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공(姜太公)
중국 고대 주(周)나라 초기의 정치가이자 공신. 제(齊)나라의 시조. [? ~ ?].
본명은 강상(姜尙). 동해(東海: 산둥 성[山東省: 산동성]과 장쑤 성[江蘇省: 강소성] 등 황해에 면한 바닷가를 가리킴) 출생.
우 (禹)임금 때 사악(四嶽: 관직 이름)으로 공을 세운 선조가 신(申), 또는 여(呂)에 봉해진 일이 있었으므로 여상(呂尙)이라고도 불리며 주나라 무왕(武王)의 할아버지인 태공(太公)이 바라던(望) 인물이었다고 하여 태공망(太公望)이라고도 불린다.
강태공이라는 통칭은 그의 성과 태공이라는 말이 합쳐서 생긴 별명이다.
그 이외에도 그에게는 사상보(師尙父: "스승으로 모실만한 어른"이라는 뜻)ㆍ강자아(姜子牙)ㆍ강아(姜牙)ㆍ여망(呂望) 등의 별호가 있다.
정확한 전기는 알려진 것이 별로 없고 제설이 분분한데 선비로써 학문을 수련하느라 집안이 궁핍했으므로 그 부인인 마(馬) 씨가 이를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갔다는 일화가 전해온다[고사성어 복수난수(復水難收) 참조].
그러다가 나이 70여 세 때 위이수이[渭水: 위수: 현재는 위이 허[渭河: 위하]라고 부름]가에서 곧은 낚시질을 하면서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며 우리가 낚시꾼들을 보통 강태공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고사에서 연유한다.
그때 주나라 중흥의 시조인 서백(西伯) 창(昌: 주 문왕)에게 발탁되어 그의 스승이 되었으며 창이 은나라 주왕(紂王)에 의해 유리(羑里)에 구금되었을 때 창의 수하인 산의생(散宜生)ㆍ굉요(閎夭) 등과 함께 창을 구해 내었다.
그는 용병술과 권모술수에 능했으므로 그 분야에서 존숭을 받았다. 뒤에 창이 주변국들을 병합하고 천하의 3분의 2를 차지하게 된 것은 거의가 다 강태공의 공이었다고 한다.
강 태공은 창의 사후, 뒤를 이은 무왕(武王)을 도와 무왕 11년 정월에 무예[牧野: 목야]에서 은나라 주왕을 칠 때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주나라가 은을 멸망시키고 천하를 평정한 뒤에 그 공으로 영구(營丘: 현재의 산둥성 린쯔[臨菑: 임치])에 분봉되어 제후국 이름을 제(齊)로 했다.
병법서(兵法書)인 《육도(六韜)》(6권)가 그의 저작이라고 한다.
산시 성[陝西省: 섬서성] 바오지[寶鷄: 보계]시에 있는 강태공 조어대(釣魚臺 = 낚시터)
[출처] 강태공(姜太公)|
[출처] 강태공(姜太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