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솔 정신과 대학생 국어운동사]
국어운동대학생회는 한말글 홀로서기 대들보
1. 머리말
우리겨레는 5000년 역사를 가진 겨레이니 5000년 전부터 우리말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말은 있으나 우리 글자가 없어서 삼국시대인 2000여 년 전부터 중국 한자를 빌려서 한문으로 말글살이를 했다. 그런데 한문은 중국말을 적은 글이라서 둥근 구멍에 네모난 막대기를 끼우는 것처럼 매우 불편했다. 그래서 삼국시대 우리 한아비들은 한자를 쓰더라도 우리말식으로 쓰려고 “이두, 구결, 향찰”같은 우리식 말글살이를 했다. 그러나 그 방식도 한자를 쓰는 것이라서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1443년 조선 넷째 임금 세종대왕이 우리말을 적기 가장 좋은 우리 글자 한글(훈민정음)을 만들었다. 우리말이 홀로설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세종 때에 한글을 만들고 정음청을 설치했으며 한글을 만든 까닭과 원리, 그 한글 쓰임새를 쓴 훈민정음 해례본을 써서 알려주고, 그 당시 성스러운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 조선 왕조이야기인 용비어천가와 종교이야기인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을 이 한글로 썼다. 그리고 세조 때 간경도감을 설치하고 성종 때까지 불경들을 한글로 풀어서 썼으며 한글을 알리고 쓰려고 애썼다. 이렇게 한글이 태어나고 50여 년 동안은 한글을 살려서 쓰려고 했으나 연산군 때부터 그 정신이 식고 그 뒤 훈몽자회와 천자문처럼 외국말을 배우는 도구와 수단으로나 썼다. 그래도 이 한글이 훌륭해서 허균이 홍길동전, 정철이 관동별골, 윤선도가 오우가를 한글로 쓰고 양반 아녀자들이 편지글로 쓰이면서 목숨을 이어온다.
그리고 김만중이 한글로 소설 ‘사시남정기’를 쓰고 정철처럼 우리말을 한글로 쓴 글이 우리 문학이라며 우리말을 우리 글자인 한글로 글을 쓰자고 주장했다. 이 김만중이 신라 때 이두를 만든 설총과 조선 초기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에 이어 우리말 독립운동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뒤 조선 정조 때 실학자라는 박제가, 박지원, 정약용 들은 철저하게 한문으로만 글을 쓰면서 중국말을 우리 공용어로 하자고까지 하며 한글을 무시한다. 그리고 나라는 연산군 뒤처럼 어지러워지고 기운다. 그러다가 고종은 한글을 국문(나라글자)이라면서 공문서에 쓰고 한글을 살려서 나라를 일으키려고 나선다. 기독교가 성경을 쓰고, 미국인 헐버트가 한글로 ‘사민필지’라는 교과서를 만드니 정부도 한글에 눈을 돌린 것이다.
그리고 1896에 서재필, 주시경 들이 한글로 독립신문을 내고 주시경이 그 신문사 안에 한글을 연구하는 국문동식회를 조직했고, 1908년에 국어연구학회(오늘날 한글학회)로 발전해 한글학자와 운동가들을 키웠다. 우리말 독립 새싹이 돋아나고 키운 것이다. 그러나 1910년에 나라를 일본에 빼앗기니 국어연구학회란 이름을 ‘배달말글몯음’으로 바꾸었다가 ‘한글모’로 바꾸고 조선어강습소 이름도 ‘한글배곧’으로 바꾼다. 그때 우리나라를 일본에 빼앗겨서 우리말을 국어, 우리 글자를 국문(나라글자)이라고 할 수 없어서 우리말은 ‘한말’, 우리 글자는 ‘한글’이라고 새 이름을 지어 부르며 제자들을 키웠고, 그 제자들이 일제 강점기에 활동이 주춤했던 ‘한글모’를 다시 ‘조선어연구회’라는 이름으로 일으킨다.
그리고 1926년에 한글날도 제정하고, 1931년에 이름을 조선어학회로 바꾼 뒤 우리 말광과 한글맞춤법을 만들고, 표준말과 로마자표기법도 정한다. 그래서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된 뒤 미국 군정 때부터 우리 말글로 교과서도 만들고 공문서도 썼으며 1946년부터 한글날을 공휴일로 정한다. 이 일은 1948년 대한민국을 세우고도 그대로 이어진다. 그런데 1961년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사정권이 한일회담을 강행하면서 일본과 가깝게 지내려고 하니 일본 식민지 교육으로 일본 한자말을 한자로 적는 말글살이에 길든 이들이 고개를 들고 한글만 쓰기를 반대해서 우리 말글이 위기를 맞이한 것이다. 그래서 나라가 위기를 맞으면 의병이 일어나 나라를 지키듯이 젊은 대학생들이 국어운동대학생회를 만들고 우리말 독립운동에 나선다.
이는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든 정신, 주시경이 한글을 갈고 닦아 살리려고 애쓴 일, 일제 강점기에도 한글이 목숨이라며 한글을 지키고 연구한 조선어학회 정신을 되살리려는 한말글 독립 운동이었다. 한글이 태어나고 500여 년 만에 간신히 우리말을 우리 글자로 적는 말글살이가 자리잡아가고 있는데 그 꿈을 깨려는 무리들이 나타났기에 민중이 의병을 일으킨 것이다. 우리말을 우리 글자로 적는 꿈은 삼국시대부터 우리 겨레 꿈이었고, 세종이 그 꿈을 이룰 주춧돌을 놓았고 주시경과 그 제자들인 최현배와 김윤경 들이 그 꿈을 완성하려고 하는 데 일본제국 식민지 때 경성제대를 다닌 이희승, 이숭녕 들이 그걸 막으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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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 글은 10월 8일 575돌 한글날 기념으로 외솔 선생이 태어난 울산에서 울산방송이 주최하고 세종국어문화원이 주관한 학술 토론회에서 국어운동대학생동문회 초대회장 리대로가 발표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