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시 : 2009년 3월 7~8일. ☆ 산행지 : 구례 오산과 지리산 피아골. ☆ 산행 및 여행코스 : 구례 오산과 사성암-연곡사-직전마을-피아골산장(1박)-직전마을-화개장터-청매실농원. ☆ 산행거리: 12km. ☆ 함께한 인원 : 23명.
- 사성암 약사전과 산신각 -
깎아지른 벼랑에 제비집처럼 붙여 지은 사성암은 582년 연기조사가 세운 이래 도선, 원효, 의상, 진각 四聖이 머문 곳이라 鰲山庵을 四聖庵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자라머리가 섬진강 물을 마시는 형상이라 鰲山이라 하고, 기둥 같은 바위 열두 개가 있어 12臺라 하는데 바위 틈새 절벽 아래 절집들이 신기합니다.
- 사성암 종무소에 피어난 부처님의 미소 -
盡日尋春不見春(진종일 봄을 찾았건만 봄을 볼 수 없었네) 芒鞋踏遍丘頭雲(짚신이 다 닳도록 온산을 해맸건만) 歸來笑拈梅花嗅(돌아와 매화 향기에 미소 짓나니) 春在枝頭已十分(봄은 이미 가지마다 활짝 피어 있네)
봄이면 흔히 인용되는, 연대 미상의 어느 비구니가 남긴 悟道頌를 되내어 본다.
- 사성암 산신각에서 -
세상을 본다는 것은 어차피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보는 것은 아니다. 내 관념의 습관을 대하는 것이다. 지금 내 눈 앞에 보이는 나무와 길이 내 관념의 그림자인 셈이다. 사진은 그림자의 예술이다. 예술이 꼭 아름다울 필요는 없다. 언제쯤 나는 내 관념의 그림자로 부터 만족을 얻을 수 있을까. 그림자에 묻어 있는 그리움의 깊이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
- 사성암 아래 활공장에서 바라본 섬진과 구례읍 전경 및 견두~천마지맥 -
산 위에서는 마을들이 잘 보입니다. 좋은 마을는 보기 좋게 진열된 과일 가게처럼 보여서는 안됩니다. 갓잡은 물고기가 펄덕거리는 생선가게처럼 어수선 해서도 안됩니다. 물고기들이 제 세상처럼 유유히 헤엄치는 맑은 호수처럼 보여야 합니다. 그런 여유가 느껴져야 합니다. 내가 물고기가 되어 살고 싶어져야 합니다.
- 사성암에서 오산으로 가는 길에 보여지는 구례들녘과 섬진강, 그리고 지리의 성삼대~종석대~노고단~반야봉~삼도봉~불무장등라인 -
봄의 낌새, 기미, 기운, 징후를 눈치 채는 능력은 촉각이 가장 앞선다. 절기상으로 경칩이 지나도 시각적으로 완고한 겨울의 표정 속에서 봄을 읽는 능력은 차가운 바람 속에 섞인 어떤 느낌을 포착하는 촉각에 있다. 인간의 봄 마중이 유난히 부산스런 까닭은 다른 생물에 비해 계절의 변화에 대한 지각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 사성암에서 오산으로 가는 길에 보여지는 섬진과 구례구역 -
햇볕의 사전적 의미는 물론 태양광을 뜻하는 것이지만 봄의 경계선에서 맞는 햇살은 마치 햇과일이나 햇곡식의 '햇'처럼 새롭고 신선한 느낌이 든다.
오산을 오르면서 맞는 햇살은 여지껏 맞아온 묵은 햇살이 아니라 첫 봄의 첫 햇살이었다.
- 오산에서 바라본 지리의 왕시루봉과 저멀리 유장한 남부능선, 그리고 유유히 흐르는 섬진 -
산은 산대로 물은 물대로 그러니 나는 어쩌란 말인가. 나무는 나무 끼리 돌은 또 돌끼리 다 저들의 봄을 기다리는데 나는 어쩌란 말인가 누구와 더불어 봄을 기다리란 말인가.
- 오산에서 바라본 화엄사골~월령봉(가운데)~문수골~왕시루봉(오른쪽) -
1948년 10월 19일의 여순사건 패잔병들은 10월 25일 14연대 김지회 중위의 지휘 아래 이현상과 함께 패잔병을 수습해 포위망을 뚫고 섬진강을 건너 문수골과 화엄사골로 숨어들어 본격적인 유격 투쟁을 전개하였다. 따라서 김지회가 이끄는 여순 반란 사건의 패잔병들이 지리산에 입산한 시점부터 지리산과 빨치산의 운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 연곡사 일주문 -
544년(신라 진흥왕 5년), ‘연기조사’가 창건하였고 임진왜란 때 전소되어 '소요대사 태능'이 중창하였으나 한국전쟁 때 다시 전소되어 중창했으며 다행히 부도와 탑 등의 문화재는 손실을 입지 않고 남아있어 역사를 이어주고 있다. 특히 3기의 부도는 그 아름다움으로써 찾는 이들의 시선을 붙잡아 매어 둔다.
- 연곡사엔 홍매화가 붉은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
꽃 이파리가 미풍에 날아갑니다. 가슴에 엉긴 사람 풀어놓고 훨훨 날아갑니다. 행여 폭포수 같은 사랑으로 멍이 들까봐 묻었습니다. 시작도 없이 부서지는 봄볕에..
- 연곡사 경내에 노란 산수유가 피고 있었다 -
산수유나무가 노란 꽃을 터트리고 있다. 산수유나무는 그늘도 노랗다. 삶의 그늘에서 고뇌를 거듭하고 계실 피아골산장의 "지리산호랑이" 님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만큼 발걸음도 무거워진다.
- 직전마을을 지나 피아골계곡으로 스며든다 -
산을 오른다는 것이 음악을 연주하는 연주자와 같이 자신만의 소리를 만들고 그 소리를 스스로 듣는거와 같은 것일거라 생각됩니다.
현을 타듯 길을 걷고 피아노 건반 위에 손가락을 누르듯 길을 걷습니다.
- 일행들이 표고막교를 건너고 있다 -
피아골계곡 들머리에는 무슨 사연이 그리 많은지 한 순간도 똑 같은 물소리를 들려주지 않는다. 지난 해 늦은 가을부터 지금껏 쌓아온 얘기를 한번에 풀어 놓기 때문일까. 얼음장과 수면 사이의 공간에서 울리는 또 다른 소리는 계곡가의 풀과 나무들에게 들려주는 노래인 양하다. 일 년 중 이맘때가 아니면 들을 수 없는, 나무와 풀을 향한 계곡의 사랑노래다. 봄이 오는 소리다.
- 구계포에도 봄소리가 피어나고 있었다 -
물오르는 계절이다. 물의 정령이 만물과 입맞춤하는 계절이다. 산 채 죽어서 영원을 사는 초목들의 가슴에 얼음장을 뚫고 나온 봄의 노래가 새겨지는 때다. 지금 듣지 않으면 그 노래, 보이는 것들로 하여 어두워진 귀로는 다시 듣기 어려울 것이다.
- 피아골산장 전경과 2/28일에 아쉬운 잔치가 있었슴을 알리는 펼침막 -
智異山을 지키고 가꾸는 꾼들에게 推仰받는 智異의 세 어른~!
- 1976년 6월 지리산에서 바람처럼 사라진 宇天 許萬壽선생 -
"내가 안 보이면, 이곳에서 죽은 줄 알아라. 흔적 없이 지리산 품에 묻히고 싶으니 찾지 말라." 이 말을 끝으로 그렇게 좋아하던 지리산 자락 칠선계곡으로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지금껏 그의 존재를 아는 이는 없습니다.
- 2007년 6월 12일에 작고하신 불일평전의 鳳鳴仙人 석전 변규화선생의 자작시 -
강산이 세 번 변한 세월을 풀과 나무처럼 자연인으로 한결같은 삶을 살았다. 지리산을 찾는 그 많은 사람들에게 자연에의 진정한 사랑을 심고 가르쳐온 그이다.
- 오는 4월이면 <방을 빼라>는 통보를 받아든 지리산의 큰 어른이신 함태식선생님 -
1928년 구례에서 태어나 순천중학교와 연희전문학교 수학. 대한민국 1호 산장지기이며, 1991년 왕시루봉 외국인 별장지기 자원, 두 곳 지리산 지킴이. 지리산이 국립공원 1호로 지정되고 1971년 노고단에 처음 산장이 만들어졌을 때, 그는 혈혈단신 산장에 들어갔고 지금까지 줄곧 지리산을 지켜왔다. 그가 지리산과 함께한 세월은 38년. 노고단에서 16년을 보냈고 피아골에서 22년째 머무르고 있다. 대부분의 산장지기처럼 그 역시 엄해 노고단에 쓰레기 버리면 하산조치 하였고, 1988년 1월4일 국립공원의 직영화로 쫓겨나다시피 했던 삶의 터전 노고단산장을 떠나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에 도착한 피아골 산장. 육체적 고통보다 마음이 아파 발걸음을 더디게 만든다. 61세의 나이에 유랑길에 오른 듯 타의에 의해 피아골 산장으로 내려왔지만 그의 지리산 사랑은 여전하다.
지리산 중에 어디가 좋으냐고 묻는 것은 어리석은 질문이며 지리산에 산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행복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에게는 살아 생전에 언제나 변함이 없는 두 가지 소망. 여생을 지리산에서 살고, 죽으면 지리산에 묻히는 것이다. 그곳에서 살다가 쓰러진 장소가 무덤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문명의 이기와 동떨어져 수염조차 깎기 어려운 산장지기 생활. 산꾼들은 그를 ‘노고단 호랑이’ 또는 ‘지리산 털보’라고 불리운다. 그의 삶 자체가 지리산의 유래이고 전설로서 길이 남을 것이다.
- 지난 2월 28일의 새봄맞이 한마당(하산식)에서 인사하시는 함태식선생님 -
국립공원관리공단에 의해 쫓기듯 내려가는 모양새가 너무 안타까워 산악인들과 주변지인, 그리고 지리산 문화예술인들이 마음을 모아 '하산식'을 준비했다.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하산식을 해야 한다는 것이 속상한 듯 했다. 그는 가벼운 인사외에는 특별한 말을 하지 않았다. 그냥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말년에 닥친 불확실한 상황이 그의 마음을 착잡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지리산의 어느 곳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과연 남은 여생 지리산과 함께 할 수 있을까?' 아무 대책없이 반평생 살아온 지리산에서 나가야 한다니 그의 표정이 밝을 수는 없었다. 지리산의 큰어른이 정해진 거처도 없이 무턱대고 떠밀림당하는 것에 산악인들은 너무하다는 표정이었다.
- 피아골산장에서 처음으로 하룻밤을 묵은 동행자 한 분이 준비해오신 21년 묵은 숙성주를 함선생님께 권한다 -
- 노고단에서부터 맺은 인연부터 산에 대한 소재로 선생님과 얘기를 나누는 유목민 -
저하고는 1986년부터 지리로 찾아들면서 선생님과 인연의 꼬리를 잡았습니다. 오래 전부터 여러 수식어 붙여지는 선생님이시고, 근자에는 여러가지 명분으로 국립공원에서 산장을 비우고 내려가시라는 통보를 하여 여러매체와 가객, 그리고 산꾼들이 유려하게 장식을 하였기에 아래와 같이 적을 뿐입니다.
能通無碍한 쓴소리와 옹골찬 삶으로 智異山客들의 가슴에 오랫동안 새겨지실 분입니다..
- 함선생님과 일행 모두가 주제있는 가슴으로 렌즈를 주시한다 -
- 피아골산장을 지켜주는 흰덤봉 -
저녁 노을에 붉게 물든 채 눈덮흰 흰덤봉(흰 눈에 덮이면 하얀 무덤인 듯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은 장관이다. 흰덤봉이 붉은 얼굴 화사한 미소로 손짓하는 듯. 함태식선생님의 허전한 마음을 달래주었다는 흰덤봉.
- 피아골산장을 떠나면서 간밤에 진한 격정을 나눈 산꾼들을 비롯한 함선생님과 인사를 나눈다 -
- 너무 늦지 않는 즈음에 다시 찾아 뵙겠다는 인사를 나누면서 손짓으로 인사를 드립니다 -
어둠이 온다고 한다. 얼핏 이는 바람이 제 가진것 다 두고 떠난다 한다.
어둠 속에 너를 두고 오는 것은 슬픔이 아니다. 정작 이별은 헤어지는 것이 아니다. 잊혀지는 것이다.
슬픔이 아니다. 다 기다림이요 기쁨이다.
- 피아골의 아침을 깨우는 물소리 -
지리 10경 중 하나로 꼽히는 직전단풍(稷田丹楓)은 바로 피아골 입구 직전부락 일대의 ‘핏빛보다 붉다’는 단풍 절경을 일컫는다. 조선시대 유학자 남명 조식 선생은 “피아골 단풍을 보지 않은 사람은 단풍을 보았다고 말할 수 없다”라고도 했다. 산도 물도 사람도 붉게 물든다는 삼홍(三紅)의 명승지다.
- 청매실농원으로 가는 길에 화개장터를 들렀다 -
섬진강 하류 변 넓은 계곡의 양쪽사이로 펼쳐진 화개장터 마당에 온갖 관광 상품이며, 음식점들이 들어섰고, 한쪽에선 엿장수가 음악에 맞추어 신나게 가위질을 해댄다. 가위질 장단에 한잔 걸친 할아버지 춤을 추시고, 할머니는 주책이라고 말리신다.
- 봄향기로 물들은 섬진과 멀리 왕시루봉 -
계절은 우선 색으로 먼저 다가오나 봅니다. 초록의 세상이 당도하기 전에 세상은 부드러운 푸른색을 띄웁니다. 그것은 너무나 조심스럽고 부드러운 색이기에 세심하게 살피지 않으면 볼 수 없습니다. 세상은 이렇듯 애매한 꿈결같은 색들로 시작하여 곧 녹색의 혁명을 맞이하게 됩니다.
- 전남과 경남을 잇는 남도대교 -
나는 사유를 통해 어떤 결론에 도달하거나 추론을 얻고자하는 것은 아니다. 사유는 사포질과 같은 것이다. 닦아 내고 갉아 내어 맑고 부드러운 것에 서서히 도달하는 것. 본질에 이르는 것. 도달을 목표로 하기 보다는 이 긴 과정을 통해 새로움을 얻는 것. 이것이 旅의 묘미요, 行의 즐거움이다.
- 때마침 열린 마라톤대회로 일정에 차질이 빚어졌다 -
낯설지 않은 남도의 산하의 품에 안겨 긴 인생의 궤적을 되돌아 봅니다. 세상을 닫고 도롱이처럼 갑옷에 갖혀 산 나만의 Asylum.
문을 열고 만난 세상은 다 열린 세상인 줄 알았습니다. 오산 꼭대기 위에서 섬진강가에서 봄바람이 붐비는 19번국도에서 이 곳이 다 문 밖의 세상인 줄 알았습니다.
- 남도대교에서 바라본 멀리의 지리 주마루금인 덕평봉과 칠선봉라인과 화개장터 -
수 없이 지나갔던 마루금을 새 봄에 바라보니 깊고도 깊은 회상에 젖어 봅니다. 智異山은 눈짓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산이 아닙니다. 두 발로 올라 마음으로 내려오는 산입니다.
- 악양들녘과 하동 성제봉 -
복잡한 삶 속에서 무언가를 하나쯤 드러내는 일. 그리고 그 느슨해진 공간 속에서 내가 조금 더 자유로워지는 일. 이런 들어내기 연습이야말로 나이를 먹으며 준비해야할 '준비물'이 아닐까..
- 악양들녘과 지리 남부능선인 시루봉~회남재~칠성봉라인(왼쪽부터) -
바라봄은 사유의 즐거움을 준다. 그런데 사유의 방아쇠를 당기는 것은 느낌이다. 왜냐~! 나는 생각을 작정하고 바라보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서 왜 그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생각의 결과는 즐겁다. 행복하다.
- 악양들녘에서 푸르름으로 색칠하는 보리 -
봄향기가 좋긴해도 새순같은 초봄의 향기만 하겠나. 그 향기는 농밀하기도 하려니와 수줍기 짝이 없어 마치 코끝을 살살 건드는 아지랑이같이 춘정을 느끼기에 좋다.
- 광양 청매실농원에 새겨진 조지훈님의 시 -
오호 매화라!! 네 춘심 불밝히려 어젯밤 하현달은 밤늦도록 질 줄 모르고 왕시루봉을 넘고 섬진을 건너 쫓비산을 넘던 경칩바람은 조용히 소리 죽여 되돌아 왔구나. 오호 매화라!!!
- 광양 청매실농원의 매화꽃 -
겨울의 그림자 제 아무리 길다 해도 봄기운을 이길까? 손에 손을 쥐고 이렇게 뜨거운 호흡으로 밀려드는 봄 앞에..
- 광양 청매실농원의 봄 -
詠. 함태식 - 함태식선생 지리산 하산에 부쳐 -
흰덤봉 아래 빨치산 백골터에 백발의 팔순노인 산에 몸을 부린 후 내려 보낸 골물은 사해를 덮고 떠나보낸 바람은 천지를 채웠구나 범같은 기개 산에 묻어 지리산 높은 마음과 섬진강 맑은 뜻대로 강단진 어깨 산을 흔들고 서늘한 눈매 삶을 꿰뚫었네
세상은 달리 흘렀지만 애써 남길 티끌은 없도다 그물에 걸리지 않아야 바람이고 울어 눈물을 남기지 않음이 참으로 새임을 깨우쳤으니 이젠 나도 山色따라 閑閑한 바람이 가슴을 휘젓는대로 어드메로나 흐를테지 아소, 벗님네야 그대가 밀지 않아도 안다 시간은 또 至難한 無碍이고 돌아보면 마치 거기가 여기인 것을..
유목민님의 지리산 사랑도 애틋 하시군요 ,,저는 어렸을때부터 함선생님을 옆에서 지켜 보고 어떻게 노고단으로 가시게 됐는가 거의 모든 과정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요즘은 인터넷과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라,왜곡 돼고 과대포장 된 이야기가 확대 재생산 된것을 숱하게 보고 있습니다.피아골에서 내려 오시면 많은 아쉬움이 있겠지요?허나,,조용히 내려오셨으면 더 존경받으실 어른으로 남았을텐데,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1986년이면,노총각 한사람이 노고단산장에 있었을겁니다,그 노총각은 함선생에 대해서도 더욱더 잘 알겠지요?지리산을 찾는 분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함선생님의 추억은 같이 사진 한장 찍는것으로도 기뻤을겁니다.
무시기님과 유목민님 과히 멋있는 분들이라는 생각입니다. 댓글에서도 상대를 배려하시는 모습이 역력히 보입니다. 제가 아는 모카페는 오직 자기주장만가지고 상대편을 깍아내는게 주류인데 반해 두분의 댓글에서는 훈훈함이 뭍어나 참좋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유목민님의 아름다운 산행기 글을 읽어보니 역시 언어를 가지고 마술을 부리시는 부러운 능력을 더욱 부러워 합니다. 연곡사 부도탑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지요 좋은글과 사진 멋있게보고 갑니다.
첫댓글 여러곳을 들러셨네요. 지리산도 완연한 봄 입니다. 덕분에 두루두루 구경합니다.
유목민님의 지리산 사랑도 애틋 하시군요 ,,저는 어렸을때부터 함선생님을 옆에서 지켜 보고 어떻게 노고단으로 가시게 됐는가 거의 모든 과정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요즘은 인터넷과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라,왜곡 돼고 과대포장 된 이야기가 확대 재생산 된것을 숱하게 보고 있습니다.피아골에서 내려 오시면 많은 아쉬움이 있겠지요?허나,,조용히 내려오셨으면 더 존경받으실 어른으로 남았을텐데,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1986년이면,노총각 한사람이 노고단산장에 있었을겁니다,그 노총각은 함선생에 대해서도 더욱더 잘 알겠지요?지리산을 찾는 분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함선생님의 추억은 같이 사진 한장 찍는것으로도 기뻤을겁니다.
전번 여름에 여타한 묵은 감정을 버릴려고 찾아 뵜을때도, 털어 버리지 못하고 속만 썩이다가 내려왔습니다,,유목민님의 전번 글올리신것도 그냥 지나쳤으나 ,, 왜곡된 부분은 수정해야 겠기에 좀 길게 답글 남깁니다.저는 과거 연하반회장님이셨던 분의 자식이고 우종수회장님이 양부나 마찬가지인 사람입니다,산장지기 자처했다는것과 국립공원만든것 ,,은 아님을 밝혀둡니다.자세한것은 국립공원탄생사를 보시면 알게될것입니다.참고로975번글 보시면 알게 될것입니다,,저도 함선생님을 존경합니다,,다만 저는 노고단 산장지기와 피아골산장지기 함태식선생님으로만 기억하고 싶을 뿐입니다.유목민님의 글에 사적인 감정은 없습니다.
네..智異에 대한 내공이 태부족인 것을 알게 됨을 무한한 영광으로 여깁니다..더 많은 수양과 공부를 하겠으며, 허름하지만 지리자락에 제 오두막(쉼터)이 있사오니 기회를 주신다면 곡차를 대접하면서 전설과 신화를 접하겠습니다..너무 감사합니다...^^**
무시기 님의 지적에 대하여 더 많은 시간과 자료를 더듬어 조만간에 게시물을 수정하겠슴을 감히 일갈합니다..방장님 이하 회원님 여러분들의 깊고도 넓은 양해를 구합니다...^^**
무시기님과 유목민님 과히 멋있는 분들이라는 생각입니다. 댓글에서도 상대를 배려하시는 모습이 역력히 보입니다. 제가 아는 모카페는 오직 자기주장만가지고 상대편을 깍아내는게 주류인데 반해 두분의 댓글에서는 훈훈함이 뭍어나 참좋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유목민님의 아름다운 산행기 글을 읽어보니 역시 언어를 가지고 마술을 부리시는 부러운 능력을 더욱 부러워 합니다. 연곡사 부도탑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지요 좋은글과 사진 멋있게보고 갑니다.
두분의 따스한 마음이 내내 가슴에 전해오네요 산을 안다는것 자연 그자체를 느끼는것이라고 봐집니다 자연은 우리에게 큰 선물을 하나주지요 늘 베풀고 서로를 안아주라는~~~~ 좋은 산행하심을 축하드립니다
무시기님괴 유목민님 감사합니다. 지리에 관한 역사을 알게 하심에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좋은 정보 주시길 바랍니다.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유목민님의 글은 언제 읽어도 감동 그자체입니다. 감사드리고요.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게재해 주시기 바랍니다. ^^
유목민님 쫒비산에서 만난 아줌마입니다. 잘 돌아가셨는지요. 이렇게 좋은 자료와 지리산의 봄 향기 가슴에 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