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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숙님
4월 23일
불법 사드철거 김천 평화 촛불 제904회
오늘부터 집회 시간이 30분 늦춰져 8시부터 시작한다. 해가 길어지니 농민들이 일하는 시간이 길어져 그에 맞춘 것이다.
오늘의 사회자는 김덕기 전 YMCA 사무총장. 어제 제 14차범국민평화행동을 간단히 언급하고 시작했다. 병치레 하느라 몇 년 동안 나오지 못했지만, 여전히 그의 목소리는 카랑카랑했다.
묵념과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그리고 구호.
여는 발언은 이동욱 사드배치반대 김천시민대책위 공동위원장이 했다.
“어제는 사드 철거를 위해서 소성리 진밭교에서 제14차 범국민 평화행동이 있었습니다. 참 많은 동지들이 평화의 연대를 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소성리 어머니들 우리 안 외롭죠?
예, 저희들은 외롭지 않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평화의 동지들이 전국에 있어 연대를 하러 오십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 시민들이 있기 때문에 현재 우리나라의 평화가 지켜지지 않는가 생각을 합니다.
우리 평화를 이 정권에만 맡겨둘 수가 없지 않습니까? 지금 외교고 안 보고 거의 엉망진창입니다. 우리가, 이 평화의 최전선인 소성리와 김천이 우리나라의 평화를 지킨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계속 집회에 임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뚜벅뚜벅 꾸준하게 평화를 위해서 계속 나아갑시다.”
다음으로 박병주님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주제로 발언을 했다.
“모처럼 신문을 봤더니만 아니나 다를까 대통령이 또 입으로 사고로 쳤습니다. 미국 가기 전에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을 할 수 있다는 이런 뉘앙스로 발언을 했다고 합니다. 러시아는 즉각적으로 그러면 러시아와 전쟁 당사국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언론도, 우리도 러시아의 푸틴만 나쁜 놈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UN에서 (러시아) 제재를 결의 할 때 미국하고 같은 발걸음을 계속 맞춰왔던 이스라엘이 거기에 반발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반발했던 이유는 지금 우크라이나 독립을 주장하는 세력들의 뿌리가 극우파 스테판 반델(우크라이나민족동맹)이라는 사람이 있었거든요. 1940년대에 나치가 우크라이나에 침공하기 직전에 나치의 편을 들어서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쟁취하겠다고 앞장서서 유대인을 색출해서 학살한 횟수가 140회 정도 됩니다. (학살당한) 인원이 1만 5천에서 한 3만 5천 명 가량 되는데 거기에는 어린애가 상당수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푸틴이 전쟁을 일으켜서 민간인이 살상되는 건 옳은 일이 아니지만 러시아의 입장도 지금 우리가 한 번 반추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젤렌스키 이전 대통령이 ‘EU가입을 포기하겠다’해서 민중들이 우리로 말하면 촛불집회 같은 집회를 해서 그 정권을 무너뜨리고 젤렌스키가 대통령이 됐습니다.
소련을 해체하고 동유럽이 자유화가 된 다음에 미국이 러시아한테 ‘기존의 북대서양조약기구를 러시아 쪽으로 동진을 안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북대서양조약기구하고 실질적으로 맞서던 게 바르샤바 조약기구인데 여기 있던 동유럽 5개국이 몽땅 다 나토에 가입했습니다. 헝가리 폴란드 루마니아 등.
전에 북대서양조약기구(가입국)에서 모스크바까지 거리가 한 2천킬로미터 됐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1200km에 불과합니다. 러시아가 나폴레옹과 전쟁 때 모스크바까지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프랑스군이 추위와 굶주림에 지쳐서 패주했던 겁니다. 그런데 만약에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고 EU에 가입한다면 520킬로미터로 줄어들게 됩니다.
이전 대통령 때 EU에 가입하겠다고 요청했을 때 EU에서 14억 달러를 지원해 주고 우리나라 모양으로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하고, 러시아에서는 140억 달러를 제공하고 에너지를 싸게 해주겠다고 제의를 했습니다. 그런데 (러시아가) 거절당했죠.
푸틴의 부모님과 푸틴의 친척들이 거의 나치에 학살당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금 우크라이나 군인들, 민병대들이 하고 있는 문양이 옛날에 유태인을 학살했던 우크라이나 민족주의당 비슷한 문양을 하고서 전투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는 이스라엘 사람들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전쟁은 불러오게 하지 않아야 합니다. 지금 윤석열 대통령을 보면 러시아 심기를 건드리고 또 하루 후에는 중국 대만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이상한 얘기를 해서 ‘불태워 죽을 거다’ 이런 얘기를 듣습니다. 그게 윤석열 개인한테만 가면 큰 문제가 아니겠습니다마는 우리나라 전체 우리나라 민중들이 대통령의 입으로 인해서 전쟁의 참화에 휘말릴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지금 우리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떼어준다고 해서 우크라이나가 전쟁에서 승리를 하겠습니까?
전쟁은 장기전으로 고착화 돼 가지고 민중들만 피해를 보게 됩니다. 휴전을 해가지고 전쟁을 빨리 끝내면 끝낼수록 양쪽 다 이익입니다.
전쟁을 안 하면 제일 좋겠죠. 그러니까 전쟁할 수 있는 빌미를 안 만들어야 됩니다. 젤렌스키가 EU가입을 재추진하고 나토 가입을 재추진하겠다는 상황 속에서 푸틴이 침략하게 된 겁니다.
미국의 이익이 우리의 이익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만의 이익이 있는데 지금 윤석열은 미국의 이익이 우리의 이익인양 그렇게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 주지사인지 대한민국 대통령인지 알 수 없는 행동을 합니다.
대표적인 게 우리하고 관련된 사드 기지 정상화하겠다는 겁니다. 사드 기지 정상화가 누구를 위한 사드 기지 정상화입니까? (미국!) 미국일본을 위한 사드 기지 정상화 아니겠습니까?
이런 것을 보면 지도자의 역할, 지도자를 뽑는 우리 국민의 역할, 유권자의 역할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사드를 뽑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정치권을 감시하고, 정치권에 우리의 요구를 전달하고 또 다른 연대 세력과 뭉쳐서 사드 철회 사드 철거를 이루어내야 되겠습니다.”
사드는 침략이다! 불법 사드 철거하라! 주민생명 위협하는 불법 사드 철거하라!
노래하는 농부 우현덕님이 4월은 아픈 날이 많기에 한 번은 오고 싶었다며 노래를 불렀다.
내 가는 이 길 험난하여도
내 가는 이 길 험난하여도
그대로 인하여 힘을 얻었소
희망을 잃은 아픈 내 맘에
기쁨에 세상 알려주었소
그대의 우정 변치 않음에
기쁨의 뜨거운 눈물 흘리오
진실한 마음에 두 손 맞잡고
고난의 이길 함께 하려오
이 어둡고 외로운 길을
우리 함께 이겨내리오
저 자유롭고 밝은 세상에
힘차게 달려가리오
시간은 사랑이 지나가게 만든다더니
너 가고 난 후
너 없는 세상이 고통스러워
죽고 못살 것 같았는데
이젠 너를 생각하지 않고도
하루가 가고 일주일이 간다
사랑은 시간이 지나가게 만들고
시간은 사랑이 지나가게 만든다더니
예전 같지 않은 너에대한 애틋함
차분한 노래를 두 곡 부르고 조금 신나는 노래를 불렀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정말 정말 행복합니다
기다리던 오늘 그날이 왔어요
즐거운 날이예요
박석민 사드배치반대 김천시민대책위 자문위원의 평화강좌 시간. 오늘의 역사부터.
1995년 유네스코에서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로 정함. 영국 셰익스피어와 스페인 세르반테스가 1616년 오늘 세상을 떠났기 때문인데, 우리나라는 1987년에 10월11일(고려 현종 때 팔만대장경 완성한 날)을 책의 날로 정했다.
1919년 한성 임시정부 수립을 선포, 2003년 중국 주도로 북핵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북-미-중 베이징 3자회담 열리기도 한 날.
1945년 일제 식민지배에서 해방과 함께 남과 북은 외세가 강요한 분단을 겪게 되었고, 어느 날 갑자기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라가 갈라져서, 가족이 헤어져 80년 가까이 서로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알 길이 없고, 편지 한 통 못 보내는 굴욕적이고 모진 세월을 살고 있습니다. 1983년 6월 30일 전두환이 총칼로 집권하고 정치 위기가 와요. 그래서 온 나라가 눈물바다가 된 이산가족 찾기를 일주일간 하려다 중단하지 못해 6개월간 했습니다.
그때 이산가족이 만나면 아나운서가 물었어요.
“그래서 북한군이 공격해서...?”
“아닌데요. 쌕쌕인데요.”
(생각난다. 그때 처음으로 6.25전쟁 때 사람들이 미군 폭격기로 대다수 죽거나 헤어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분단체제는 우리 민족의 삶을 비정상으로 만들었습니다. 어제 사드철거 14번째 범국민평화행동에서 보신 것처럼 미국 성조기를 흔드는 괴이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대통령의 입에서 너무 쉽게 전쟁이란 단어가 튀어나오고, 오로지 한미동맹에 매달리는 기형적인 나라가 되어 국민적 요구인 평화와 통일로 나아가기는커녕 제대로 된 민주주의 발전조차 기대하기 어려운 암담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게 누구 때문인지 다 아시죠?
1992년 5월14~15일 베이징 댜오위타이에서 제1차 한-중 수교교섭 예비회담이 열렸을 때 중국은 ‘수교의 전제조건’으로 “대만과 단교”를, “북미 및 북일 관계 정상화 환경 조성에 한국이 적극 나서기 바란다”고 요청한 바 있습니다. 한소수교, 한중수교 등으로 고립무원 상태가 된 북은, 미국에 ‘주한미군 한반도 주둔 용인’이라는 파격적인 제안을 하고, 한편으로는 북일 수교에도 나섰지만, 미국은 북일 수교를 가로막고 북의 파격적인 제안을 모두 걷어찼습니다. 북의 탈냉전 시대 외교적인 노력을 미국은 가로막았습니다.
오늘은 주한미군 주둔을 용인한 관련 영상을 보고 얘기를 이어가겠습니다.
주한미군 주둔과 평화협정은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평화협정은 현재와 같이 언제든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정전체제를 유지해온 정전협정을 평화체제로 바꿔내는 협정을 체결하는 건데, 정전협정 60조에 외국군 철수 문제를 논의하게 되어 있습니다. 강력한 물리력과 권한을 행사하는, 우리가 지휘할 수 없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미군이 주둔하는 건 공고한 평화체제로 가기 어려워요.
따라서 주한미군은 나가는 게 실질적인 평화협정 체결의 의미이고 평화 체제를 만드는 전제조건이기도 할 거예요. 다만 시점이 언제냐 하는 문제가 있을 뿐입니다.
2000년 6.15공동선언 채택 과정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 말에 사람들이 깜짝 놀랐는데, 정확히 전하기 위해 메모를 읽어보겠습니다.
“(김대중) 대통령께 비밀 사항을 정식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미군 주둔 문제입니다만, 1992년 초 미국 공화당 정부 시기에 김용순 비서를 미국에 특사로 보내 ‘북과 남이 싸움 안 하기로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미군이 계속 남아서 남과 북이 전쟁을 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했댔습니다. 역사적으로 주변 강국들이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와 전략적 가치를 탐내어 수많은 침략을 자행한 사례를 들면서 ‘동아시아의 역학관계로 보아 반도의 평화를 유지하자면 미군이 와 있는 것이 좋다’고 말해줬어요. 제가 알기로 김 대통령께서는 ‘통일이 돼도 미군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건 제 생각과도 일치합니다. 미군이 남조선에 주둔하는 것이 남조선 정부로서는 여러 가지로 부담이 많겠으나 결국 극복해야 할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이 얘기는 당시에 임동원 통일부 장관이 직접 들은 것을 본인의 회고록인 피스 메이커에 쓴 기록 그대로입니다.
그런데 영상에서 보신 것처럼 이때 처음 나온 얘기가 아닙니다.
1992년 당시 김용순 노동당 중앙위원회 국제담당 비서가 미국을 가요. 그래서 11월 22일 아널드 캔터 미 국무부 정무차관과 회담에 이 제안을 합니다.
그런데 소련이 망하고 없어진 다음에 미국은 동북아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적이 필요했고 그걸 북으로 정합니다. 이때 (부시가) 캔터한테 내린 지침이 있어요.
“협상하지 말 것. 관계 정상화 얘기는 꺼내지도 말 것.” 그래서 캔터는 “핵사찰을 받을래? 아니면 고립된 상태로 이런 고통의 나날들을 보낼래? 골라라.” 얘기합니다.
그래서 김용순 비서가 빈손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렇다면 부시 행정부는 왜 김용순을 초청했을까? 1991년 11월에 서울에서 아펙(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회의를 해요.
그때 당시에 ‘북미 회담을 했으면 좋겠다. 북이 지금 공포와 안보 불안에서 벗어나고 아예 핵사찰을 받으려면 북미 간 고위급 정치회담이 필요하다’고 하는 중국의 제안을 미국이 받은 거예요.
그래서 베이커 국무장관이 딕 체니 국방장관한테 91년 11월 18일 비밀 서한을 보내요. ‘북과 한끝 높은 고위급 회담을 하는 게 필요하다. 다만 협상은 하지만 관계 정상화나 이 과정에서 미국의 요구를 전달하는 걸 목표로 하겠다.’
그대로 미국은 자신들의 전략을 김용순 비서를 만나서도 실행을 하는 거죠.
그 이후에 김용순 비서가 끊임없이 미국과 만나기 위한 노력을 해요.
92년, 93년 2월 3일 국제회의를 기회로 북이 회담을 하려고 하는데 북에 비자 발급도 안 하고 다 걷어찹니다. 그리고 난 다음 결과는? 북이 93년 3월 12일 NPT 탈퇴, 핵 개발로 나가는 것을 천명하게 됩니다. 6번의 핵실험을 하고 지금은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 핵을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 개발로 박차를 가해서 미국과 맞대응을 하고 있는 거고, 미국은 거꾸로 한미동맹이라고 하는 이름으로 미국이 세운 군사작전에 따라 북을 괴멸시키고 지도부 참수, 나라 하나를 괴멸시킬 수 있는 핵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투입하고 정례화하기로 하고, 현 정부는 합의하는 것으로 치닫고 있는 거죠.
노태우는 어땠을까? 노태우는 북미 간에 고위급 회담을 극도로 반대했어요.
88년 7.7 선언에서 ‘북한이 한국과 우방 관계를 맺고 있는 미국이나 일본 등과 관계를 개선하는 거를 반대하지 않겠다.’ 얘기했어요. 실제로 북미 회담 진행을 북에서 미국에서 노태우한테 전달하니까 극도로 반대하고 ‘딱 한 번만 해라 하고서 수령했다’고 회고록에 썼습니다.
그러니까 한중 수교, 한소 수교, 북과의 대화 등을 하면서도 북에 대해서 속내는 망해야 되는 걸로 보고 있었던 겁니다.
30년 전 그때 만약에 미국도 한국도 북의 그런 제안을 받아들이고 북이 핵 개발로 나서지 않고 한반도에 평화를 논의하는 것으로 전환이 됐다고 하면 한반도의 상황은 굉장히 달라졌을 겁니다.
이런 냉대를 받고 김용순이 아무 성과도 없이 북으로 돌아왔지만, 노동신문에 ‘북미 회담의 단초를 열었다’고 평가해요. 그해 3월 31일날 김일성 주석이 아사히 신문과 인터뷰에서 ‘회담은 시작됐고 이것을 지속하는 건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고 계속할 의지를 갖고 있었는데 다 좌절된 거죠.
김용순과 캔터 회담은 한국전쟁 이후에 최고 고위급 회담이 처음 열린 겁니다. 이게 밑돌이 돼서 2000년에 조명록이 클린턴 만나고 2019년에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이 미국 가서 회담하고 이런 단초들을 열어낸 것이기도 한 겁니다.
독일의 헬무트 콜 총리가 그렇게 얘기했어요.
“역사의 외투가 지나갈 때 정치가들은 그 외투의 소맷자락이라도 만져야 된다.”
삼십 년 전 북한의 이런 파격 제안을 걷어찬 미국도 북에 대해서 극도로 반북적인 태도를 갖고 있던 노태우도 이 역사의 외투를 잡지 않은 거죠.
그게 지난 삼십 년 동안 핵을 중심으로 해서 한반도 위기와 전쟁 위협이 계속되게 됐던 겁니다. 미국이 모든 걸 걷어찬 이유는 동북아에서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가상의 적이 아닌 적을 만들어 놓는 게 필요했기 때문에 전 세계적인 탈냉전에도 어긋나는 전략을 한반도에 심은 거죠.
전 세계 어떤 경우에도 분쟁이 있고 나면 평화협정 체결로 가요. 인류가 발견한 분쟁을 종식하는 유일한 방법인데 이 평화협정을 할 생각이 없는 거죠. 그게 있다고 하면 2018년 싱가포르 성명 2019년 하노이 회담이 깨질 리가 없어요.
그런 의지가 없고 오히려 북을 굴복시키려고 했던 이런 미국의 적대 정책이 지금 사드 배치에 똑같이 강요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싸움을 하는 겁니다.
그런 미국의 전략을 알게 돼야 하지만 그냥 바뀌지 않을 거다. 어떻게 해야 바뀐다? 우리가 끝까지 싸워야만 이것을 바꿔낼 수 있다.
시 하나 읽고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제비떼가 날아오면 봄이라고/함부로 말하는 사람은... 때가 되면 봄은 저절로 온다고/창가에서 기다리는 사람은/이 들판에 나오너라/여기 사는 흙 묻은 손들을 보아라/영차 어기영차/끝끝내 놓치지 않고 움켜쥔/일하는 손들이 끌어당기는/봄을 보아라”-안도현 ‘봄’
건강한 모습으로 다음주 다시 만나길... 사드 가고 평화 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