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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024년 2월 교황님 기도지향 해설 : 말기의 병자들 - 홍석민 수사
작성자:구유
작성시간:15:13 조회수: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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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기도지향(2월) – 말기의 병자들
: 생의 말기에 있는 병자들과 그 가족들이 의료적 측면에서도 인간적 측면에서도 언제나 필요한 보살핌과 동반을 받도록 기도합시다.
이번달 교황님 기도지향은 생의 말기에 있는 병자들이 필요한 보살핌과 동반을 받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임종을 앞둔 병자들을 동반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특별히 그들 가까이에서 함께하는 의료인들이나 가족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저는 오늘 주님 곁으로 가는 문 앞에 서 있는 분들과 함께하는 이 ‘특별한 동반’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체험을 후원회원분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그날은 2021년 4월 30일, 금요일이었습니다. 오전 10시쯤에 어머니로부터 긴급한 연락을 받았는데 그 소식은 제 외할머니의 임종이 임박했다는 것이었습니다. 2021년 1월 말에 서원을 하고 수련원을 나왔을 때, 세상은 코로나의 영향으로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코로나 확산의 공포로 병원에서 면회가 어려웠으므로 할머니를 찾아 뵐 수 없었는데,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생각에 황급히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단숨에 병실로 뛰어올라갔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계신 할머니 곁에 다가가 무릎을 꿇었습니다. 어릴 적 할머니와 함께한 추억과 사랑받았던 기억이 떠올랐고 성인이 되어서는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정성껏 보살펴드리지 못했던 순간들이 떠올라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그 무엇도 해드릴 수 없다는 생각에 슬픔이 밀려왔습니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까스로 추스르고 할머니의 귓가에 작별 인사를 속삭였습니다. “할머니, 저 요한입니다. 할머니께서 한평생 사랑하신 하느님을 이제 만나러 가시는 거에요… 그러니까 두려워하지 마세요… 두려워 마시고 빛을 따라가세요…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그렇게 제 마음에 담긴 그 무엇을 온전히 꺼내서 할머님께 말씀드리자 참았던 슬픔이 터져 나왔고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렇게 저와 저희 가족들은 할머님과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누고 할머님을 떠나보냈습니다.
빈소가 차려지고 많은 조문객들이 할머님의 빈소를 방문했습니다. 할머님의 삶을 이야기하며 추억을 되새기기도 했지만 여전히 상실의 아픔으로 슬퍼하는 가족들과 친척분들을 위로하고자 애썼지만 도무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그때 하나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수련기때 중환자실에서 실습을 하던 시간이었습니다. 위중한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 임종을 맞이하는 병자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며 새카맣게 속이 타들어가며 슬퍼하는 가족들 곁에서 수도자로서,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기억이었습니다. 어떤 말로 위로를 해야 할지, 어떻게 생의 마지막 순간에 함께 해야 할지 몰라서 그저 두렵고 도망가고 싶었던 기억이 저를 휘감았습니다. 그리고 그 기억은 할머니를 떠나보내고 슬퍼하는 가족들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라 여전히 당황하고 있는 제 모습을 바라보게 했습니다. 그때부터 제 마음이 산란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홀로 빈소에 앉아 하느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느님, 제 할머니의 영혼을 받아 주신 것입니까? 그렇다면 확신을 주십시오. 제가 그것을 가족들에게 전해 그들을 위로하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아무리 소리쳐도 하느님께서는 침묵하셨습니다. 이튿날 오후에 문득 하느님께서 되물으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그 질문 앞에 저는 정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제 안에 그 믿음과 확신을 가능케하는 어떠한 근거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어떤 체험들 안에서 근거와 확신을 찾으려 애썼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렇지만 할머니께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그저 기도했습니다.
할머님의 장례를 치르고 신학원에 돌아왔지만 하느님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한 기도는 계속되었습니다.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이었습니다. 여전히 하느님의 질문에 믿는다고 대답하지 못하는 제 자신이 답답하고 화가 났습니다. 제발 좀 도와달라고, 답을 달라고 소리치기 위해 고개를 들었을 때 비로소 질문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저를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그제서야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슬퍼하시는 예수님의 모습과 그 질문은 요한 복음 11장의 장면으로 저를 이끌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라자로를 만나러 가시는 길에 마르타를 만나시고 이렇게 질문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 너는 이것을 믿느냐?”(요한 11, 25-26) 그리고 마리아를 만나신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와 곁에 선 사람들의 슬픔에 마음이 북받치고 산란해져서 눈물을 흘리십니다(요한 11, 33-35). 그 다음에는 어떤 일이 벌어졌나요? 예수님께서 죽은 라자로를 다시 살리십니다. 라자로의 이름을 불러 당신 앞에 세우십니다.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요한 11, 43)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제 할머님의 영혼이 당신 곁에 있음을 확인시켜 주신 것입니다. 제가 부활이며 생명이신 하느님 당신을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 그 이유와 확신을 제 안에서, 제 과거의 경험에서 찾고자 고개를 숙이고 애를 쓰는 중에는 그것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고개를 들어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분께서 무엇을 하셨고 어떤 분이셨는지 기억해 냈을 때 비로소 그 믿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죽은 이를 불러 당신 곁에 세우시는 분이시라는 믿음을 말입니다. 마침내 저는 아주 평온한 마음으로 “하느님, 저는 할머님의 영혼을 하느님 손에 맡깁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부활 그 자체이시며 죽은 이들을 당신 곁으로 부르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청해야 합니다. 그 믿음이 있을 때 비로소 임종하는 이들을 위한 ‘특별한 동반’이 가능할 것입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고 주님 곁으로 가는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믿고 고백할 때 비로소 우리는 임종을 맞이하는 한 사람의 곁에 온전히 함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믿음이 의심이 들 때는 눈을 들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시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 너는 이것을 믿느냐?”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죽음이 끝이 아니고 주님 곁으로 가는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믿으며 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