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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다. 그 영광은 아버지께서 주신 독생자의 영광이며, 그 안에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
15. (요한은 그를 증언하여 외쳤다. "이분이 내가 말씀드린 바로 그분입니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을 나보다 앞선 분이라고 말씀드린 것은, 이분을 두고 말한 것입니다. 그분은 나보다 먼저 계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16. 우리는 모두 그의 충만한 데서 은혜 위에 은혜를 받았다.
17. 율법은 모세에게서 받았고,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겨났다.
18. 일찍이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나, 아버지의 품 속에 계시는 독생자이신 하나님이 그분을 나타내 보이셨다.(요1:14-18)
14 The Word became a human being and, full of grace and truth, lived among us. We saw his glory, the glory which he received as the Father's only Son.
15 John spoke about him. He cried out, “This is the one I was talking about when I said, ‘He comes after me, but he is greater than I am, because he existed before I was born.’”
16 Out of the fullness of his grace he has blessed us all, giving us one blessing after another. 17 God gave the Law through Moses, but grace and truth came through Jesus Christ. 18 No one has ever seen God. The only Son, who is the same as God and is at the Father's side, he has made him known.
바쁜 일들이 있겠지만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신앙을 통해 구원 얻기 위한 것입니다.
구원이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간절한 문제에 대한 해결을 이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가지고 계신 가장 간절한 소망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죽음의 문제입니다.
예수께서 바로 그 일을 하셨습니다.
우리를 죽음의 세력에서 해방하신 것입니다.
14. 이 자녀들은 피와 살을 가진 사람들이기에, 그도 역시 피와 살을 가지셨습니다. 그것은, 그가 죽음을 겪으시고서, 죽음의 세력을 쥐고 있는 자 곧 악마를 멸하시고,
15. 또 일생 동안 죽음의 공포 때문에 종노릇 하는 사람들을 해방하시려고 한 것입니다.(히2:14,15)
진시황의 간절한 소망은 불노초를 얻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신하들을 제주도까지 보냈답니다.
그들이 그 약초를 구했는지 한 곳에서 서쪽으로 돌아간 모양입니다.
그들이 서쪽으로 돌아간 항구라고 서귀포라고 이름 했답니다.
그러면 그 진시황이 그 불노초 덕에 아직까지 살아있나요?
아닙니다.
그는 죽은 지 오래입니다.
그가 절대왕이라고 해서 우리와 다른 문제를 가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도 우리와 똑같이 죽음이 가장 두렵고 무서운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우리와 똑같이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죽고만 것입니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인명은 재천이라고 했습니다.
이 문제만큼은 사람이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죽음의 문제를 제 손으로 해결하려는 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제 주제 파악을 못한 것입니다.
3. "이 족쇄를 벗어 던지자. 동여맨 이 사슬을 끊어 버리자" 하는가?
4. 하늘 보좌에 앉으신 분이 웃으신다. 내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신다.
5. 마침내 주께서 분을 내고, 진노하셔서, 그들에게 호령하시며 이르시기를
6. "내가 거룩한 산 시온 위에 '나의 왕'을 세웠다" 하신다.(시2:3-6)
自求的인 생각 자체가 하나님의 진노의 내용입니다.
이 문제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편에서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죽음을 이기고 여러분이 다시 산다는 사실이 잘 믿어집니까?
여러분이 죽음이 없는 나라 하나님이 나라에 간다는 사실이 잘 믿어지십니까?
우리 교회에 아주 열심있는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그 분은 무슨 일이 있어도 새벽기도회에 오셨고 4시만 되면 교회 종을 본인이 치셨습니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입니다.
제가 집사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집사님 눈 감으시면 하나님의 나라에 갈 것을 믿으시지요?
그랬더니 집사님이 대뜸 대답하셨습니다.
가봐야 알지요!
기독교가 말하는 구원이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죽어도 다시 천국에서 산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산다는 것입니다.
정말 믿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람들이 믿기 어려운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사람이 믿기 어려운 일을 하셨던 것입니다.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다. 그 영광은 아버지께서 주신 독생자의 영광이며, 그 안에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
14 The Word became a human being and, full of grace and truth, lived among us. We saw his glory, the glory which he received as the Father's only Son.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어도 다시 살아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늘 위에 계신 하나님께서 피조물의 모양을 입으셨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나라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2,000년 전의 사건입니다.
이를 성육신이라고 합니다.
바로 이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람들은 이 예수님의 사건을 비웃었는데 그들이 영지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지혜있는 사람이라고 자부했습니다.
무식한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자신들은 지식인들이라고 자칭했습니다.
그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죄인의 모습을 입고 오셨다고 믿는 일이 무식하고 어리석어 보였습니다.
그리고 불경한 일로 보였습니다.
그 거룩하신 분이 어찌 썩고말 죄인의 모습이 되신다는 말입니까!
하지만 그 예수님의 일은 역사적인 사실이었습니다.
사람이 이룰 수 없는 구원의 사건은 하나님께서 주도하셔서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이 땅에 오심으로 그 구원의 사건이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이 구원은 한 십년 도를 제대로 닦은 특별한 사람에게 허락된 일이 아닙니다.
도끼로 제 상관의 가족을 몰살시킨 고재봉 앞에서도 예수님을 통해 그 구원의 사건은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께서 죽으시고 2,000년이 지난 이 한국 땅에서도 그리스도의 그 같은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주일에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14 The Word became a human being and lived among us.
지금 이 자리에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사시는 것입니다.
지금 달내 교회 정의자에 주님이 앉아계시는 것입니다.
그 분은 여러분 안에 계십니다.
예수님은 지금 이 설교를 통해 일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지금 그의 영광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스 로마 신와에 등장하는 제우스의 아버지 크로노스는 자신의 자녀들을 삼켜버렸습니다.
자신의 자녀들이 아버지인 자신을 반역하리라는 예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의 아내 리아가 제 자식 제우스만 챙겨서 도망했습니다.
나중에 이 제우스가 성장을 해서 정말로 제 아버지 크로노스와 대결했습니다.
그리고 나라를 건설하게 됩니다.
왕이 된 제우스는 아내 메티스가 자식을 잉태하게 됩니다.
그런데 제우스가 그의 할머니 가이아에게 예언을 듣게 되었습니다.
"너도 네 아버지 크로노스처럼 이 아이한테 당하고 말거야!"
그 말에 제우스는 자녀만 삼킨 것이 아닙니다.
아이를 잉태한 자신의 아내 메티스를 삼켜 버렸답니다.
그 후 제우스는 올림포스 12신 중의 한 명이자 자신의 누이인 헤라에게 반하여 결혼하자고 조릅니다.
그러나 헤라는 제우스가 바람둥이인 걸 알고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우스가 작전을 짰습니다.
제우스는 가련한 뻐꾸기로 변신하여 어느 처량한 비오는 날 헤라 앞에 힘없이 앉아 있었습니다.
헤라는 뻐꾸기가 불쌍하다며 꼭 껴안아 주었습니다.
그때 제우스는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고 깜짝 놀란 헤라는 어쩔 수 없이 제우스와 결혼을 허락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제우스의 바람기는 사그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우스의 아내는 제우스의 여인들과 싸웠고 그 사이에서 난 자식과 싸웠습니다.
질투의 화신으로 변해갔습니다.
도대체 여기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나오는 사람들에게서 무슨 도덕적 일관성을 찾을 수 있습니까?
멋대로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통해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영광은 명확한 그 일관성이 읽혀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은혜과 진리입니다.
은혜라고 하면 먼저 탕자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는 아버지에게 못된 짓을 골라 했습니다.
그러다가 먼 이방땅에서 완전 거지 신세가 된 것입니다.
그렇게 돼지 사료를 훔쳐 먹으며 살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도 배가 고파서 아버지집의 종이라도 되고자 집을 향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이 아들을 나쁜놈이라고 쫓아내신 것이 아닙니다.
종으로 삼으신 것이 아닙니다.
이 못된 아들을 목욕시키고 옷 입히고 밥 먹이고.......
그는 생각하지 못한 대접을 아버지에게 받은 것입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그런 대접을 받은 이유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은혜를 베푼 것입니다.
못된 자식을 향해 베푸신 아버지의 은혜가 하나님의 진리입니다.
이 세상 진리란 그런 아들이 십년형을 받고 감옥에 갖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의 진리는 세상과 다릅니다.
이런 아버지의 진실을 두고 진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일관된 그 은혜와 진리가 그리스도 예수님의 영광의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15. (요한은 그를 증언하여 외쳤다. "이분이 내가 말씀드린 바로 그분입니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을 나보다 앞선 분이라고 말씀드린 것은, 이분을 두고 말한 것입니다. 그분은 나보다 먼저 계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15 John spoke about him. He cried out, “This is the one I was talking about when I said, ‘He comes after me, but he is greater than I am, because he existed before I was born.’”
요한이 한 일은 증언입니다.
그리고 그 증언이 내용은 정해져 있습니다.
예수님입니다.
이 말씀이 아주 중요합니다.
15. 요한은 그를 증언하여 외쳤다.
15 John spoke about him.
딴 소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만 증거하라는 것입니다.
간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만 증거하라는 것입니다.
제가 제주도 교회에 있을 때 교회 앞의 세탁소 주인이 갑자기 교회를 나왔습니다.
전도한 사람이 따로 없었습니다.
그러자 집사님 한 분이 너무 좋아라고 세탁소를 찾아갔습니다.
가서 교회 잘 나오셨다고 칭찬을 했습니다.
앞으로 우리 교인들이 세탁물도 많이 맡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돈 잘 벌게 되었다고 격려한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세탁소 주인이 교회에 발을 끊고 말았습니다.
그 분은 세탁물 때문에 교회에 나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저도 목회를 시작할 때 그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의 나라 영생을 보장받게 되었다는 말이 너무 호소력이 없게 느껴진 것입니다.
세탁물 이야기가 더 현실감이 있는 전도 소재라는 생각이 든 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따위 생각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요한이 한 일은 예수님의 이야기뿐입니다.
그가 우리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상한 간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이 증거한 일입니다.
15. 이분이 내가 말씀드린 바로 그분입니다.
15 This is the one I was talking about
요한은 자신을 증거한 것입니다.
그는 주님을 소개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엄밀한 의미에서 내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입니다.
나를 하나님과 동일시 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소리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흥분하지 말란느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대고 자신의 종교적인 일의 성취를 주장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제가 원하는 엄청난 교회 건물을 지어대면서 그 일로 흥분하는 일이 있습니다.
나는 다만 그 분을 소개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일이란 엄청난 돌멩이를 쌓아두는 종교적 성취 행위를 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 헤롯의 일이 아닙니다.
1. 예수께서 성전을 떠나가실 때에, 제자들 가운데서 한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보십시오, 얼마나 굉장한 돌입니까! 얼마나 굉장한 건물들입니까!"
2.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큰 건물들을 보고 있느냐? 여기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다."(막13:1,2)
정확히 예수님을 전하고 나도 전해야 합니다.
나는 그 분을 증거하는 사람에 불과합니다.
15. 내 뒤에 오시는 분을 나보다 앞선 분이라고 말씀드린 것은, 이분을 두고 말한 것입니다. 그분은 나보다 먼저 계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15 ‘He comes after me, but he is greater than I am, because he existed before I was born.’”
그리고 전해야 할 것은 이 물질적이 세상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상한 세상이 있습니다.
내가 먼저 난 사람인데 그리고 예수님은 내 뒤에 이 세상에 오셨는데 뒤에 오신 분이 내 앞에 계신 분이라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GNP를 가지고 강대상에서 말하는 사람들을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즉 이 세상의 기복주의를 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다른 차원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 분은 내 뒤에 오셨지만 그 분을 너와는 다른 차원의 분이시라는 것을 전하는 것입니다.
나는 피조물이지만 그 분을 태초에 계셨던 창조자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한다고 누가 우리의 말을 믿기나 하겠습니까?
바로 그 하나님의 나라를 하나님의 절대 도우심으로 전하라는 것입니다.
16. 우리는 모두 그의 충만한 데서 은혜 위에 은혜를 받았다.
16 Out of the fullness of his grace he has blessed us all, giving us one blessing after another.
은혜로 치자면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사람을 입은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보다 더 큰 은혜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죄로 죽을 우리를 그리스도를 통해 다시 살리신 것입니다.
그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실은 우리 모든 사람이 어제의 은혜에 오늘의 은혜를 더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숨 쉬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용서를 받고 사는 것이지 탕자의 형님처럼 제 업적을 주장했다가는 아버지와 대판 싸우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선행이 오히려 우리의 결정적인 거침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뼈 빠지게 교회에서 봉사했다면 그 헌신이 있게 하신 성령님의 감동에 감사할 일일 뿐입니다.
그 헌신이 나의 공로가 되는 날 우리는 깊은 함정에 빠진 것입니다.
모든 것이 은혜일 뿐입니다.
17. 율법은 모세에게서 받았고,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겨났다.
17 God gave the Law through Moses, but grace and truth came through Jesus Christ.
우리는 율법적인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에게 죄를 범했으면 감옥에 10년 형을 받아야 당연하다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강력한 법의 제재를 받았던 것입니다.
28.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사람은,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마5:28)
예수님의 이 말씀은 구약의 모세를 강화한 말씀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닙니다.
1. 젊은 여인을 음탕한 눈으로 바라보지 않겠다고 나 스스로 엄격하게 다짐하였다.
2. 여자나 유혹하고 다니면, 위에 계신 하나님이 내게 주실 몫이 무엇이겠으며, 높은 곳에 계신 1)전능하신 분께서 내게 주실 유산은 무엇이겠는가?(욥3:1,2)
구약의 인물 욥은 예수님의 지적의 의미를 이미 알고 자신의 삶에 적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중심을 보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법을 사람들이 잘 지켜냈을까요?
물론 아닙니다.
바울을 하나님의 법에 대한 이해가 유대인들과 달랐습니다.
20. 그러므로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인식할 뿐입니다.(롬3:20)
즉 모세의 법에 죄인이 구원 받을 길이 없습니다.
그렇게 모세의 법으로 아무도 구원을 받을 수 없어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서 새 시대가 온 것입니다.
이 시대는 은혜와 진리가 적용되는 시대입니다.
돼지 똥 냄새에 절은 아들을 씻고 옷 주고 먹이고.......
예수님을 통해서 새 시대를 맞은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모세의 율법을 폐하신 것인가?
아닙니다.
사람을 그 법을 지키지 못했는데 예수님께서 사람들 대신에 그 법을 지켜주신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셨을 때 성부 하나님은 주님을 통해 법이 성취되심으로 만족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받을 모든 징벌을 주님이 대신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18. 일찍이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나, 아버지의 품 속에 계시는 독생자이신 하나님이 그분을 나타내 보이셨다.
18 No one has ever seen God. The only Son, who is the same as God and is at the Father's side, he has made him known.
모세조차 하나님을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20. 주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그러나 내가 너에게 나의 얼굴은 보이지 않겠다. 나를 본 사람은 아무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21. 주께서 말씀을 계속하셨다. "너는 나의 옆에 있는 한 곳, 그 바위 위에 서 있어라.
22. 나의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바위 틈에 집어 넣고, 내가 다 지나갈 때까지 너를 나의 손바닥으로 가리워 주겠다.
23. 그 뒤에 내가 나의 손바닥을 거두리니, 네가 나의 등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의 얼굴은 볼 수 없을 것이다."(출33:20-23)
모세가 본 것은 겨우 하나님의 등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본 사람이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얼굴을 볼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적인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볼 뿐입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9.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본 사람이다. 그런데 네가 어떻게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한다는 말이냐?(요14:9)
목회자는 요한처럼 예수님만 증거하는 일에 충실해야 할 것입니다.
세탁물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독생자 예수님을 통해 성부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았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who is the same as God)이시기 때문입니다.
18. 아버지의 품 속에 계시는 독생자이신 하나님이
18 who is the same as God
그리스도 예수님만이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이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만이 하나님의 편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땅의 편에 있었습니다.
18. 아버지의 품 속에 계시는 독생자이신 하나님이
18 who is at the Father's side,
바로 이 예수님께서 성부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이신 것입니다.
이 역사적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바로 그 일을 감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