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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게스트
이 홍사
-이게 왜 이 지랄이야?
화들짝 놀라 얼굴에 뒤집어 쓴 소주를 쓸어내리며 소리 지르다가, 내가 지른 소리에 놀라 잠이 깨었다. 얼굴에 묻은 액체는 소주가 아니라 땀이었다.
누군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모두들 원탁 앞에 둘러앉아 있었다.
원탁이라고 해보았자 고급 중화요리 식당의 회전 원탁이 아니고 드럼통을 잘라서 연탄을 가운데 넣을 수 있는 싸구려 철판 원탁이다. 아마도 어느 선술집인 모양이라고 둘러보니, 이런! 군용트럭의 적재함 위였다. 하필이면 군용트럭 위에서 술판을 벌이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연탄불 위에는 메기매운탕이 흰 속살을 드러내며 먹음직스럽게 끓고 있었다. 술판이 벌어진 걸로 미루어 질질 끌던 임금협상에서 극적으로 타결되었다고 한잔하는 자리인 모양이다. 모두가 소주가 든 잔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 자리에 내가 왜 끼었는지 모르겠다. 그런 자리는 노조위원장이 상석이기 마련이다. 노조위원장인 경무가 건배제의를 하는데 무슨 예기인지 모르지만 얘기가 길어지자 옆에 앉은 누군가가 ‘팍 줄여서 씨부렁거리라’고 초를 쳤다. 그러자 경무 녀석이 ‘어이! 씨 뭐라는 거야?’ 발끈하며 들고 있던 소주를 얼굴에 확 뿌렸다. 그렇게 당해도 싸지! 생각했는데, 정작 소주를 얼굴에 뒤집어 쓴 사람은 옆에 앉아있던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였다.
소리를 지르고 잠에서 깨어 여기가 어디인가? 현실을 파악하자 이름 모를 낭패감과 실망감이 울컥 솟구쳤다. 이 고약한 감정은 고약한 꿈 때문이 아니다. 잠에서 깨며 한국의 내 방인 줄 알았는데 어둠 속에 보아도 내 방이 아니라 미얀마의 숙소였기 때문이다. 에어컨을 끄고 잔 까닭에 땀이 온 몸에 흥건했다. 침대머리를 더듬어 리모컨을 찾아 에어컨을 켰다. 그리고 시계를 보지 않고 누워 생생한 꿈을 되짚어 보았다. 꿈은 언제나 논리적이 못하다. 옆에 앉은 어느 녀석이 시비를 걸었는데 왜 내 얼굴에 소주 세례를 날렸을까? 꿈이지만 메기매운탕이 먹음직스러웠는데 그걸 맛보지 못하고 깬 게 좀 아쉬웠다.
경무 녀석은 시를 쓰는 문단의 후배다.
그 녀석이 시설관리공단 노조위원장이 된 건 지난봄이었다. 녀석은 위원장이 되고 나서 전 노조위원장이 도대체 뭘 했는지 모르겠다며 술자리에서 골머리를 섞여가며 해야만 할 일이 태산 같다며 푸념을 늘어놓곤 했다. 속이 상한 녀석은 근무시간에 나와서 나랑 술을 마시고 바로 퇴근하는 날도 있었고 자정이 넘도록 노조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날도 있었다. 내가 이곳으로 들어오기 전날 만났을 때는 시장과 단독 면담을 하여 단판 지을 일이 있다며 준비 중이라고 했다.
꿈으로 미루어 아마도 그 녀석이 골머리를 앓던 일이 해결되기는 한 모양인데 소주를 왜 내 얼굴로 날렸을까? 그렇게 소주를 얼굴에 뒤지어 쓴 꿈이 길몽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길몽이라면 오늘 무슨 좋은 일이 있으려나?
어둠 속에 누워서 찬찬히 돌아가는 일을 짚어보았다.
며칠 전에 허가를 받고 기초공사를 시작하려는 현장에 클레임을 걸었다. 지주와 공동개발을 하는 건이다. 지주는 땅을 대고 나는 공사비를 부담해서 완공되면 반반씩 갈라서 분양하는 건인데 이젠 제도가 바뀌어서 일을 해도 남는 게 없는 공사다. 원래의 계획은 한 층에 세 세대씩 칠 층으로 올려서 땅을 댄 지주가 여덟 세대를 가져가고 나머지는 내 몫으로 분양을 하기로 한 건인데 각 부서에 허가가 도는 과정에서 그 땅에는 교통량과 전기 수요량을 고려해서 오 층으로 밖에는 허가가 나지 않는다고 건설부로부터 통보를 받았다. 내 몫으로 지정된 여섯 세대가 사라지는데 지주는 자기가 당초에 찍은 여덟 세대를 다 가져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공사를 할 기간 동안 땅 주인이 살 집의 임대료와 설계비, 허가비용은 이미 내 돈으로 들어간 상태다. 아무리 머릿속의 주산을 두드려도 남는 게 없다. 생각다 못해 상세하게 내 몫으로 돌아올 집의 예상 분양가를 합산하고 이미 들어간 돈과 예상 소요공사비를 적어서 비교를 하니 그 이윤은 마이너스였다. 그걸 세부적으로 정리해서 들고 며칠 전에 그 계약을 중개한 사람을 찾아갔다. 비교한 걸 내놓고 설명을 하니 저어기 놀라는 눈치였다. 주인에게 직접 짓든지 아니면 내 요구대로 나누자고 클레임을 걸어놓은 상태인데 종무소식이다. 자기들도 형제간에 어떻게 가른다는 계획이 있으니 가족회의를 거쳐야할 것이다. 아무튼, 그 일이 속 시원히 빨리 풀렸으면 좋겠다.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고 그대로 누워 에어컨을 껐다. 요즘 나가면 한국 사람들은 거의 콧물을 흘리며 코맹맹이 소리를 하는데 전부가 에어컨 탓이다. 어둠이 눈에 익어 방안의 사물들의 윤곽이 어렴풋이 보인다. 불을 켜지 않고 그대로 누워있었다. 한국은 삼복의 폭염 중이고 계속되는 열대야로 난리인데 이곳은 오히려 선선하다. 열대 몬순 기후의 우기라서 그렇다. 매일 비가 한두 차례씩 내린다. 비가 그쳤나 싶으면 또 내리고 내리나 싶어 창밖을 보면 햇빛이 나있다. 일기를 종잡을 수가 없어 아예 일기예보 같은 건 하지 않는 나라다. 미얀마 북부지방으로 비가 많이 와서 연일 난리다. 신문에는 매일 대통령이 어느 수해지역을 다녀온 보도를 하고 길에 나가면 수재민을 돕자고 마이크를 설치하고 내가 알아듣지 못할 말로 떠들며 성금을 걷는 곳이 차가 밀리는 곳마다 있다. 완전히 나라가 난리다. 신문에 보도된 사진을 보면 평야지대가 잠겨 양양한 물바다다. 이게 한국 뉴스에도 엄청 크게 보도가 된 모양이다. 아내를 비롯하여 동생, 지인들로부터 괜찮으냐고 묻는 안부전화가 여러 번 왔다. 아마도 현지 내 전화번호를 아는 사람은 모두가 전화를 한 것 같다. 내가 사는 곳은 아파트 삼 충이라 아직 물에 잠기지 않았다는 대답으로 일관했다. 이곳에도 며칠간 엄청난 폭우가 쏟아져 아파트 주차장이 잠겨 물바다가 되었다.
다시 잠들기는 어렵겠다. 어지간히 잔 모양인데 아직 닭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 보니 한밤중인 모양이다. 이곳에선 새벽에 시계를 잘 보지 않는다. 어릴 적처럼 닭이 훼치는 소리로 새벽을 가늠한다. 이 신축 아파트 뒤에는 바로 미얀마 전통주택의 마을이 있다. 전통주택이라고 하면 거의가 대나무로 만든 집인데 집집마다 닭을 기르고 있는 모양이다. 새벽 네 시가 되면 어김없이 닭이 훼치는 소리가 들린다. 아파트에서 닭이 훼치는 소리를 들으니 이렇게 생경스런 보너스가 없다. 서울이면 턱도 없을 텐데 양곤이나 가능한 일이다. 처음에 훼치는 소리를 듣고 시계를 보며 며칠간 실험해 보았더니 네 시에서 앞뒤로 십분 간격이다. 거의가 정확하다. 한 집 닭이 훼치면 너도나도 닭이란 닭은 모두 목청을 높인다. 잊고 있었던 그 소리를 듣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닭울음소리뿐만 아니라 개구리 울음소리도 들린다. 아파트와 미얀마 주택이 있는 마을 사이에 좁다란 늪지가 있다. 그곳이 개구리 서식지인 모양이다. 개구리가 밤새도록 운다. 자다가 들어도 그 소리가 정겹다.
개구리 소리가 노래인지 울음인지 모르겠다. 밤새도록 운다는 사람도 있고 밤새도록 노래한다는 사람도 있다. 하여튼 한국의 우리 집에선 들을 수 없는 정겨운 자연의 소리다. 개구리 소리를 들으며 침대에 조금 누워있으니 드디어 닭이 홰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한 집 닭이 선창을 하니 너도나도 목청을 높여 새벽하늘을 갈라놓는다. 그럼 그렇지. 어지간히 새벽이 되어간다는 짐작이 틀리지 않았다. 일어나서 불을 켜고 시험 삼아 휴대폰의 시계를 보았다. 정확히 네 시 오 분이다. 닭은 무슨 감각으로 이렇게 정확히 시간을 가늠할까? 갑자기 그게 궁금해졌다. 누군가 그랬다. 밤새 족제비나 삵의 공포에서 벗어난다는 기쁨의 외침이라고. 그 기쁨을 수탉들은 새벽마다 공유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 메시지로 동네에서 제일 대장인 수탉이 동네 닭에게 밤새 안녕하신가? 울음소리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고 동네 수탉들은 안녕하다고 답변을 보내는 생존수단의 한 방법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수탉은 저녁에 울지 않는다. 내 어릴 적 초저녁에 우는, 수탉으로서의 범절과 눈치가 동시에 없는 수탉은 누구네 닭을 막론하고 다음날 백숙이나 찜닭이 되어 상위에 올랐다. 닭 주인은 마을 사람들 입방아에 잡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마련이다.
초저녁잠이 많은 나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편이다. 이곳에서 네 시에 일어나도 한국 시간으로 계산하면 여섯 시 반이다. 일어날 시간이 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후딱 일어나 욕실로 들어가 대충 씻고 나와 옷을 갈아입고 사무실로 나왔다. 사무실이라고 해보았자 거실에 임시사무실을 꾸며 놓은 것이다. 우리 건물이 어느 것이라도 먼저 완공되는 건물 일 층으로 들어가려고 사무실을 따로 빌리지 않고 그냥 아파트 거실에 꼭 필요한 책상 네 개를 놓고 사무실로 쓰고 있다. 이곳에선 항상 내가 가장 먼저 일어나 새벽을 연다. 사무실로 쓰는 현관 한쪽에는 접대용 소파가 있고 그곳에 텔레비전이 놓여있다. 사무실은 불이 다 꺼져있고 비었는데 텔레비전이 켜져 있다. 가사도우미들은 이곳에서도 한국 드라마를 엄청 본다. 우리 집뿐만 아니라 미얀마에서 한국 드라마는 엄청 인기가 있다. 나가면 현지인들이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옵빠. 안냐세요? 정도는 다 한다. 불을 켜고 리모컨을 찾아서 텔레비전부터 껐다. 가사도우미들이 밤늦도록 보다가 끄지 않고 들어간 게 아니다. 밤중에 한 차례 정전이 되었던 모양이다. 정전이 되면 집안의 모든 가전기구가 꺼진다. 그런데 다시 전기가 들어오면 무슨 연유인지 텔레비전은 저절로 켜지는 것이다. 이곳은 전력사정이 좋지 않아 하루에 몇 차례 정전이 되는 경우도 있고 여덟 시간이 넘도록 정전이 되어 냉장고에서 물이 질질 흐르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아파트 단지는 대형 발전기를 갖추고 있어 정전이 되면 저절로 발전기가 돌아가 승강기와 복도에는 전기를 공급하는 시스템으로 갖추어 놓았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간 승강기에 꼼짝없이 갇히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승강기를 설치하는 건물에는 무조건 자가 발전 시설을 갖추도록 하는 게 이 나라 건축법에 기재되어 있는 사항이다.
다른 방에는 아직 오밤중이다.
가사도우미들은 다섯 시 반이 넘어서 일어나고 총괄 매니저인 부장은 아침을 차려놓고 깨워야 일어난다. 밤늦도록 뭘 하는지 모르겠다. 정신을 가다듬고 책상 앞에 앉아 달력을 보며 날짜를 더듬어보니 달이 지났다. 탁상용 달력은 한국에서 가져온 것이다. 우체국에서 체신보험 가입자에게만 보내주는 것인 모양인데 달력 하단에 8월부터 우편번호가 다섯 자리 바뀐다고 적혀있다. 오늘부터 팔월인 것이다. 달력에 적힌 대로라면 오늘부터 우편번호가 바뀌는 모양이다. 그러나저러나 한국은 지금 어지간히 덥겠다. 내 기억으로는 중복과 말복 사이인 7월 말일과 8월 1일이 가장 덥다. 열대야로 잠을 못 이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건 한국에 있는 사람들 사정이고 여긴 지금이 선선하다.
탁상용 달력을 넘긴다.
아라비아 숫자로 8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영어로 빨간 글씨로 인쇄된 어게스트(August)다. 이 팔 월의 고유명사를 보면 항상 못마땅하다. 지독하고 막강한 권력과 독재의 잔재인 것으로 내 머리에 강하게 뿌리내린 인식을 전환시킬 수가 없다.
어게스트의 유래를 짚어보면 로마의 첫 번째 황제 아우쿠르투스는 자기의 삼촌인 율리우스가 7월을 자신의 이름을 따서 쥴라이(July) 라고 부르는데 본을 떠서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 나서 자신의 생일이 든 8월을 어게스트 (August)로 이름을 바꾸고 7월은 31일이 있는 큰달인데 반해 8월은 작은 달이라 황제가 아닌 삼촌에게 져서는 안 된다며 2월에서 하루를 떼어 와서 8월을 31일로 바꾸고 그렇게 부르라고 지시를 했다. 순박한 고대 로마인들은 첫 번째 황제인 뜻을 기리고 그를 칭송하기 위해 그 달을 어게스트라고 불렀다. 그 후 일 년이 열 달에서 열두 달로 태양력을 바꾸면서도 어게스트는 그대로 두고 9월이 세템버(Septmber) 일곱 번째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이고 10월이 옥토버(October) 역시 여덟 번째라는 뜻이 달의 이름으로 굳어서 아직까지 쓰이고 있다. 어게스트는 아우쿠르투스의 황제가 된 이름이지만 영어로 풀이하면 위엄 있고, 당당하고, 존귀한, 이라는 정말이지 위엄 있는 뜻을 지니고 있다.
매월 첫날이 되면 그 달의 슬로건을 나는 나름대로 정한다. 그게 벌써 십 년이 넘었다. 그러니 안 써본 한문이 없을 정도다. 한문으로 딱 한 자를 선정하는데 그 글이 그 달의 목적이라도 좋고 지침이나 소원이라도 좋다. 공사비를 받지 못해 지독히 약이 오른 때에는 거둘 수收자를쓴 적도 있고 맹장염 수술을 받던 달에는 기운 기氣자를 적은 적도 있다. 지난 칠 월 그러니까 어제까지는 편안할 안安자을 썼다. 탁상용 달력 아라비아 숫자 7 앞의 여백에 볼펜으로 그렇게 적어두고 편안한 달이 되기 위해 노력했었다.
지난달이 편안했는가?
어제로 마침표를 찍은 지난달을 짚어보지만 잘 모르겠다.
팔월은 무엇으로 정하지?
한참 달력을 보며 생각하다가 볼펜으로 쾌할 쾌快자를 적어 보았다. 그렇데 이번 달은 유쾌하게, 통쾌하게, 상쾌하고 명쾌하게 살자. 글씨 연습을 두 번하고 정성들여 快자를 적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래 쾌하게 살자. 방금 적은 글씨를 보니 마음에 들지 않는다. 참으로 고쳐지지 않는 지독한 악필이다. 언제 적어놓고 보아도 글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쩌다 남의 집 큰일이 있으면 축의나 부의금 봉투를 대여섯 장 찢고 나서 봉투에 적절한 금액을 담는 경우가 다반사다. 봉투에 적은 글씨가 마음에 안 들어서 봉투를 찢어버리고 다시 적은 인간은 아마도 나 밖에 없을 게다. 오늘도 역시 마찬가지다. 어딘가 모르게 글씨 균형이 안 맞다. 지난밤에 해석하며 더듬거리다가 던져둔 영자 신문 귀퉁이 여백에 두 번이나 연습을 해보고 썼는데도 그렇다. 그러나 악필이 무슨 상관이랴. 뜻만 내 마음에 새기고 있으면 된다. 이번 달은 유쾌한 일만 있으면 좋겠다. 아니, 쾌하게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휴대폰을 열어 네트워크를 켜고 인터넷을 부팅 시켰다.
새벽마다 인터넷으로 실시간 날아오는 한국의 뉴스를 접한다. 인터넷만이 내가 여기서 한국을 들여다보는 유일한 창구다. 여기 인터넷은 유선이 아니라 모두가 무선이다. 인터넷이 되는 휴대폰을 켜서 네트워크를 실행시켜 노트북 옆에 두면 노트북에 인터넷망이 잡히고 안테나 그림이 뜬다. 예전에는 레드링크를 썼는데 요금이 만만치 않을뿐더러 툭하면 끊기는 게 대단히 불편했다. 네트워크를 켜고 노트북의 인터넷을 열었다.
헤드라인을 쭉 훑어보니 북한이 광복절을 기점으로 시간을 삼십분 늦춘다는 얘기가 실려 있다. 흥미 있는 얘기다. 그걸 클릭하고 내용을 훑어보려는데 인터넷이 다운되며 연결할 수 없는 페이지라고 뜬다. 되돌아가기를 클릭했다. 역시 연결할 수 없는 페이지라는 화면이 뜬다.
-어? 이게 왜 이 지랄이야?
인터넷을 종료시켰다가 다시 부팅시켜도 마찬가지다. 네트워크가 잘못 되었나 살펴보았지만 노트북에 안테나는 그대로 떠있다. 아무리 주물럭거려도 인터넷이 뜨지 않는 것이다. 뭐가 잘못된 모양이다. 네트워크를 죽이고 노트북을 완전히 껐다가 다시 부팅을 시켜본다. 얼레? 마찬가지다.
아, 삼십 분 시간을 늦춘다는 지당한 사실을 상세하게 읽어야 되는데........
예전에 쓴 글에 한국 시간을 삼십 분 늦추어서 서울의 고유시간, 즉 한반도의 시간으로 맞추어야 한다고 내가 지적한 바가 있다. 한국 시간을 보면 늘 못마땅하다. 그 글이 아마도 지난번에 낸 책에 실려 있을 게다. 한국 시간을 동경 시간과 맞추어 놓았으니 정오가 되어도 해가 하늘 중간에 있는 게 아니다. 열두 시 반쯤 되어야 해가 하늘 중간에 있다는 눈으로 보아도 가늠할 수가 있다.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를 기준으로 경도를 정했는데 동경과 서울은, 서울과 북경보다 더 큰 경도차이가 있다. 헌데 북경과는 한 시간의 차이가 있는 반면 동경과는 시간 차이가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찾아보니 동지든 하지든 한국은 남중이 열두 시 삼십사 분 경이다. 당연히 삼십 분 정도 시간을 늦추어서 우리의 고유시간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시간은 일제 잔재다. 일제 잔재를 청산하는 의미에서라도 그렇게 시간을 고쳐야 한다고 지적한 바가 있는데 지당한 글이 실린 내 책이 북한으로 흘러들어가 그걸 보고 인식했는지 아니면 나랑 같은 생각을 했는지 광복 70주년이 되는, 올해 광복절부터 북한은 시간을 기존 시간에서 삼십 분을 늦추어 평양 고유시간을 만든다는 기사가 헤드라인에 잠시 떴었다.
잘 하는 일이다. 박수를 보내고 싶다. 팔월에 들은 첫 소식으로는 굉장히 유쾌한 소식이다. 그래야 마땅하다. 한국 국회의원은 뭘 하는지 모르겠다. 이제 와서 시간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부랴부랴 삼십 분을 늦추면 북한을 따라하는 꼴이 된다. 북한을 따라 하기 싫어서 일제의 잔재를 그대로 둔다? 남북이 원래 한 나라인데 시간이 삼십 분 차이가 난다. 이제 대한민국을 정의하자면 대륙도 아니고 반도도 아니라 섬으로 고립이 되었다. 그것도 완전한 섬이 아니라 한쪽은 거세 회오리로 하늘 길도 바닷길도 열리지 않는, 아주 고약한 섬이다. 아득한 고립감이 밀려든다. 시간이 차이가 나는데 남북이 한나라다? 그건 말이 안 된다. 한국 정치인들은 개밥그릇 싸움만 했지 정작 뭘 개혁해야할 지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참 안타까운 사실인데, 욕설은 생략하고 인터넷이 안 되니 당장은 이 사실이 더 답답하다. 그 기사를 더 보고 댓글이라도 달아주고 싶은데 인터넷이 먹통이 되었다.
네트워크가 잘못 되었나? 다시 깔고 싶지만 페스워드를 모른다. 이 부장이 일어나면 좀 고쳐 달라고 부탁을 해야겠다. 인터넷이 안 되니 새벽의 일상이 갑자기 달라졌다.
책상모서리에 팔을 올려 턱을 괴고 무엇을 할까 잠시 눈을 감는다.
시간도 우리 고유의 시간으로 서둘러 고쳐야하지만 우리나라 지적 원점이 동경이다. 1910년 일제 강점기에 도입된 지적 원점이다. 광복 70주년을 맞는데 이거 생각하면 밥 먹고도 소화가 되질 않는다. 지금 GPS가 뜨는 세상인데 아직까지 동경을 원점으로 하는 지적을 쓰고 있다. 말이 안 된다. 시간은 이미 북한보다 뒤졌지만 지적은 북한보다 발 빠르게 움직여 세계측지로 고쳐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이다.
독도는 우리 땅 이라는 대중가요가 있다. 그 노래 가사를 들으면 은근히 화가 난다. 노래 가사에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실컷 얘기해놓고 위치를 말할 적에는 동경 132 북위 37이라고 동경을 기준으로 위치를 지적한다. 거기에 동경 얘기가 왜 나오는지 모르겠다. 그걸 빼고도 얼마든지 노랫말을 만들 수 있을 터인데, 애국가에 버금가는 나라 사랑의 의미가 내포된 대중가요인데 상대를 일본으로 설정한 노랫말에 위치를 말할 때는 동경이 들어가는 건 엄청난 모순이다. 아무튼 빨리 세계측지를 도입해 써야하는데 그걸 꼬집으려고 얼마 전에 찾아보니 지금 작업 중이란다. 지금 지적 원점이 잘못되어 제자리에 있는 땅은 한국에 아무 것도 없다. 측량을 할 때마다 조금씩 차이가 난다. 그걸로 법정 소송까지 붙는 경우가 허다하다. 동경을 원점으로 하는 어설픈 지적보다는 완벽한 세계측지를 빨리 도입해야 한다. 가끔 등산을 하다보면 산 정상마다 지적공사에서 지적 측점을 콘크리트로 표시해 두었다. 들추어보면 그건 다 틀리는 측점이다. 빨리 고쳐야 한다. 지금 작업 중이라니 그건 지적공사에서 알아서 할 일이고 인터넷이 안 되니 참으로 답답하다.
-이거 답답하네!
혼잣소리를 뱉고 보니 나도 인터넷 중독자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이 까짓 인터넷이 안 된다고 새벽 시간이 붕 떠서야 되겠는가?
어제 밤에 보다가 던져둔 영자 신문을 뒤적인다. 뉴스도 뉴스지만 영어공부를 하는 차원에서 구독하는 신문이다.
이곳에 와서 영어가 절실해졌다. 미얀마 말은 너무 어려워서 혀가 돌아가지 않고 영어로 소통을 해야 하는데 영어가 젬병이니 가슴을 쥐어뜯을 노릇이다. 미얀마는 영국 지배를 오래 받아서 도량형이나 단위가 영국식이고 영어가 자연스럽게 되는 나라다. 거리에 나가면 반은 미얀마 글씨가 새겨진 간판이고 반은 영어 간판이다. 영어가 생활 속에 파고든 나라다. 가게 점원은 물론이고 아파트 경비까지 영어를 자유자제로 구사하는 나라다. 영어만 잘해도 생활하는데 지장이 없는 나라인데 혀가 돌아가지 않는다. 이거? 혀가 잘 돌아가도록, 윤활차원에서 매일 버트를 먹어야 하나?
신문에 박힌 사진을 보고 내용을 짐작하고 모르는 단어는 휴대폰에 깔린 전자 사전을 찾아가면서 읽어보지만 온통 수해지역을 돌아다니는 대통령 이야기뿐이다. 이곳에서 신문을 보면 우리나라 삼십 년 전의 신문을 보는 것 같다. 일면은 무조건 대통령 예기로 할당된 듯하다. 누구에게 전언을 보내고 어느 나라로부터 메시지를 받았고 어느 수해지역을 다녔다는 대통령 중심의 예기다. 그게 보기 싫어 나는 신문을 뒤에서부터 본다. 스포츠와 문화면을 단어를 찾아가며 읽는다. 온통 낯선 단어라 한 페이지를 보는데 한 시간 이상 걸리는 경우도 있다. 내가 읽은 신문은 온통 낙서투성이다. 모르는 단어를 사전으로 찾아 한글로 적어놓기 때문이다. 내가 읽은 신문은 이부장이 절대로 못 읽는다. 온통 낙서투성이라 신문이 주는 신선한 맛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돋보기를 끼고 신문을 뒤적이고 있는데 가사 도우미들 방에서 알람 울리는 소리가 들린다. 시계를 보지 않아도 다섯 시 반인 걸 안다. 두 처녀는 다섯 시 반에 알람을 맞추어 놓고 일어난다. 스포츠 면은 어제 다 읽어 온통 낙서투성이다. 연예 면에 눈길을 주고 있는데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 부장 방과 도우미 아가씨들이 쓰는 방은 현관에서 바로들어갈 수 있도록 방문이 나란히 붙어 있다. 내 방은 욕실이 딸린 마스터 룸이라 주방을 통해서 들어가야 한다. 방문이 여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신문에 눈길을 주고 건성으로 인사를 한다. 아마도 서른여섯 살짜리 노처녀 퓨퓨일 것이다.
-에일로 까웅라? (잘 잤어?)
-잘 주무셨습니까? 일찍 일어나셨네요.
퓨퓨가 아니다. 그렇다고 이부장의 목소리도 아니다. 이게 누구야? 화들짝 놀라 신문에서 눈길을 떼고 돋보기 너머로 본다. 얼레? 강 프로다.
-하룻밤 신세 좀 졌습니다.
-어제 이부장이랑 한잔 한 모양이네?
-예.......
대답을 얼버무리며 새집을 지은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주방으로 사라졌다. 화장실은 주방을 통해서 들어가야 한다. 강 프로, 눈치를 보니 한국 생활에 적응을 못하는 모양이다. 한국에선 물위에 뜬 기름처럼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떠돌다가 만만하다고 생각되는 미얀마를 들락거리는 철새다. 강 프로가 아니어도 미얀마 한국 교민들 중에는 그런 작자가 반은 될 것이다. 직업을 물으면 바로 대답이 튀어나오질 않고 더듬거리는 작자들이다. 한국은 생활비가 많이 들고 가서 있어도 마땅한 일이 없다. 그런 작자들이 미얀마에 날아와서 이것저것 이권에 개입하여 흐르는 떡고물이나 주워 먹고 한국에서 누가 뭘 조사해달라고 하면 경비만 받아서 냉큼 날아온다. 강 프로는 골프 선수다. 같이 상대한 적이 없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검증하진 못했지만 주위에서 그렇게 부른다. 이곳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골프장을 부킹해주고 레슨도 하며 어쩌다 골프관광객들 가이드도 하며 지내다가 그 걸로는 체류비가 안 되었는지 보따리를 싸들고 한국으로 들어갔다가 얼마 전에 다시 나왔다는 소리를 이 부장에게 들었다. 이 부장에게 이번에는 무슨 건을 물고 왔냐고 물으니 LED전광판 판매란다. 골프와는 한참 떨어진 거리의 사업이다. 전광판을 직접 하는 게 아니고 여기서 주문을 받아 한국 어느 회사에 제작을 맡기고 물건이 들어오면 설치해주고 마진을 먹는 프리랜스로 뛰는 모양이다.
어제 저녁은 이 부장과 둘이 먹었다. 나간다는 소리를 못 들었는데 오밤중에 나간 모양이다. 주제가 넓어 이렇게 불청객을 데려오는 게 한 달에 대여섯 번은 족히 된다. 하여 이 부장 방에는 빈 침대 하나가 여분으로 있다.
신문에 눈길을 주고 있는 사이 주방을 통해서 나온 강 프로가 내 눈치를 살피며 방으로 조용히 사라졌다. 퓨퓨가 나오면 씻기도 전에 잠이 덕지덕지 묻은 눈으로 바로 모닝커피를 대령한다. 새벽마다 커피를 한잔씩 마시는 게 이 곳에 와서 버릇이 되었다. 순한 블랙커피를 한 모금씩 입에 물고 향을 음미하다가 삼키니 커피 한 잔 마시는데 거의 한 시간이 걸린다.
다시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번엔 퓨퓨인 모양이다. 신문에 눈길을 주고 잘 잤냐고 물으려는 찰라, 굵직한 목소리의 인사가 먼저 날아온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고개를 들어보니 이 부장이다. 이 시간에 일어나는 법이 없는 작자인데 무슨 약을 잘못 먹었나? 오늘 해가 어느 쪽에서 뜨나 봐야지.
무슨 약을 잘못 먹은 거야? 이 시간에 웬 일이냐고 물어보려는 찰라, 제 인사만 하고 종종걸음으로 주방으로 사라졌다. 아마도 약을 잘못 먹은 게 아니라 오줌보가 팽팽할 정도로 지난밤에 맥주를 마신 모양이다.
단어를 찾아가며 신문에 눈길을 주고 있으니 퓨퓨가 나왔다. 인사를 하고 주방으로 사라지자 이 부장은 그때서야 나왔다.
-이 부장 일루 와봐! 이거 인터넷을 아무리 주물럭거려도 안 되네? 네트워크 다시 좀 깔아봐!
-사장님! 네트워크가 잘못된 게 아니라 어젯밤부터 인터넷을 끊었어요.
-인터넷을 누가 끊어?
-이 나라 정부에서요. 인터넷뿐만 아니라 바이바, 페이스 북 모두 다 차단시켰어요.
-아니야. 아까 잠시 되었어. 부팅이 되었다가 뉴스를 검색하려니 다운되었어.
-뭐가 잠시 잘못되었겠죠.
-정부에서 왜 인터넷을 끊고 지랄이야?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은지 이 부장은 잠옷 바람으로 제 책상 의자에 앉았다.
-어제 슈웨가 축출 되어서 가택연금 되었어요.
-뭐라구? 슈웨가 왜?
-하여튼 슈웨를 잡아넣고 외신으로 통하는 인터넷과 페이스 북을 다 차단했어요.
내가 알기로 슈웨는 현재 상하원 통합의장이고 이번 대선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자다. 미얀마는 아직까지 군부 독재다. 슈웨는 현 대통령인 때인의 육군사관학교 일 년 선배이며 미얀마 군부 서열 5위를 지키다가 서열 8위인 때인이 대선의 꿈을 밝히자 길을 열어준 일등 공신이다. 이번엔 네가 하고 다음엔 내가 하겠다는 우리나라 군부 독재시절과 비슷한 약조를 하고 현 대통령 때인에게 길을 열어주고 과감히 밀어준 인물이다.
올 11월이 대통령 선거다. 직접 선거가 아니라 국회의원을 상대로 하는 간접 선거다. 올해 초까지는 때인이 건강상의 이유로 임기가 되면 순순히 물러나겠다고 했다. 그런데 몇 달 전에 말을 모호하게 바꾸었다. 몸이 좋지 않아도 국민이 원한다면 희생을 하겠다고 했다. 그는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것을 희생이라고 했다. 모호한 말과 태도에 위협을 느낀 슈웨가 아웅산 수지와 손을 잡았다.
수지 여사는 지지율은 조금 있지만 자신의 아버지인 아웅산 장군이 만든 법에 의해서 법을 고치지 않고는 출마를 할 수가 없는데 그 법은 바로 외국 국적을 취득했던 자는 대통령을 출마할 수 없다는 사항이다. 재미있게도 국수주의 성향이 진한 그 법이 딸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아웅산 수지는 영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가 귀화해서 88년 대규모 민주항쟁의 불을 지핀 인물이다. 그리고 20년이 넘도록 가택연금이 되었다. 가택연금에서 해제되고 아버지가 만든 법 개정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으나 올해 초에 그 개정이 부결되어 출마할 수 없는 입지다. 수지 여사가 이끄는 당의 의석이 약 30석 정도 된다. 슈웨의 생각으로는 수지 여사와 손을 잡고 자기를 추종하는 의석을 감안하면 때인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때려잡을 자신이 있다고 판단하고 대선을 향한 행보가 거침없었다. 모든 언론은 슈웨를 차기 대통령이라고 조명하다가 때인이 모호한 입장을 취하자 꼬리를 내리고 일면 기사는 현 대통령의 행보에 조명을 비추었다.
때인은 심장박동 보조기를 차고 있는 건강상의 문제지 23년간 봉쇄했던 문을 열고 경제개방 정책을 쓰고 발전시설에 심혈을 기울여 국민들 생활은 눈에 뜨게 나아졌다는 건 엄연한 사실이다. 올해 초에 미끼를 뿌리는 차원에서 공무원 월급을 한 번에 50% 인상을 단행했다. 미얀마 국민들은 별천지를 만난 기분으로 누가 대통령이 되건 관심이 없고 한국 드라마를 보며 현실에 만족하고 있다.
외자가 들어오니 삼년 만에 국민생활 수준이 눈에 뜨게 좋아진 건 사실이다. 반면 아웅산 수지는 세계시장을 향해 외국자본이 들어오지 말라고 외쳤다. 잘못되어도 책임질 수 없다는 말로 국민 만족감에 찬물을 끼얹었다. 슈웨는 선거는 돈 싸움이라는 판단으로 자기 손아귀로 주무르는 굵직한 계열사가 열 개도 넘는 투 그룹을 통해서 달러를 긁어모으기 시작했다. 하여 달러가 사상 유래 없이 치솟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고 정치에 관심이 있는 일부 국민들은 슈웨가 다음 대통령이 된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그가 하룻밤 사이에 무장을 한 군인들에 의해 축출되고 가택연금이 되었다. 그것도 대통령 선거가 겨우 석 달 남은 시점에서. 보편적인 분별력으로는 납득의 영역에 들어서지 못하는 경우다.
-도대체 무슨 죄명으로 잡아넣은 거야?
마치 이 부장이 그를 잡아넣은 것처럼 퉁명스레 따지고 물었다.
-사전 선거운동으로 선거법 위반이라네요. 지금 외신으로 나가는 모든 언론을 다 차단시켰대요.
-완전히 한국 복제판이고 총성 없는 테러구먼. 투 그룹이 슈웨 줄이지? 자산이 어마어마할 테인데?
-그렇죠. 미얀마 노른자위는 다 가지고 있죠. AGD 은행까지 갖고 있죠. 어제 은행이 난리가 나서 문을 닫았다가 오늘부터 일부 인출을 시작한다고 하네요.
-슈웨의 아들이 투 그룹 부회장인가 그렇지? 투 그룹부터 박살내고 슈웨 사지를 묶어 놓겠구먼?
-맞습니다. 그러나 돈은 이미 현금화시켜 싱가포르와 태국으로 다 빠져 나갔겠죠?
-그런 조치야 했겠지. 얼굴이 푸석한데, 어제 강 프로하고 둘이 마셨나?
-아니, 로칼 대학교수 둘이 끼어 같이 마셨습니다. 전에 우리 사무실에 참기름을 들고 왔던 밍야웅하고 동료 교수가 하나 끼어 있었습니다. 그 친구들 얘기를 들어주느라고 좀 늦었습니다.
밍야웅은 생각이 난다. 키가 작달막하고 얼굴이 까만 대머리로 겉보기에는 대학교수가 아니라 자전거를 개조한 골목 택시, 싸이카를 모는 사람처럼 생겼는데 고향에서 닌씨(참깨)를 보내왔다면 기름을 짜서 대병으로 들고 왔던 참 순진하고 정이 많은 인물인데 말을 해보면 여간 뛰어난 인물이 아니다. 양곤 외대의 교수라고 했는데 이 부장과는 친하게 지내는 사이다.
-그 친구들, 어지간히 개탄했겠구먼. 슈웨를 추종하는 군부가 있을 터인데 가만히 있으려나?
-때인도 군부입니다. 엊그제 군인들 정위치 시켰답니다. 중령급 이상 한 명이라도 이동 시에는 보고를 하고 움직이도록 만들었다네요.
-그래? 상황 끝났네.
-종쳤다고 봐야죠.
-잠이 모자라는 것 같은데 들어가서 더 자! 근데 인터넷은 언제쯤 개통되려나? 이거 어지간히 답답하네.
-여론이 잠잠하면 바로 개통 될 수도 있고 옛날처럼 대학생들이 난리를 치면 오래 갈 수도 있겠죠.
그 말을 흘리며 이 부장은 더 자려고 들어갔다. 내가 보기에는 교수들이 조장을 해도 대학생들이 난리를 치지 못할 것이다. 대학이 양곤에 모여 있는 게 아니고 80년대 민주항쟁이후에 군부에서 지역의 균형적인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뿔뿔이 찢어 지방으로 옮겨놓았고 수도를 고속도로로 네 시간이나 걸리는 네피도로 옮겨 놓고 육군사관학교로 방어막을 쳐놓았다. 대학생들이 연락을 하고 한 자리에 모이려면 사흘이 걸려도 안 된다. 지역 위치상 그렇다. 군인들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는 한 잠잠할 수밖에 없는 위치인데 군부 출신인 때인이 사전에 그런 조치를 안 하고 슈웨의 목줄을 옭아매진 않았을 것이다. 미얀마는 아직까지 반군이 있어 내란이 계속되고 있다. 주로 태국 국경지역이다. 그 쪽에서 작전을 펼치는, 무장한 군인들은 지금 등을 돌리고 수도 네피도를 보고 명령이 하달되길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상황이 종료되었다. 사태를 미루어 짐작하건데, 총성은 울리지 않을 것이다. 이 상황이 이렇게 기울었는데 목을 내놓고 슈웨를 풀어주라고 총을 난사하는 군인은 없을 것이다. 총성 없는 테러가 완벽하게 자행된 것이다. 외신이 어떻게 보도하느냐에 달려 나라가 시끄러울 수도 있지만 지금 외신으로 통하는 모든 수단을 통제시키고 있다. 며칠 있다가 떼인이 외신에 격식을 차리고 성명을 발표하면 그걸로 끝이다. 아니, 슈웨에 대해서 거론조차도 생략할 수도 있겠다.
-신문이 들어왔으려나?
현관문을 열어보니 문 밖에 신문이 떨어져 있다. 냉큼 들고 들어와 일면부터 살펴보았다. 때인이 어느 수해지역을 돌고 있는 사진이 큼직하게 박혀 있다. 신문을 찬찬히 넘겨보지만 슈웨에 대한 예기는 어디에도 없다. 대통령사진은 일면뿐만 아니라 신문 중간에도 실려 있다. 큼직하게 실린 사진을 보니 참으로 어게스트다. 어게스트는 8월이라는 의미 외에도 존엄하고, 당당함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얘기했다. 수해지역을 돌고 있는 자상한 대통령이 카레이 지역을 방문해서 카레이 기술대학 학생들과 대학 본관 앞에서 기념촬영을 한 사진이 큼직하게 실려 있다. 똑 같은 문양의 교복 론지를 입고 빼곡하게 선 대학생들 중간에 두 손을 모으고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한 사진 속의 그가 참으로 존엄하고 당당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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