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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원만망(西原晩望) - 서쪽 언덕에서 저녁에 바라보다 |
花菊引閑步(화국인한보) : 봄 가을날에는 한가히 걷는데
行上西原路(항상서원노) : 서쪽 언덕길을 걸어 올라가노라.
原上晩無人(원상만무인) : 언덕 위에는 저녁이라 사람은 아무도 없어
因高聊四顧(인고료사고) : 높이 올라가서 애오라지 사방을 돌아본다.
南阡有煙火(남천유연화) : 남쪽 길에는 밥 짓는 연기 오르고
北陌連墟墓(배맥련허묘) : 북쪽 길에는 무덤만이 들어서 있도다.
村鄰何蕭疎(촌린하소소) : 고을은 어찌 그리도 쓸쓸한가?
近者猶百步(근자유백보) : 가까운 곳은 백 걸음 정도로다.
吾廬在其下(오려재기하) : 내 오두막집도 그 아래에 있는데
寂寞風日暮(적막풍일모) : 적막하게도 바람에 해가 저물어간다.
門外轉枯蓬(문외전고봉) : 문밖에는 마른 쑥이 바람에 굴러다니고
籬根伏寒ꟙ(리근복한토) : 울타리 아래에는 겨울 토끼가 엎드려 있도다.
故園汴水上(고원변수상) : 고향은 변수 위에 있었으나
離亂不堪去(리난부감거) : 혼란하여 떠나지 않을 수 없었도다.
近歲始移家(근세시이가) : 근래에 비로소 이사 와서
飄然此杓住(표연차표주) : 표연히 이 곳에서 살게 되었도다.
新屋五六間(신옥오륙간) : 새로 지은 집은 대여섯 칸
古槐八九樹(고괴팔구수) : 오래된 느티나무 여덟아홉 그루.
便是衰病身(편시쇠병신) : 이곳은 곧 노쇠하고 병 든 몸이
此生終老處(차생종노처) : 이 인생이 늙은 삶을 마칠 곳이로다.
2. 관사내신착소지(官舍內新鑿小池) - 관사 내에 새로 작은 연못을 파다 |
簾下開小池(염하개소지) : 발(주렴)아래에 작은 연못 마련하니
盈盈水方積(영영수방적) : 가득히 물이 이제 모여드는구나.
中底鋪白沙(중저포백사) : 연못 가운데 바닥에 흰 모래 깔고
四隅甃靑石(사우추청석) : 사방에는 푸른 돌로 꾸몄다.
勿言不深廣(물언부심광) : 깊고 넓지 않다고 말하지 말게나
但取幽人適(단취유인적) : 숨어사는 사람의 한적함만 맛보려네.
泛灩微雨朝(범염미우조) : 물이 가득한 보슬비 내리는 아침
泓澄明月夕(홍징명월석) : 물이 맑고 깊은 밝은 달 뜬 저녁.
豈無大江水(개무대강수) : 어찌, 큰 강에 물이 있어
波浪連天白(파낭련천백) : 그 물결이 하늘에 닿아 희게 보이는 일 없겠는가
未如牀席間(미여상석간) : 그러나, 평상의 자리 사이로
方丈深盈尺(방장심영척) : 사방 한 길에, 한 자 깊이로 가득한 못물보다는 못하다.
淸淺可狎弄(청천가압농) : 맑고 얕아 마음대로 놀 수 있어
昏煩聊漱滌(혼번료수척) : 흐릿하고 번거로운 일들을 애오라지 씻어버린다.
最愛曉暝時(최애효명시) : 무엇보다, 이른 새벽 어둑한 때에
一片秋天碧(일편추천벽) : 한 조각 가을 하늘의 푸름이 가장 좋구나.
3. 향로봉하신치초당(香鑪峯下新置草堂) - 향로봉 아래에 초당 지어 |
香鑪峯北面(향로봉배면) : 향로봉 북쪽
遺愛寺西偏(유애사서편) : 유애사의 서쪽 치우친 곳
白石何鑿鑿(백석하착착) : 흰 바위는 어찌나 착착하고
淸流亦潺潺(청류역잔잔) : 맑게 흐르는 물도 잔잔하도다.
有松數十株(유송삭십주) : 소나무가 수십 그루 있고
有竹千餘竿(유죽천여간) : 대나무가 천여 그루나 있도다.
松張翠傘蓋(송장취산개) : 소나무는 비취빛 우산 펼친 듯 하고
竹倚靑琅玕(죽의청랑간) : 대나무는 푸른 옥돌에 의지하여 있다.
其下無人居(기하무인거) : 그 아래에 사는 사람 아무도 없어
悠哉多歲年(유재다세년) : 아득하다, 많은 세월이 흘렀구나.
有時聚猿鳥(유시취원조) : 때때로 원숭이와 새들이 모여들고
終日空風煙(종일공풍연) : 종일토록 쓸쓸히 바람과 이내만 인다.
時有沈冥子(시유침명자) : 당시에 깊숙한 곳에 사는 녀석 있었으니
姓白字樂天(성백자낙천) : 姓성은 白백이요 字자는 樂天낙천이었단다.
平生無所好(평생무소호) : 평생토록 좋아하는 것이 없다가
見此心依然(견차심의연) : 이것을 보고 마음이 흡족했단다.
如獲終老地(여획종노지) : 마침내 늙어 죽을 곳을 얻은 듯하여
忽乎不知還(홀호부지환) : 갑자기 돌아갈 줄을 몰라 했어라.
架巖結茅宇(가암결모우) : 바위사이 가로 질러 작은 초가집 짓고
斲壑開茶園(착학개다원) : 골짜기를 파서 차밭을 만들었단다.
何以洗我耳(하이세아이) : 어디 가서 나의 귀를 씻으리오
屋頭飛落泉(옥두비낙천) : 처마모리에서 날아 떨어지는 샘이 있도다.
何以洗我眼(하이세아안) : 어디 가서 나의 눈을 씻으리오.
砌下生白蓮(체하생백련) : 섬돌 아래에는 백련 꽃이 피었구나.
左手攜一壺(좌수휴일호) : 왼손에는 술 한 병을 들고
右手挈五絃(우수설오현) : 오른손에는 거문고 끼고 다녔단다.
傲然意自足(오연의자족) : 도도하게도 뜻이 절로 만족하여
箕踞於其間(기거어기간) : 그 사이에 다리를 걸터앉았단다.
興酣仰天歌(흥감앙천가) : 술에 취하여 하늘을 쳐다보고 노래하니
歌中聊寄言(가중료기언) : 노래 속에 애오라지 할 말을 담았도다.
言我本野夫(언아본야부) : 나는 본시 시골 사람으로
誤爲世網牽(오위세망견) : 잘못하여 세속의 그물에 걸렸단다.
時來昔捧日(시내석봉일) : 지난날엔 때를 만나 임금 받들었는데
老去今歸山(노거금귀산) : 늙어버린 지금에는 산으로 돌아왔단다.
倦鳥得茂樹(권조득무수) : 날다 지친 새는 무성한 숲을 얻고
涸魚反淸源(학어반청원) : 마른 물의 물고기는 맑은 물로 돌아왔단다.
捨此欲焉往(사차욕언왕) : 여기를 버리고 어디로 가겠는가,
人間多險難(인간다험난) : 인간세상은 험난한 일들이 너무나 많은 것을.
4. 향로봉하신복산거초당초성우제동벽(香爐峰下新卜山居草堂初成偶題東壁) (향로봉 아래 점을 쳐서 새 터를 잡아 초당을 짓고 나서 우연히 동쪽 벽에 쓰다.) |
五架三間新草堂(오가삼간신초당) : 다섯 시렁 석 칸 새 초당은
石階桂柱竹編牆(석계계주죽편장) : 돌계단, 계수나무 기둥 대나무로 엮은 울타리
南簷納日冬天暖(남첨납일동천난) : 남쪽 처마는 햇볕 들어 겨울에도 따듯하고
北戶迎風夏月凉(북호영풍하월량) : 북쪽 문은 바람 맞아 여름에는 서늘하니
灑砌飛泉纔有點(쇄체비천재유점) : 샘은 날려 섬돌을 씻으니 겨우 몇 방울이라
拂窓斜竹不成行(불창사죽불성항) : 창문에는 대나무 그림자 어지럽게 흔들이고
來春更葺東廂屋(내춘갱즙동상옥) : 내년 봄에는 다시 동쪽 사랑채 지붕 잇고
紙閣蘆簾著孟光(지각노렴저맹광) : 종이 집(도배) 갈대발 드리운 방에 *맹광(아내)을 있게 하리
* 孟光 : 漢의 隱士 梁鴻의 아내 이름.
日高睡足猶慵起(일고수족유용기) : 해 높이 뜨고 충분히 잤는데 오히려 일어나기 귀찮아
小閣重衾不怕寒(소각중금불파한) : 작은 집에서 이불이 두터워 추위도 겁 않나
遺愛寺鐘欹枕聽(유애사종의침청) : 유애사의 종소리는 베개에 의지해 듣고
香爐峰雪撥簾看(향로봉설발렴간) : 향로봉의 눈은 문발을 걷고 본다
匡盧便是逃名地(광로편시도명지) : 이곳 여산은 이름 피해(은신) 살만한 곳
司馬仍爲送老官(사마잉위송로관) : 사마 벼슬은 늙음을 보내는 관직으로 족하니
心泰身寧是歸處(심태신녕시귀처) : 마음과 몸이 편안하면 이 돌아가 살 곳이거늘
故鄕何獨在長安(고향하독재장안) : 어찌 고향이 장안뿐이리오
* 香爐峰(향로봉) : 장시성(江西省) 여산(廬山) 북쪽에 있는 유명한 봉우리다. 기묘하게 솟아 있는 봉우리가 향로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여산의 명승지 중 한 곳인 향로봉 폭포 부근에 백거이의 초당이 있었다. 이백李白은 「望廬山瀑布」란 시에서 ‘西登香爐峰, 南見瀑布水(서쪽 길로 향로봉 올라왔더니 / 남쪽에 커다란 폭포가 있네)’라고 하였다.
* 오가(五架) : 지붕을 받치는 기둥 위에 올리는 들보 중에 길이가 4보(步)인 오가량(五架樑)을 가리킨다. ‘五架三間’을 초가삼간(草家三間) 정도의 뜻으로 새겨 읽었다.
* 紙閣(지각) : 종이로 창이나 벽을 바른 집을 가리킨다. 청빈한 사람이 거주하는 곳을 가리키기도 한다. 육유(陸游)는 「紙閣午睡」란 시에서 ‘紙閣磚爐火一杴, 斷香欲出碍蒲簾(누추한 방 벽돌화로에 불 한 삽을 따놨더니 / 부들 발에 막힌 향기 방 안에 가득하네)’이라고 했다.
* 孟光(맹광) : 동한東漢의 은사 양홍(梁鴻)의 아내의 이름이다. 자는 덕요(德曜)이다. 부부가 패릉산(覇陵山)에 은거하며 농사짓고 베를 짜며 살았다. 나중에 부부가 오(吳) 땅으로 가서 양홍이 고용살이를 했는데 아내 맹광이 밥상을 들일 때마다 눈썹 높이까지 상을 들어 공경을 표시했다고 한다. 현부(賢婦)의 전형이 되었다.
백거이는 재상 무원형(武元衡)의 암살사건과 관련하여 올린 상소가 문제되어 원화(元和) 10년(815) 8월에 강주사마(江州司馬)로 좌천되는데, 이듬해 가을, 여산(廬山) 향로봉(香爐峰) 아래 터를 잡아 초당을 짓기 시작해 원화 12년(817) 가을에 낙성식을 가졌다.
따라서 이 시는 이후 강주를 떠나는 원화 14년 봄까지의 사이에 쓴 작품일 것이다.
5. 단가행(短歌行) - 단가행 |
白日何短短(백일하단단) : 낮은 어찌 이렇게도 짧은가
百年苦易滿(백년고역만) : 백 년은 괴롭게도 쉽게도 차는구나.
蒼穹浩茫茫(창궁호망망) : 창공은 넓고도 아득한데
萬劫太極長(만겁태극장) : 만 겁 세월은 끝없이 길기만 하다.
麻姑垂兩鬢(마고수량빈) : 마고 할멈도 두 귀밑머리 드리우고
一半已成霜(일반이성상) : 절반은 이미 서리가 다 되었구나.
天公見玉女(천공견옥녀) : 천제도 옥녀를 보고
大笑億千場(대소억천장) : 크게 웃은 지 억 천 번이 되었도다.
吾欲攬六龍(오욕람륙룡) : 나는 여섯용을 고삐를 잡고
回車掛扶桑(회거괘부상) : 수레를 돌려 부상목에 매달고 싶도다.
北斗酌美酒(배두작미주) : 북두칠성에 맛있는 술 따라서
勸龍各一觴(권룡각일상) : 용들에게 각자 한 잔씩 권하리라.
富貴非所願(부귀비소원) : 부귀는 내가 바라는 것 아니니
與人駐顔光(여인주안광) : 사람들과 젊은 얼굴빛이나 지키리라.
6. 양가남정(楊家南亭) - 양씨네 남쪽 정자 |
小亭門向月斜開(소정문향월사개) : 작은 정자문은 달 향해 열려 있고
滿地凉風滿地苔(만지양풍만지태) : 서늘한 바람과 이끼 땅에 가득하여라.
此院好彈秋思處(차원호탄추사처) : 이 집은 가을 마음 노래하는 곳으로 좋아
終須一夜抱琴來(종수일야포금래) : 끝내 온 밤을 거문고 안고 와서 보내는구나.
7. 오야제(烏夜啼) - 까마귀 밤에 울어 |
城上歸時晩(성상귀시만) : 성 위에 돌아온 때는 저녁
庭前宿處危(정전숙처위) : 뜰 앞, 잠자는 곳은 높기만 하다.
月明無葉樹(월명무섭수) : 밝은 달, 나뭇잎 하나 없는 나무
霜滑有風枝(상골유풍지) : 눈 내려 미끄러운 가지에 바람 인다.
啼澀飢喉咽(제삽기후인) : 굶주린 목구멍에 울음소리 껄끄러운데
飛低凍翅垂(비저동시수) : 낮게 날다가, 얼어버린 날개가 처진다.
畫堂鸚鵡鳥(화당앵무조) : 집안에 그려진 앵무새는
冷暖不相知(냉난부상지) : 차가움도 따뜻함도 알지 못한다.
8. 조한(早寒) - 이른 추위 |
黃葉聚牆角(황섭취장각) : 누런 나뭇잎 담장 모퉁이에 모이고
靑苔圍柱根(청태위주근) : 푸른 이끼는 기둥뿌리를 둘러싸고 있다.
被經霜後薄(피경상후박) : 서리 지나간 뒤에는 더욱 엷어져
鏡遇雨來昏(경우우내혼) : 거울이 비를 맞아 어두워지는구나.
半卷寒簷幕(반권한첨막) : 차가운 처마 아래 휘장 반 쯤 걷히니
斜開暖閣門(사개난각문) : 따스한 전각문이 비스듬히 열리는구나.
迎冬兼送老(영동겸송노) : 겨울 맞아 늙음을 보내는 것 함께하며
只仰酒盈樽(지앙주영준) : 오직 술이 술독에 가득한 것을 바라만 본다.
9. 춘노(春老) - 봄 늙은이 |
欲隨年少强遊春(욕수년소강유춘) : 젊은이들 따라서 억지로 봄놀이 갔지만
自覺風光不屬身(자각풍광부속신) : 경치가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단다.
歌舞屛風花障上(가무병풍화장상) : 병풍의 꽃 언덕 위에선 노래하고 춤추니
幾時曾畫白頭人(기시증화백두인) : 어느 때라야 백머리의 사람을 그려 넣을까.
10. 오려(吾廬) - 내 오두막집 |
吾廬不獨貯妻兒(오려부독저처아) : 내 오두막에는 아내와 자식들만 없으니
自覺年侵身力衰(자각년침신력쇠) : 나이가 많아져 몸이 쇠약해짐을 알았다.
眼下營求容足地(안하영구용족지) : 현실은 발하나 들여 놓을 작은 땅 찾지만
心中準擬挂冠時(심중준의괘관시) : 마음속 기준으로는 갓 걸어놓을 때와 같다.
新昌小院松當戶(신창소원송당호) : 신창의 작은 관아 집 앞에 소나무
履道幽居竹遶池(이도유거죽요지) : 그윽한 내 집을 걷자니 대숲이 못을 둘러있다.
莫道兩都空有宅(막도량도공유댁) : 두 도읍에 공연히 집 가졌다 말하지 말라
林泉風月是家資(림천풍월시가자) : 숲속 바람과 달이 곧 내 집의 재산인 것을.
11. 지서정(池西亭) - 못 서편 정자에서 |
朱欄映晩樹(주란영만수) : 붉은 난간에 저녁 나무 비치는데
金魄落秋池(금백락추지) : 가을의 신이 가을 연못에 내렸구나.
還似錢塘夜(환사전당야) : 오리려 전당 연못의 밤 같아라.
西樓月出時(서루월출시) : 서편 누대에 달 떠오를 이 때는
12. 유오진사시(遊悟眞寺詩) - 오진사에 유람하며 지은 시 |
元和九年秋(원화구년추) : 때는 원화 9년 가을
八月月上弦(팔월월상현) : 팔월이라, 달은 상현달.
我遊悟眞寺(아유오진사) : 나는 오진사를 유람했는데
寺在王順山(사재왕순산) : 절은 왕순산에 있었다.
去山四五里(거산사오리) : 산을 떠나, 사오 리 쯤 되는 곳
先聞水潺湲(선문수잔원) : 먼저 졸졸 흐르는 물소리 들린다.
自茲捨車馬(자자사거마) : 여기서 말과 수레를 두고
始涉藍溪灣(시섭남계만) : 푸른 개울 굽이를 걸어 건넌다.
手拄靑竹杖(수주청죽장) : 손에 푸른 대지팡이 짚고
足蹋白石灘(족답백석탄) : 여울의 깨끗한 돌을 밟고 지난다.
漸怪耳目曠(점괴이목광) : 점점 이상하게도, 눈과 귀 환해지고
不聞人世喧(부문인세훤) : 세상의 시끄런 소리 들리지 않는다.
山下望山上(산하망산상) : 산 아래서 산 위를 바라보니
初疑不可攀(초의부가반) : 처음에는 오를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誰知中有路(수지중유노) : 안에 길이 있을 줄을 그 누가 알았으랴
盤折通巖巓(반절통암전) : 편평한 바닥길이 꺾여 바위 위까지 통했다.
一息幡竿下(일식번간하) : 번간 아래에서 한 번 쉬었다가
再休石龕邊(재휴석감변) : 돌 감실 곁에서 다시 한 번 쉬었다.
龕間長丈餘(감간장장여) : 감실 간격은 길이가 한 길이 넘었고
門戶無扃關(문호무경관) : 문에는 빗장이 전혀 없었다.
俯窺不見人(부규부견인) : 내려다보니 사람은 보이지 않고
石髮垂若鬟(석발수야환) : 돌에는 풀이 귀밑머리처럼 늘어져 있다.
驚出白蝙蝠(경출백편복) : 흰 박쥐들이 놀라 나오는데
雙飛如雪翻(쌍비여설번) : 쌍쌍이 나는 것이 눈 흩날리듯 했다.
回首寺門望(회수사문망) : 고개 돌려 절문을 바라보니
靑崖夾朱軒(청애협주헌) : 푸른 언덕에 끼어있는 붉은 집이 있다.
如擘山腹開(여벽산복개) : 손톱 같이 산 중턱이 열렸는데
置寺於其間(치사어기간) : 그 사이에 절이 위치해 있었다.
入門無平地(입문무평지) : 절문에 드니 평지는 없었고
地窄虛空寬(지착허공관) : 땅이 좁아 빈 곳도 거의 없었다.
房廊與臺殿(방낭여대전) : 방의 회랑과 누대의 전각이
高下隨峯巒(고하수봉만) : 산봉우리 따라 높아지고 낮아진다.
巖崿無撮土(암악무촬토) : 바위와 낭떠러지에 흙은 조금도 없었다.
樹木多瘦堅(수목다수견) : 나무은 마르고 단단한 것이 많았고
根株抱石長(근주포석장) : 나무뿌리는 길게 돌을 감싸고 있었다.
屈曲蟲蛇蟠(굴곡충사반) : 울룩불룩한 뿌리는 뱀처럼 서리어 있다.
松桂亂無行(송계난무항) : 소나무가 어지러워 다닐 길 없고
四時鬱芊芊(사시울천천) : 사시사철 울창하고 무성했다.
枝梢嫋淸翠(지초뇨청취) : 가지는 늘어져 하늘거리고 빛은 푸르고
韻若風中絃(운야풍중현) : 그 운치는 바람 속의 음악소리 같았다.
日月光不透(일월광부투) : 햇빛과 달빛이 들지 못하여
綠陰相交延(녹음상교연) : 푸른 나무그늘이 섞이고 이어져있다.
幽鳥時一聲(유조시일성) : 그윽한 새소리 때때로 한 번씩 들리니
聞之似寒蟬(문지사한선) : 들으면 마치 가을매미 소리 같았다.
首憩賓位亭(수게빈위정) : 처음에는 빈위정에서 쉬면서
就坐未及安(취좌미급안) : 자리에 앉았으나 편안하지 않았다.
須臾開北戶(수유개배호) : 잠시 북쪽 문을 열어보니
萬里明豁然(만리명활연) : 만 리 먼 곳까지 환하게 밝았다.
拂簷虹霏微(불첨홍비미) : 처마 걸쳐 가랑비에 무지개 서고
遶棟雲回旋(요동운회선) : 마룻대를 둘러 구름이 돌아 흐른다.
赤日間白雨(적일간백우) : 붉은 해가 소나기 사이에 보이는데
陰晴同一川(음청동일천) : 흐리고 개는 것이 한 내에 같이 있다.
野綠蔟草樹(야녹족초수) : 들판의 푸른 기운이 초목에 모이고
眼界呑秦原(안계탄진원) : 내 시야는 진나라 벌판을 삼킨다.
渭水細不見(위수세부견) : 위수는 가늘어 보이지 않고
漢陵小於拳(한능소어권) : 한나라 언덕은 주먹보다도 작다.
却顧來時路(각고내시노) : 물러나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
縈紆映朱欄(영우영주난) : 얽히고 굽은 것이 붉은 난간에 비친다.
歷歷上山人(력력상산인) : 산 위의 사람들도 뚜렷하여
一一遙可觀(일일요가관) : 하나하나 멀리서도 볼 수 있었다.
前對多寶塔(전대다보탑) : 앞에 마주보이는 다보탑
風鐸鳴四端(풍탁명사단) : 바람에 풍경소리는 사단을 울린다.
欒櫨與戶牖(란로여호유) : 난 두공과 지게 창
恰恰金碧繁(흡흡금벽번) : 부드러운 장식이 금벽처럼 번화롭다.
云昔伽葉佛(운석가섭불) : 이러기를, 옛날 가섭 부처가
此地坐涅槃(차지좌열반) : 이 땅에 앉아서 열반하였다고 한다.
至今鐵鉢在(지금철발재) : 지금까지 쇠 바리때가 남아있어
當底手跡穿(당저수적천) : 아래에는 손자취가 뚫려있단다.
西開玉像殿(서개옥상전) : 서쪽으로 옥상전이 열려있고
白佛森比肩(백불삼비견) : 흰 부처가 삼엄하게 늘어서 있다.
抖擻塵埃衣(두수진애의) : 흙먼지 붙은 옷을 털고
禮拜永雪顔(례배영설안) : 영설안에 예배하였다.
疊霜爲袈裟(첩상위가사) : 겹겹이 쌓인 눈을 가사로 삼고
貫雹爲華鬘(관박위화만) : 우박을 꿰어 흰 머리로 삼았다.
逼觀疑鬼功(핍관의귀공) : 핍진히 보고 귀신의 공인가 했는데
其跡非雕鐫(기적비조전) : 그 자취는 결코 꾸민 것이 아니었다.
次登觀音堂(차등관음당) : 다음으로 관음당에 오르는데
未到聞栴檀(미도문전단) : 미처 이르지도 않아 전단 향기가 난다.
上階脫雙履(상계탈쌍리) : 계단에 올라 두 신을 벗고
斂足升瑤筵(염족승요연) : 발을 거두어 예배하는 자리에 올랐다.
六楹排玉鏡(륙영배옥경) : 여섯 기둥에 거울은 없고
四座敷金鈿(사좌부금전) : 사방 자리에는 금 세공품을 놓아두었다.
黑夜自光明(흑야자광명) : 칠흑 같은 밤에 절로 빛이 밝아지고
不待燈燭燃(부대등촉연) : 등촉 타는 것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다.
衆寶互低昂(중보호저앙) : 여러 보석들이 번들거리고
碧珮珊瑚幡(벽패산호번) : 푸른 구슬과 산호가 번쩍이었다.
風來似天樂(풍내사천낙) : 하늘 음악처럼 바람이 불어오고
相觸聲珊珊(상촉성산산) : 서로 부딪쳐 그 소리가 쟁쟁거린다.
白珠垂露凝(백주수노응) : 흰 구슬은 늘어진 이슬이 맺힌 듯
赤珠滴血殷(적주적혈은) : 붉은 구슬은 떨어지는 핏방울 같았다.
點綴佛髻上(점철불계상) : 부처 머리 위에 점철되어
合爲七寶冠(합위칠보관) : 합하여 칠보관이 되었다.
雙甁白琉璃(쌍병백류리) : 한 쌍의 병은 흰 유리이고
色若秋水寒(색야추수한) : 색은 가을 물의 차가움과 같았다.
隔甁見舍利(격병견사리) : 병 너머로 사리가 보이는데
圓轉如金丹(원전여금단) : 둥글게 구르는 것이 금단 같았다.
玉笛何代物(옥적하대물) : 옥피리는 어느 시대의 물건인가
天人施祗園(천인시지원) : 천인이 지원에 시주하였다.
吹如秋鶴聲(취여추학성) : 부는 소리는 가을 학의 소리 같아
可以降靈仙(가이강령선) : 신령한 신선을 내려오게 할 수 있었다.
是時秋方中(시시추방중) : 이 때는 마침 가을이었는데
三五月正圓(삼오월정원) : 보름달이 한참 둥글었다.
寶堂豁三門(보당활삼문) : 보당에 확 뚫린 세 개의 문
金魄當其前(금백당기전) : 달이 그 앞에 와있었다.
月與寶相射(월여보상사) : 달과 보당이 마주 보여
晶光爭鮮姸(정광쟁선연) : 수정 빛이 선명함을 다투었다.
照人心骨冷(조인심골냉) : 사람을 비춰 마음과 뼈가 차가운데
竟夕不欲眠(경석부욕면) : 저녁이 다하도록 잠이 오지 않았다.
曉尋南塔路(효심남탑노) : 새벽에 남탑로를 찾으니
亂竹低嬋娟(난죽저선연) : 어지러운 대나무 선연히 늘어져있다.
林幽不逢人(림유부봉인) : 숲이 깊어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데
寒蝶飛翾翾(한접비현현) : 가을나비가 파뜩파뜩 날아다닌다.
山果不識名(산과부식명) : 산속 과일은 이름도 모르는데
離離夾道蕃(리리협도번) : 길게 뻗혀 길을 끼고 무성하였다.
足以療飢乏(족이료기핍) : 배고픈 것을 족히 면할 수 있어서
摘賞味甘酸(적상미감산) : 따다가 그 맛을 보니 달콤새콤하였다.
道南藍谷神(도남남곡신) : 길 남쪽의 푸른 골짜기는 신비롭고
紫繖白紙錢(자산백지전) : 자줏빛 천에는 흰 종이돈이 있었다.
若歲有水旱(야세유수한) : 만약에 한해가 있다면
詔使修蘋蘩(조사수빈번) : 조서를 내려 풀을 깎아버리게 했다.
以地淸淨故(이지청정고) : 땅이 맑고 깨끗한 까닭에
獻奠無葷羶(헌전무훈전) : 비리고 누린 음식을 못 올리게 했다.
危石疊四五(위석첩사오) : 큰 바위가 네댓 개나 쌓여
嵬欹敧且刓(외의기차완) : 높고 기울어지고 또 깎여있었다.
造物者何意(조물자하의) : 조물주는 무슨 의도로
堆在巖東偏(퇴재암동편) : 바위 동쪽에 치우쳐 쌓아놓았는가.
冷滑無人跡(냉골무인적) : 차고 미끄러워 사람 자취 없고
苔點如花牋(태점여화전) : 이끼 얼룩이 마치 꽃종이 같았다.
我來登上頭(아내등상두) : 내가 와서 위쪽으로 올라서
下臨不測淵(하림부측연) : 아래를 보니 못을 헤아릴 수 없었다.
目眩手足掉(목현수족도) : 눈이 어지럽고 팔다리가 흔들려
不敢低頭看(부감저두간) : 감히 머리를 숙이고 살펴보지 못했다.
風從石下生(풍종석하생) : 바람은 돌 아래에서 일어나고
薄人而上搏(박인이상박) : 사람을 하찮게 여겨 올라가 친다.
衣服似羽翮(의복사우핵) : 의복은 날개 같아서
開張欲飛騰(개장욕비등) : 펼쳐서 날아오르고 싶었다.
巍巍三面峯(외외삼면봉) : 높고 높은 삼면의 산봉우리
峯尖刀劍攢(봉첨도검찬) : 칼끝을 모아 놓은 듯 뾰족한 봉우리.
往往白雲過(왕왕백운과) : 가끔씩 흰 구름이 지나가고
決開露靑天(결개노청천) : 구름 터진 틈으로 푸른 하늘 드러난다.
西北日落時(서배일낙시) : 서북으로 해가 넘어갈 시간
夕暉紅團團(석휘홍단단) : 저녁 햇볕 붉게 둥글었다.
千里翠屛外(천리취병외) : 푸른 병풍 밖, 아득한 천 리
走下丹砂丸(주하단사환) : 붉은 둥근 모래판으로 달려 내려갔다.
東南月上時(동남월상시) : 동남쪽에 달 뜰 시간
夜氣淸漫漫(야기청만만) : 밤기운은 맑고 질펀하였다.
百丈碧潭底(백장벽담저) : 백 길이나 되는 푸른 못 아래
寫出黃金盤(사출황금반) : 황금빛 둥근 쟁반이 쏟아져 나왔다.
藍水色似藍(남수색사남) : 푸른 물, 물빛은 쪽빛 같았고
日夜長潺潺(일야장잔잔) : 밤낮으로 길게 졸졸 흘러갔다.
周廻繞山轉(주회요산전) : 주변을 돌아 산을 둘러 돌아가니
下視如靑環(하시여청환) : 아래로 내려 보니 푸른 고리 같았다.
或鋪爲慢流(혹포위만류) : 혹은 퍼져 천천히 내려가고
或激爲奔湍(혹격위분단) : 혹은 부딪쳐서 빠른 여울물이 된다.
泓澄最深處(홍징최심처) : 가장 깊은 곳은 넓고도 맑아서
浮出蛟龍涎(부출교룡연) : 교룡의 침처럼 둥둥 떠서 나온다.
側身入其中(측신입기중) : 몸을 비스듬히 그 안으로 들이면
懸磴尤險難(현등우험난) : 돌길이 매어달린 듯이 더욱 험난하다.
捫蘿蹋樛木(문나답규목) : 덩굴 붙잡고, 굽은 나무 밟으며
下逐飮澗猨(하축음간원) : 계곡물 마시는 원숭이를 아래로 쫓는다.
雪迸起白鷺(설병기백노) : 눈이 흩어지니 백로가 놀라 일어나고
錦跳驚紅鱣(금도경홍전) : 붉은 상어에 놀라 비단결처럼 뛰어오른다.
歇定方盥漱(헐정방관수) : 쉴 곳을 정하고 세수하고 양치하여
濯去支體煩(탁거지체번) : 다 씻고 나니 팔다리가 피곤하였다.
淺深皆洞徹(천심개동철) : 옅고 깊은 모든 골짝물이 투명하니
可照腦與肝(가조뇌여간) : 가히 뇌와 간이라도 비출 것 같았다.
但愛淸見底(단애청견저) : 오직 바닥 보이는 맑음이 좋아
欲尋不知源(욕심부지원) : 찾으려 했으나 그 근원을 알지 못했다.
東崖饒怪石(동애요괴석) : 동쪽 언덕에는 괴석이 많고
積甃蒼琅玕(적추창랑간) : 돌을 쌓아놓은 것이 푸른 옥돌 같았다
卞和死已久(변화사이구) : 변씨와 화씨가 죽은 지 오래되어
良玉多棄捐(량옥다기연) : 좋은 옥돌이 많이도 버려졌었다.
或時洩光彩(혹시설광채) : 혹 때때로 광채를 끌어들이고
夜與星月連(야여성월련) : 밤에도 별과 달이 이어졌다.
中頂最高峯(중정최고봉) : 가운데 꼭대기가 최고봉이라
拄天靑玉竿(주천청옥간) : 하늘을 받치는 푸른 옥 줄기 같도다.
형령上不得(형령상부득) : 올라가려 해도 갈 수가 없으니
豈我能攀援(개아능반원) : 어찌 내가 능히 잡아당겨 갈 수 있을까
上有白蓮池(상유백련지) : 위에는 백련지 연못이 있어
素葩覆淸瀾(소파복청란) : 흰 꽃이 푸른 물결을 덮었구나.
聞名不可到(문명부가도) : 이름을 들었어도 가보지 못했으니
處所非人寰(처소비인환) : 사는 곳이 사람의 세계는 아니었으리라.
又有一片石(우유일편석) : 또 한 조각, 돌이 있는데
大如方尺甎(대여방척전) : 크기가 사방 한 자의 벽돌과 같았다.
揷在半壁上(삽재반벽상) : 벽 절반 위에 꽂아 두었으니
其下萬仞懸(기하만인현) : 그 아래로 만 길이나 매달려있었다.
云有過去師(운유과거사) : 사람들이 이르기를, 과거에 스님이 있었는데
坐得無生禪(좌득무생선) : 앉아도 선을 이루지 못했었단다.
號爲定心石(호위정심석) : 정심석이라 이름을 지어
長老世相傳(장노세상전) : 노인들이 대대로 전하여왔다.
却上謁仙祠(각상알선사) : 물러나 신선 사당에 올라가 아뢰니
蔓草生綿綿(만초생면면) : 덩굴풀이 면면히 자라났도다.
昔聞王氏子(석문왕씨자) : 옛날에 들으니, 왕씨의 자식
羽化升上玄(우화승상현) :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랐다고 했다.
其西曬藥臺(기서쇄약대) : 그 서쪽에 쇄약대가 있는데
猶對芝朮田(유대지출전) : 여전히 지출전과 마주보고 있다.
時復明月夜(시복명월야) : 때로 다시 밝은 달 뜬 밤이면
上聞黃鶴言(상문황학언) : 황학의 말이 위에서 들린다고 하였다.
廻尋畫龍堂(회심화룡당) : 돌아서 화룡당을 찾았더니
二叟鬚髮斑(이수수발반) : 두 늙은이가 수염이 반백이었다.
想見聽法時(상견청법시) : 생각해 보니, 불법을 들을 때
歡喜禮印壇(환희례인단) : 예인단을 보면서 기뻐하였으리라.
復歸泉窟下(복귀천굴하) : 다시 천굴 아래로 돌아와
化作龍蜿蜒(화작룡완연) : 바꾸어서 용완연을 만들었다.
階前石孔在(계전석공재) : 계단 앞에는 돌구멍이 있는데
欲雨生白煙(욕우생백연) : 비가 내리려 하면 흰 연기가 생긴단다.
往有寫經僧(왕유사경승) : 왕년에 경전을 베끼는 중이 있었는데
身靜心精專(신정심정전) : 몸은 고요하고 마음은 정성스럽고 순수했다.
感彼雲外鴿(감피운외합) : 저 구름 밖 비둘기 느끼어
羣飛千翩翩(군비천편편) : 수 천 번을 퍼덕이며 떼 지어 날았다.
來添硯中水(내첨연중수) : 내려와 돌 속에 물을 보태고
去吸巖下泉(거흡암하천) : 날아가서는 바위 아래 샘물을 들이킨다.
一日三往復(일일삼왕복) : 하루에 세 번 씩 왕복하면서
時節長不僣(시절장부참) : 시절마다 언제나 교만하지 않았다.
經成號聖僧(경성호성승) : 자신을 다스려 이루어 성승이라 불렸는데
弟子名揚難(제자명양난) : 제자를 양난이라 명명하였다.
誦此蓮花偈(송차련화게) : 이 연화의 게송을 외웠는데
數滿百億千(삭만백억천) : 그 수가 백억 천 개를 채웠다.
身壞口不壞(신괴구부괴) : 몸은 부서져도 입은 부서지지 않았으며
舌根如紅蓮(설근여홍련) : 혀는 붉은 연꽃 같았다.
顱骨今不見(로골금부견) : 해골은 지금 보이지 않지만
石函尙存焉(석함상존언) : 돌함에는 아직도 그것이 남아있다.
粉壁有吳畫(분벽유오화) : 가루 발린 집에는 오도자의 그림이 있었는데
筆彩依舊鮮(필채의구선) : 붓으로 그린 채색그림이 옛날처럼 선명하였다.
素屛有褚書(소병유저서) : 흰 병풍에는 저수량의 글씨가 있었는데
墨色如新乾(묵색여신건) : 먹빛이 금방 말라 버린 것 같았다.
靈境與異跡(령경여리적) : 신령한 경지와 이색적인 자취들
周覽無不殫(주람무부탄) : 두루 살려보아도 끝이 없었다.
一遊五晝夜(일유오주야) : 한 번 돌아다니면, 오 일 밤낮 다녔고
欲返仍盤桓(욕반잉반환) : 돌아가려하니 머뭇거려졌다.
我本山中人(아본산중인) : 나는 본래 산에 사는 사람인데
誤爲時網牽(오위시망견) : 잘못 시대의 거물에 끌려들었다.
牽率使讀書(견률사독서) : 나를 끌고 와서 책을 읽게 하고
推挽令效官(추만령효관) : 나를 추천하여 관리가 되게 하였다.
旣登文字科(기등문자과) : 이미 문학으로 과거에 올라
又忝諫諍員(우첨간쟁원) : 욕되게도 간쟁하는 관리가 되었다.
拙直不合時(졸직부합시) : 졸렬하게 곧아서 시대에 맞지 않아
無益同素餐(무익동소찬) : 유익이 없으면서 녹만을 함께 먹었다.
以此自慚惕(이차자참척) : 이 때문에 스스로 부끄럽고 두려워
戚戚常寡歡(척척상과환) : 불안해하면서 항상 기뻐하는 일이 적었다.
無成心力盡(무성심력진) : 일은 이루지 못하면서 심력은 다하여
未老形骸殘(미노형해잔) : 늙지도 않았는데 몸은 이미 쇠약해졌다.
今來脫簪組(금내탈잠조) : 이제 비녀의 끈을 풀고 벼슬길에서 물러나니
始覺離憂患(시각리우환) : 비로소 근심에서 벗어났음을 깨달았도다.
及爲山水遊(급위산수유) : 산수에 노닐게 되어
彌得縱疎頑(미득종소완) : 내게 소홀하고 완고함이 가득 하여도
野麋斷覇絆(야미단패반) : 들판의 사슴처럼 구속됨을 끊어버렸다.
行走無拘攣(항주무구련) : 마음대로 돌아다녀도 구속됨이 없어
池魚放入海(지어방입해) : 못 속의 물고기를 놓아 주어 바다로 들게 하였다.
一往何時還(일왕하시환) : 한 번 가면, 어느 때나 돌아오나
身著居士衣(신저거사의) : 몸에는 거사의 옷을 입고
手把南華篇(수파남화편) : 손에는 도덕경을 들고 돌아다녔다.
終故此山住(종고차산주) : 끝내는 고향의 이 산에 머물러 살며
永謝區中緣(영사구중연) : 영원히 이 땅 안의 인연에 감사한다.
我今四十餘(아금사십여) : 나는 이제 마흔 살이 되었지만
從此終身閑(종차종신한) : 지금부터 죽을 때까지 한가로우리라.
若以七十期(야이칠십기) : 만약 칠십 살이 내 생애라면
猶得三十年(유득삼십년) : 여전히 삼십 년은 가능하리라 생각된다.
13. 절검두(折劍頭) - 부러진 칼머리 |
拾得折劍頭(습득절검두) : 부러진 칼머리 주웠는데
不知折之由(부지절지유) : 부러진 사유는 알 수 없구나.
疑是斬鯨鯢(의시참경예) : 혹은 고래를 잘랐나?
不然則蛟虬(불연칙교규) : 아니면 교룡을 잘랐을까.
缺落尼土中(결락니토중) : 흙 속에 떨어져 있어
委棄無人收(위기무인수) : 버려둔 채, 줍는 사람 없구나.
我有鄙介性(아유비개성) : 나는 지루한 고집 있어
好剛不好柔(호강불호유) : 강직한 것 좋고 굽히는 것 싫도다.
勿輕直折劍(물경직절검) : 곧아서 부러진 칼 얕보지 말라
猶勝曲全鉤(유승곡전구) : 굽혀서 온전한 갈고랑이보다 낫도다.
14. 파약(罷藥) - 복약을 그만 두며 |
自學坐禪休服藥(자학좌선휴복약) : 좌선을 배우고부터 복약을 그만두었더니
從他時復病沈沈(종타시복병침침) : 다른 때를 따라 다시 병이 심해진다.
此身不要全强健(차신부요전강건) : 이 몸이 완전히 강건해지기 바라지 않지만
强健多生人我心(강건다생인아심) : 강건함은 남과 나의 마음에서 생기는 법이라오.
15. 백로(白鷺) - 백로 |
人生四十未全衰(인생사십미전쇠) : 인생 사십은 완전히 늙음이 아닌데
我爲愁多白髮垂(아위수다백발수) : 나는 근심이 많아 백발이 드리웠구나.
何故水邊雙白鷺(하고수변쌍백노) : 무슨 까닭으로 물가에 있는 두 마리 백로
無愁頭上亦垂絲(무수두상역수사) : 근심 없는 머리 위에도 흰 실이 드리웠나.
이 시는 백거이가 44세 때 강주로 좌천되어 임지로 부임하러 가는 도중 배에서 지은 시이다. 나이에 비해 근심으로 머리가 희어진 자신을 백로와 비유하며 한탄하는 모습이다.
16. 조경(照鏡) - 거울에 비춰보며 |
皎皎靑銅鏡(교교청동경) : 밝고 맑은 청동 거울
斑斑白絲鬢(반반백사빈) : 얼룩덜룩 흰 실 같은 귀밑머리.
豈復更藏年(기부경장년) : 어찌해야 고쳐서 나이를 감출까
實年君不信(실년군불신) : 실제 내 나이를 믿지 못하리라.
17. 감흥(感興) - 마음에 느껴진 것 |
吉凶禍福有來由(길흉화복유래유) : 길흉과 화복은 원인이 있어 생기는 것
但要深知不要憂(단요심지부요우) : 깊이 살필지언정 근심하지 말아야 한다.
只見火光燒潤屋(지견화광소윤옥) : 불길이 부유한 집을 태우는 것을 보아도
不聞風浪覆虛舟(부문풍랑복허주) : 풍랑은 빈 배를 뒤집었다는 소리 듣지 못했소.
名爲公器無多取(명위공기무다취) : 명예는 사회의 공기인지라 많이 취하지 말고
利是身災合少求(이시신재합소구) : 이익은 몸의 재앙거리니 조금만 탐해야 한다.
雖異匏瓜難不食(수이포과난부식) : 사람은 표주박과는 달라서 먹어야 살지만
大都食足早宜休(대도식족조의휴) : 적당히 배부르면 일찍 적당히 쉬어야 한다.
18. 감흥이수(感興二首) - 느낌이 있어 (其一) |
吉凶禍福有來由(길흉화복유내유) : 길흉화복은 까닭이 있어 따라 오는 것이니
但要深知不要憂(단요심지부요우) : 단지 깊이 알아보되 근심하지는 말아라.
只見火光燒潤屋(지견화광소윤옥) : 불길이 윤택한 집을 태우기는 하여도
不聞風浪覆虛舟(부문풍낭복허주) : 풍랑이 빈 배를 엎었다는 것은 듣지 못하였네.
名爲公器無多取(명위공기무다취) : 명예는 공적인 물건이니 많이 취하지 말라
利是身災合少求(리시신재합소구) : 이득은 내 몸의 재앙이니 조금만 구함이 합당하다.
雖異匏瓜難不食(수리포과난부식) : 사람은 표주박과는 달라서 먹지 않기는 어려우나
大都食足早宜休(대도식족조의휴) : 대강 배부르면 일찌감치 그만 먹음이 마땅하네.
* 潤屋(윤옥) : 윤택한 집.
* 虛舟(허주) : 빈 배. 莊子(장자) 外篇(외편) 山木(산목)에 다음과 같은 표현이 있다.
“人能虛己以遊世(인능허기이유세),其孰能害之(기숙능해지) : 이처럼 사람이 자신을 비워서 세상에 노닐면 누가 해칠 수 있겠습니까!”
* 公器(공기) : 공적인 기구. 관직 따위가 개인의 것이 아니다.
* 雖異匏瓜難不食(수이포과난불식) : 비록 표주박과는 달라서 먹지 않기는 어렵다. 匏瓜(포과) : 박. 뒤웅박.
논어(論語) 양화(陽貨) 제십칠(第十七) 제7장에 나오는 문구이다.
“吾豈匏瓜也哉(오개포과야재)라 焉能繫而不食(언능계이불식)이리오 : 내가 어찌 뒤웅박과 같아서 한 곳에 매달린 채 먹기를 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뒤웅박(匏瓜)은 한 곳에 매달려 있어서 무엇을 마시고 먹을 수가 없으니, 사람은 이와 같지 않다고 한 것이다.
* 大都(대도) : 대강
전당시(全唐詩)에 실려 있는 감흥(感興)2수 중 제1수이며, 길흉화복은 그 이유가 있는 것이니 너무 그것에 집착하지 말고 자기의 분수에 맞는 만족한 삶을 살라는 경구(警句)의 시이다.
백거이(白居易)는 다작 시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젊은 나이에 ‘신악부 운동’을 전개하여 사회, 정치의 실상을 비판하는 풍유시(諷喩詩)와 한적시(閑適詩)를 많이 지었다.
18. 감흥이수(感興二首) - 느낌이 있어 (其二) |
魚能深入寧憂釣(어능심입녕우조) : 깊은 물에 사는 물고기가 낚시 걱정 왜 하고
鳥解高飛豈觸羅(조해고비기촉라) : 높이 날 줄 아는 새가 어찌 그물에 걸리겠나.
熱處先爭炙手去(열처선쟁자수거) : 세도가와 가까워지려다 손을 데인 뒤
悔時其奈噬臍何(회시기내서제하) : 후회할 때 닥치면 어찌 해볼 도리 없네.
樽前誘得猩猩血(준전유득성성혈) : 술항아리 유혹에 넘어가 피 흘리는 성성이 같고
幕上偸安燕燕窠(막상투안연연과) : 장막 위에서 편히 지내다 잡히는 제비 꼴 되는데
我有一言君記取(아유일언군기취) : 내가 해주는 한마디 그대가 적어 새겨두게
世間自取苦人多(세간자취고인다) : 세상 사람들 힘든 일 스스로 불러 겪는다고
* 炙手 : 손을 데다. 손을 따뜻하게 하다. 권세가 왕성한 것을 가리킨다. 두보杜甫는 「麗人行」이란 시에서 ‘炙手可熱勢絶倫, 愼莫近前丞相嗔(양씨 집안 권세가 견줄 데 없이 높으니 / 승상 가까이에서는 노여움 안 사게 삼가야 하네)’이라 했고, 백거이白居易는 「放言」이란 시에서 ‘昨日屋頭堪炙手, 今朝門外好張羅(어제는 집 안팎이 사람들로 붐비더니 / 오늘은 문 밖에 그물 친 듯 쓸쓸하네)’라고 했다.
* 其奈 : 어찌하랴. 어찌 할 도리가 없다. 공교롭게도. 부득이하게. ‘其那’로도 쓴다.
* 噬臍(서제) : 나중에 후회해도 소용없는 것을 가리킨다.
* 猩猩血(성성혈) : 선홍빛을 가리킨다.
* 幕上偸安 : 눈앞의 안락을 추구하는 것을 가리킨다.
* 自取 : 자초하다. 스스로 불러오다.
19. 주중만기(舟中晩起) - 배 안에서 저녁에 일어나 |
日高猶掩水窓眠(일고유엄수창면) : 해가 높이 솟아도 문 가리고 잠자고
枕簟淸涼八月天(침점청량팔월천) : 베개와 잠자리가 맑고 시원하니 팔월이라.
泊處或依沽酒店(박처혹의고주점) : 정박한 곳에서 혹 술집에 머물러
宿時多伴釣魚船(숙시다반조어선) : 그곳에 묵으면서 자주 고깃배와 친구한다.
退身江海應無用(퇴신강해응무용) : 은퇴한 몸이라 강호에 쓰일 곳 없고
憂國朝廷自有賢(우국조정자유현) : 나랏일 걱정은 조정에 어진 사람 있으리라.
且向錢塘湖上去(차향전당호상거) : 장차 전당호로 올라가서
冷吟閒醉二三年(냉음한취이삼년) : 이삼 년간 냉정히 읊으며 한가히 취해보리라.
20. 이도서문이수(履道西門二首) - 이도 서문에서 (其一) |
履道西門有弊居(이도서문유폐거) : 이도 서문에 황폐한 거처 있으니
池塘竹樹繞吾廬(지당죽수요오려) : 연못과 대숲이 초가집 둘렀네.
豪華肥壯雖無分(호화비장수무분) : 부귀함과 건장함은 분수에 없지만
飽暖安閒即有餘(포난안한즉유여) : 배부르고 따스히 편안히 사는 것은 넉넉하다네.
行竈朝香炊早飯(항조조향취조반) : 조그마한 아궁이는 아침에 향기로이 조반을 짓고
小園春暖掇新蔬(소원춘난철신소) : 자그마한 뜨락은 봄볕이 따뜻하여 채소가 자라네.
夷齊黃綺誇芝蕨(이제황기과지궐) : 백이·숙제와 하황공·기리계는 지초와 고사리를 뽐내지만
比我盤飧恐不如(비아반손공불여) : 내 쟁반의 음식에는 비하지 못하리.
20. 이도서문이수(履道西門二首) - 이도 서문에서 (其二) |
履道西門獨掩扉(이도서문독엄비) : 이도 서문에 홀로 문을 가리고
官休病退客來稀(관휴병퇴객내희) : 벼슬 그치고 병들어 물러나니 손님 드물다.
亦知軒冕榮堪戀(역지헌면영감련) : 높은 벼슬 그리워 할 만하다는 것도 알지만
其奈田園老合歸(기나전원노합귀) : 전원이 늙어서 돌아갈 곳임을 어쩌리오.
跋鼈難隨騏驥足(발별난수기기족) : 절뚝이 자라는 천리마의 다리를 따르기 어렵고
傷禽莫趁鳳皇飛(상금막진봉황비) : 상처 난 새는 봉황새의 비상을 쫓아가지 못한다.
世間認得身人少(세간인득신인소) : 세상에는 자기 몸을 얻는 자가 드무니
今我雖愚亦庶幾(금아수우역서기) : 이제 나는 비록 어리석어도 도에 가까우리라.
21. 도중감추(途中感秋) - 길 가다 가을은 느껴 |
節物行搖落(절물항요낙) : 철 따라 만물은 더욱 요락해 가고
年顔坐變衰(연안좌변쇠) : 나이 따라 얼굴빛도 절로 변하여 쇠락한다.
樹初黃葉日(수초황섭일) : 나무에 처음 누런 잎 지는 날
人欲白頭時(인욕백두시) : 사람도 백발이 되어가는 때이로구나.
鄕國程程遠(향국정정원) : 고향 가는 길마다 아득하고
親朋處處辭(친붕처처사) : 친구들은 곳곳에서 떠나가는구나.
唯憐病與老(유련병여노) : 오직 가련한 것은, 병들고 늙어감이
一步不相離(일보부상리) : 한 걸음도 서로 떨어지지 않는 것이로다.
22. 추모교거서회(秋暮郊居書懷) - 늦가을 교외에서 회포를 적다 |
郊居人事少(교거인사소) : 교외에 다니는 사람 적고
晝臥對林巒(주와대림만) : 낮에는 누워서 숲 가득한 산을 본다.
窮巷厭多雨(궁항염다우) : 궁핍한 골목길에 내리는 비 싫고
貧家愁早寒(빈가수조한) : 가난한 집안에 이른 추위 걱정된다.
葛衣秋未換(갈의추미환) : 갈포 옷을 가을에도 못 바꿔 입고
書卷病仍看(서권병잉간) : 서책은 병들어도 여전히 읽고 있노라.
若問生涯計(야문생애계) : 앞으로의 생애의 대책을 문는다면
前溪一釣竿(전계일조간) : 앞개울에 낚싯줄이나 드리고 살리라.
23. 동초주숙이수(冬初酒熟二首) - 초겨울 술은 익어 가는데 (其一) |
霜繁脆庭柳(상번취정류) : 서리 자주 내리자 뜰의 버들 시들고
風利剪池荷(풍리전지하) : 바람 매서워지자 연못의 연꽃이 꺾인다.
月色曉彌苦(월색효미고) : 달빛은 새벽이 되니 더욱 괴롭고
鳥聲寒更多(조성한경다) : 새소리는 차가워지니 더욱 시끄럽다.
秋懷久寥落(추회구요낙) : 가을의 마음 늘 서글퍼지는데
冬計又如何(동계우여하) : 겨울 대책은 어떻게 해야 하나.
一甕新醅酒(일옹신배주) : 한 독에 가득한 새로 빚은 술 빛이
萍浮春水波(평부춘수파) : 마름 떠다니는 봄 연못 물결 같구나.
* 風利(풍리) : 바람이 세차다. 利는 날카롭다는 뜻.
* 荷(하) : 연잎(蕸)을 말한다.
* 彌苦(미고) : 더욱 괴롭다. 彌는 더욱.
* 寥落(요락) : 적막하다. 쓸쓸하다.
* 一甕新醅酒(일옹신배주) : 한 항아리의 새로 빚은 술. 甕은 독, 항아리.
* 萍(부) : 부평초. 개구리밥.
23. 동초주숙이수(冬初酒熟二首) - 초겨울 술은 익어 가는데 (其二) |
酒熟無來客(주숙무내객) : 술이 익어도 찾아오는 손님 없어
因成獨酌謠(인성독작요) : 혼자 마시고 노래 부르게 되었구나.
人間老黃綺(인간노황기) : 인간세계 늙어가는 하황공과 기리계
地上散松喬(지상산송교) : 지상에 내려온 적송자와 왕자교이로다.
忽忽醒還醉(홀홀성환취) : 문득문득 깨었다가 다시 또 취하고
悠悠暮復朝(유유모복조) : 편안하게 밤에도 낮에도 취하리라.
殘年多少在(잔년다소재) : 남은 인생 얼마간 살아있을 동안을
盡付此中銷(진부차중소) : 술 마시고 취하며 모든 날을 삭이리라.
* 黃綺(황기) : 상산사호(商山四皓) 중 하황공(夏黃公)과 기리계(綺里季)를 말한다. 상산사호(商山四皓)는 진(秦)나라 말기 진 시황제의 학정을 피해 상산에 은둔했던 네 노인으로 동원공(東園公)ㆍ하황공(夏黃公)ㆍ기리계(綺里季)ㆍ녹리선생(甪里先生)을 이르는데, 나이가 80을 넘어 머리가 희었으므로 사호(四皓)라 칭하였다.
* 松喬(송교) :전설 속의 선인(仙人)인 적송자(赤松子)와 왕자교(王子喬)를 말한다. 赤松子(적송자) 신농씨(神農氏) 때에 우사(雨師)였으며 음식으로 물을 먹고 옥으로 옷을 해 입으며, 신농에게 타오르는 화염 속에서 견디는 방법을 일러주었다. 금화산(金華山)에 살다가 스스로 몸을 태워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王子喬(왕자교)는 주나라 영왕의 태자이며, 생황을 잘 불어 봉황의 울음소리를 낼 수 있었다. 이수와 낙수 사이를 노닐었는데 도사인 부구공이 왕자교를 데리고 숭산에 올라 30여 년을 지낸 후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
* 忽忽(홀홀) : 문득.
* 殘年(잔년) : 인생의 만년(晩年). 여생.
* 盡付(진부) : 모두 주다.
* 銷(소) : 녹일 ‘소’로 사라지다는 뜻.
이 시는 전당시(全唐詩)에는 동초주숙2수(冬初酒熟2首)로 실려 있으며, 백씨장경집(白氏長慶集) 65권에는 동초주숙(冬初酒熟)으로 실려 있다. 초겨울에 익은 술을 홀로 마시며 유유자적하는 모습을 읊은 시이다.
제 1수는 가을이 가고 초겨울이 되는 풍경을 묘사하고 겨울을 보낼 걱정을 하며 술을 빚어 놓았지만 함께 할 사람이 없으니 술독을 바라보는 모습을 읊었으며,
제 2수에서는 술이 익어도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홀로 술을 마시며 신선의 경지에 올라 남은 인생을 취하여 지내고 싶은 심정을 읊었다.
24. 야량(夜涼) - 밤은 차가운데 |
露白風淸庭戶涼(노백풍청정호량) : 흰 이슬, 맑은 바람, 싸늘한 뜰
老人先著夾衣裳(노인선저협의상) : 늙은이가 가장 먼저 겹옷 입는다.
舞腰歌袖抛何處(무요가수포하처) : 무희와 가수들 어디에 버려두고
唯對無絃琴一張(유대무현금일장) : 다만 줄 없는 거문과를 바라 본 뿐.
25. 숙죽각(宿竹閣) - 죽각에 묵으며 |
晩坐松檐下(만좌송첨하) : 저녁에 소나무 처마 아래 앉고
宵眠竹閣間(소면죽각간) : 밤에는 죽각 사이에서 잠을 잔다.
淸虛當服藥(청허당복약) : 청허한 마음은 선약을 복용함 같고
幽獨抵歸山(유독저귀산) : 그윽한 기분은 산으로 돌아온 것 같아라.
巧未能勝拙(교미능승졸) : 재치는 졸렬함을 이길 수 없고
忙應不及閒(망응부급한) : 바쁜 것은 한가한 것에 미치지 못한다.
無勞別修道(무노별수도) : 따로 도를 닦으려 수고할 필요 없으니
卽此是玄關(즉차시현관) : 이것에 이르면 곧, 현묘한 경지가 되니라.
26. 사십오(四十五) - 마흔 다섯 살에 |
行年四十五(항년사십오) : 내 나이 이미 마흔 다섯
兩鬢半蒼蒼(량빈반창창) : 두 귀밑머리 반백이 되었다.
淸瘦詩成癖(청수시성벽) : 성격이 말쑥하고 작시가 버릇되어
粗豪酒放狂(조호주방광) : 억세고 거칠어 취하면 광태로다.
老來猶委命(노내유위명) : 늙어서는 오히려 천명에 맡기고
安處卽爲鄕(안처즉위향) : 편안히 처할 곳은 고향이로다.
或擬廬山下(혹의려산하) : 혹 여산 기슭쯤에다가
來春結草堂(내춘결초당) : 봄이면 초당이나 엮어 볼까한다.
27. 강남송북객(江南送北客) /강남송북객인빙기서주형제서(江南送北客因憑寄徐州兄弟書) - 강남에서 북으로 가는 손님을 전송하며 서주 형제에게 글을 부치다 |
故園望斷欲何如(고원망단욕하여) : 고향 바라봐도 보이지 않으니 어찌할까
楚水吳山萬里餘(초수오산만리여) : 초나라 강과 오나라 산이 만 리나 되는 것을
今日因君訪兄弟(금일인군방형제) : 오늘 그대로 인하여 형제 찾아보리니
數行鄕淚一封書(삭항향누일봉서) : 몇 줄기 흐르는 향수의 눈물로 한 통의 편지 속에 봉한다.
28. 구중유일사이수(丘中有一士二首) - 산속에 숨어사는 선비 한 분 (其一) |
丘中有一士(구중유일사) : 산 속에 한 선비 있어
守道歲月深(수도세월심) : 도를 지키며 세월이 깊어간다.
行披帶索衣(항피대색의) : 다닐 때는 새끼줄 옷을 입고
坐拍無絃琴(좌박무현금) : 앉아서는 줄 없는 거문고를 탄다.
不飮濁泉水(부음탁천수) : 탁한 샘물은 마시지 않고
不息曲木陰(부식곡목음) : 굽은 나무 그늘에는 쉬지 않았다.
所逢苟非義(소봉구비의) : 만나는 일이 진실로 의롭지 않으면
糞土千黃金(분토천황금) : 천량의 황금도 분토같이 여긴다.
鄕人化其風(향인화기풍) : 마을 사람들이 그의 풍교에 감화되고
薰如蘭在林(훈여난재림) : 향기는 난초가 숲에 있는 것 같았다.
智愚與强弱(지우여강약) : 지자와 우자, 강자와 약자가
不忍相欺侵(부인상기침) : 서로 차마 속이거나 괴롭히지 않았다.
我欲訪其人(아욕방기인) : 내가 그 사람을 찾아보려고 하여
將行復沈吟(장항복침음) : 길을 나섰다가는 다시 주저하고 망설였다.
何必見其面(하필견기면) : 어찌 반드시 그 얼굴을 보아야 하는가.
但在學其心(단재학기심) : 다만 그이 마음만을 배우는데 있는 것이다.
28. 구중유일사이수(丘中有一士二首) - 산속에 숨어사는 선비 한 분 (其二) |
丘中有一士(구중유일사) : 산 속에 한 선비 있어
不知其姓名(부지기성명) : 그 성명을 알지 못한다.
面色不憂苦(면색부우고) : 얼굴에 근심과 고통이 없고
血氣常和平(혈기상화평) : 혈기는 항상 화평하였다.
每選隙地居(매선극지거) : 매일 한적한 곳을 가려 살고
不蹋要路行(부답요노항) : 벼슬길은 절대로 밟지 않았다.
擧動無尤悔(거동무우회) : 거동에는 잘못이나 후회가 없고
物莫與之爭(물막여지쟁) : 물질에는 그들과 다투지 않았다.
藜藿不充腸(여곽부충장) : 명아주나 콩잎으로도 배를 채우지 않고
布褐不蔽形(포갈부폐형) : 베옷이나 갈포로도 몸을 가리지 못했다.
終歲守窮餓(종세수궁아) : 평생토록 궁핍과 굶주림을 지키고
而無嗟歎聲(이무차탄성) : 탄식하는 소리가 전혀 없었다.
豈是愛貧賤(개시애빈천) : 어찌 곧 가난과 천함을 좋아해서인가
深知時俗情(심지시속정) : 속세의 정을 깊이 알아서 이리라.
勿矜羅弋巧(물긍나익교) : 그물이나 주살에 익숙하다 자랑마라
鸞鶴在冥冥(난학재명명) : 난새나 학이 넓은 세상을 날고 있단다.
28. 채지황자(采地黃者) - 지황을 캐는 사람 |
麥死春不雨(맥사춘부우) : 봄에 가물어 보리가 죽고
禾損秋早霜(화손추조상) : 가을 이른 서리에 벼농사 망쳤단다.
歲晏無口食(세안무구식) : 세모에 입에 먹을 것이 전혀 없어
田中采地黃(전중채지황) : 밭에서 지황을 캐고 있단다.
采之將何用(채지장하용) : 그것을 캐어서 어디에 쓰느냐 하니
持以易餱糧(지이역후량) : 그것을 가져다 양식과 바꾼단다.
凌晨荷鋤去(능신하서거) : 새벽에 호미 메고 나가서
薄暮不盈筐(박모부영광) : 저녁 되어도 광주리를 못 채운단다.
攜來朱門家(휴내주문가) : 붉은 대문 집에 가지고 가서
賣與白面郎(매여백면낭) : 희멀건 도령에게 팔아버린단다.
與君啖肥馬(여군담비마) : 도령은 살찐 말에게 먹이어
可使照地光(가사조지광) : 땅에 광택이 비치도록 하더란다.
願易馬殘粟(원역마잔속) : 바라기를, 말먹이고 남은 곡식 주어서
救此苦飢腸(구차고기장) : 그렇게 쓰리고 주린 창자를 구해달란다.
29. 송재자제(松齋自題) - 송재에 제하여 |
非老亦非少(비노역비소) : 늙지도 젊지도 않았으니
年過三紀餘(년과삼기여) : 나이가 서른여섯 살이 지났다.
非賤亦非貴(비천역비귀) : 천하지도 귀하지도 않으니
朝登一命初(조등일명초) : 조정에 올라 처음 임명받은 초기
才小分易足(재소분역족) : 재능이 적어 분수에 만족하기 쉽고
心寬體長舒(심관체장서) : 마음이 너그러워 몸이 늘 편하다.
充腸皆美食(충장개미식) : 배만 채우면 모두가 맛있는 음식이요.
容膝卽安居(용슬즉안거) : 무릎만 들여놓으면 편안한 거처이다.
況此松齋下(황차송재하) : 하물이 나의 서재인 송재 아래서
一琴數帙書(일금삭질서) : 거문고 하나와 몇 질의 책이 있음에야.
書不求甚解(서부구심해) : 책을 깊이 알려고 하지 않고
琴聊以自娛(금료이자오) : 거문고도 적당히 스스로 즐긴다.
夜直入君門(야직입군문) : 밤에는 당직서려 대궐에 들고
晩歸臥吾廬(만귀와오려) : 저녁에는 돌아와 내 집에 눕는다.
形骸委順動(형해위순동) : 신체는 섭리에 맡겨 움직이고
方才付空虛(방재부공허) : 마음은 공허한 곳에 붙여놓는다.
持此將過日(지차장과일) : 이러한 태도 지키며 장차 날을 보내면
自然多晏如(자연다안여) : 자연히 마음 편한 날이 많아진다.
昏昏復黙黙(혼혼복묵묵) : 혼미한 듯, 또는 말 못하는 듯하나
非智亦非愚(비지역비우) : 지혜롭지 않고, 또한 어리석지도 않도다.
30. 출부귀오려(出府歸吾廬) - 관청을 나와 내 집에 돌아와 |
出府歸吾廬(출부귀오려) : 관청을 나와 집에 돌아오니
靜然安且逸(정연안차일) : 고요하여 편안하고 한가롭구나.
更無客干謁(경무객간알) : 게다가 만나자고 오는 손님도 없고
時有僧問疾(시유승문질) : 때로 병문안 오는 승려가 있다.
家僮十餘人(가동십여인) : 사내 종 십여 명이 있고
櫪馬三四匹(력마삼사필) : 마구간에는 서너 필의 말이 있다.
慵發經旬臥(용발경순와) : 게을러지면 열흘을 누워있고
興來連日出(흥내련일출) : 흥겨우면 며칠 동안 나가논다.
出遊愛何處(출유애하처) : 나아가 놀 때면 어느 곳을 좋아하는가.
嵩碧伊瑟瑟(숭벽이슬슬) : 숭산의 푸름이 그렇게 보석 같다.
況有淸和天(황유청화천) : 하물며 맑고도 따뜻한 날씨
正當疎散日(정당소산일) : 마침 한가로운 달이라면 어떠하리오.
身閒自爲貴(신한자위귀) : 몸이 한가하면 절절로 고귀해지니
何必居榮秩(하필거영질) : 어찌 반드시 영화를 누리는 지위에 있어야 할까.
心足卽非貧(심족즉비빈) : 마음이 흡족하면 가난하지 않나니
豈唯金滿室(개유금만실) : 어찌 오직 황금을 집안에 가득히 채워야 할까.
吾觀權勢者(오관권세자) : 내가 권세 있는 자를 살펴보니
苦以身徇物(고이신순물) : 고통스럽게 자신을 물질을 따르게 한다.
炙手外炎炎(자수외염염) : 손에 불 쪼이고 밖으로는 기세가 타오르지만
履冰中慄慄(이빙중률률) : 얼음을 밟은 듯이 마음속으로 떨고 있다.
朝飢口忘味(조기구망미) : 아침에는 배고파도 입맛을 잃었고
夕惕心憂失(석척심우실) : 저녁에는 마음속으로 잃을까 걱정한다.
但有富貴名(단유부귀명) : 다만 부귀의 이름만 있을 뿐이지
而無富貴實(이무부귀실) : 부귀의 실속은 전혀 없는 것이었다.
*****(2022.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