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 복잡한 구조의 일본 온천탕
여기 온 뒤로 목욕을 제대로 못했던 우리는 이곳의 유명한 ‘온천테마 파크’에서 몸을 좀 풀기로 하였다. 목욕료는 2,000¥인데 할인을 하여 1,700을 주었다. 부산에서 여행사의 자문을 받을 때에 여행사에서 예매를 하면 1,700¥이나 현지에서는 할인이 안 돼 2,000¥을 줘야 한다고 하더라는데 여기서도 할인이 되었다. 나지막한 고풍이 나는 건물에 들어가서 먼저 표를 산 뒤 들어간다. 입구에서부터 옛날 목욕탕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려 여느 식당의 방에 들어갈 때처럼 신발을 벗어들고 가서 신장을 찾아 넣어놓고 그 신장의 열쇠를 가지고 접수를 하러 간다. 접수대 앞에는 교실 2간 정도의 홀에 뱀이 또아리를 틀었을 때의 모습처럼 가득한 150명 이상의 사람이 쳐놓은 줄을 따라 꼬불꼬불 서서 따라 들어간다. 차례가 되면 큰 약국의 카운터처럼 생긴 곳에서 표를 주고 접수를 한다. 접수를 받는 직원은 7-8명이며 일본 전통 복장을 하고 있다. 입장권을 주고, 받은 종이를 조금 떨어진 곳에 제시하면 두루마기 비슷하게 생긴 일본식 까운(유따까라고 한단다.)과 폭이 20cm쯤 되는 허리띠를 준다. 이 때 옷은 색상을 3가지 정도를 마련해 두고 손님이 선택하라고 한다. 그것을 받아들고 돌아 나와 또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에게 가서 옷장 열쇠를 받아가지고 탈의장으로 들어간다. 탈의장은 우리나라 목욕탕과 구조가 거의 같았다.
절차가 복잡하기 그지없다. 앞사람을 눈여겨 보거나 따라가지 않으면 순서를 잊어버려 당황하게 될 것 같다. 내가 경영자라면 구조와 절차를 2단계정도로 줄여서 간편하게 하여 손님들의 편의도 봐주고 인건비도 줄일 것이다. 일본 목욕탕의 전통을 따른 것인지 우리 돈으로 약 16,000원이나 되는 비산 목욕료를 받았으니 실업자를 많이 구제하고 손님에게 뭔가 돈값을 보여주려는 방안인지 알 수 없었다.
여하튼 탈의장에서 유따까만으로 갈아입고 열쇠를 발목에 족쇄처럼 걸고 목욕탕을 찾아 방향을 대강 짐작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문을 열면 바로 목욕탕이다. 그러나 이곳은 가게가 밀집된 거리가 있었다. 그 거리에 속옷도 안 입고 바람만 불면 앞섶이 벌어져 보물들이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남녀의 무리가 한가하게 노닐면서 기념품 등을 사기도 하고 음식도 사 먹기도 한다. 이런 차림은 다른 곳에서라면 무척 부끄러워 할 일이지만 여기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다닌다. 돈 벌이하는 수단이 여기서도 작용하고 있다. 탈의장에서부터 대략 30m정도 떨어진 곳에 탕의 입구가 있는데 입구를 마치 작은 궁전이나 디즈니랜드의 입구처럼 꾸며 놓았다.
(자) 온천테마 파크에서 길도 잃고 사람도 잃었다.
손대장이 여기에서 그 입구를 배경으로 사진을 한 장 박자고 하는데 카메라가 옷장 속에 있다. 부득이 사진 담당자가 카메라를 가져 오기 위해 탈의장으로 되돌아갔다. 그런데 한 참을 기다려도 오지를 않는다. 혹시 길을 잘못 찾는 것이 아닌가 걱정되어 손, 김 두 사람이 찾으러 갔다. 길눈이 가장 어두운 나는 찾으러 가다가 찾기는커녕 도로 미아가 될까봐 그 자리에서 기다리기로 하였다. 기다리는 동안 다리를 좀 쉴 겸 길가에 있는 작은 의자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있으려니 입은 것이 목욕가운 뿐인지라 앞이 벌어져서 귀중품이 공개될까봐 조심이 무척되었다. 그래서 자꾸 가운의 앞자락을 가운데로 모으곤 했다. 따지고 보면 거기서 태연하게 노니는 남녀 모두도 한조각 천의 속은 알몸 그대로이고 내 놓아도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을 시원찮은 물건을 숨기려고 애쓰고 있다고 생각하니 속으로 우습기도 하였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니 찾으러 갔던 사람이 한 사람씩 오더니 “아직 안 왔나?” 하고 되돌아간다. 정말 기념적인 일이다. 나중에 들으니 길설고 말설고 사람 설은 곳에서 고생 많이 했다고 한다.
탕 안은 우리의 탕과 다를 바가 없었다. 구조나 탕의 종류 등 모든 것이 거의 같다. 지하 1,400m에서 끌어올리는 온천수는 신경통, 근육통, 피로회복에 좋다고 한다. 이 탕 저 탕을 옮겨 다니며 대강의 피로를 푼 뒤 노천탕을 마지막으로 관선이와 춘길이랑 3사람만 나왔다. 한 사람은 그 자리에 같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곧 나오겠지 하는 마음으로 우리만 먼저 나왔다.
나와서 옷 갈아입고 열쇠 반납하고 신장 찾아가서 신 찾아 신고 길부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상당한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는다. 들어갈 때는 잘 들어갔는데 나올 때 혹시 미인에게 홀려 딴 곳으로 샌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아직도 일주일에 두군데 이상의 등산을 할 정도로 정력이 넘치는 사람이니 그런 상상도 무리는 아니리라. 기다리다 부지런하고 몸빠른 손대장이 찾으러 갔다. 찾으러 간 조금 뒤 길부가 혼자서 얼굴을 내밀고 우리를 본다. 자기는 예정했던 1시간 30분의 시간이 아직 멀었다고 마음 놓고 있었단다. 여하튼 별난 목욕탕에서 별난 경험도 한 셈이다.
우리는 다시 지도에서 타야할 열차의 종류와 역을 찾았다. 손과 김 두 사람 사이에 탈 교통편에 대해 다소의 의견이 있었으나 여하튼 우리 손대장은 어두운 지하 통로에서 안경도 없이 그 작은 글씨의 지도에서 길을 잘도 찾는다. 이로서 인공도시 최첨단 계획도시인 오다이바를 작별하고 거의 1시간의 지하철 여행 끝에 숙소 근처 있는 곳까지 와서 어제 그 한식당에 들어가 어제 그 메뉴로 저녁을 주문하였다. 반찬 한 가지가 주문한 것과 달리 나왔다. 우리말이 무척 서투른 교포 5세라는 종업원(부주방장)이 잘 못 듣고 다른 음식을 가져왔던 것이다. 지적을 받고 당장 그것을 가져다주며 먼저 잘 못 가져온 것까지 먹으란다.
각자의 휴대용 어깨걸이 가방(힙쌕) 속에 있던 소주를 꺼내어 반주를 한 우리는 얼큰한 술기운과 오늘이 마지막 밤이라는 기분에 900¥을 주고 우리 소주를 한 병과 950¥을 주고 일본 소주도 1병 맛보았다. 일본 소주는 정종 맛 그대로였다.
숙소에 와서 내일의 계획을 잠시 협의하는 사이 나는 집으로 메일을 보내 다른 일행의 집에도 여행 잘 하고 있음과 내일 예정대로 도착함을 알려달라고 부탁하였다.
4. 제4일 (5월 4일 목요일)
(가) 이수현 의사의 기념 동판을 발견하다.
처음 계획은 오늘 아사쿠사와 우에노 일대를 관광할 예정이었으나 아사쿠사 관광을 앞날 다 하였기 때문에 오전에 우에노 지역만 둘러보고 귀국 절차를 밟기로 하고 7시에 가방을 챙기고 방안을 대강 정리한 뒤 숙소를 나섰다.
신오꾸보(新大久保)역에서 JR야마노떼선을 타기 위해 매표소를 찾아갔다. 이 열차는 지상에서 2층 높이에 있다. 그래서 도로에서 빌딩의 2층을 올라가듯이 계단을 돌아 올라가야 했다. 가는 계단의 벽에 글씨를 새긴 동판이 있어 보니 몇 년 전에 이곳에서 열차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고 자신은 희생된 이수현군의 공적을 적은 것이었다. 동일본철도여행사의 명의로 되어 있었는데 한글과 일어의 두 나라 문자로 적어 두었다. 기념으로 각자가 사진 한 컷씩을 남겼다. 동판의 글은 다음과 같다.
<한국인 유학생 이 수현씨, 카메라맨 세키네 시로씨는 2001년 1월 26일 오후 7시 15분경, 신오오꾸보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발견하고 자신들의 위험을 무릅쓴 채 용감히 선로에 뛰어들어 인명을 구하려다 고귀한 목숨을 바쳤습니다.
두 분의 숭고한 정신과 용감한 행동을 영원히 기리고자 여기에 이 글을 남깁니다.
동일본 여객철도 주식회사>
(나) 수하물 보관소를 찾는데 애를 먹다.
출발할 때부터의 계획대로 귀국하는 날인 오늘은 여행용 가방을 역의 수하물 보관소에 보관하여 놓았다가 공항으로 갈 때에 찾아 가기로 하고 우에노(上野)역에서 수하물 보관소를 찾았다. 열차에서 내려 휴일을 맞아 우에노공원으로 가는 벌떼처럼 밀리는 인파를 근근이 헤집고 나와 역 출구를 나왔다. 나와서 수하물 보관소를 찾으려니 예삿일이 아니었다. ‘수하물보관소’라는 일어를 미처 준비하지 못하고 간 데다 가지고 다닌 책에도 그 단어는 보이지 않았다. 여행용 일어책에는 각 장소와 상황에 따라 필요한 말이 다 적혀 있는데 하필 그 단어는 없었다. 손대장의 일어 실력도 바닥이 보이는 듯하였다. 궁여지책으로 한자로 종이에 “手荷物 保管所 とこでずか”(수하물 보관소 어디있습니까?)를 써서 어느 여자분에게 보여주니 역 안으로 들어가라고 손짓으로 가르쳐 준다. 그러는 사이 손대장도 적당한 단어를 찾아내었던 모양이다. 겨우 역에 다시 들어와 안내원에게 묻고, 담당자를 찾고, 열쇠를 잘 못 사용해 기사를 다시 찾고 등의 과정을 거친 끝에 가방 1개당 300엔씩에 보관함에 넣을 수 있었다.
우에노의 대표적 관광지는 우에노공원이고 공원 안에 동물원, 도꾜 국립 박물관, 도꾸가와 사적, 왕인박사 비, 사이고 다까모리의 동상, 키요미즈 관음당과 기타 관광 자원이 모여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공원은 도꾜의 대표적인 대중공원으로 계절을 불문하고 공원을 찾는 사람이 끊이지 않으며 비둘기가 유별나게 많아 눈감고 걸어가다 몇 마리 밟아 죽여도 모른다고 하나 우리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시간과 돈을 절약하기 위하여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몇 가지만 보기로 하고 역에서 내려 10여분을 걸어 공원에 들어서서 먼저 입장료 420¥에 표를 사서 도꾜 국립박물관부터 찾아갔다. 이곳은 우에노에서 가장 핵심적인 관광자원이며 일본에서 제일 오래된 박물관이라고 한다. 부지 내에는 다섯 전시관과 자료관, 레스토랑, 박물관 매점이 있고 옥외 전시나 정원이 있어 계절마다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91개의 국보와 616개의 중요 문화재를 포함한 10만 점의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데 한꺼번에 모두 전시할 수 없어 1-2개월에 한 번씩 전시물을 교체한다고 하는데 보통 일반에 공개되는 문화재의 숫자는 3,000점 정도를 수시 전시한다고 한다. 본관의 핵심 볼거리는 본관, 동양관, 호류지 보물관(法隆寺 寶物館) 등 3개 전시관이라 한다. 본관은 일본의 역사미술공예 민속자료를 전시하는 곳으로 규모가 크고 전시품이 많다고 하며, 동양관에는 한국중국동남아인도이집트 등에서 수집한 유물들이 전시 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는 본관 2층과 3층에 가서 우리의 유물을 중점적으로 보았다. 한국, 중국, 일본, 인도 등의 예술품이 함께 전시되어 있었는데 대충 대충 보았다. 14:00에 공항으로 출발해야 하는 일정상 동물원등 가까이 있는 자원도 간판만 보고 지나갔다. ....... <계 속>
첫댓글 여행에서 길 묻고 실수로 길을 잘못 찾고 손짓 몸짓으로 다시 길을 찾을 때의 기쁨도 여행의 또 다른 재미안닐까. 하여튼 대단한 청년들이다. 목욕탕 에서 더 재미있었던 일은 소개 안한것 같구나. 좋은 추억을 만들었구나. 친구가 좋은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