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계집(梅溪集) 조위(曺偉)생년1454년(단종 2)몰년1503년(연산군 9)자대허(大虛)호매계(梅溪)본관창녕(昌寧)시호문장(文莊)특기사항김종직(金宗直)의 문인. 신종호(申從濩)ㆍ권건(權健) 등과 교유
梅溪先生文集卷之四 / 序 / 題崔文昌傳後
按。文昌崔公。生於羅季。年十二。隨海舶入唐。尋師力學。十八。中進士第。調宣州溧水縣尉。爲侍御史內供奉。賜紫金魚袋。及黃巢叛。高騈爲天下兵馬都統。辟爲從事。一時檄文狀牒。皆出其手。名動天下。其四六集桂苑筆耕。載於藝文志。及年二十八。僖宗光啓元年。本國康憲王之十一年。奉詔東還。仍留。爲侍讀,翰林學士,兵部侍郞,瑞書監事。後出爲太山,富城太守。眞聖女主之八年。進時務十餘條。主嘉納之。以爲阿湌。自以西遊大唐。東還故國。皆値亂世。自傷不遇。逍遙自放於山水間。營臺榭植松竹。嘯詠風月。若慶州南山。剛州氷山。陜州淸涼寺。智異山雙溪寺。合浦縣月影臺。皆其遊翫之所。後挈家隱伽倻山以終老焉。此公平生出處之終始也。或者疑其以公之大才。卷以東歸。陳力就列。遇事匡救。彌縫其闕失。粉飾其文治。則國勢不至於捏卼。萱裔何遽於猖獗。而顧乃棲遲偃仰。不屑仕宦。國之危亡。視若越人之肥瘠。無乃幾於潔身而亂倫。懷寶而迷邦者耶。是不然。公以童稚之年。遠涉溟海。不憚險艱。未弱冠。取科第如摘髭。其心豈欲效向子平,臺孝威者耶。其勵志功名。而有心於立揚者。蓋無疑也。由其欲仕唐也。則宦寺擅於內。藩鎭橫於外。朱梁纂弑之兆已萌。欲仕本國也。則昏主委政於匪人。女后淫瀆而亂紀。嬖倖盈朝。翕翕訾訾。固不可容吾身。而望其行吾道乎。況公之明識已炳於靑松黃葉之句。大廈將傾。非一木可支。滄海橫流。非隻手可遏。尋深山而友麋鹿。攀薜蘿而弄明月者。豈公之本心哉。嗚呼。自三國以來。文人才士。世不乏人。而公之名獨光前而掩後。膾炙人口。平生足跡所及之處。至今樵人牧豎皆指之曰。崔公所遊之地。至於閭閻細人。鄕曲愚婦。皆知誦公之姓名。慕公之文章。則其所以得於一身者。必有不可名言。而感化於人者。若是其遠且深也。噫。以公之才。生於今日之盛時。其黼黻王猷。振起大雅之風者。爲如何哉。人與時不偶。命與才不諧。豈非千古之恨耶。余少時。嘗讀公
人間之要路通津眼無開處。物外之靑山綠水夢有歸時之句。想公之襟袍飄飄然非塵寰中人。及觀公之平生。名區勝地之在國內者。足迹殆將遍焉。則靑山綠水之句。本非寓言。而益歎公雅意之所存。及今足躡棲隱之地。手撫題詩之石。山之蒼蒼然者。卽公之氣像。水之泠泠然者。卽公之風韻。松籟之咽於半空者。卽公之謦欬。凡接於因入於耳者。無非髣髴乎聲容。則徘徊顧瞻之餘。尙有不盡之懷。余之來此。豈苟焉而已哉。故略敍慕仰之懷於短句之中。且列公平生梗槩。使後之來遊此地者。詳公出處本末云。弘治四年歲在辛亥七月上浣。夏山曺某。書。
성종 | 20 | 1489 | 기유 | 弘治 | 2 | 36 | 2월, 부친상을 당하다. ○ 5월, 黃澗 馬巖山에 장사 지내다. |
성종 | 22 | 1491 | 신해 | 弘治 | 4 | 38 | 2월, 服을 마치다. ○ 5월, 의정부 檢詳에 제수되고 상경하여 사헌부 掌令을 거쳐 승정원 同副承旨가 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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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잡록 3 본조(本朝) / 조위(曹偉)
嘗云。余讀文昌侯人間之要路通津。眼無開處。物外之靑山綠水。夢有歸時之句。想公襟抱飄飄然非塵實中人。行跡 嘗作文昌侯傳云。足躡棲隱之地。手撫題詩之石。山之蒼蒼者。卽公之氣像。水之冷冷者。卽公之風韵。松籟之咽於半空者。卽公之警咳。本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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桂苑筆耕集卷之十七 / 啓狀 一十首 / 再獻啓
某啓。某今月五日。謹以所學篇章五通。貢于賓次。雖慙獻豕。輒覬攀龍脩客路以心摧。望仁風以目斷。乍覩秦雲之態。或似美人。細看燕石之姿。恐爲棄物。伏蒙司徒相公光逾愛日。煦及寒灰。念以遠別海隅。久沈江徼。特垂豐餼。俾濟朝飢。自驚樗櫟之材。已荷稻粱之惠。雖龜魚投水。驟喜命蘇。而蚤蝨負山。深憂力敗。
且某也ꟙ絲雖絡。蛛網自營。萬計尋思。不如學也。百年勤苦。猶恐失之。所以未競宦塗。
但遵儒道。筮仕而懶趨塵土。卜居而貪憶林泉。
人間之要路通津。眼無開處。物外之靑山綠水。夢有歸時。
所願更淬鉛刀。終求鐵印。斂跡而銓藏學藪。安身而跌宕詞林。嘗誦古詩。還符此意。云志士惜日短。愁人知夜長。某旣懷志士之勤。又抱愁人之苦。聊憑毫牘。敢述肺肝。且如蹋壁冥搜。杜門寂坐。席冷而窓風擺雪。筆乾而硯水成氷。欲爲尼父之絶編。無奈羲和之促轡。卽可知指萬卷之經史。恨三冬之景光。及其凍枕傷神。孤燈伴影。寒漏則滴殘別淚。遙碪則擣破羈心。空勞甯戚之悲歌。莫繼陸機之安寢。亦可想貯千端之鬱邑。過五夜之寂寥。然則志士之勤也旣如彼。愁人之苦也又如此。況某家遙日域。路隔天池。投客舍而方甚死讎。持何門而欲安生計。唯慮道之將廢。豈言人不易知。不敢以陋質凡姿。覲相公淸嚴之德。不敢以片言隻字。希相公採錄之恩。所望者。或以其萬里地遠來。十餘年苦學。稍垂惻憫。得濟困窮。則必堅背水之心。終爲勇士決。移山之志。不讓愚公。伏以某譯殊方之語言。學聖代之章句。舞態則難爲短袖。辯詞則未比長裾。舌無三寸之能。空緘壯氣。腸有九回之懇。但戀深恩干浼尊嚴。下情無任感戴兢惶涕泗之至。謹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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且某也ꟙ絲雖絡->且某也兔絲誰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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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유고 제1권 / 시(詩) 오언(五言) 고시(古詩) 율시(律詩) 절구(絶句) 집고(集古) ○칠언(七言) 고시(古詩) 율시(律詩) 절구(絶句) 회문(回文) 집고(集古)
차운하여 인평대군에게 증정하다 임진년(1652, 효종3) 〔次韻敬呈麟坪大君案下 壬辰〕
누가 능히 시종일관 선을 행하리오 / 爲善誰能保始終
동평이 홀로 선현의 풍모를 지녔어라 / 東平獨有昔賢風
정관의 치의의 정이 어찌 한이 있었으랴 / 緇衣鄭館情何限
형연의 예주의 예가 더욱 융숭하였어라 / 醴酒荊筵禮益隆
귀신도 따라서 우는 해타의 주기요 / 咳唾珠璣從鬼泣
하늘의 일 빼앗은 심장의 금수로다 / 心腸錦繡奪天功
조계의 별업에 대해 익히 들었는데 / 漕溪別業聞曾飽
선경 속에서 노닐지 못해 한스럽네 / 恨未從遊縹緲中
한번 임금님 뵙는 소원을 이뤘으니 / 一望天顔志願終
행장은 옛사람의 풍도에 부치려오 / 行藏竊附古人風
예전부터 걸핏하면 구설수에 휘말렸는데 / 從前已會啾喧慣
융숭한 지우(知遇)를 지금 더욱 느끼겠네 / 到此尤知眷遇隆
목을 빼고 옛집으로 돌아가려는 사람에게 / 引領只圖歸舊業
탄핵하는 공력을 왜 그렇게들 허비하는지 / 彈文何事費深功
통진 요로에 어찌 눈독을 들이리오 / 通津要路誰開眼
생각이 청산녹수 속에 들어 있는걸 / 思入靑山綠水中
[주-D001] 인평대군(麟坪大君) : 1622~1658. 이름은 요(㴭), 자는 용함(用涵), 호는 송계(松溪)이다. 인조의 삼남이며 효종의 동생이다. 참고로 고산은 1628년(인조6)에 봉림대군과 인평대군의 사부가 되었다.[주-D002] 누가 …… 지녔어라 : 후한 광무제(後漢光武帝)의 여덟째 아들인 동평왕(東平王) 유창(劉蒼)이 집에 있을 때 어떤 일이 가장 즐겁냐는 광무제의 물음에 “선을 행하는 것이 가장 즐겁다.〔爲善最樂〕”라고 대답한 고사가 있다. 《後漢書 卷42 光武十王列傳 東平憲王蒼》 여기서는 인평대군을 비유하는 말로 쓰였다.[주-D003] 정관(鄭館)의 …… 있었으랴 : 인평대군이 사부(師傅)인 고산을 더할 나위 없이 공경하며 깍듯이 예우했다는 말이다. 〈치의(緇衣)〉는 《시경》 〈정풍(鄭風)〉의 편명(篇名)으로, 현사(賢士)를 예우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예기》 〈치의(緇衣)〉에도 “현인을 좋아하기를 〈치의〉 편처럼 하고, 악인을 미워하기를 〈항백〉 편처럼 하면, 벼슬을 번거롭게 하지 않고도 백성들이 조심할 줄 알게 될 것이며, 형벌을 시험하지 않고도 백성들이 모두 복종할 것이다.〔好賢如緇衣 惡惡如巷伯 則爵不瀆而民作愿 刑不試而民咸服〕”라는 공자(孔子)의 말이 실려 있다. 정관은 정나라 관소라는 뜻으로, 〈치의〉가 〈정풍〉이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주-D004] 형연(荊筵)의 …… 융숭하였어라 : 이 역시 인평대군이 고산을 극진하게 예우한 것을 말한다. 형연은 초(楚)나라의 주연(酒筵)이라는 말이고, 예주(醴酒)는 단술을 말한다. 전한(前漢)의 초 원왕(楚元王)이 빈객을 초대하여 연회를 베풀 적에, 술을 좋아하지 않는 목생(穆生)을 위하여 항상 단술을 마련하여 예우했던 설례(設醴)의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漢書 卷36 楚元王傳》[주-D005] 해타(咳唾)의 주기(珠璣) : 내뱉는 침 모두가 구슬 같다는 해타성주(咳唾成珠)의 고사를 인용한 말로, 인평대군의 시문이 뛰어나다는 말이다. 《장자(莊子)》 〈추수(秋水)〉의 “그대는 저 튀어나오는 침들을 보지 못하는가. 한번 재채기라도 하면 큰 것은 마치 구슬과 같고 작은 것은 안개처럼 부서져 내리는 걸.〔子不見夫唾者乎 噴則大者如珠 小者如霧〕”이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참고로 이백(李白)의 〈첩박명(妾薄命)〉 시에 “그대가 뱉은 침이 구천에서 떨어지니, 바람 따라 모두 주옥을 이루도다.〔咳唾落九天 隨風成珠玉〕”라는 구절이 나온다. 《李太白集 卷3》[주-D006] 조계(漕溪)의 …… 한스럽네 : 조계의 별업(別業)은 인평대군의 별장을 말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3 〈한성부(漢城府)〉에 “
조계동(漕溪洞)은 북한산성(北漢山城) 동문(東門) 밖에 있는데, 그곳에 7층 폭포가 있다. 인평대군의 정자가 있었는데 지금은 헐렸다.”라는 말이 나온다. 또 《고산유고》 부록에 실린 홍우원(洪宇遠)이 지은 〈증자헌대부……윤공(尹公) 시장(諡狀)〉에 “공은 권귀의 문에는 발을 들이지 않았다. 인평대군이 공을 스승으로 모시면서, 조계의 별업에 초청하여 노닐어 보려고 성대하게 자리를 마련하여 재삼 청하였으나 공이 끝내 사양하고 응하지 않았다.〔權貴之門 足迹不到 麟坪大君以師事公 嘗欲邀公遊漕溪別業 盛設供帳 請再三 公終辭不赴〕”라는 말이 나온다.[주-D007] 행장(行藏)은 …… 부치려오 : 조정에서 물러나 초야로 돌아가겠다는 말이다. 행장은 처신이라는 말과 같다. 《논어》 〈술이(述而)〉의 “써 주면 도를 행하고 버리면 도를 간직한 채 숨는 그 일을 오직 안회(顔回) 너와 나만은 할 수가 있다.〔用之則行 舍之則藏 惟我與爾有是夫〕”라고 한 공자의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주-D008]
통진(通津) 요로(要路) : 사통팔달의 나루와 주요 도로라는 뜻으로, 현요(顯要)한 지위를 비유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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退溪先生文集卷之四十九 / 行狀 / 贈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左議政兼領經筵,監春秋館事。行崇政大夫議政府右贊成兼判義禁府,知經筵事權公行狀。
十二月。慶尙道觀察使朴啓賢狀啓。權橃忠義風節如此。請與李彦迪俱賜追奬。上覽而嘉歎。令大臣議處。議謂二人所學所行。燁然可稱。允合追奬。用光繼述。使士氣益振。儒道增重。戊辰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