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번의 예고편 만으로
소리 소문없이 무설재를 찾아든
헐렁해 보이는
그러나 나름 짜임새있다고 자부하는
역사 누리꾼들의 기척없는 발길이
슬그머니 차실 문을 열다가 도로 닫는다.
목하
함석헌 선생의 책속에 파둗혀 열애중인 무설재 쥔장이
활자 중독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까닭에 조용 그 자체인지라
숨죽인듯 쥔장없어 보이는 무제에서 다시 되돌아 나가려는 그들과
순간적인 느낌으로 바깥으로 나가보던 쥔장과
반가운 조우를 하고 다시 들어서는 발길들은
무설재 회원인 이그저어그바다님과
그와 함께 서울에서 활동중인 우리 역사문화 지킴이들이다.
각자
머무는 곳은 다를지라도
우리 것에 대한 또는 바로 잡히지 않은 우리 역사에 대한 애정이 많은
역사누리단 -네이버에 카페 역사누리 가 있다-회원 중의 일부가 봄바람에 실려
안성 곳곳을 둘러보는 중에 잊지 않고 바람결에 실려 무설재 산골까지 흘러왔다.
한참전에 무제없는 무설재로 납시었던지라
무제의 무게감이 새삼스럽기도 하거니와
무제 천정 서까래에 쓰여있는 한자 글귀를 보는 순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한자 전문가답게 기어이 풀어내 해석하고는
카메라를 들이대어 확인 사살까지 겸하고서야
다담의 수순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는....
간만에 찾아든 최이해님과 반가움의 경지가 넘쳐
쥔장이 수다를 떨거나 말거나
아직은 적응 안된 채로 듣는 귀만 열어놓은 서울댁들.
“한국의 재발견” 숨은 일꾼 최이해
계절은 점차로 무르익고 파스텔 톤의 질감으로 무장하던 풍광들은 어느새 무성한 초록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순환의 논리인 셈이다....어디 자연의 이치만 그러하겠는가? 굳이 앞만 보고 달려가지 않아도 세월의 힘에 밀려 저절로 어느 시점에 도달해 있는 사람의 흔적 또한 그러할 것이나 그중에서도 특별히 소리 내지 않고도 적당한 거리와 위치를 조절해가면서 자신만의 색깔로 옷을 입는 사람도 있음이니 우리 문화의 뒷자락에서 소문도 없이 자기 일을 묵묵히 해내는 최이해씨가 바로 그런 역할지기 이다.
계절이 다 가기 전, 비바람 몰아치는 봄날의 끝 무렵에 참신한 일꾼을 찾아 길을 나서자니 바람결에 꽃비가 흩날리고 마음은 한참도 전의 단발머리 시절로 되돌아가는 중이다.
그러나 풋내 나는 감상도 잠깐의 여유만을 허락할 뿐이고 우직하다, 끈질기다, 한결 같다 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사람 최이해 씨를 만나러 가면서 중국의 문장가 소동파의 “봄밤의 한 시각이 천년의 값어치“라는 말을 기억해낸다.
새삼스레 의미를 짚어보자니 지천명의 나이를 넘기고도 앞으로 살면서 맞이하게 될 나머지 삶을 통해 천금의 값어치로 맞게 되는 봄밤의 햇수가 몇 번이나 될는지 생각하면 한 시각 한 시각이 절절하다는 말도 되겠다. 물론 살아 온 날들을 되돌아보면서 지나온 날들이 스쳐 지나가는 바람만은 아니었다는 안도감을 느끼며 후회 할 일은 만들지 않았다는 자부심을 가질 만큼이라면 더더욱 그 인생은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싶은데 그런 말이 무색하지 않을 사람이 또 민간단체 “한국의 재발견” 최이해 이사이기도 하다.
“어떤 악천후 일지라도 약속은 지켜져야 하는 건가 봐요. 이렇게 비가 억수로 내리는 궂은 날에도 여전히 종묘 지킴이를 하시니 말이에요?”
“물론입니다. 주어진 여건이 최악이라고 해도 일단 정해진 규칙은 지켜져야 하는 것이고 약속은 반드시 책임이 따르는 법이니 상황이 나쁘다고 해서 제 마음대로 상황을 어겨 버리면 사람들 간의 신의가 깨어져 버리는 셈이니 사소한 일이라 할지라도 정해진 일은 마무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활 철학이기도 해서 웬만하면 어긋나지 않게 일을 처리하는 셈입니다. 더구나 오늘처럼 특별히 독일 상공회의소 소장님 부부를 모시게 되면 국가 간의 교류 차원이나 국익을 생각하서라도 철두철미하게 준비를 하고 나름대로 우리나라의 빛나는 유산을 홍보하고 그것이 가치적으로 표명되어 애국할 기회를 갖게 됨이니 소홀히 하여서는 더더욱 안 될 일이라 생각합니다.”
역시 우리 문화 알림이 다운 말이다. 나름의 원칙과 반듯한 주관으로 소신껏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을 기워내는 잣대가 아닐까 싶다.
물론 잣대라는 것이 딱히 정해진 기준은 없으나 그의 탄력적인 행동반경으로 보아서는 타고난 감성이 한몫을 거들지 않았을까 싶다. 유난스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려서부터 남도 자락 여수 앞바다의 갯냄새만큼이나 솔직하며 있는 그대로 보여 지는 갯벌 그 자체로의 성정을 지닌 탓에 당연히 남도 땅의 문화적인 예술혼에 젖어 살 수 밖에 없었을 터이고 그것은 어느덧 끼의 자연발생적인 분출로 표출되어 넘치는 글 자락으로의 재주를 부여받게 하였는지도 모를 일이니만큼 그의 태생적 감성은 인생 전반에 걸쳐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는 것같다.
이를테면 대학 울타리가 시끄러워지고 삭막할 수밖에 없었던 학보기자 시절의 숨 가쁘고 애끓는 청춘을 잠재워주던 곳도 고향의 감성이요 자연스럽게 고향으로 찾아들어 여수 오동도에서 군 생활하던 시절도, 고향에서 교편을 잡던 시절도 이제는 오랫동안 간직되어질 하나의 추억만으로 남겨질 뿐이나 세월의 곳곳에 본질적인 비릿한 서정이 있었다는 말이 되겠다.
“대한 출판문화 협회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면서 많은 일들을 해낸 것으로 기억되는데 실질적으로 청춘을 바쳤다 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은데요...“
“거의 그렇다고 봐야겠습니다. 그때는 정말 열정 하나만으로도 뭐든 할 수 있었던 시기이기도 해서 아직은 갈 길이 멀게만 느껴졌던 우리 출판계의 활성화와 도서 전시회라는 획기적인 기획과 전혀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저작권법에 대해 열심을 내던 시절이었습니다. 물론 듣기만 했던 일들을 실제적으로 적용해서 작업을 하자니 만만한 것은 하나도 없고 하나에서 열까지 일일이 다듬고 공부해가면서 해내야 했던 시절이었지만 함께 일하던 동료 모두가 대단한 인내와 끈기로 즐겁게 일을 했던 시절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그 즈음에 예정에 없던 우리 문화에 대한 많은 정보와 관련 공부를 할 수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존재하는 셈이라고 생각되어지니 아마도 그때가 황금 시절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말하자면 정확한 전달 체계나 확실한 정리 없이 전수되던 출판 관련의 일들이 체계적으로 변모하면서 일취월장하게 되고 출판권에 의해 조직되어진 저작권위원회가 여전히 건재하며 각 분야로 조직을 활성화 시켜 나가는 것을 보면서 내심 흐뭇할 일이 아니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런 그도 한때 영역이 넓어져 ‘한국 복사 전송권 관리 센터’의 초대 사무국장 겸 이사로 재직할 때까지 또 가슴 저편에 다른 꿈을 채색하고 있었다. 인생 후반부, 제2의 삶 자락을 거머쥐게 되는 날에는 반드시 귀농을 하여 자연인 그 자체로 살아보겠다던 소박한 꿈...그러나 그 꿈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무너지게 됨이니 그가 10여년에 걸쳐 애쓰고 기대하던 귀농운동본부에서의 활약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으나 그래도 아쉽지 않은 것은 계간지 ‘귀농통문’을 만들면서 만나게 된 많은 차인들과의 교류가 지금껏 지속되면서 인간적인 관계로 발전하게 되었음이니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다는 사실을 통감하며 이제는 우리 문화에 대한 애정과 애착으로 누구보다 열심히 ‘한국의 재발견’을 위해 노력하는 와중이다.
게다가 종묘 지킴이로서 ‘종묘 제례 보존 위원회’ 에서 전주 李씨가 아닌 타성 받이 로 제례 시 제관 역할을 해내니 개인적으로는 뿌듯함이요 ‘사직대제 교육위원회’ 소속으로는 사직대제 제수 분야 전수자이니 그의 끝없는 우리 문화에 대한 애정과 노력은 높이 살만 하다.
하지만 그가 하고 싶은 일은 또 있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살려 우리 아이들에게 맞는 눈높이 문화 교육을 누구보다도 확실히 해내고 싶은 바람과 실제적으로는 ‘한국의 재발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종묘와 종묘에 관한 부속자료 인정교과서를 만드는 일이요 문화 관련 교원 연수기관이 되어 선생님들에게 정확하게 우리 문화를 교육하는 일을 해내고 싶은 소망이다. 말하자면 교원 특수 분야 교육기관을 자청하고 싶은 셈이다. 확실하게 우리 문화를 알리기 위해서...
“어차피 우리 문화나 역사에 관심이 많으시니 또 다른 희망사항도 있을 것 같아요. 기회가 되어 개인적인 뭔가 하실 일이 있다면 어디에 비중을 두고 싶으신가요?”
“아무래도 글을 쓰는 사람이기도 하니 늦게라도 책을 한권 펴내고 싶습니다. 그것도 조선왕조, 숙종에 대해서 말입니다. 자료를 모으는 중이고 하나하나 준비하는 과정이기는 하나 언제 뜻을 이루게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살면서 더 늦기 전에 반드시 이루고 싶다는 열망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그가 마무리 한마디를 냉큼 던진다.
‘종묘 지킴이로 방문자들을 안내하다 보면 너무 친절한 설명 탓에 모든 상황에 미리 선입견을 주게 되어 듣는 사람이 스스로의 의지대로 느낄 여지를 박탈하는 것이나 아닌지 염려스럽다’ 는 말인데 누가 어느 곳을 가던지 간에 방문하는 장소에 대해 스스로 공부해 온 후에 보고 느끼다가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묻고 알려주는 역할이 되어야지만 해설사 나 듣는 사람이나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상호 의견 교환이나 토론 방식으로 발상의 전환을 꾀할 수 있다는 말로 해석되어진다.
그런 까닭에 누구나 똑같은 방식이 아닌 남이 하지 않은 일을 하는 것, 그것도 용기일 수 있으니 그 초기 역할에 최이해 그가 선봉장이 될 것임을 의심해마지 않으며 오늘 그의 재빠른 발걸음 덕분에 우리의 문화유산이 세계로 나아가는데 걸림이 없을 것이라 여겨진다. -예전에 인터뷰 했던 기사를 대신한다 -
국제 아동 청소년 연극협회 간사이신 유현경 님.
보여지는 그대로 화끈하고 진솔하며 당당한
나름의 잣대로 연극협화 행정을 담당하고
여전히 갈 길이 먼 대학로 문화를 책임지고 열과 성을 다하는
그러나 여전히 본데 없는 관객들의 행태에 분노하는 문화 매니아이기도 하다.
아들놈, 딸 녀석 키우기에 여념이 없다는 우리의 현모불독 백연미님.
할 말은 많으나 할 말을 잠재우고
다담 내내 웃는 일로 시종일관.
하긴
덩치에 비해 혹은 불독이라 불리우는 악명에 비해 귀여운 구석이
살짝살짝 표출되어 보기보다 훨씬 스마트한 면모가 있다.
웬만해선 말문을 열 것 같지 않던 정성희님.
알고보니 열혈 체험교사요 우리 문화 지킴이요
네이버 카페 역사누리 를 이끌고 있는 보이지 않는 카리스마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탁월함도 있다.
흐음, 보기에 조신하다 는 그냥 그렇다는 말이요
실제 사항으로는 넘치는, 주체 할 수 없는 끼를 가졌다 는 말이기도 하렸다...
그래서 보기에 좋더라 는 말씀.
오지 않을 것 처럼 연락이 없더니
들이 닥쳐서는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하루를 저당 잡히고
바쁜 걸음으로 안성의 나머지 역사를 찾아 나선다.
그들의 가는 발걸음마다
보석같은 주옥같은 역사의 보물이 담겨져
다음 세대에게로 제대로 전달되기를 바라고 또 바래본다.
그들의 길자락이
정확하고 확실한 역사의 끈자락이 되기를...
첫댓글 부지런도 하시지요. 과찬의 덕담도 감사합니다. 항상 그 자리에 있으려니 생각한답니다. 법정의 입적을 60분 다큐로 담아내는 방송사의 준비된 정리작업을 보다가 어찌 한 편의 다큐로 한 생애가 정리될 수 있으랴 흥분. 인연의 한 곳에 선생님이 있습니다. 함께한 시간이 너무 좋았습니다.
ㅎㅎㅎ 늘 차리지 않아도 마음 한 켠에 있는 듯 없듣는 자리하는 우리들의 인연이 참으로 귀한 것 같죠? 무설재 쥔장도 늘 고마운 마음이랍니다.
함께 했더라면 더욱 풍성한 다담을 경험 했을듯한 아쉬움이 남으면서 더불어 다담의 즐거움에 동참합니다~! ^ ^
맞아요...함께 해ㅛ더라면 우리 역사의 한 귀퉁이를 잡고 싶어졌을 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