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후보자 평정자료는 여전히 미진함이 많다.
그 핑계로 고흥청에 들렀다가 차를 벌교에 두고 광주엔
5시 40분 무렵 도착한다.
대전에서 온 큰 놈이 와 세 놈과 외식을 하고자 했으나
볕이는 영어학원에 갔댄다.
유스퀘어의 초밥집엘 들어간다.
흰머리에 시내에서 파마를 하고 왔다는 큰 놈의 얼굴이 하얗다.
석박사 통합과정의 공부가 쉽지 않나보다.
암기하고 통합하는 시험은 잘 보았지만, 자신이 창의적 능력이 있는지 회의가 든다고 한다.
우려했던 바다.
수학 등 시험만 잘 보았던 큰 놈과 공부를 싫어했던 둘째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 어떨까를 비교하듯이 지켜보았지만,
큰 애에게서 오히려 불안의 그림자를 본다.
'집밥'을 먹으면서 공익 근무를 마치고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를 가지는 것도 생각해 보겠다고 한다.
나는 아들 셋 중 하나는 나랑 평생을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고, 누가 농사를 짓는 것을 포함해
자본주의적인 경쟁을 벗어나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을 찾아보자고 한다.
큰 놈과 애기를 나누니 안심이 된다.
옷을 챙겨 버스를 갈아타고 증심사 주차장에 내리니 9시 45분을 지나간다.
중머리재와 쉼터의 식당들이 문을 닫고, 등산용품점의 조명만 밝히고 있다.
식당 문을 닫고 웅크리며 버스 정류장으로 내려가던 여자들이 나의 배낭을 보고
'나도 따라가고 잡다.'며 웃는다.
김밥에 머리고기를 사려했는데 아쉽다.
새인봉에서 자고 그 바위 위에 서서 산 등성이로 뜨는 해를 봐도 괜찮지 않을까?
배낭이 무겁다. 제주 여행의 후유증이겠지.
증심사 입구에서 속에 끼어입은 다운점퍼를 벗고 수건을 이마에 두르고, 스틱을 펴고 랜턴도 켠다.
20분 아스팔트에서 벌써 지친다.
10여분 걸어 당산나무 불빛과 평상을 보자 여기서 그만 자고 싶어진다.
캠핑도 하는 사람들이 많잖아.
길공사를 많이 했다.
이 길이 꽤 오랜만이다.
길은 질척이다가 표면에 살얼음도 살짝 얼고, 가엔 눈도 쌓여있다.
이런 정도의 등산로에 돈을 많이 들이는 우리나라의 국립공원관리가
지난 여름 일본 북알프스의 등산로와 비교된다.
산에 드는 사람에 대한 지나친 간여와 노파심이 아닐까?
20여분 더 걸어 옛대피소에서 배낭을 벗고 쉰다.
또 10여분 걸어 바람이 부는 중머리재에 다라라 샘에서 물을 채운다.
어디선가 사람의 소리가 나는 듯하다.
물을 채우고 출발하는데 서인봉 쪽에서 하얀 불 서너개가 내려온다.
나처럼 정신 나간 사람들이 또 있나?
장불재 앞까지 40여분을 쉬지않고 걸음을 세며 오르는데,
뒤에서 두 개의 하얀 불이 조심하라고 아이젠 챙겼냐고 묻는다.
잰걸음으로 나를 따라오는 젊은이는 공단의 직원이다.
비박하면 안되는데 하면서도 다음엔 텐트를 가져오지 말라고 한다.
텐트는 쉽게 쳐지지 않는다.
12시가 다 되어간다. 배가 많이 고프다.
텐트안에 램프를 켜고 삼겹살 일곱개를 꿔서 소주를 마신다.
술은 몇 모금만 홀짝인다.
직원들이 지나며 춥지 않느냐, 무섭지 않느냐 묻는다.
그리 춥지는 않으나 바람소리가 거칠다.
한 시가 못되어 잠자리에 든다.
얼마나 잤을까?
사람들의 발자국소리가 거칠다.
공단 직원이 나와 빨리 텐트를 거두라고 한다.
대답만 하고 버티며 또 잠에 든다.
이제 발자국소리가 더 요란하다.
채 세시가 되지 않았다.
갑자기 나이 든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리며 빨리 철거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물리겠다고 한다.
그들의 심정을 이해한다. 내가 불법자다. 자연 속에서 이런 융통성도 없는
모든 걸 통제하려는 자연관리 정책에 대해서는 불만도 있다.
'산' 전선생은 비박꾼이 얼마나 철저하게 자연을 아끼는지를 공단 직원들은 모른다고 했다.
불을 켜고 밖으로 나오자 고등학생같은 서너명이 텐트 옆에서 떨고 있다.
나의 준비는 철저하다. 그들은 아디다스 츄리닝에 운동화를 싣고 온 애들도 있고,
한 발에만 아이젠을 신은 아이들도 있다.
새해의 해맞이를 정상에서 하겠다는 기상은 가상하나, 준비는 너무 소홀해 아쉽다.
단단히 중무장을 하고 시간을 기다리는데 무릎은 시리다.
규봉암에 빈손으로 다녀올까, 백마능선을 걷다올까 하다가
사람들 틈에 끼어 추위를 견딘다.
산악회 동호인 같은 무리도 있지만, 더 많은 것이 고등학생들인 듯하다.
화장실에 갔더니, 추위를 피하고 있는 이들이 꽉 차 있다.
대변소 안에도 사람이 있는데 일을 보지 않으면서도 비켜주지 않는다.
도원마을 쪽 내리막 길을 한참 내려가서 눈 속에 일을 보고 올라온다.
6시 20분쯤 아이젠을 차고 카메라에 스틱만 들고 입석대쪽으로 걷는다.
아이젠은 거추장스럽다.
불을 켠 산객들의 긴 행렬이 이어진다.
동쪽 하늘에 붉은 기운이 보이는데, 무등 쪽에서 검은 구름이 내려온다.
끊임없이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로 길은 사람들로 덮였다.
이들은 무슨 소망을 비는 걸까?
나는 무슨 소망을 비는 걸까?
서석대 정상에 서도 해는 보이지 않고 가끔 붉은 하늘을 보여준다.
붉은 기운이 강한 틈을 타 젊은이들이 힘을 합쳐 구름을 쫒듯이 함성을 지르곤 한다.
어둠 속 모여있는 인파를 찍어보다가 차라리 아래가 낫겠다고 내려온다.
입석대 뒤에서 아이젠을 벗고 스틱과 함께 들고 내려온다.
올라오는 사람들을 자꾸 비켜서며 장불재에 다 이르자 해가 구름을 뜷고 뜬다.
건너편 백마능선 낙타봉 바위 위에 사람이 뾰족하고, 능선 바위 위에도 사람들이 늘어섰다.
7시 40분이 더 넘었다.
8시가 넘어 다시 배낭을 매고 규봉암 쪽으로 길을 잡는다.
8시 40분쯤 보조석굴에 도착하니, 굴 속에는 나이 지긋한 두쌍의 남녀가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밖에서 배낭을 풀어 라면을 끓인다. 그들의 구경꺼리가 된다. 내가 마치 산악 전문가라도 된다는 듯이 수근거린다.
챙기고 규봉암에 들러 바위들을 보고 꼬막재까지 걷는 길엔
자꾸 뒤뚱거리다가 엉덩방아도 몇 번 찍는다.
아이젠을 다시 신을까 하다가 스틱 두 개로 버텨보기로 한다.
쓰레기를 처리장에 버리고 정류장에 오니 11시 반이 다 되었다.
산에서 열 두 시간 남짓 지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