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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재집 제7권 = 잡저(雜著)-퇴계 선생에 대한 제문〔祭退溪先生〕
삼가 생각건대 선생님께서는 / 恭惟先生
순수한 자질에 / 純粹之姿
화순한 덕성으로 / 和順之德
정주의 도학이요 / 程朱道學
공맹의 심법이었습니다 / 孔孟心法
경과 의에 침잠하였고 / 沈潛敬義
인과 지를 함양하였으니 / 涵養仁智
그 행실은 규구와 같았고 / 規矩其行
그 뜻은 금석과 같았습니다 / 金石其志
명과 성을 아울러 극진히 하고 / 兩盡明誠
성과 정을 교차하여 배양했으며 / 交養情性
표리가 서로 이어졌고 / 表裏相維
동정이 모두 올발랐습니다 / 動靜俱正
잡초가 제거되니 새싹이 자라고 / 莠盡苗長
술이 익으니 술맛이 진하였으며 / 醅化醴醇
마음이 태연하니 / 天君泰然
만물이 모두 봄이었습니다 / 百物皆春
즐거우면 행하고 근심되면 떠나 / 樂行憂違
만나는 곳마다 편안하니 / 隨遇而安
못 속에 잠긴 진주요 / 珠藏于淵
산 속에 묻힌 옥이었습니다 / 玉韞于山
소용돌이에 멱 감는 해오라기요 / 盤渦鷺浴
외로운 나무에 핀 꽃이라 / 獨樹花發
주염계의 광풍제월이요 / 濂溪光霽
이연평의 빙호추월이며 / 延平壺月
수양산의 백이숙제 기풍이요 / 首陽之風
누추한 마을의 즐거움이었습니다 / 陋巷之樂
꽃가꾸기를 경륜으로 삼고 / 養花經綸
벼슬을 찌꺼기로 여겼으며 / 軒冕土苴
우뚝한 산처럼 경건하고 / 祗祗山立
빈 거울처럼 해맑았으니 / 湛湛鑑虛
말씀은 가을 서리와 같았고 / 發語秋霜
남을 대하면 따뜻한 봄바람이었습니다 / 接物春噓
참으로 선생이시여 / 允矣先生
진실로 크게 펼치시어 / 展也大成
홍몽이 다시 개벽하고 / 鴻濛又闢
긴 밤이 새로 밝았습니다 / 長夜再明
아득히 끊어진 실마리를 / 茫茫墜緖
생각지 않고도 터득하여 / 不思而得
주자가 돌아왔으니 / 考亭歸來
누가 이와 같을 수 있으리오 / 孰能是若
하물며 우리 해동에는 / 矧吾海東
기자 이후로 전함이 없었는데 / 箕後無傳
홀로 일어나 도를 보위하여 / 獨立衛道
후학을 계도하고 전현을 빛냈습니다 / 啓後光前
나라에는 시초와 거북이요 / 蓍龜邦國
사문에는 태산과 북두였으니 / 山斗斯文
한 시대의 조종이셨고 / 一代所宗
백세토록 존경받을 분입니다 / 百世攸尊
문장을 보고 달려가 / 望門以趨
많은 선비들이 몰려드니 / 多士濟濟
예로써 진전시키고 / 進之以禮
차례로 권면하였습니다 / 勉之以序
인도하고 일깨워 주심에 / 誘掖提撕
게으름도 없고 그침도 없었으니 / 不倦不已
먹는 것도 잊고 자는 것도 잊으며 / 忘飢忘寢
늙어가는 것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 不知老至
오직 한 분 임금만으로 / 惟彼美人
나의 마음을 가득 채웠건만 / 爲我心思
언덕 위의 흰 구름을 / 壠上白雲
가져다 드릴 수가 없었는데 / 不堪持贈
부르는 교서가 골짜기를 찾아들자 / 鶴書入谷
위수에서 낚시할 때처럼 응했습니다 / 渭獵時應
여섯 조목 아름다운 계획과 / 六條嘉猷
《성학십도》를 올렸으나 / 十圖聖學
예가 조에 들어맞지 않으니 / 枘鑿不入
빈말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 空言何益
마음을 정리하고 사직을 청하여 / 卷懷乞骸
배를 타고 사흘 만에 돌아오니 / 孤帆三宿
고향 산천의 원숭이와 학도 / 故山猿鶴
다투어 즐겁게 맞이하였습니다 / 爭迎喜色
돌아보건대, 저 소자는 / 顧余小子
어릴 적부터 찾아뵈었는데 / 丱角趨拜
하찮게 여기지 않는 깊은 은혜 입고 / 深蒙不鄙
외람되이 권계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 猥忝勸戒
암서헌에 봄날이 포근하고 / 巖栖春和
역락재의 가을 또한 즐거웠으니 / 亦樂秋凉
모시고 따라 노닐며 / 從遊杖屨
소요한 지 몇 년이던가 / 幾年徜徉
월란암의 그 날에 / 月瀾當日
밤중에 홀로 일어나셨는데 / 中夜獨起
제가 마침 자리에 있으면서 / 弘適在座
‘경’ 자의 뜻을 여쭈었더니 / 問敬字旨
의관을 바르게 하는 것이라 하고 / 曰正衣冠
생각을 전일하게 함이라 하셨습니다 / 曰一思慮
속이지 않고 태만하지 않으며 / 不欺不慢
엄숙하고 정제하는 것 / 嚴肅整齊
이러한 일에 종사한다면 / 從事於斯
이것이 ‘경’이라고 하시면서 / 是謂之敬
이로부터 공을 들이면 / 自玆以往
성현이 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 可做賢聖
지난가을에는 / 逮在去秋
이동에 행차하시어 / 傾旆伊洞
상서로운 날 소요하시며 / 婆娑瑞日
명봉을 읊조리셨습니다 / 吟詠鳴鳳
이어 계당을 찾아뵈었을 때 / 繼拜溪堂
참새 그물 친 문을 여는데 / 雀羅門開
심의에 큰 띠를 띠시고는 / 深衣大帶
정자관이 우뚝하였습니다 / 程子冠巍
마침 겨울이 시작될 무렵에 / 適於冬初
제가 산 서쪽에 있게 되었는데 / 弘在山西
사람의 일이 걸림이 많아 / 人事多掣
한 달이 넘도록 뵙지 못했습니다 / 阻謁月餘
병환이 위독하다는 말을 듣고 / 驚聞病革
분주히 달려와서 문후를 드리며 / 奔走來候
인자는 반드시 장수한다고 하니 / 仁者必壽
신명의 도움이 있으리라고 여겼습니다 / 謂得神佑
섣달 초이렛날에 / 臘月初七
책을 정리하라 명하시기에 / 命理諸書
이로 인해 나아가 뵈었더니 / 仍進以面
말씀이 처음과 같았습니다 / 語言如初
산이 무너지고 들보가 부러지니 / 山樑忽摧
모든 일이 끝나고 말았습니다 / 萬事亡羊
하늘에 부르짖고 땅을 두드리니 / 叫天叩地
눈물만 펑펑 쏟아집니다 / 涕淚滂滂
안자보다 삼십칠 년을 더 사셨고 / 壽顔卅七
공자보다는 삼 년이 모자랍니다 / 少孔三年
도를 들어 살아서 하늘에 순응했고 / 聞道生順
중정을 얻어 온전히 돌아가셨습니다 / 得正歸全
돌아보건대 저는 민첩하지 못하여 / 顧愚不敏
예의 경전에 대하여 알지 못하니 / 未解禮經
모든 상례의 제도를 / 凡百喪制
뜻만큼 거행하지 못했습니다 / 揔不如情
은혜는 아버지와 다름이 없는데 / 恩均父視
예절은 정작 조카만도 못하니 / 禮闕猶子
정성은 축장도 하지 못하여 / 誠乏築場
죄가 천지에 가득합니다 / 罪極天地
계상의 언덕에 봄이 돌아와 / 春回溪上
온갖 풀들이 때를 만났으니 / 萬卉得時
산기슭 매화는 슬픔을 토하고 / 山梅吐哀
냇가의 버들은 슬픔을 머금었습니다 / 澗柳含悲
아침 연기는 서글픔에 젖었으니 / 朝烟慽慽
전범을 어디에서 다시 찾으리까 / 典刑何求
이승과 저승이 길이 막혔으니 / 幽明永隔
저의 학업을 어디 가서 마치리까 / 我業何究
영구 앞에 나아가 통곡하노라니 / 進哭柩前
하늘의 해가 흐릿하기만 합니다 / 天日夢夢
물러나 계재에 거처하면서 / 退居溪齋
남긴 가르침을 몸에 지니고 싶지만 / 遺敎佩躬
온갖 의혹이 가슴에 가득하고 / 羣疑滿腹
많은 어려움이 가슴을 메웁니다 / 衆難塞胷
말과 생각이 여기에 미치매 / 言念及此
오장이 에이는 듯합니다 / 五內如割
삼가 변변찮은 제수를 갖추어 / 謹具菲薄
정성을 다해 드리오니 / 以薦心血
영령께서 계신다면 / 不亡者存
부디 흠향하소서 / 庶幾昭格
[주-D001] 즐거우면 …… 떠나 :
도가 행해질 조짐이 보여 마음이 즐거우면 나와서 도를 행하고, 조짐이 보이지 않아 근심되면 물러난다는 말이다. 《주역》 〈건괘(乾卦) 문언전(文言傳)〉에서 공자(孔子)가 잠룡(潛龍)을 설명하면서 “세상을 피해 숨어 살면서도 근심이 없고, 남의 인정을 받지 못해도 근심이 없다. 즐거우면 행하고 걱정되면 떠난다. 그의 뜻이 확고해서 동요시킬 수가 없다. 이것이 숨은 용이다.[遯世無悶, 不見是而無悶. 樂則行之, 憂則違之. 確乎其不可拔. 潛龍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D002] 소용돌이에 …… 꽃이라 :
두보의 시에 “소용돌이에서 목욕하는 백로는 무슨 심성인고, 외로운 나무에 핀 꽃이 저절로 환하구나.[盤渦鷺浴底心性, 獨樹花發自分明.]”라고 하였는데, 이덕홍이 이 뜻에 대해 묻자, 이황이 “자기를 위하는 군자는 억지로 하지 않으면서도 저절로 그렇게 된다는 것이 이 시의 의미에 들어맞는다. 학자는 모름지기 이를 체험하여 그 의(義)를 바르게 하고 그 이(利)를 꾀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그 도를 밝히고 그 공을 헤아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만일 털끝만큼이라도 억지로 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것은 학문이 아니다.”라고 한 내용이 있다. 《退溪集 言行錄3 類編》
[주-D003] 주염계(周濂溪)의 광풍제월(光風霽月)이요 :
염계는 주돈이(周敦頤)를 가리킨 것으로, 황정견(黃庭堅)의 〈염계시서(濂溪詩序)〉에 “용릉의 주무숙은 인품이 매우 고상하여 가슴속이 깨끗해서 마치 온화한 바람과 맑은 달빛 같다.[舂陵 周茂叔, 人品甚高, 胸中灑落, 如光風霽月.]”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무숙(茂叔)은 주돈이의 자이다.
[주-D004] 이연평(李延平)의 빙호추월(氷壺秋月)이며 :
주자(朱子)의 스승인 연평 이통(李侗)의 인품을 형용한 말로, 얼음으로 만든 호리병에 맑은 가을 달이 비친 것과 같이 티 없이 고결한 정신을 뜻한다. 송나라 등적(鄧迪)이 이통의 인품을 말하면서 “마치 빙호추월과 같아 티 없이 맑고 깨끗하다.[如冰壺秋月, 瑩澈無瑕.]”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宋史 卷428 李侗列傳》, 《朱子大全 卷87 祭延平李先生文》
[주-D005] 수양산(首陽山)의 백이숙제(伯夷叔齊) 기풍이요 :
백이숙제가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주(紂)를 정벌하는 것을 반대해서 간하다가 듣지 않자 수양산으로 들어가 고사리를 캐 먹으면서 지내다가 굶어 죽었다. 《史記 卷61 伯夷列傳》
[주-D006] 누추한 마을의 즐거움이었습니다 :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생활을 즐긴 공자의 제자 안연(顔淵)의 삶을 말한다. 《논어》 〈옹야(雍也)〉에 “어질다, 안회(顔回)여. 한 그릇 밥과 한 표주박 물을 마시며 누항에 사는 것을 사람들은 근심하며 견뎌 내지 못하는데, 안회는 그 낙을 바꾸지 않으니, 어질도다, 안회여.[賢哉! 回也. 一簞食, 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 不改其樂, 賢哉! 回也.]”라는 공자의 말에서 나온 것이다.
[주-D007] 생각지 않고도 터득하여 :
《중용장구》 제20장에 “참된 자는 억지로 힘쓰지 않아도 과와 불급이 없고, 굳이 생각을 하지 않아도 터득해서 자연히 도에 합치되는데, 이런 분이 바로 성인이다.[誠者, 不勉而中, 不思而得, 從容中道, 聖人也.]”라고 한 말이 나온다.
[주-D008] 위수(渭水)에서 …… 응했습니다 :
태공망(太公望) 여상(呂尙)이 위수 물가 반계(磻溪)에서 낚시질하다가 주 문왕(周文王)을 만나 태사(太師)로 발탁된 고사가 있다. 《史記 卷32 齊太公世家》
[주-D009] 여섯 …… 계획 :
이황(李滉)이 68세 되던 해인 1568년(선조1) 8월에 올린 육조소를 말한다. 그 여섯 조목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계통을 중히 여겨 인효(仁孝)를 온전히 할 것. 둘째, 참소와 이간을 막아 양궁(兩宮 선조와 명종비 인순왕후)을 친하게 할 것. 셋째, 성학(聖學)을 돈독히 하여 정치의 근본을 세울 것. 넷째, 도덕과 학술을 밝혀 인심을 바르게 할 것. 다섯째, 복심(腹心)을 미루어 이목(耳目)을 통하게 할 것. 여섯째, 몸을 닦고 성찰하는 일을 정성스럽게 하여 하늘의 사랑을 이어 받을 것 등이다.
[주-D010] 성학십도(聖學十圖) :
이황(李滉)이 1568년(선조1) 경연(經筵)에서 선조(宣祖)에게 유학의 대강을 풀이하여 밝히고 심법(心法)의 요점을 명시하기 위해 여러 유학자들의 학설과 도설(圖說)을 근거로 자신의 견해를 부연하여 만든 책이다. 그 조목은 〈태극도(太極圖)〉, 〈서명도(西銘圖)〉, 〈소학도(小學圖)〉, 〈대학도(大學圖)〉, 〈백록동규도(白鹿洞規圖)〉, 〈심통성정도(心統性情圖)〉, 〈인설도(仁說圖)〉, 〈심학도(心學圖)〉, 〈경재잠도(敬齋箴圖)〉, 〈숙흥야매잠도(夙興夜寐箴圖)〉이다.
[주-D011] 예(枘)가 …… 않으니 :
의견이 서로 어긋났다는 말이다. 예는 네모난 촉꽂이, 조(鑿)는 둥글게 판 구멍으로, 네모난 촉꽂이는 둥글게 판 구멍에 맞지 않는다는 말이다.
[주-D012] 명봉을 …… 읊조리셨습니다 :
명봉(鳴鳳)은 우는 봉황이란 말인데, 봉황은 어진 임금이 나오면 나타난다는 길조(吉鳥)로서 어진 신하를 뜻한다. 군신 상하와 백성들이 화합하는 것을 말한다. 《시경》 〈권아(卷阿)〉에 “봉황이 소리쳐 우네, 높은 산 저 위에서.[鳳凰鳴矣, 于彼高岡.]”라고 하였다.
[주-D013] 참새 그물 친 :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썰렁한 집을 비유할 때 쓰는 말이다. 한(漢)나라 책공(翟公)이 정위(廷尉)로 있을 때에는 문전성시를 이루다가, 관직을 그만두자 “대문 앞에 새 잡는 그물을 칠 정도가 되었다.[門外可設雀羅]”라고 한 고사에서 나온 것이다. 《史記 卷120 汲鄭列傳》
[주-D014] 제가 …… 되었는데 :
이 때 간재는 주로 오천[외내]에 살고 있었으므로, 여기의 산은 용두산(龍頭山)을 가리키는 듯하다.
[주-D015] 산이 …… 부러지니 :
공자(孔子)가 새벽에 일어나 뒷짐을 지고 한가로이 거닐며 “태산이 무너지겠구나. 들보가 부러지겠구나. 철인이 죽게 되겠구나.[泰山其頹乎, 樑木其壞乎, 哲人其萎乎.]”라고 노래한 다음 별세한 고사에서 유래한다. 《禮記 檀弓上》 이후로 태산이 무너지고 들보가 부러짐은 곧 스승이나 철인의 죽음을 의미하게 되었다.
[주-D016] 축장(築場) :
스승이 돌아가신 뒤에 무덤가에 움막을 짓고 거상(居喪)하는 것을 말한다. 《맹자》 〈등문공 상(滕文公上)〉에 “공자께서 돌아가시자 3년이 지난 다음 문인들이 짐을 챙겨 돌아갔지만……자공(子貢)은 다시 돌아와 묘 마당에 집을 짓고서 홀로 3년을 거처한 다음에 돌아갔다.”라고 하였다.
ⓒ 한국국학진흥원 | 김우동 (역) |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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