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의 취향` 쇼핑할 땐 호텔로 간다
27일 오후 2시께 찾은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 지하 1층 아케이드는 썰렁하기 그지 없었다. 널찍한 로비를 거니는 쇼핑객은 3명이 전부였다. 에르메스 키톤 콜롬보 등 이곳에 입점한 19개 매장을 둘러봐도 한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1380만원짜리 양복이 걸려 있는 키톤 매장에 들러 "이렇게 손님이 없는데 임대료는 낼 수 있느냐"고 묻자 "여기는 손님이 없어야 장사가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김정은 숍 매니저는 "VVIP(초우량 고객)들은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편하게 쇼핑하는 걸 선호하기 때문에 백화점 명품관 대신 호텔 아케이드를 찾는다"며 "50여명의 단골 고객을 확보한 데다 한번에 양복을 3~4벌씩 사가는 고객도 있기 때문에 임대료를 내고도 남는다"고 말했다.
신라 그랜드하얏트 등 서울의 양대 특급호텔 아케이드가 '큰손'들의 쇼핑 공간으로 각광받고 있다. 백화점 명품관에 비해 드나드는 사람이 훨씬 적기 때문에 유력 기업 오너와 정치인 등 주변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VVIP들이 마음 편하게 쇼핑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신라호텔 아케이드를 방문하는 고객은 한 달에 7000명 수준.외국인이 많이 드나드는 호텔이지만 아케이드 고객 대부분은 한국인이다. 이들의 씀씀이는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이 명품업계의 설명.이처럼 '대한민국 0.01%'가 쇼핑하는 공간이다 보니 초고가 명품이 아니면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실제 신라호텔 1층 모서리에 자리잡은 에르메스 매장에 들어서면 374만원짜리 실크 블라우스와 71만원짜리 등산모자가 진열대에 놓여 있다. 지하 1층에 있는 이탈리아 가죽 브랜드인 발렉스트라 매장에선 600만원대 흰색 여행가방이 인기란다.
인근 콜롬보 매장에서는 악어가죽으로 만든 1500만~2000만원짜리 핸드백이 '주력 상품'이다. 문영옥 실장은 "똑같은 핸드백을 백화점에서 구입하면 100만원 안팎의 상품권을 공짜로 받을 수 있지만 이곳을 찾는 고객들은 별로 개의치 않는다"고 말했다.
신라호텔 아케이드에는 이밖에 최고급 웨딩 드레스로 꼽히는 베라 왕과 캐시미어 제품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로로피아나 등이 입점해 있다.
그랜드하얏트에는 최고급 시계 브랜드인 바쉐론콘스탄틴과 남성의류 브랜드인 에르메네질도 제냐,라르디니,브리오니,키톤 등이 입점한 상태.바쉐론콘스탄틴의 경우 기본 모델도 1500만원이 넘는 초고가 브랜드다. '투르비옹'(중력 오차를 줄여주는 부품)이 장착된 시계는 1억원을 훌쩍 넘긴다. 최진만 매니저는 "하얏트호텔 헬스클럽 회원권을 가진 40~60대 남성이 주요 고객"이라며 "단골 고객 중에는 바쉐론 시계만 50개를 가진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남민영 브리오니 매니저는 "호텔 아케이드 고객 중에는 백화점과 달리 구매 후 제품에 하자가 있다며 억지를 부리는 '블랙 컨슈머'가 없는 게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오상헌/안상미 기자 ohyeah@hankyung.com
<고찰> 101매59황혜울
호텔에서 백화점 이상의 쇼핑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해 보았었다. 그저 작은 매장들이 있기는 하였지만 말 그대로 '쇼핑'의 느낌을 살리기는 힘들다. 게다가 호텔을 이용하다 필요에 따라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쇼핑을 위해 호텔에 간다는 것은 참 생소하고 재미있는 느낌을 주었다.
차별화를 두어 특별한 어떤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은 상업적으로는 참 좋은 아이디어 같다. 내가 부유한 사람이었다면 정말 환영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로드샵을 이용하거나 가끔 백화점을 이용하는 일반 사람들에게는 의기소침해질 소식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