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다방에 갔었다. 지하다방이었는데 약간의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여기가 다방이라는 것을 확인해 주었다. 에어컨은 장식용인 듯 그냥 구석에 먼지 뽀얗게 덮어쓴 채 있고 털털거리는 선풍기가 대가리를 연신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할아버지 두 분이 구석에 앉아 별 할 일 없이 계시는 것 같았고 다방 아줌마는 배달 아가씨 족치느라 물도 안 준다. 배달 갔다가 좀 놀았던 모양이다. 이게 커피를 처음 접한 다방 풍경이다. 정겹다.
커피는 내 입에 참 적응이 안 된다. 마치 도회지에 처음 올라와 카레 먹고 다 올려버린 사촌처럼 촌티 나는 인간들에겐 어쩔 수 없는 음식 중 하나였다. 대학 때 피자 정도는 어찌어찌 소화할 수 있었는데 이놈의 커피는 영 아니었다. 마시면 설사했다. 이런 걸 돈 주고 마신다는 것이 나의 상식엔 이해되지 않았다. 가끔 내 의사와 전혀 상관없이 다방에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이때 커피를 안 시키면 세련되지 못한 놈으로 인식될 것 같아서 억지로 인상 쓰면서 마시곤 했다. 나중엔 앞에 사람 안 볼 때 설탕을 갖다 부어 꿀물처럼 마셨다. 허우대는 산만한 놈이 짧은 치마 아가씨가 먹는 야쿠르트를 같이 빨 순 없지 않은가.
그때 마누라를 만났다. 동기 놈이 갑자기 바쁜 일이 생겨 대타를 구했고 대타 비용까지 챙겨주는 터라 안 나갈 수가 없었다. 소위 미팅이란걸 하는데 아가씨들이 전부 ‘커피’를 시킨다. 나도 ‘커피’를 당연히 시켰다. 아주 자연스럽게 아침저녁으로 늘 숭늉 마시듯 마시는 것처럼 말이다. 근데 이 여학생들이 커피에 양념을 타지 않는 게 아닌가. 일부러 퍼 넣으라고 갖다줘도 씹디 씹은 커피를 설탕도 안 타고 프리마도 없이 그냥 마신다. 그렇다고 다른데 눈길을 줘야 설탕을 갖다 부을 텐데 마주 보고 앉아 있어 그 틈은 잘 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그냥 한 모금 마셨다. 억!~ 탄성이 절로 나왔다. 정말 독한 년들. 사약 같은 이걸 그냥 마시다니. 한약 진국도 이 정도로 쓰지는 않을 것이다. 아메리칸 스타일이란 미명아래 많은 젊은 여자가 그렇게 마신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그날 종일 설사했다. 똥구멍을 열어놓고 있어야 했다.
“두 개 두 개?”
고향에도 다방이 들어섰고 이쁜 아가씨한테 잘 보이려고 한 놈씩 들어올 때마다 “올 커피”다. 그래서 한번 다방에 들어가면 대여섯 잔은 마시고 나온다. 도시 놈들은 한 잔 시켜놓고 몇 시간을 죽치던데 촌놈들은 통이 크다. 아가씨는 아까 물어놓고는 또 묻는다. “세 개 세 개”라고 다시 확인 시켜준다. 설탕 세 스푼, 프림 세 스푼이란 이야기다. 마누라는 지금도 아메리칸 스타일을 고집한다. 나는 지금도 ‘다방 커피’다. 아니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믹스 커피’다. 커피 두 숟가락, 설탕 두 숟가락, 프림 두 숟가락에 약간의 뜨거운 물을 넣고 휘휘 저으면 그게 커피의 표준이 아닌가. 그걸 봉다리에 싸서 만든 게 우리 입맛에 맞는 믹스 커피이고 동남아 애들이 없어 못 마실 정도로 인기 있는 품목 아닌가.
우리 애들은 또 다른 취향을 가진 듯하다. 자바, 콜롬비아, 모카, 에스프레소, 라테, 카라멜 마키야토…. 듣기만 해도 현기증이 날 정도로 종류도 많다. 기억하기도 쉽지 않다. 애들이 뭘 마실 건지 묻는다. 모임에서 어쩌다 카페 가면 주문하는 이가 묻는다. 그때마다 항상 대답이 똑같다.
“달달한 거...”
첫댓글 다방에서 커피 마시는 모습 상상만해도 엔돌핀이 팍팍 ㅋ. 맛난 점심 먹고 호젓하게 커피 한잔하니 세상 부러울게 없습니다.
몬산다!
구석기 남자도 아니고!
노병철 선생님 구수하고 멋지구만요. ㅎ
똥구멍~~배 아프도록 웃고 갑니다.
그 얼굴이나 스타일로
보면 어디 어마무지한
기업의 회장같은데 어째
여기 쓴 커피얘기는 어울리지 않는것 같다.
그래서 나는 풍이 좀
섞인 글이라고 생각하고
웃기로 했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