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테내그로 울친에서 알바니아의 쉬코더까지는 버스로 한시간 거리이다.
쉬코드는 쉬코드라 호수 최남단에 고성이 있는 오래된 도시이다.
쉬코드아 호의 위쪽 반은 몬테네그로에 속하고 아래 반은 알바니아이다.
알바니아는 국교가 이스람이다.
전국에 수천개의 벙커가 남아 있는 유럽 최빈국이다.
수도는 티나라이다. 우리는 발칸국 중에서 유일하게 수도를 방문하지 않을 생각이다.
주변국 몬테내그로나 코소보처럼 유로를 사용하지 않고 화폐는 라크를 사용한다.
1 라크가 약 10원이다.
쉬코더의 중앙 광장에 있는 정교회가 방금 그려놓은 듯 선명하다.
자미가 현대식 건축양식이다.
예배가 끝날 때까지 뒤에 앉아 쉬었다.
예복을 벗고 나온 중년의 사나이. 자신이 리더라고 하면서 이슬람에 대해
알고 싶으면 가르쳐 주겠다고 한다, thank you so much..
20명 남짓. 신자들은 예복을 입은 사람이 코란을 낭송하는 동안 기도를 드린다.
일정한 자세가 없다.
제 각각 본인이 좋은 자세로 기도를 드린다.
옆드려 절하는 사람, 무릎 끓고 앉아 있는 사람, 기둥에 기대어 다리를 뻗고 있는 사람..
코란 읽은 소리가 음악처럼 들린다.
코란 읽기가 끝난 후에도 남아 있는 사람들.
쉬코드라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있는 쉬코더 성.
멀리 몬테레그로까지 한눈에 보인다.
이 성은 기원전 3세기에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케나다로 이민가서 살고 있는 알바니아 가족, 어제 울친 숙소의 알바니아 게스트 주인,
모두 최민국 조국에 대한 자긍심이 느껴진다. 자신들이 알바니아 인이라고 매번 강조한다.
내가 모르고 있는 조국에 정체성을 강조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다.
이 들이 말하기로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성이라고 한다.
기원전 3세기 무덤, 우물자리, 종교적 행사가 있던 건물 등
대부분 남아 있는 유적은 14세기 것이라고 한다.
성으로 오르는 길. 입구가 인상적이다.
성으로 들어가려면 터널로 된 입구를 두 개 지나야 한다.
입구만 보면 지금까지 본 성 중 가장 견고한 성이다.
성 내부는 제1정원, 제2정원, 제3정원으로 나뉘어 있다.
우물자리 유적.
다른 유물과는 장식이 많이 다르다.
이스탄불에서 본 그리스 기둥받침 같아 보인다.
기원전 3세기 무덤이 있다고 하니 그럴 수 있겠다 싶다.
노천에 그냥 방치되어 있어 아무나 만질 수 있다.
가족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이 이뻐서 같이 참여.
우리가 사진을 찍을 때 손까락 하트를 그리듯 이들은 이런 모양을 취한다.
성 아래 550년 되었다는 교회.
오래된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게 단장했다.
성당 옆에 강을 건너는 오래된 다리.
기념물처럼 남아 있다.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어 철길앞에 카페가 있다.
강을 건너 호수를 따라 난 길을 걸어갔다.
다리 건너 무허가 촌은 집시들의 집단 거주지이다.
가능하면 걸어서 지나가지 말라고 한다.
호수 윗길은 가끔 자전거를 타고 가는 젊은이가 있어도 걸어가는 사람은 우리 둘뿐이다.
가도 가도 같은 모습이다.
레스토랑이 있는 곳에서 돌아왔다.
수영을 할 수 있는 유원지 같은 비치가 있다는 잘못된 정보로 고생만 했다.
돌아오는 길에 히치하이를 했다.
빈 자리가 있어도 잘 세워주지 않는다.
결국 술취해 운전하는 이태리에서 온 아저씨 차로 센터까지 왔다.
쉬코더는 성곽과 호수 그리고 도심의 정교회와 모스크가 전부인 곳이다.
도심에서 버스로 갈 수 있는mesi bridge를 찾아 갔다.
아침 식사를 같이한 워싱턴DC에서 온 중년 사내는 우라와 일정이 매우 흡사하다.
10시 30분 숙소를 나섰다.
걷기에 너무 더운 날이다.
천주교 공동묘지에는 막 장례식을 마치고 신부와 수녀님들이 나온다.
시 외곽 공장지대는 건물만 남아 있는 쓰레기장 같다.
유고 연방시대의 유물이다.
도로변에 자신이 직접 제배한 무화과와 포도를 팔고있다.
무화과를 저울에 달아 200레이만큼 샀다. 약 2천원 정도.
돈을 꺼내는 동안 비닐 주머니에 포도도 덤이라고 담아 준다.
도로변 수돗가에서 무화과와 포도를 씻고 있으니 가게 아주머니 쟁반을 받처준다.
고맙다고 하니,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는 냉장고에서 꽁꽁 언 작은 패트병을 준다.
더위에 마시면서 걸어가라는 배려이다.
폐허가 된 공장지대를 지나 직선도로를 한시간 넘게 걸었는데 아직 3키로 남았다고 한다.
직선도로는 끝이 보이지 않은 정도로 길다.
도로 좌우로 택지가 조성되어 있지만 정작 집은 몇 집밖에 없다.
아마도 획일적인 중앙집권적인 공산주의 잔제 같다.
알바니아 어디를 가더라도 볼 수 있다는 벙커.
직선 도로변 가게 아주머니.
걸어가는 우리에게 언 물이 담긴 페트병을 준다.
dana에게 집구경도 시켜주고 가족소개도 하고 마당에서 복숭아도 따준다.
우리는 이미 받아 온 얼음물이 담긴 페트병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에게만 주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더위에 걸어 가는 사람을 위해 준비해 둔 것같다.
마을을 지나면 말라버린 강을 지나는 다리가 있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다리 위쪽에 사용하지 않는 mesi bridge 가 있다.
다리는 사람들이 편리하게 다닐 수 있게 두 지점을 연결하는 도로이다.
실용적인 이유없이 다리를 건설하지는 않는다.
mesi bridge 는 분명 사람들이 건너다니 던 다리이다.
주변에 거슬리지 않게 곡선으로 만든 예술품이다.
돌투성뿐인 이곳을 장식하는 설치조각품이라해도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없을 것 같다.
숙소에서 우리가 듣은 30분은 걸어서가 아니고 차로 걸리는 시간이었던 모양이다.
돌아 오는 길은 히치하이로 쉽게 왔다.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알바니아 아저씨, 어떻게 알아 들었는지 센터앞에 우리를 내려 준다.
모스크 앞, 센터 대로변에는 돈 뭉치를 들고 서 있는 사람이 많다.
환전상이다. 이용하는 사람이 많다. 50유로 환전했다.
센터 가까이에 있는 성당.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성당 앞 벤치에 앉아 쉬고 있었다.
자원 봉사자하는 아저씨 키를 가지고 와서 성당 문을 열어준다.
몇년 전 마더 테레사 수녀를 교황이 직접 만났던 교회라고 설명해 준다.
예수님의 수의를 보관하고 있는 성당이라고 한다.
마더 테레사 수녀의 액자가 정면에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