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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식을 보면서 새해에 맞춰 소중한 사람들에게 문자를 돌렸지. 전체 문자는 성의가 없어 보여서 한 사람 한 사람, 100자식 꽉꽉 채워서 올해도 잘 부탁드린다는 말과 새해인사를 전했어. 물론 곧 있을 생방에 무대를 점검하고 있을 너에게도 메시지를 보냈지. 그리고 너의 무대를 보고 잠이 들었어. 이번 스페셜 스테이지 멋있었어. 특히 santa claus 발음 하는 너는 정말 예쁘더라. 카메라도 너를 잘 잡고, 너는 카메라를 바라보며 여유로운 여여신의 미소를 날리고.
9시가 좀 넘어서 일어났어. TV에선 슈퍼스타케이가 재방송 중이었지. 엄마는 새해맞이 교회에 가려고 분주했다. 거실엔 먼지가 풀풀 날렸어. 청소나 해놓고 집을 비우던가. 여전히 우리 엄마는 너무 바빠서 탈이야.
자리를 털자마자 휴대폰을 찾았어. 어제 보낸 문자들에는 답장이 돌아왔더라. 물론 거기엔 네가 보낸 답장도 있었고. 나는 뿌듯한 마음으로 한 글자 한 글자씩 또박또박 읽었어. 성의 있는 말에는 성의 있는 답이 돌아오게 마련이니까 문자를 읽으면서 기분이 좋았어. 17통 정도의 메시지를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2010년은 행복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지. 한 살 더 먹었으니까 더 열심히 살자! 마음도 다 잡았어.
컴퓨터 하는 동생을 붙잡고 함께 청소를 시작했지. 새해맞이라서 신경을 좀 썼어. 오랜만에 열심히 몸을 움직였다. 쓸고 닦고 동작이 굼뜬 동생에게 소리도 좀 지르고. 청소를 마친 후에 늦은 아침을 먹고서 다시 휴대폰을 봤는데, 아뿔싸. 부재중 전화가 와있더라. 네 이름 앞으로.
기분이 좋았어. 3일 연속 시상식 스케줄 때문에 피곤했을 텐데 나한테 전화를 걸어줘서. 기뻐서 곧바로 너한테 전화를 했지. 여보세요. 라고 받는 네 목소리가 부산해서, 아 얘가 또 바쁜가보다. 빨리 전화를 끊어야겠구나. 생각했어. Happy new year. 우리는 간단히 새해 인사를 주고받고, 나는 불현듯 얼마 전에 너를 보고 싶다고 말하던 엄마가 생각나서 급하게 엄마를 바꿨지.
그런데 하필, 엄마는 왜 그런 걸 물어봐? 역시 아줌마들은 참 이상해. 내가 결혼을 하면 우리 엄마 같은 아줌마는 되지 말아야지. 내가 부모님 다음으로 믿는 부처님에 걸고 맹세할게.
남자 친구 있니 없니.
그래. 넌 처음엔 없다고 했다가 금방 말을 바꾸더라.
[있어요. 있어요. 네, 남자친구 있어요.]나는 엄마한테 바짝 붙어 있었고, 그 말을 모두 들었어.
있어요. 있어요. 네, 남자친구 있어요.아. 물론 이것만 들은 건 아냐. 어머니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 말도 들었어.
통화가 끝나자 엄마가 곧 플립을 닫았어. 끝났구나. 엄마가 건네는 휴대폰을 받고 바로 네게 문자를 했어.
[정수연! 남자친구 생겼어?]
답장은 금방 왔지.
[응. 얼마 전에.]
솔직히 말해도 돼?
그 순간, 조금 심술이 났어. 헤어진 지 1년이나 지났는데. 나는 아직도 네게 미련을 못 버려서 정말 큰일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우리가 사랑했던 시간 속에 갇혀서 너를 못 잊고 사는지도 몰라. 너에게 나는 그냥 스쳐가는 사람이었고. 그렇게 잘해주지도, 잘나지도 못한 사람인데. 그저 나는 네가 좋아서 잘해줬고, 한번 만나볼까 하는 너의 레이더에 어쩌다가 포착된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마치 나만이 너에게 가장 어울리는 사람인 양, 바보 같은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도 몰라. 이해해줘. 내 옆에 있을 때 너는 나만 사랑했으니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네 모습은 그리기조차 어려운걸. 하지만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이라고. 2년간 사랑했던 우리는 결국 헤어졌지. 나는 늘 내 이야기만 했고, 너는 바빴으니까. 나는 네게 너무 많이 의지했고, 너는 그걸 부담스러워했으니까. 나는 너를 사랑이라는 말로 너를 가두려 했고 너는 자유로운 영혼이었으니까.
우리가 헤어진 후에, 너는 두 명의 사람과 더 만났고, 친구들의 등쌀에 못 이겨 많은 소개팅을 했고, 남자들의 대시는 끊이지 않았지. 너는 전화로 꼬박꼬박 이 사실들을 나에게 말해줬지만, 물론 나는 그걸 고맙게 생각했지만 내 속이 내 속이었다고 생각하지는 말아줘.
네게 잘됐다고 해주지만 너와 그 사람이 잘되길 빌어 주는 것은 아니란 걸 알아줘. 네가 새로운 남자 이야기를 꺼내는 때마다 내 머리는 열이 차서 전화기를 잡고 있기도 힘들다는 걸 넌 좀 알아야 돼, 이 멍청아.
너와의 통화가 끝나고, 바쁜 건지 귀찮은 건지 간간이 오가던 문자도 뚝 끊기고. 2010년 처음으로 가족들과 점심을 먹는데 머리가 좀 띵했어.
[있어요. 있어요. 남자 친구 있어요.]
라고 말하던 네 목소리가 자꾸 생각나서. 그래도 밥은 많이 먹었어. 나 원래 밥은 잘 먹잖아. 2주 뒤에 잠시 쉬는 틈을 이용해서 우리 집에 놀러오기로 했던 너. 웬만해서는 사귀는 사람에 대한 말을 아끼는 너. 그리고 아직도 너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린 것처럼 보일까봐 뭉실뭉실 떠오르는 궁금증들을 씹어 먹을 나. 우리 집에 머무를 며칠 간. 우리는 그저 겉도는 얘기만 하겠지. 일은 힘드냐며. 공부는 재밌냐며. 유학 간 친구 이야기, 그 친구의 남자 친구 이야기. 아는 애가 바람피운 이야기, 친구들의 군대 이야기……. 정작 우리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하고서 내가 던진 농담에 너는 웃고, 네가 하는 엉뚱한 행동에 나는 욕을 하고.
나이를 먹고 우리는 친구란 이름으로 우리 사이를 포장하고, 마치 정말 친구인 것처럼 살아가겠지만.
그거 아니. 나는 아직도 널 좋아해. 헤어진 후, 내가 일부러 너와의 연락을 끊었을 때. 그리고 술 취해서 내가 네게 전화를 걸었을 때. 네가 말했지. 다시 친구로 지낼 수는 없냐고……. 나도 여자지만, 어떻게 여자들은 그 말을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 나 같은 건 싹 잊었다는 듯이 이미 다른 남자친구를 만들어 두고서 다시 친구로 지낼 수는 없냐고……. 너는 그게 되니? 나는 너를 볼 때마다 아직도 나를 바라보던 네 눈이 떠올라. 우리가 했던 키스가 생각 나. 함께 갔던 놀이공원, 거리, 명동, 스케이트장에 여전히 우리가 함께 갈 수 있을 것 같아. 친구 말고. 연인으로.
알아.
나도 내가 바보 같다는 거. 너는 그냥 나를 친구로 생각하는데. 나는 그게 잘 안 돼. 너보다 예쁘거나 잘나지는 않았지만, 나도 분명히 다른 사람 만날 수 있을 거야. 약간의 노력과 용기가 필요하겠지만……. 설마 한 번도 없지는 않겠지. 한 번도 없다면 성형수술이라도 한 번 해보지 뭐.
근데 말이야 난…….
나 좋다는 사람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네가 더 좋은걸. 네가 예전처럼 나를 좋아한다고 해주면 나는 참 좋겠어. 그게 안 된다는 것도 알고, 네가 더 이상 그걸 원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 그런데 왜 포기가 안 될까. 역시 사람 마음이란 거, 참. 이상해. 어렸을 때 다니던 피아노학원처럼 그만 두고 싶을 때 그만 둘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젠장. 이 얘길 하는데도 별로 슬프지가 않아. 너무 현실적이라서, 전혀 감상적인 마음이 들지가 않아. 헤어진 후로 1년이 지났고, 나는 여전히 네 곁에 있지만. 내 마음은 도무지 정리 되질 않아. 나는 외계인인가 봐.
너는 큰 사랑을 받을 거야. 나보다 더 좋은 사람에게, 더 많고 더 아름다운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거야. 나는 옛날부터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어. 그래서 이런 생각을 했었지. 우리는 엉엉 울면서 사랑하게 됐지만, 헤어질 땐 웃으면서 너를 보내주겠다고. 좋은 친구로 아름다운 추억으로. 내게 사랑을 준 네게 감사하면서. 네 앞길을 축복해주겠다고.
하하하하 하하하.
내가 얼마나 어렸는지 웃음 밖에 안 나와. 내가 얼마나 치졸하고 소심한 한국인인지 너와 헤어지고 나서 확실히 알게 됐어. 나처럼 엉망진창으로 사랑을 하다보면 사랑하는 이의 행복을 축하할 여유가 없다는 것도 배웠지. 내 몸을 추스르기에도 바빴어. 옛 추억을 지우기에도 시간이 모자랐어. 그래서 처음 얼마 동안은 네 전화도 받지 못했어. 친구로 지내자는 그 말, 그 말이 너무 미웠어. 아주 그 입을 꿰매버리고 싶었지.
너를 사랑하지만 헤어졌고.
너와 헤어졌지만 아직 너를 사랑하고.
지옥의 순환이다. 유학이라도 가야 네 생각이 좀 안 날까.
내가 좋아하는 말 중에 이런 게 있어. 이건 너무 유명한 거니까 부디 유식한 척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주길. ‘시간은 약이다.’ 그래, 난 믿어. 믿긴 하지만 과연 시간이 진정한 약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겨. 시간은 그냥 진통제 아닐까. 정말 아픈 상처는 곪아 가는데 시간은 그냥 그걸 잊게 해. 내 상처가 아프고 쓰리다는 것을 살짝 가려주는 약이야. 그래서 여전히 너를 보면 힘들어. 아프진 않아. 그냥 조금 힘들어. 내 얼굴을 보면서도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만. 그래도 내 얼굴을 보는 네 얼굴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는 것 같아서.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판단력이 흐려지고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이 들어. 아직까지 내게 시간은 그래. 시간은 ‘우리가 사랑했던 시간’을 아득하게만 만들 뿐이야.
그냥 새해라서 마음을 좀 정리할 필요가 있었어.
앞으로도 TV에 많이 나와서, 나를 보고 웃어줘. 너를 사랑하고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 .
이젠 나도 그 중 한 명일 뿐이지만. 그래도 나는 너를 응원할게.
너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들.
내가 아는 너의 모습에 한해서 죄송하지만 그건 아니거든요? 라고 부정해줄게.
뒤에서 너의 힘이 돼줄게. 나는 여전히 너의 팬이니까.
아. 이런 게 유종의 미(美)라는 건가. 어쨌든 새해에는 나도 노력해야겠다. 너보다 더 멋진 남자친구를 만들고, 너만큼 더 행복하고, 너만큼 돈도 많이 벌어야하니까. 뭘까, 이 비참한 열등감은. 왠지 비참하네. 이 말을 들으면 너는 또 웃겠지. 또 혼자 열폭한다고 깔깔 웃을 거야. 벌써 그 얼굴이 눈에 선하다. 바보 같은 놈. 넌 진짜 바보다. 그리고 나도 바보다.
아……. 그런데 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예쁜 네가 보기엔 어때?
나. 그렇게 매력 없니?
나 매력 없니?
F I N ♥
아... 너무 허무하네요 ^^^^;;
이렇게 한 살을 더 먹다니.. 너무 슬프고........ ㅠㅁㅠㅁㅠㅁㅠㅁㅠ
올해는 정말 뜻깊게 보내고 싶네요. 노력해야 겠습니다! ^^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D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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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너무 늦은 댓글이네요. 쇼우켄님은 복 많이 받으셨죠 ^^?
삭제된 댓글 입니다.
넵넵~ 감사합니다 ^^
HARU님도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잘읽었습니다ㅋㅋ//
ㅋ_ㅋ 하늘님, 감사드려요~
잊기어려우면인연이아니다라고생각할것//글고쿨~하신HARU님..매력있습니다//^-^
좋은 말이네요, COOL하게 살아야죠! ^^
HARU님 충분히 매력있으신거 같아요~ So Cool 하신 매력ㅎ 잘읽었어요~
넵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So cool~ ^^
하 ... 너무 잘 읽고 갑니다. 매력? 있습니다 ;ㅁ;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감사합니다. 천예조님도 복 팡팡!
독백이 참 매력적으로 표현되었어요ㅎㅎ 재밌게 읽다가요
방긋윤아님!! ㅋㅋ '윤아'라는 닉네임이 참 낯설지 않네요!! ㅋㅋ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와.....뭔가, 굉장히 공감합니다!
감사해요 ^^!
뭔가...굉장히 실화?그런느낌이 나서 좋아요 ㅋㅋㅋㅋㅋㅋ 또 제가 씹덕대는 수연이라....아 잘 읽고 갑니다 ^^
감사해요 ^^ 수연이... ><
공감하는 내용이라 몰입이엄청 잘되네요ㅋㅋ 처음엔 어떤 연예인인지도 궁금했고! ㅋㅋ재밌게 잘봤습니다~ 늦었지만 새해복많이받으세요!
감사합니다 :D 오랜만에 달린 댓글이라 기분 좋네요 ^^;; 궁금증은 풀리셨을지.. ㅎㅎ
수연이... 참으로 공감가는 내용이네요.ㅋ 왠지.. 씁쓸하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