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양명 51살(1522) 상중에 주장한 현성양지와 명말 정치사상 대립
2019년 4월 28일
* 왕양명이 언제 현성양지를 주장하였는지 문제는 중요합니다. 왕양명 51살에 현성양지를 주장하였고 중요한 의미 두 가지를 설명하였습니다. 대체로 학계에서는 명나라 말기부터 많은 학자들이 왕양명 후학을 대표하는 왕기(王畿,1498-1583,號龍溪,浙江 紹興人)과 나여방(羅汝芳,1515-1588,號近溪,江西南城縣人) 두 학자가 현성양지를 주창하였다고 평가합니다. 그러나 이런 평가는 틀린 것입니다.
왕양명은 50살(1521)에 고향 여요현과 아버지 계신 소흥에 돌아왔습니다. 이때부터 정좌공부보다는 양지를 설명하는 강학에 치중하였습니다. 교법(敎法)이 정좌에서 강연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이듬해(1522) 2월 12일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상중에 있었습니다. 이때 담약수(湛若水,1466-1560,廣東 增城縣人)이 조문을 왔습니다. 왕양명이 상중에 담약수와 간단한 학술대화를 하였습니다. 담약수가 기억하여 기록한 것이 남아있습니다. 담약수 기록에 따르면, 왕양명은 이때 분명히 현성양지를 주장하였습니다.
현성양지에 관하여 왕양명이 두 마디를 말하였습니다. 첫 마디에서는 첫째, 치양지는 옛날 성현의 가르침이 필요하지 않다. 둘째, 천한 일반백성들도 치양지를 할 수 있다. 둘째 마디에서는 첫째, 길가는 어린아이도 치양지를 할 수 있다. 둘째 독서가 필요하지 않다. 다시 요약하여 말하면, 첫째, 어린아이 또는 일반백성들도 치양지를 할 수 있다. 둘째, 옛날 성현의 서적을 읽어서 배울 필요가 없다. 이것이 사실상 현성양지입니다.
현성양지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손댈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손대지 않는다는 뜻의 불범수(不犯手)입니다. 손댄다(犯手, 着手, 動手, 沾手)는 뜻은 달리 어떤 공부과정을 거친다는 것입니다. 놀기 바쁜 어린아이와 살기 바쁜 일반백성들이 무슨 공부할 여유가 많겠습니까? 그래서 왕양명이 말한 어린아이와 일반백성은 사실상 양지에 관하여 손댈 여유가 없다는 뜻을 설명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어린아이와 일반백성들은 양지를 타고났으며 당장 현재 실행하고 있다는 것을 설명한 것입니다. 그래서 타고났으니까 현재 벌써 완성되었다는 뜻에서 현성(現成)이라고 말하고, 당장 현재에서 실행하고 있다는 뜻에서 현재(現在, 見在)라고 말합니다. 현성양지는 사실상 불교의 생득지(生得智)와 비슷하고 현성양지는 불교에서 말하는 아무 생각 없이 물 긷고 땔나무 해오는 운수반시(運水搬柴)와 같습니다.
현성양지를 설명하면, 떠오르는 생각 이미지(念念)마다 양지를 적용하여 천리의 생각인지 또는 인욕의 생각인지를 구별하여 존천리 거인욕하는 공부입니다. 다시 말해 떠오르는 생각 이미지마다 양지를 적용하여 천리와 인욕을 구별하고 천리의 생각은 계속 이어가고 인욕의 생각은 당장 잘라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기 위하여 양지를 타고났고 현재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태주학파의 민간강학 목적입니다.
그러나 현성양지에 관하여 오해하지 말아야할 것이 있습니다. 어린아이와 일반백성들이 현성양지를 당장 현재에 적용하고 있지만, 자신들이 현성양지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어린이와 일반백성들은 현성양지를 타고났다는 것도 모르고 또한 현성양지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까맣게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周易、系辭上』 “백성일용이부지(百姓日用而不知,故君子之道鮮矣)”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태주학파 왕간(王艮,1483-1541,江蘇 安豐鎮人)부터 백성이 모르고 살고 있다는 문제를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나 왕양명은 정작 민간강학을 시도하지 않았고 다만 현성양지를 제시하였습니다.
--------------------------------
그래서 명나라 말기에 태주학파가 백성들을 계몽시키려고 민간강학을 주창하였습니다. 백성들에게 현성양지를 타고났고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깨우쳐주려는 것입니다. 이것이 명말 양명후학의 민간강학 정신이며 민간강학의 계몽정신입니다. 백성들이 자신들의 올바른 생각에 따라 생각을 확장하고 확대하여 자신들의 문제를 올바르게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심지어 백성들 자신들이 올바른 양지에 근거하여 국가의 정책까지도 비판하고 좋은 정책을 제시하자는 정치활동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이것이 소위 명나라 말기에 등장한 하의상달(下意上達)의 민간정치참여입니다. 민간강학이 백성들의 정치참여를 요구한 것입니다. 대표적인 학자는 태주학파의 안균(顔鈞,1504-1596,號山農,又號樵夫,江西 吉安府 永新縣人)입니다. 그러나 태주학파의 민간강학활동이 금지되었고 곧이어 명나라가 멸망하였기 때문에 태주학파의 민간계몽과 하의상달의 민간정치참여는 물밑으로 가라앉았습니다.
명나라가 멸망하고 청나라가 시작할 때, 황종희(黃宗羲,1610-1695,浙江 紹興府 餘姚縣人)는 태주학파의 민간강학을 극구 반대하고 억압하였습니다. 그는 태주학파를 아주 많이 미워하였고 심지어 명나라가 현성양지를 주장한 왕기(王畿)와 태주학파 때문에 멸망하였다고 국가멸망의 죄를 덮어씌웠습니다. 황종희는 지식인 계층(紳士, 紳衿, 현직관료, 퇴직관료, 학교의 학생들)이 국가정치를 주도하여야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지식인들의 여론을 수렴할 수 있는 학교가 중요하며 국가는 학교의 여론을 참고해야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옛날부터 내려오는 것처럼 관료(현지관료와 퇴직관료)들의 여론을 반영하는 학생들의 여론을 중요하게 여겼던 것입니다.
황종희의 정치적 입장이 앞서 말한 안균의 정치적 입장과는 아주 달랐는데, 서로 반영한 사회계층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물론 누구 입장이 좋다고 쉽게 말하기 어렵습니다. 보수파들은 황종희를 지지하였고, 진보파는 안균을 지지하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황종희가 왕기와 나여방의 현성양지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 싸잡아 비판한 것은 잘못입니다. 왕기는 만년에 각지를 돌면서 서원에서 지식인들에게 강학하였고, 태주학파 나여방도 일생동안 각지 서원에서 강학하면서도 사실상 서원에 일반백성들을 모아놓고 강학한 것이 많았습니다. 이것이 왕기와 나여방 둘이 다른 점입니다.
이렇게 보면, 청나라 말기에 어떤 학자들은 황종희 『명이대방록(明夷待訪錄)』의 정치사상이 서양 시민혁명에 공헌한 루소(Jean Jacques Rousseau: 1712-1778)의 『사회계약론』을 닮았다고 주장한 것은 오해이며 지나친 해석입니다. 황종희는 시민계층을 위한 정치사상을 주장하지 않았고, 오히려 태주학파가 그런 정치적 경향을 갖고 있었습니다. 태주학파의 민간강학이라고 하더라도 명말청초시기에는 아직 중국에서 시민계층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민정치라고 말하기 어렵고 그런 정치적 경향이 싹트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
湛若水,『泉翁大全集』,卷五十七,「奠王陽明先生文」:
壬午(1522)暮春,予吊兄戚。
云:“致良知,奚必古籍?如我之言,可行厮役。”
임오년(1522) 늦봄에 나는 왕양명 아버지 조문을 갔다.
이때 왕양명이 “치양지에 왜 옛날 고적(古籍)이 필요합니까? 제가 주장한 치양지는 천한 백성(厮役)들도 실행할 수 있습니다.”고 말하였습니다.
-----------------------
湛若水,『泉翁大全集』,卷七十二,「新泉問辯續錄」:
吾元年(嘉靖元年,1522)同方西樵(方獻夫)、王改齋(王思)過江吊喪。
陽明曾親說:“我此學,途中小兒亦行得,不須讀書。”
想是一時之言乎?未可知也。亦是吾後來見其學者說此。
吾云:“吾與爾說好了,只加學問思辨篤行,如此致知便是了。
나는 가정 원년(1522)에 방헌부(方獻夫,1485-1544,廣東省 南海縣人)과 왕사(王思,1481-1524,江西 吉安府 泰和縣人)와 함께 양자강을 건너 왕양명 아버지 조문을 갔습니다.
이때 왕양명이 직접 말하길 “저의 학술은 길가는 어린아이도 실행할 수 있습니다. 굳이 독서하여 배울 필요가 없습니다.”고 하였습니다.
나(湛若水)는 왕양명이 그냥 상황에 따라 했던 말이라고 여겼고 자세한 내용을 이해하려고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뒤에 나는 왕양명 문인들도 똑같이 주장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반박하여 “나는 너희들에게 설명하였듯이, 양지를 타고났더라도 반드시 『중용』 ‘배우고 묻고 생각하고 따지고 실행한다.(博學之,審問之,慎思之,明辨之,篤行之。)’는 공부과정을 더하여야만 양지를 깨달을 수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