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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너희의 관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도 저버린다.
10. 모세가 말하기를 '네 아버지와 네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하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욕하는 자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하였다.
11. 그러나 너희는 말한다. 누구든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게서 받으실 것이 고르반(곧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 되었습니다' 하고 말만 하면 그만이라고 말한다.
12. 그러면서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그 이상 아무것도 해 드리지 못하게 한다.
13. 너희는 너희가 물려받은 관습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헛되게 하며, 또 이와 같은 일을 많이 한다."(막7:9-13)
9. And Jesus continued, “You have a clever way of rejecting God's law in order to uphold your own teaching.10. For Moses commanded, ‘Respect your father and your mother,’ and, ‘If you curse your father or your mother, you are to be put to death.’11. But you teach that if people have something they could use to help their father or mother, but say, ‘This is Corban’ (which means, it belongs to God),12. they are excused from helping their father or mother.13. In this way the teaching you pass on to others cancels out the word of God. And there are many other things like this that you do.”
*위선자들아
주님께서 바리새인들과 율법 학자들을 향해 “맞다. 이사야가 꼭 너 같은 자들을 두고 말했다. 이 위선자들아!”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식사하실 때였습니다.
이들이 왜 손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느냐고 물었기 때문입니다.
5. 그래서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께 물었다. "왜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이 전하여 준 관습을 따르지 않고, 부정한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
6.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이사야가 너희 같은 위선자들을 두고 적절히 예언하였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 백성은 입술로는 나를 공경해도,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막7:5,6)
주님께서 조곤조곤 그들에게 설명하실 수도 있는 문제인데.......
그런데 주님은 왜 이렇게 과민하게 반응하신 것일까요?
식사하기 전 손을 씻는 일은 오랫동안 유대인들에게 합리적인 것으로 여겨져 왔고 그래서 습관적으로 지켜오던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그런 심한 비판을 받을 구석이 없는 관습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 일을 심하게 비판하신 것입니다.
즉 이 관습적인 종교 행위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깨닫고 있지 못했을 뿐이었습니다.
*잘도 저버린다.
주님의 신랄한 지적은 첫째 그들이 그 방식으로 계명의 말씀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중요성에 대해 성경은 스스로를 이렇게 증언합니다.
18. 나는 이 책에 기록한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합니다. 누구든지 여기에 무엇을 덧붙이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 책에 기록한 재앙들을 덧붙이실 것이요,
19. 또 누구든지 이 예언의 책에 기록한 말씀에서 무엇을 없애 버리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한 생명 나무와 그 거룩한 도시에서 그가 누릴 몫을 없애 버리실 것입니다.(계22:18,19)
성경의 내용은 확대되거나 축소될 수 없습니다.
성경은 생명을 주시는 가장 적확한 표현입니다.
말씀에 관해서는 유대인 스스로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들 민족에 대한 특별한 선민의식은 가졌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것입니다.
1. 그러면 유대 사람의 특권은 무엇이고, 할례의 이로움은 무엇입니까?
2. 모든 면에서 많이 있습니다. 첫째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는 것입니다.(롬3:1,2)
그들은 오직 하나님 백성만이 이 하나님의 말씀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지적에 의하면 그들이 그렇게 중하게 여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받을 거룩한 도시의 누릴 몫을 버린 것입니다.
주님의 지적에 의하면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기를 요구하는 바로 이 관습으로 계명을 버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관습에 그런 의도가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런 악한 내용을 날마다 그것도 세 번씩 반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둘째 주님이 이렇게 진노하신 것은 음식 먹기 전에 손을 씻으라는 그들의 요구는 위선이기 때문입니다.
겉보기에 경건하게 보이는 이 요구는 막상 종교적 자기 과시 행위였습니다.
신앙은 내면의 것을 이릅니다.
껍데기 옷을 잘 입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며 정의로운 그런 심장을 가지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름을 입에 달고 사는 그 속사람은 더러웠던 것입니다.
그 외식에 주님께서 진노하신 것입니다.
38. 그런데 그 바리새파 사람은 예수께서 잡수시기 전에 먼저 손을 씻지 않으신 것을 보고서, 이상히 여겼다.
39. 그러나 주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너희 바리새파 사람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하게 하지만,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다.
40. 어리석은 사람들아, 겉을 만드신 분이 속도 만들지 않으셨느냐?
41. 그 속에 있는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해질 것이다.(눅11:38-41)
*악의 방식
그런데 사람들은 우매했습니다.
알려 주려 해도 분별을 못 하고 또 배웠어도 쉽게 잊고 맙니다.
3. 여러분은 그렇게도 어리석습니까?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 와서는 육체로 끝을 맺으려고 합니까?
4. 여러분의 그 많은 체험은, 다 허사가 되었다는 말입니까? 참말로 허사였습니까?(갈3:3,4)
그들은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모른 채로 밥을 먹을 때마다 하루 세끼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내다 버리고 있었습니다.
관습에 젖은 사람들은 자신이 그런 일을 한 적이 없다고 할 것입니다.
주님은 그 예를 들어주셨습니다.
10. 모세가 말하기를 '네 아버지와 네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하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욕하는 자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하였다.
10. For Moses commanded, ‘Respect your father and your mother,’ and, ‘If you curse your father or your mother, you are to be put to death.’
주님은 십계명을 예로 드셨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의 말씀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생명이다.
그 대우도 성립합니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은 것은 죽음입니다.
10. '아버지나 어머니를 욕하는 자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하였다.
10. ‘If you curse your father or your mother, you are to be put to death.’
그렇게 이 계명은 가장 엄격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용케 이 법을 피해 가는 것입니다.
그 교활한 방식은 무엇인가?
1. 고르반
노골적으로 하나님을 적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느 팝가수를 보았습니다.
머리에 뿔을 달고 얼굴에 피 흘리는 화장을 하고 사탄을 찬양하는 노래를 했습니다.
누가 보아도 그 정체를 쉽게 알아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적대하는 이들입니다.
지금 언급하는 것은 그런 방식이 아닙니다.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는 것입니다.
고르반이란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마귀 가면 대신에 하나님의 이름을 들고나온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그 사람의 속까지 경건할 것이라고 여기게 됩니다.
사람 눈이 그 사람의 속까지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막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입으로 경건한 고백을 하고서는 부모에게 마땅히 드릴 것은 자신이 대신 차지하는 것입니다.
경건을 내세우더니 이기적인 욕심을 챙기는 것입니다.
그들은 손을 일단 씻은 다음에 볶아 먹고 튀겨 먹고 비벼 먹고 제 이기심을 채우는 것입니다.
2. 관습
마귀는 이렇게 그럴듯한 관습을 그 유대의 문화에 심어놓은 것입니다.
보이지 않은 속까지 생각할 필요가 없고 그 관습의 행위가 그들의 의를 대변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수천 년 지켜져 왔습니다.
누구인가 다이야몬드 원석인지 들고 가다가 물가에서 떨어뜨렸던 모양입니다.
수 만 개의 돌 중에 그것이 섞이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거기 주저앉아서 그냥 돌멩이는 물로 멀리 던져버리고 다이야몬드 원석을 골라내는 작업을 했습니다.
이것은 아니고
이것도 아니고
휙휙 만 개의 돌을 잡아서 물로 던졌습니다.
만 한 번째 돌은 찾던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이것이다!
그러면서 그것을 멀리 물로 던져버리고 있었습니다.
만개를 던지다 보니 손이 자동으로 그 짓을 한 것입니다.
이런 관습으로 말씀을 헛되게 한 것입니다.
주님은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8.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행1:8)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서 베드로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했을 때 교회가 시비를 걸었습니다.
나름대로 신앙이 깊고 하나님을 잘 안다는 사람들이 그 일을 한 것입니다.
수천 년 지켜오던 그들의 관습 때문이었습니다.
1. 사도들과 유대에 있는 신도들이, 이방 사람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2. 그래서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 왔을 때에, 할례를 받은 신도들이
3. "당신은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들의 집에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은 사람이오" 하고 그를 힐난하였다.(행11:1-3)
주님의 말씀대로 했는데 교회의 공격을 받을 줄이야!
난처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경험한 일을 그들에게 고백했습니다.
4. 이에 베드로가 그 사이에 일어난 일을 차례대로 그들에게 설명하였다.
5. "나는 욥바성에서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내가 무아지경 가운데서 환상을 보았는데,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이, 네 귀퉁이에 끈이 달려서 하늘에서 내 앞에까지 내려왔습니다.
6.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땅 위의 네 발 가진 짐승들과 들짐승들과 기어다니는 것들과 공중의 새들이 있었습니다.
7. 그리고 내가 들으니 '베드로야, 일어나서 잡아 먹어라' 하는 음성이 내게 들려 왔습니다.
8. 그래서 나는 '주님,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저는 속된 것이나 부정한 것은 한 번도 먹은 일이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9.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말아라' 하는 음성이 두 번째로 하늘에서 들려 왔습니다.
10. 이런 일이 세 번 일어났습니다. 그리고서 모든 것은 모두 다시 하늘로 들려 올라갔습니다.(행11:4-10)
그의 고백에 따르면 베드로 자신도 주님의 말씀을 따르기 힘들었던 것입니다.
자신 몸에 밴 관습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명 대신 관습을 바꿔치기(exchange)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안
1. 비판 정신
주님은 당시에 비판 없이 받아들여졌던 손 씻는 관습 행위를 위선이라고 실랄하게 비난 하셨습니다.
생명을 얻으려면 날카로운 비판력이 있어야 합니다.
감기라도 걸리면 열이 나고 두통이 나는 법입니다.
벌벌 떨리고.......
당장에 약을 먹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고통이 괴로웠지만 실은 그 통증이 그 사람을 죽을 위험에서 건진 것입니다.
하지만 암은 그런 자각증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암이 치명적입니다.
그 말기에 이르러서 비로소 병을 눈치채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그들은 전통적인 종교 관습을 비판 없이 행한 것입니다.
그들은 이상한 것을 느끼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게 죽음의 일보 직전까지 온 것입니다.
주님의 공생애는 마귀의 난해한 요구에서 시작됩니다.
3. 그런데, 시험하는 자가 와서,예수께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말해 보아라."
4.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 하였다."(마4:3,4)
식량문제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그런 일이 예수님은 통해서 일어난다면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쉽게 알아볼 것입니다.
그리고 먹을 것이 해결되고!
잘못된 구석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분명하게 NO! 라고 하신 것입니다.
실제로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달라는 순복음 교회의 메시지는 우리 한국 교회에 강한 호소력을 가잤습니다.
그래서 그 사이비성을 지적하더니 교세로 인한 것이었던지 그 메시지를 허용했다가 교회가 지금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아닌 사이비하게 빵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비한 교리가 한국 교회의 치명적인 독이 되고 말았습니다.
주님은 공생애의 초기에 그것을 날카롭게 비판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돌로 빵을 만들었다가는 사람들이 먹을 것만 있으면 된다고 여기게 될 것입니다.
신앙이 별거야 빵 보장하는 거지!
3. 주께서 너희를 낮추시고 굶기시다가, 너희도 알지 못하고 너희의 조상도 알지 못하는 만나를 먹이셨는데, 이것은, 사람이 먹는 것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주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너희에게 알려 주시려는 것이었다.(신8:3)
하나님 입의 말씀을 영적인 양식을 인정하도록 만나를 먹이신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사람을 낮추시고 며칠씩 굶기시며 훈련 시키신 것입니다.
굶어봐야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의 양식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5. 그 때에 악마는 예수를 그 거룩한 도성으로 데리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여기에서 뛰어내려 보아라. 성경에 기록하기를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자기 천사들에게 명하실 것이다.' '그들이 손으로 너를 떠받쳐, 너의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할 것이다' 하였다."
7. 예수께서는 악마에게 말씀하셨다. "또 성경에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아라' 하였다."(마4:5-7)
부흥사들은 그들이 일으킨 기적을 나열하고 다닙니다.
사람들은 그 기적을 들을 때마다 아멘 할렐루야를 외치며 눈물을 흘립니다.
그렇게 열광적으로 하나님을 시험하고 다니는 것입니다.
너희도 이렇게 해봐라!
다른 사람에게 시험당한 적이 있습니까?
그때 기분이 어땠습니까?
어느 날 아들이 혹시 우리 아버지 맞는지 DNA 시험해보러 병원 가자고 하면 어떤 기분이 들겠습니까?
한번 검사로는 알 수 없으니 다른 병원에서 다시 시험해보자고 하면 어떤 기분이 들겠습니까?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장소이지 하나님을 시험하는 장소가 아닙니다.
많은 기적을 일으킬수록 영적인 사람으로 치는데 실은 기적의 수 만큼 하나님을 시험한 숫자가 될 수 있습니다.
1. 바리새파 사람 가운데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유대 의회원이었다.
2. 이 사람이 밤에 예수께 와서 "랍비님, 우리는, 선생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임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같이하지 않으시면, 선생님께서 하시는 그런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요3:1-3)
니고데모의 말에 대해 주님은 “기적이 아니다. 누구든지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즉 기적이 하나님의 나라를 계시할 수 없다고 못 박으신 것입니다.
주님은 성전 위에서 뛰어내려 하나님의 아들임을 입증해 보시라는 마귀의 기적 요구를 단칼에 부인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시험하는 행위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부흥회를 열어서 하나님을 시험하는 중입니다.
지금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 채 박수 치며 눈물 흘리는가?
성경을 기초로 하는 비판력을 가져야 합니다.
당시 지도자들의 말을 비판 없이 곧이곧대로 듣고 따르던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이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7. 그들이 예수께 말하였다.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써 주고 아내를 버리라고 명령하였습니까?"
8.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악하기 때문에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해 준 것이지, 본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음행한 까닭이 아닌데도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에게 장가 드는 사람은, 간음하는 것이다."(마19:7-9)
주님은 모세조차도 근원적인 검토를 하고 계셨습니다.
비판 없이 따르다가는 확신을 가지고 죽음의 길을 걷게 됩니다.
모세의 법을 따라서 이혼 증명을 써주는 일은 의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계십니다.
4. 예수께서 대답하여 말씀하셨다. "너희는, 창조주께서 처음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5.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남자는 부모를 떠나, 자기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되어야 한다' 하신 것을 아직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6.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 놓아서는 안 된다."(마19:4-6)
그들은 모세의 법을 규례대로 따름을 통해서 아내와 한 몸 되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하고 있었습니다.
모세 법의 문자적인 순종 행위는 자신이 완악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 까불지 말라는 말이 하나님과의 친화력을 보증한다는 것입니다.
상식 이하의 잡상인 신학을 가지고는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들먹이며 하나님을 반역하는 것입니다.
2. 성령의 역사
우리는 사람들의 관습을 하나님의 계명과 바꿔치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참으로 인간의 교활한 방식이었습니다.
거라사 사람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놀라운 기적을 목격했습니다.
쇠사슬로도 통제가 되지 않았던 사람이 주님의 말씀 한 마디에 제 정신을 차린 것입니다.
이 일을 보면서 그들은 영적 두려움에 사로 잡혔습니다.
그런데 이 한 사람을 살리는 과정에서 마을의 돼지 떼가 그대로 물에 빠져서 죽었습니다.
그들은 영적인 두려움에 사로 잡혔습니다.
예수께서 마을에 계속 계셨다가는 다음에는 마을의 소 떼가 바다에 빠질 수 있었습니다.
틀림없이 그런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영적인 능력으로 이번에는 나병을 고치신 후에 그 일을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미리 예견한 마을 사람들이 미리 손을 썼습니다.
16. 처음부터 이 일을 본 사람들은, 귀신 들렸던 사람에게 일어난 일과 돼지 떼에게 일어난 일을 그들에게 이야기하였다.
17. 그러자 그들은 예수께, 자기네 지역을 떠나 달라고 간청하였다.(막5:16,17)
그 마을 사람들에게는 사람과 돼지 중에서 돼지가 더 중요했습니다.
거라사의 광인은 군대 귀신 들렸는데 그 마을 사람들은 돼지 귀신이 들려 있었습니다.
이 돼지 귀신은 더 강력해서 예수님을 몰아낸 것입니다.
그들의 가치가 변화하지 않으면 무슨 대안이 없는 것입니다.
찾아오신 예수님도 몰아내고 말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을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는 절대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의 생명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성령을 받고 일어난 일입니다.
44.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면서,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45.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나누어 가졌다.(행2:44,45)
그들이 성령을 받더니 공동체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맘몬의 세상에서 경제가 아니라 사람의 생명을 귀히 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 일을 위해서 가치관을 뒤집어놓을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계셔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을 쫓아내지 않고 우리 안에 말씀을 모시게 될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을 통한 내면의 변화가 없으면 사람들은 말씀을 쫓아낼 또 다른 방식을 고안해 낼 것입니다.
사람에게 근원적인 대안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을 통해 가치 전도가 되어야 합니다.
즉 거듭나야 합니다.
영생을 갈구하는 부자 청년은 계명의 말씀을 다 지켰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이 부자 청년에게 계명에 없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너 거지 되라는 것입니다.
법 규율 말고 법의 정신을 실천하라!
21. 그가 말하였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어려서부터 다 지켰습니다."
22.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게는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화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눅18:21,22)
그는 영생을 얻고자 예수님을 찾아왔다가 이제는 고민을 안고 주님을 등지고 떠난 것입니다.
그는 똑똑한 청년입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그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추구하는 가치가 변화되지 않는 한 예수님의 말씀을 따를 수 없었습니다.
사람이 바뀌어야지 천국 가는 어떤 특별한 방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적용
신문을 보니 어떤 의장인가 높은 관리가 농사하지도 않은 논밭을 수없이 챙겨서 부동산 투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그 지위에서 개발지구 정보를 먼저 알고 농부가 아니면서 그 정보를 까맣게 모르는 농부의 농토를 사둔 것입니다.
그래 놓고 남들에게는 뻔뻔하게 법을 지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의장의 자리에서 의사봉을 내리치면서 또 그런 법을 만듭니다.
이런 식으로 사기를 치는 자들을 주의해야 합니다.
고르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하나님을 적대하는 자들!
애국을 말하면서 전쟁으로 몰아가는 자들!
애국의 이름으로 매국하는 자들!
애국의 이름으로 친일하는 자들!
이 위선자들!
뉴스를 들으니 미국에서 유엔 안보리의 결정을 들어서 북의 위성 발사를 반대했습니다.
그런데 강대국 핵은 터지면 하늘에 평화의 핵구름이 피나?
북의 몇 안 되는 핵은 세상의 평화를 위협하고?
그 정도는 남쪽에서는 대놓고 하는 실험입니다.
우리나라의 우주선 발사를 두고 핵만 달면 된다는 말을 공개된 방송 시간에 내 귀로 들었습니다.
그들은 수를 셀 수 없이 많은 핵을 가지고 북은 화살과 낫자루와 망치를 들고 싸우라는 것입니다.
망치도 내버리라는 것입니다.
평화를 말하려면 제 것부터 버리면서 그 말을 해야 합니다.
이 위선자들!
트럼프가 봉쇄를 풀겠다는 희망을 주자 김정은은 놀라운 결정을 했습니다.
핵 시설을 파괴하는 것을 세계 뉴스에 보여 주었습니다.
저도 두 눈으로 보았습니다.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모두 보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평화가 보장되나 했는데 트럼프가 갑자기 회의 약속조차 지키지 않았습니다.
한반도에 평화가 보장되면 무기 팔아먹을 시장이 줄어서일까?
쥐도 도망할 구멍을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물고기를 잡다가 정신없이 NLL을 넘었던 어떤 탈북자의 고백입니다.
중국 배는 사정없이 공격했지만 그들에게 빵과 나침판을 주면서 북으로 돌아가도록 남한의 군인이 도와주었다는 것입니다.
그 북한 사람이 남한의 군인들에게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세뇌 교육을 받았어도 우리가 한 형제라는 사실을 모를 리 없습니다.
하지만 간신배들이 모질란 짓을 했다가 우리나라가 강대국의 이익을 위한 전쟁터가 되는 수가 있습니다.
그들이 총 쏘라는 명령 한 마디가 떨어지는 경우 판도가 달라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빵과 나침판 대신에 형제의 가슴에 총을 쏴야 하는 순간이 되는 것입니다.
또 형제의 총에 자신이 맞아 죽게 될 것입니다.
돌이킬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돌이킬 수 없는 피바다가 되는 것은 그들의 단 한마디면 족합니다.
“총 쏴!”
그것들은 제 자식은 외국으로 보내놓고 벙커에 숨어서 너희 자식들을 국가를 위해 전쟁터로 보내라고 명령할 것입니다.
싸이렌을 울리면서.......
KF-21로 평양을 10분이면 어쩌고 저쩌고 운운하는 자들은 음식을 먹을 때 왜 손을 씻지 않느냐고 시비를 거는 자들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의 전쟁 무기가 북한을 능가하는 것을 모든 한국 백성이 다 알고 있습니다.
또 전쟁이 나면 우리 땅이 중국 일본 미국의 전쟁터가 되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 날이 오면 강대국들은 핵이 안 터질 만큼 계산해 가면서 창고에 보관했던 전쟁 무기 재고 정리할 것입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을 보세요!
주님은 이에 동조하는 목사들을 향해 “이사야가 바로 너를 두고 말한 것이다. 이 위선자들아!” 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죽고 사는 문제입니다.
모지리들의 말에 동조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상호 교류해야 합니다.
햇볕정책을 펴야 합니다.
전쟁이 아닌 평화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실제로 서로 도와야 합니다.
신앙이란 당장 현실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