鄧麗君逝世20週年紀念:「亞洲歌后」,魅力猶在政治外交 文化 2015.06.15
平野久美子 [作者簡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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逝世後唱片銷量達300萬張
세상을 떠난 뒤 음반판매량이 300만 장에 이르다
20世紀80年代在日本憑一首又一首熱門歌曲而深得人們喜愛的「亞洲歌后」鄧麗君,在泰國旅遊勝地清邁(Chiang Mai)突發哮喘,猝然離世,到2015年5月,已有整整20年歲月過去了。如今,她的那些主打歌依然排在KTV點歌榜的前列,在她逝世之後,她的CD和DVD在日本已經賣出了接近300萬張。一名外國歌手如此受日本人歡迎實屬罕見。這絕不僅僅是因為她具備超群的歌唱實力和美麗動人的容顏。
1980년대 일본에서 또 하나의 히트곡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아시아송의 후' 덩리쥔이 태국 관광지인 치앙마이(Chiang Mai)에서 천식을 앓다 돌연 세상을 떠난 지 2015년 5월로 꼬박 20년의 세월이 흘렀다.지금도 그녀의 타이틀곡은 노래방 차트 상위권에 랭크돼 있고, 그의 사망 이후 일본에서 CD와 DVD가 300만 장 가까이 팔렸다.한 외국 가수가 이처럼 일본인에게 인기가 있는 것은 이례적이다.뛰어난 노래 실력과 아름다운 외모 때문만은 아니다.
圖片提供:UNIVERSAL MUSIC JAPAN
受到熱愛音樂的母親的影響,鄧麗君從小就十分熟悉中國傳統歌曲。也許正是這個原因,她深知歌詞的重要性。「詞」原本是「曲子詞(一種詩歌體裁)」的略稱。在中國,「詞」的地位雖然一直屈居於「詩」之下,但到了宋代,詞的抒情性得到承認,著名文人墨客開始作「詞」,完善了這種文學樣式,確立了詞的文學地位。
將宋代的詞,配上現代作曲家譜寫的旋律,便成就了鄧麗君堪稱傑作的專輯《淡淡幽情》(1983年)。古代文人筆下的人生哀愁、思鄉之情由鄧麗君娓娓唱出,穿越千年的時空,至今仍觸動著人們的心房。
翻唱大量日本流行歌曲
鄧麗君在演唱日語歌曲時,也同樣非常重視「詞」。她會通過翻譯一遍又一遍地向詞作家和製作人詢問歌詞的意思,直到透徹領會之後才會開始錄唱。賦予歌詞新的含義,伴隨旋律聲情並茂地演唱,這種「說唱歌曲」式的風格,讓聽眾感到歌手猶如在對自己一個人娓娓道來,因此而牢牢地抓住了歌迷的心。
受益於這種演唱方式,鄧麗君用中文翻唱的日本流行歌曲在臺灣、香港、中國和東南亞地區廣為流傳。
1980年,鄧麗君在美國洛杉磯生活了一年,期間用中文錄製了許多日本歌曲,其中包括了自己的主打歌之外的多首日本歌曲。此後,這些歌曲被陸續製成磁帶和CD,銷往亞洲各國。
2002年,時任日本首相小泉純一郎訪問越南時,在宴席上和越南閣僚合唱《北國之春》,成為當地媒體的熱播新聞。小泉首相之所以能表演這個餘興節目,也是因為鄧麗君翻唱的日本歌曲已在東南亞地區廣泛流傳而為大眾熟知。我自己也有過同樣的經驗,在臺灣、中國、越南、柬埔寨等的各個城市的KTV裏,能與當地的朋友們一起合唱日本歌曲,這對我們加深友誼起到了多麼重要的作用啊!
음악을 뜨겁게 사랑한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서, 덩리쥔은 어릴 때부터 중국 전통 가곡에 매우 익숙했다.그래서인지 가사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詞」는 원래 「曲子詞(一種詩歌體裁)」의 약칭이다.중국에서「詞」의 지위는 줄곧 「詩」의 밑에 머물렀지만, 송나라에 이르러 서정성이 인정되어 유명한 문인 묵객들이 「詞」를 쓰기 시작하여 이러한 문학적 양식을 보완하고 문학적 지위를 확립하였다.
송대의 詞에, 현대 작곡가가 譜寫한 선율이 더해져 덩리쥔이 걸작이라 할 수 있는 앨범 《淡淡幽情》(1983年)이 완성됐다.고대 문인들이 쓴 인생의 애수와 향수는 덩리쥔이 감질 나게 노래하여 천 년의 시공간을 초월하여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있다.
일본 유행가를 대량으로 리메이크하다
덩리쥔은 일본어 노래를 부를 때 , 역시 마찬가지로 「詞」를 매우 중시하였다. 번역을 통해 작사와 제작자에게 반복적으로 가사의 뜻을 묻고, 그 뜻을 철저히 파악한 뒤에야 녹음을 시작하였다.가사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멜로디 소리와 함께 무성하게 노래하는 '랩송' 같은 스타일은 듣는 이로 하여금 가수가 마치 자신 한 사람에게 감질나는 맛을 내는 것처럼 느끼게 하여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런 노래방식에 힘입어 덩리쥔이 중국어로 리메이크한 일본 팝송은 대만·홍콩·중국·동남아 지역에서 널리 퍼졌다.
1980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1년간 생활하면서 자신의 타이틀곡 외에 여러 일본 노래를 중국어로 녹음했다.이후 이 곡들은 테이프와 CD로 제작돼 아시아 각국에 판매됐다.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가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연회에서 베트남 각료들과 《北國之春》을 합창해 현지 언론의 화제가 됐다. 고이즈미 총리가 이 여흥 프로그램을 선보일 수 있었던 것도 덩리쥔이 리메이크한 일본 노래가 동남아 지역에 널리 퍼져 대중에게 알려졌기 때문이다.대만,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등 각 도시의 노래방에서 현지 친구들과 함께 일본 노래를 합창하는 것이 얼마나 친목을 다지는 데 큰 역할을 했는지 나 자신도 같은 경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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