떠나고 나니 허전해서….”
그런 그는 서울복지재단에 자립 지원 프로그램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 2~3곳의 체험홈을 거쳤다. 그러나 체험홈에 함께 거주하는 이들과의 소통이 쉽지 않은 등 어려움으로 다시 시설로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7개월 전 이곳에 둥지를 틀게 된 이 씨. 그는 현재의 생활에 만족을 표했다.
“내가 시설 생활 당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소음이다. 사고후유증 때문인지 조금만 시끄러워도 머리를 송곳으로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시설에서는 여러 사람이 같이 생활해야 하고 3~4명이 한 방에 머물다 보니 소음을 피하기가 힘들었다. 지금 이곳은 우선 조용해서 마음에 든다. 그리고 또 좋은 점은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 시설에서는 밤 9시면 문을 걸어 잠근다. 낮에 잠시 외출하는 것도 일일이 보고해야 하고. 여기서는 자유를 보장 받을 수 있으니 그 점이 좋다.”
잠시 2008년 이전 석암재단 시절을 회상할 때는 아예 고개를 내저었다. “‘그 사람’의 왕국이나 다름 없었다. 생활이 정말 끔찍했다. 먹는 음식부터… 아마 그 사람 집 가축에게도 그런 음식은 내놓지 않을 것이다. 시설 비리가 계속해서 폭로되어, 장애인 거주 환경이 좀 더 나아졌으면 좋겠다.”
현재 이 씨는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활동보조인과 함께 생활한다. 생활비는 수급비와 장애연금으로 매달 지급되는 80여 만 원. 지금의 고민은 이후 거주지 확보에 대한 것이다. 활동보조인의 도움을 받아 열심히 집을 알아본다는 그는 ‘진정 내 뜻대로 사는 길’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