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이 문학이 되려면 -
- 최명희의《혼불》에서 배운다
수필가 정임표
최명희는 대하소설 《혼불》에서 종가의 절대적 어른인 청암부인이 남긴 가르침들을 전통적인 삶의 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의 외연 확장적 단계에 맞추어서 토해 놓는다. 그 묘미를 살피면서 독서를 하면 정말 재미있고 사람의 행실이란 어떠해야 하는 가를 알게 된다.
"절 한 자리 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은 물론이고 친정, 외가, 진외가 까지 다 보인다"
"너 그 절 어디서 배웠느냐?" 이 한마디 만으로도 이미 백 마디 만 마디를 들은 것과 같았다.
"옷이란 그 사람의 몸이나 한가지인데, 남편 옷을 그렇게 아무런 정성도 없이 함부로 구겨서 아무데나 박아 넣으면, 그게 제 남편을 구겨박는 것하고 무엇이 다른가. 세상에는 공것이 없느니, 내가 정성을 들이면 들인 만큼 내 앞으로 쌓이는 법인 걸, 정성 한 톨 쌓지 않고 무슨 염치로 해뜰날을 바라는고"
"사람이 한평생을 살자면 죽기보다 어려운 고비가 꼭 있기 마련이니라. 그럴 때는 잊지 말고 내 말을 명심해라. 저 자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제가 맡고 있는 책임인즉."
"사람은 자기 몫을 스스로 알아야 한다. 한 섬지기 농사를 짓는 사람은 근면하게 일하고 절약하여 자기 가솔을 굶기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열 섬지기 짓는 사람은 이웃에 배곯는 자 있으면 거두어 먹여야 하느니라." 등등등 등
이런 문장 표현은 자랄 때부터 신언서판을 명심하고 정신 수련을 해야 함을 최명희가 청암부인 입을 통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능력이 클수록 그에 상응하는 공적인 도리(책무)가 따른다는 점을 명확히 한다. 만약 큰 위치에 있는 자가 자신의 사리사욕만 채우거나 공적인 의무를 외면한다면, 그것은 공과 사를 분별하지 못하는 부끄러운 행위이자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일이라고 작가가 규정하는 것이다.《혼불》은 개인의 삶이 결국 가문과 마을, 그리고 나라라는 거대한 공적 공동체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며,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공의를 저버리는 태도에 대해 깊은 경계와 큰 울림을 전하고 있다.
거기에 대비해서
사리사욕에 집착하며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전형적인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그려 내기도 한다. 매안 이씨 가문의 중심인물들인 이강모와 이기표를 통해 공사구별을 못하는 인간케릭터를 극적으로 드러낸다. 이들은 가문이라는 거대한 공적 공동체가 요구하는 엄격한 윤리와 책무를 외면한 채, 개인의 욕망과 실속을 앞세우며 가문의 몰락을 자초하는 인물들로 그려진다. 이런 인물로는 동네 아낙네로 등장하는 옹구네도 있다.
우선 종손인 이강모는 가문을 이끌어갈 막중한 공적 책임과 법도를 지녀야 함에도 불구하고, 유약한 현실 감각과 사사로운 감정에 흔들려 치명적인 과오를 범한다. 대표적으로 그가 전주 부청에서 근무하던 시절 공금 300원을 임의로 유용하여 주루의 기생인 오유끼를 첩으로 데려온 사건은 공사 불구분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는 가문의 명예와 공적인 신뢰라는 엄중한 도덕적 의무를 내팽개치고, 자신의 순간적인 연정과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해 공적 자산을 함부로 도용한 대표적인 비판 대상이다.
또한 강모의 숙부인 이기표 역시 현실적인 수완 뒤에 냉혹한 이기심을 숨기고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인물이다. 그는 일제강점기의 혼란스러운 시대 상황 속에서 문중의 재산을 지킨다는 명분을 내세우면서도, 실상은 형인 기채의 옆에서 교묘하게 집안과 문중의 재산을 자신 쪽으로 빼돌리거나 실속을 챙기는 계산적인 모습을 보인다. 주변 사람들을 대할 때도 공동체의 도리나 인간적인 예의보다는 자신의 이해득실을 우선시하며 이기적인 태도를 버리지 않는다.
거멍굴에 사는 옹구네는 과수댁으로, 상민인 춘복이와 몰래 동거하면서 양반 계층에 대한 뿌리깊은 반감과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춘복이가 양반댁 아씨인 강실이를 연모하며 차지하고 싶어 하자, 이를 부추기고 소문을 퍼뜨리는 등 사욕과 집착에서 비롯된 음모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이처럼 《혼불》은 공사구별에 엄격한 인물과 개인의 사리사욕에 쩔어 버리는 인물을 대비시키면서 어떤 형의 인간이 공동체의 리더가 되었을 때 가문이 흥하고 어떤 인물이 공동체 리더가 되었을 때 공동체가 파국으로 가는지 냉철하게 그려내고 있다. 세간에서 간혹 수필을 단순한 일기나 가벼운 신변잡기 정도로 오해하여 "과연 수필이 진정한 문학인가"라는 섣부른 의문을 품기도 한다. 글의 장르가 무엇이든 간에 문학을 문학답게 만드는 것은 형식이 아니라 '어떤 정신과 혼을 담아내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작품 속에서 거대한 시대적·도덕적 무게를 짊어진 최명희의 《혼불》같은 삶처럼, 수필 역시 단순한 감상 나열을 넘어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 시대와 공동체를 향한 엄정한 윤리적 비판, 그리고 작가만의 치열한 세계관을 담아낼 때 비로소 묵직한 생명력을 지닌 '문학'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공과 사를 엄격히 분별하는 청암부인의 묵직한 자기 수행에서 나오는 도덕적 잣대와,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공동체를 파국으로 이끄는 한심한 인물들의 대비를 통해 문학적 주제의식을 이끌어가는 시각 자체가 바로 문학이 지녀야 할 품격과 작가 정신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시나 수필 모든 문학이 그런 정신을 꾹꾹 눌러 담았을 때 진정한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