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왕 왕비용이라 용도 예쁘게 그렿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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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포해수욕장(일산해수욕장) 송림에 있던 것인데, 현대조선소가 들어서며 우여곡절 끝에 울산대왕암공원 입구에 옮겨놨다. 한시가 여러편 기록돼 있다.
이 바위를 낙화암이라고 하는 이유는 아래와 같다.
대왕암 해녀와 풍고 김조순의 문답,
'叉手喚麻姑(차수환마고)'는 '두 손을 모아 공손히 인사하며 마고를 말하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주체는 해녀이다. 즉 해녀는 원님을 만나 먼저 합장하여 예를 갖춘 뒤, 스스로를 두고 "우리는 마고할미 같은 사람들입니다."라고 익살스럽게 말한 것으로 읽을 수 있다.
평생 바다에서 살아온 해녀들은 세월을 잊고 파도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자신들을 마고에 빗댄 것은 허황된 자랑이 아니라, 오랜 세월 바다와 더불어 살아온 삶에 대한 소박한 농담이었을 것이다.
원님은 그 말을 받아 한 수의 시를 던진다.
"수많은 세월 큰 바다가에서 살아왔으니
푸른 바위 위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이에 풍고 김조순은 해녀의 입장이 되어 다시 답한다.
"소첩이 마고가 아니라면
어찌 이 바위를 볼 수 있겠습니까.“
반어적인 표현으로 "원님 말씀대로라면, 마고가 아니고서야 어찌 이 오랜 세월의 바위를 보았겠습니까."라는 뜻이다.
해녀가 먼저 농담을 던지고, 원님이 시로 화답하며, 풍고 김조순이 다시 해녀의 마음을 빌려 응수하는 세 사람의 즉흥 문답이 된다.
그래서 이 작품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시 자체보다도 서로의 마음을 읽고 이어 가는 데 있다. 해녀의 소박한 해학, 원님의 재치, 그리고 풍고 김조순의 따뜻한 문심이 하나로 어우러져, 대왕암의 푸른 바다에 오래도록 전해지는 한 편의 시가 되었다.
ㅁ 김조순이 울산에 온 이유
대왕암 공원 일원은 조선시대 말의 목장으로 운영됐으며 직함이 태복제거였다. 목장관리 책임자로 와서 이 지방 수령과 해녀와의 대담으로 시를 남긴 것이다.
ㅁ 감 상
**「파도는 시를 잊지 않는다/ 이재익」**는 대왕암이라는 하나의 공간에 전설·역사·문학·산업을 한데 아우른 사색시이다. 시인은 단순히 풍경을 묘사하는 데 머물지 않고, 조선 후기의 인물 풍고 김조순을 현재의 공간으로 불러내어 새롭게 성찰한다.
특히 **'풍고(楓皐)'와 '풍고(風顧)'**를 겹쳐 쓴 첫 연은 이름과 바람을 하나의 이미지로 융합한 뛰어난 시적 장치이다. 이어 김조순을 세도정치의 상징으로만 보지 않고, 해녀의 마음을 대신 시로 풀어 준 따뜻한 문인의 모습과 정조를 보필했던 충정을 함께 비추어 인물을 입체적으로 재조명한다.
후반부에서는 대왕암의 호국 전설과 현대조선소, 그리고 **'조선(朝鮮)'과 '조선(造船)'**의 언어적 중의성을 절묘하게 연결한다. 과거의 역사와 오늘의 산업이 하나의 바다에서 만나는 장면은 이 작품만의 독창적인 시적 발상이다.
마지막 구절인 **"파도는 오늘도 그 시를 잊지 않는다."**는 제목과 호응하면서 작품 전체를 하나의 여운으로 묶어 준다. 파도는 시간의 흐름을 상징하며, 전설과 역사, 한 편의 시까지 모두 기억하는 존재로 형상화된다.
이 작품은 단순한 기행시가 아니라, 역사 속 인물을 현재의 공간에서 다시 만나 인간과 시대를 성찰한 인문기행시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울산 대왕암의 풍경을 넘어, 과거와 현재를 잇는 깊은 사유가 오래도록 독자의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남기는 작품이다.
ㅁ 풍고(楓皐) 김조순(金祖淳)
1765(영조 41~1832(순조 32)
본관 안동김씨, 세도의 서막을 이끈 사람으로 알고 있지만,
1. 정조에 뜻을 받들에 시파벽파 당파에 초연하였고.
2. 문장이 뛰어나 초계문신이었으며 지방의 요속을 채록하였으며
(초계문신제란 정조가 젊고 우수한 관료 40 여명을 뽑아서 직접 지도하고 토론한 엘리트양성 제도)
3. 정조를 호위하는 노력을 기우렸고
4. 세손(순조)을 보도하다가 결국 국구가 됐으며
5. 4대조가 경종때 누명으로 처형된 영의정 김창집으로 조상에 부끄럽지 않게 권세있는 자리는 사양다.
6.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국구 자리가 다른 척족들에 이용돼 점차 안동김씨 세도정치 기반이 됐다.
권녕순, 김기식, 김영용(회장), 김용택, 신영도, 이재익, 이남수 이상훈, 양정량, 9명 참가함
2026.6. 28일, 일칠산우회
용굴
할미바위
탕건바위
** 대왕암 ; 전설에 의하면, 신라 문무왕 왕비가 호국룡이 돼서 서려있다는 바위. 문무왕 해중릉이 경주 대왕암 해중릉(양북면 봉길리 앞바다)에 있는데 비하여, 여기는 그 왕비의 것이라 한다.
** 학술적이라기보다 좋은 풍광에 어울리는 애향적 전설로 보인다.
울산대왕암
울산대왕암
울산대왕암
울산대왕암
울산대왕암
시티투어버스
도라지꽃 닮았다.
미르놀이터/ 미르는 龍의 순수한 우리말이다.
울기등대/ 처음 울기공원이라 하였다가 대왕암공원으로 바꾸었다.(2004)
울기등대 울타리벽 장식
송림, 약 1만 5천주
공원 입구 상가지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