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의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에서 인상적인 대목은, 사이비 교주들의 사이비됨(특히, 요사이 세간의 이목이 새삼스레 다시 집중되고 있는 그네들의 성적 방종에 대한 묘사)이 아니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사이비 교주들이 그의 추종자들 사이에서 진정한 '신'이었던 순간이 외려 날카롭게 다가왔다.
예를 들어, 만민중앙교회 에피소드 중 한 대목을 보면, 당회장 이재록이 사람들을 치유하는 과정을 실제로 본 적이 있는지에 대한 제작진의 물음에, (만민중앙교회의 이탈자이자, 이재록 목사의 반대편에 선 처지임에도) "그렇다"라고 몇몇 이들이 몹시 담담하게 답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기독교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이 있다면, 장님이 볼 수 있게 되고, 귀머거리가 들을 수 있게 되고, 불구가 걷게되는 일은, 정통교회의 메시아(그러니까 예수)가 이천년 전 수행하였던 바로 그 일들에 다름 아님을 단박에 알아 차릴 수 있다. 일군의 무리들은, 인생의 어느 한 지점에서 자신들의 눈 앞에 메시아가 임재하고 있음을 발견한 나머지 그 존재를 믿을 수 밖에 없었고, 그 믿음의 전거란 바로 정통파의 경험치(로서의 전승)이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 사이비 교주는 그 무리들의 한 가운데서, 한순간이나마 진실로 '메시아'였던 것이다.
물론, 문제는, 그들의 메시가아 정통파의 메시아(그러니까 예수)와는 달리, 이적과 기사의 중심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이녁의 에고가 손 쓸 수 없을 지경으로 달구어졌고, 자신의 에고를 신성(神性)과 동일시하며 발생하는 자기최면적 증강효과 특유의 생산성에 힘입어 성욕과 물욕의 화신으로 거듭난다는 빤한 사실에 닿기까지, 그들의 메시아가 예상보다 매우 빠르게(보통 10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진화(혹은 도태)하였다는 점에 있다.
사이비 교주들이 참 스승의 발자취(예수의 공생애는 3년)를 따랐다면, 짧고 굵게(?) 이적을 보인 뒤, 매우 거친 방식으로 사역을 접었어야 했다. 그들이 사이비로 변질된 데에는, 좋은 모델로써의 스승의 발자취를 따르지 않은 채, 길고도 굵게 살아남아 메시아로 군림할 수 있을 것이라는 도발적인 상상을 현실에 옮기고야 말았던 모종의 '영웅적' 결단이 있었을 것이다. 예수는 전략과 전술에 능했고, 완벽하게 지는 방식을 통해 영원히 승리하는 자신만의 전쟁을 치뤘다. 그 누구도 예수를 완벽히 모방할 수 없다는 점에 있어서조차, 그는 메시아적이(었)다. 이 완벽한 메시아를 어줍잖게 모방했던 이들이 바로 '나는 신이다'라고 주장하는 (요새 어법을 따르자면) 신-호소인들인 셈이다.
신-호소인들이 '메시아'임에 틀림없었던 상황 속에서, 일군의 사람들이 노출되었던 '빛' 또한 엄존하였을 것이기에, 그 놀라운 은총의 시간이 지속가능할 것이라고 믿고 의지했던 이들이 어느 순간부터 '사이비 종교 피해자들'이라고 스스로를 호명하고 있는 운명이랄 것도 참으로 얄궃은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이 '빛'에 노출된 순간의 진정성에 누가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며, 그 '빛'과의 조우 이후 발생했을 숱한 사건들과 사연들로부터 누가 그들을 적절히 보상해 줄 수 있단 말인가. 변질된 것은 '빛'이었을 뿐, 그 빛에 일관되이 반응하였던 그네들이 아니었다. 피해자들의 잘못이 있다면, (당시에는) 아무 죄 없던 어떤 '빛'을 보았고, 모든 것을 바쳐 그 '빛'을 좇았다는 사실 뿐. 그들이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들 중 언뜻 잡히는 옅은 웃음은 그네들의 '빛'된 순간이 얼마나 순정하였는지를 방증하고 있다.
또 한가지 인상적인 지점은, 여러 사이비 교주들이 극장국가의 전매특허인 스펙터클에 전면적으로 의존하여 자신들의 사이비-신성과 카리스마를 유지해 나갔다는 점이다. 특히, 일부 종교단체의 행사들은, K-Pop 스타들이 월드투어에서나 보일 법한 스케일의 무대장치를 선보이고 있는데, 여러 지점에 있어서, 나는 K-Pop이라는 한국 특유의 발명품이, 몇몇 사이비 종교집단의 대형집회를 통해 그 가능성이 배태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사이비 종교집단은 신-호소인을 카리스마의 중앙에 배치한 반면, K엔터들은 아이돌, 다시 말해, 여러 유사-신들을 비지니스의 중앙에 배치한 것 정도가 다를 뿐, 기타 정황이나 맥락은 크게 다를 바 없다. 특히, (다시) 만민중앙교회에서 판매 중인 이재록 목사의 여러 goods-굿즈-들을 보고 있자면, 누가 누구를 모방하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다. 더 나아가, 신나라 레코드('신나라'는 '신난다'에서 파생된 어휘가 아니라, '신+나라'의 합성어이다)를 통해 여태 건재하고 있는 아가동산의 예는 너무도 확연한 물증이 있어 섬뜩할 지경이다.
한 마디로, 구원의 문제라는 추상성은, 한국 특유의 역사적 정서(특히, 6.25와 군부독재의 암울한 시대분위기에 대한 반대 급부)를 거쳐, 물질/건강/유흥의 삼위일체라는 독특한 종교적 풍경을 구축해 내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 삼위일체는 물질(대기업)/건강(병원)/유흥(엔터사업)의 젖줄을 타고 현대 한국사회의 근간을 점하고 있다. 국민 대다수가, 대기업 임직원이나, 의사, 그도 아니면, 아이돌이 되고 싶어 하는 나라는, 전세계에서 대한민국이 거의 유일할 것이고, 이런 나라의 토양에서 '꽃피운' 사이비종교 집단은, 그 자체로 벌거벗은 대한민국의 속살이나 다름없다. 그 속살에 현미경을 가져다대며, 사람들은 광분한다. 그런데, 과연, 그 속살이 '남의 것'이기만 한 것일까?
사람들을 추행하고, 겁박하고, 폭행하고, 죽이기까지하는 사이비 종교집단에 투영되는 것은, 폭력적인 동력을 통하지 않았다면 이뤄내지 못했을 대한민국의 모든 성취들, 그 '눈부심'들이다. 대기업이 경제를 빈틈없이 장악하고, 대치동은 의대진학을 목표로 일이관지 불야성이고, 아이돌 만나기를 신과의 만남보다 더 설레여하는 눈부신 남한사회의 그늘에, 사이비 종교집단이 이끼처럼 자라나 있었다.
이쯤에서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을 '사이비'라 거침없이 호명하는 우리는, 나는, 진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